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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오디세이아 - 광인의 복화술과 텍스트의 오르가슴
안치용 지음 / 르몽드코리아 / 2023년 6월
평점 :
르몽드에서 출간했기 때문일까, 약간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맛있는 만찬을 즐기듯 읽은 책이다. 시공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맛있는 식재료들을 모두 구해서 풍미를 가장 잘 살리는 질문 방식으로 조리한 코스요리 같다.
일독 후 남은 감정/감상과 더불어 제목을 보니 부제가 잘 이해된다. 저자가 선택한 16개 주제와 내용에, 내가 문자를 통해 배우고 토론한 많은 시간이 함께 흘러간다. 당시에는 부족하거나 과열되었던 사유가 제 분량과 적정 온도를 찾아 한 차례 정리되는 기분도 아주 좋았다.
이 책을 계기로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나는 요즘 영아 유기/살해자로 체포되는 여성들/친모 기사를 볼 때마다 화가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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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도 유기해도 수사를 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미혼모에 대한 인식은 물론, 지원도 없고, 와중에 상담도 안 받으면 불법이라 유죄다.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면, 의지가 없어서 책임을 방기했다고 처벌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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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은 고사하고, 양육비 책임도 안 지는 정자 제공자들은 모든 처벌에서 자유롭다. 찾지 않으니까. 이럴 거면, 2차 성징 끝난 모든 남성의 유전자를 등록해 놓고 아이가 유기되거나 맡겨지면 법적 책임도 묻고 처벌도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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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가가 모르게 아이를 죽인다. 살해범으로 체포되는 건 맡길 수도 버릴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던 여성이다.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의 관점을 따르면, 유성 생식을 하는 포유류가 더 많은 편익이 늘어나는 방식을 따르느라 “종종 사랑으로 포장되는 유성생식 메커니즘”에 따르는 대가(代價)이다.
‘모성 신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 - 어머니(막심 고리키) - 에서도 전형성이 강조된다. 과학이 모성이란 “생물학적 본능이고, 동시에 본능을 극복한 인간의 고귀한 본성이자, (...) 가부장제에 의해 강요된 신화”임에도. 현대사회는 더 저질스럽고 무지성적인 이유로 오용한다. 약자니까, 비용이 덜 드니까.
“나이든 여성이 번식 경쟁에서 물러나 젊은 여성의 번식을 후견”하여 사회적 편익을 늘리고, 강간은 오랜 시간 ‘사회적 행위’였다. ”피해자의 임신과 출산을 통해 강간범이 신생아 아버지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종종 면책되곤“ 했다. 즉, ”가부장제 사회의 통제 기제가 작동하며 강간은 강제로 화간이 된다.”
질문과 결론이 비슷해도 달라도 의미 있게 읽고 배울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혼자 모을 수 없던 텍스트들을 콜라보하고 큐레이션하듯 모아 준 것이다. 대개 나 혼자 읽은 문학의 문해와 감상은 현저히 얄팍하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잘 소화하고 싶지만, 재료가 좋고 맛이 있어서 조금은 빠르게 잘 넘어가는 글이다. 게다가 처음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입담이 좋고 재밌는 동료의 이야기를 함께 즐긴 것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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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대화처럼 흐르는, 포만감이 가득한 경험이었다. 전시회를 여러 번 다녔음에도, 별도로 수록된 고호 작품들 중에 표지에 사용된 낯선 작품이 있어 반갑고 놀랐다. 누구에게 이 책을 추천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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