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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녀 혹은 키스 ㅣ 사계절 1318 문고 109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7년 3월
평점 :
인간의 체액은 바닷물과 비슷하다. 지구 생명체의 고향은 바다다.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를 나이에도 바다를 좋아했다. 사진 찍다 파도가 들이쳐서 4살 꼬맹이가 엄마 손 잡은 채로 바닷물에 잠겼는데, 바닷물이 빠지고 나니 여전히 웃으며 서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기억은 못하지만, 바닷물에 둥둥 떠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 좋았다.
바다, 소녀, 소년, 키스 다 설렌다. 그리고 펼쳐본 책에는 다사다난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대비할 수 없었던 일들로 고통 받는 이들이 가득하다. 속았다. 기사라면 내용이 별로 없을 비극들을 생각해보고 돌아보고 살펴보라고 생생하게 재현하듯 창작하였다. 슬프고 아프다. 현실 다반사일 듯해 삶이 서글프다.
비극으로 인해 상처 받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서, 깊은 상처를 받은 어른이 양육과 보호를 못하게 될까 마음을 더 졸이며 읽었다.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는 상처를 덮어두지 말고 표현을 해야 낫기 시작하는데 그 계기가 간절했다.
상대적으로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한국 아이들이 현실에 없는 귀신과 괴물을 상상하며 무서워하는 반면, 인도네시아의 아이들은 구체적인 재해 상황을 가장 무서운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대비도 기억이 났다.
“매일 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천재지변과 전쟁과 핵폭발, 외계인의 침공이 아니라 깊은 한숨 소리와 소리 죽인 슬픔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씩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겁쟁이인 나는 천재지변, 전쟁, 핵폭발, 기후위기도 무섭고, 가족 모두가 귀가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까봐 매일이 무섭다. 고령의 부모님이 매일 조금씩 약해지며 사라져 가시는 듯해서 두렵다.
단편 하나를 새롭게 만날 때마다 놀랍도록 빠르게 바로 이미지가 떠오르는 세계와 인물이 멋지다. 모두 어딘가 살고 있는 현실 인물들처럼 구체적이다. 각자의 사연에 지는 이도 없다. 청소년들의 생명력이 눈부시다. 그들의 사랑은 또 어찌나 간절한 지. 한 번의 비극으로 생명은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듯!
내 기억이 아님에도, 여러 장소들이 그리워졌다. 아득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파도처럼 공중으로 비산한다. 부디 더 많은 분들이 경험과 느낌과 생각을 기록하시기를. 그래야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