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을 배우다 -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배운 것
에바 페더 키테이 지음, 김준혁 옮김 / 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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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의존은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다.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독립이 목표였던 시절도 있었다.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애써 본 시간도 뜨거웠다. 그런데, 살다 보니, 좀 더 제대로 삶을 보니 자립독립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태어나서 살아온 모든 순간이 의존에 기대에 가능했던 것이다. 매일의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도 그렇다. 인류 문명은 서로 의존하며 만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무엇도 개인적이지 않다. 삶은 사회적인 사건이고 이슈다. 서로 잘 의존하고 돌보고 살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고 세심하게 마련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새해에 새롭게 의존을 배울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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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일종의 폭력성이 있다는 문장을 근래 읽고 자주 생각해보았다. 그런 태도는 믿음만은 아닌 듯하다. 욕망이나 지향이 투영된 많은 단어가 그렇기도 하고, ‘사랑마저도 기대와 변명과 원망으로 빈번하게 무거워진다.

 

뇌과학이 밝힌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에 기반한 선택과 결정 방식도 놀랍지만, 내가 사는 사회와 세상에 대해 그럴 것이다라고 믿는 태도역시 게으른 편견이고 선입견이고 외면이고 무지일 수 있다(다 내 얘기, 내 반성).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여러 사람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거나, 좋은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편견과 고정된 믿음에 대한 집착을 벗어버리지 않는 한,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삶의 전망을 방해하는 우리의 무지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인지, 특히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가 현성하는 전망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며 배우며 정리하며 새해 첫 주를 보냈다.

 

이슈와 명칭만은 너무 익숙하고 이론을 살피는 건 다소 지겹기도 하지만, 현실에선 해결이 충분히 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도구화된 이성도 이분법적 사고도 자격조건으로서 자율성도 그렇다. 특히 한국사회에는 정상성이라는 - 실은 끼리끼리 - 폭력적 구분이 더 세심하게 분화 생성되고 노골적으로 차별과 혐오의 도구로 사용되는 시절이라 더 반가운 책이다.

 

현상은 그렇지만, 다른 한편 관련 토론과 제안과 노력들도 더 다양해지고 포괄적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90년대에 학계 내의 이슈로 접한 문제들이 이제는 현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구체적인 사안으로 다뤄진다는 점도 반갑다. 멈추지 않고 애쓴 모든 분들 덕분이다. 한계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경계를 넓히려 노력한 모든 이들 덕분이다.

 

세상에 자신을 무적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다. 나는 대개 불안하고 눈앞이 흐려서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취약성을,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연결됨을, 다른 무엇보다 배려를 우리 생의 조건이자 가치이자 규제로서 윤리로 살필 수 있는 사회를 바라며 산다.

 

별 일 없을 때도 세세한 돌봄이 필요한 것이 일상이고, 질병에 걸리거나 장애가 생기면 더욱 그렇다. 돌봄과 배려(care/CARE)의 윤리에 대한 90년대 최초의 관심도 내게는 너무 선명한 생의 조건 때문에 불가피한 출현처럼 보였다.

 

독립적으로성취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은 없다. 그러니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 배우고 바꿔나가자고 새해에도 늘 하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 하나의 만능 해법은 없으니, 느려보여도 결국 가장 빠르고 단단한 공부를 시작하자고 할 수밖에 없다.

 

각자가 바라는 목적의 내용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고 싶다는 목적의 의미는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추구가 가능한 사회를 향한 발걸음은 모두 소중하다. 직업으로서 돌봄제공caregiving에 대해 고민하며, 인간이 사는 방식인 의존을 똑바로 응시하는 사랑과 존엄성을 갖춘 이야기를 만나 감사하다.

 

우리가 배울 것은 허구의 독립 능력이 아니라 서로 더 잘 의존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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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약이다 - 대장 건강부터 대변 이식까지
사빈 하잔.셸리 엘즈워스.토머스 보로디 지음, 이성민 옮김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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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과 우울증 관련 약간의 지식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많은 지식정보를 배울 수 있을 테니 반가운 책 소식입니다. 장 건강은 좋은 음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겠지요. 가공식품과 과도한 육식 등을 자제하는 효과적인 가이드가 되어 주리란 기대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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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편식이 심했다고 들었다. 그 탓에 변비가 습관이 되었다. 그러려니 당연해지기도 한 변비는 채식을 시작하면서 없었던 일 인양 사라졌다. 변비는 체질과 운동부족이 아닌 식재료의 문제가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것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세 가지는 대변 이식, 소화기 질환 그리고 장을 위한 식사법이다. 나는 관심사에 따라 식사법을 건강하게 바꿔도 해결되지 않는 소화기 질환이 있다면 대변 이식 등 의학적 방법을 찾아보는 순서로 정리하며 읽었다.



 

내 몸에 내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과 세균이 공생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문득 잊고 싶지만, 공생을 기억하며 살려 노력 중이다. 대장 건강은 특히 인간이 제대로살기 위해 아주 중요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장내 미생물이 38조 개, 면역세포의 약 70%가 산다. 미생물이 이루는 생태계라는 신조어, 미생물군계(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

 

우리는 미생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할 뿐입니다. 이는 완전한 상호의존관계를 의미합니다. 미생물군계는 뇌나 심장만큼 생존에 대단히 중요한 장기 체계입니다.”

 

확장된 로 불릴 만큼 신경이 많은 장신경계는 인간의 소화기와 몸과 정신의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조절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즉 위장의 미생물의 건강 상태가 인간의 감정이다. 인간의 몸은 세균의 신체 특성과 별개가 아니며, 인간 DNA와 세균 DNA는 공존 중이다.

 

그러니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다We are what we eat.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섭취하면 영양소만 문제가 아니라, 신체 전반의 생명활동을 망치게 된다. 운이 나쁘면 급성/만성 질환으로 고통 받거나 사망에 이른다.



 

, 우리가 먹는 것들이 장내 미생물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우리의 건강과 질환의 비밀이자 열쇠다. 이렇게 이해하면 대변 이식은 회복을 위해 필요한 약을 처방받는 의학적 처치이다.

 

우리가 여러 가지 세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우리는 특정 속과 종의 미생물군을 가진 특정한 기증자를 찾을 것입니다. 결국 헌혈이나 장기 기증 같은 체계와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당신의 똥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하세요!”

 

물론, 적응이 필요하고, 부작용과 합병증도 고려되어야 하며, 주의 깊은 투여 기술도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소화기내과 분야의 일을 일상적으로 알 방법이 없으니, 이 책이 더 반갑고 고맙다. 최근 10년간의 연구 진행을 확인할 수 있다.



 

혀에 맛있는 음식이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박멸을 내세우는 위생적인 삶이란 결과적으로 어떻게 유해할 수 있는지, 상식과 사고의 과학적 반전과 정확한 지식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책이다. 가공식품 섭취가 줄고, 세제와 항생제 소비가 줄고, 피폐한 생활 습관과 과도한 스트레스도 더불어 줄어드는 삶을 지향하는 사회에 하루빨리 통용되길 바라는 지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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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어 내린다
유형준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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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고 새해이고 주말이고 시집은 언제라도 좋지만, 지금은 더 좋다. 시가 아주 빼곡해서 목차를 보며 놀랐다. 소나기나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 같다고도 생각했다. 시가 되어 내리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 하며 시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세상]

 

그럴대신 써넣을 수 있는 것들을 오래 생각해본다. 애틋하고 애절하고 약하고 큰 말들, 꿈들, 희망들, 상식들. 내가 사는 여기가 어딘지 한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던 소식을 듣고, 할 말은 많지만 내내 참는 중이다.

 

나를 위한다는 말은

누굴 위한다는 것인가

 

(...)

 

할 수 있다는 말은

누굴 위한 것인가

 

[누굴 위한 것인가]

 

위한다는 말에 대해 낯설어하며 생각해본다. 그 목적성은 어디를 향하는 것이었는지. 사랑이라기엔 너무 무겁다. 변명과 원망처럼도 들린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은 새해기를 바라는 중.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되고

 

[제한할 수 없는 것]

 

내가 아는 시간의 방향과 달라서 잠시 멈춤한 시. 가만 생각해보니 이 방향도 맞다. 영화 <컨텍트>에서처럼 시간을 느끼고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모든 것을 다 알고도 하는 선택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저는 여기 없습니다

(...)

제 생각도 여기 없습니다

(...)

나의 의지도 여기 없습니다

(...)

이곳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저 지나갑니다.

 

[여기 없습니다]

 

경사보다 조사가 많은 나이라서, 죽음도 삶도 자주 확연하게 절감하고 만다. 본질에 너무 가까우면 일상을 사는 일이 버거워진다. 연말연시 긴 연휴와 바쁜 일정과 시시한 체력에도 불구하고 학전의 마지막 공연을 본 것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애도와 존경 때문이었을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알지만 아는 대로 살지 못하니 그런 현실을 슬그머니 외면한다. 하다 보면 점점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그렇게 사는 방식이 삶이 되고, 함께 사는 세상이 되고, 그 결과가 지금, 여기, 현재라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거대하다.

 

끼리끼리 축하하고

끼리끼리 축배를 들고 있다

 

끼리가 없는 사람은 넘어졌지만

끼리끼리 세상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끼리끼리]

 

인간은 끼리끼리가 되면 최악으로 시시해진다. 시시해진 인간들이 벌이는 무도하고 잔인하고 무지한 짓들은 세상을 시시하게 만든다. 새해가 되자마자 희망이 뚝 끊기듯 들리는 갖가지 소식들.

 

사람은 사람으로 병들어 간다

(...)

사람은 사람으로 병들어 간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병들고, 사람 아닌 존재들도 사람으로 병들고. 사람은 지구 역사에서 어떤 존재였나 생각해보는 것도 지치고, 그럼에도 태어나 살아볼 수 있어서 벅찬 짧은 시간이다.

 

내 눈 위로 꽃비가 내린다

 

(...)

 

얼어붙은 노여움을

녹여 내린다

 

[내린다]

 

내리는것들이 시집 속에 문득 등장한다. 몇 개인가 세다가 무의미해서 그만 두었다. 내리고 흐르는 것들이 모두 시가 되어 다시 내린다. 겨울눈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네가 없는 일상보다

네가 있는 꿈에 갇히고 싶다

 

(...)

 

의미 없는 일상보다

네가 있는 꿈에 갇히고 싶다

 

나의 꿈은

꿈속에서 이루어진다

 

[꿈에 갇혀]

 

꿈이 있어 불행하다는 고백을 들었다. 꿈이 없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면 꿈과 함께 불행한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온통 절망할 것 투성이라도 새해라는 핑계로 꿈을 꾸고 희망하고 애써 보는 거지. 이렇게 시집도 펼쳐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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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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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뾰족한 가시덤불 터널을 지나다 몇 번이나 깊숙이 찔리고야 마는 읽기 경험이다. 현실을 직시하기도 버겁고, 희생도 싫고, 필요한 변화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삶 대신 책을 도피처로 삼은 방식의 독서를 어렵게 하는 문학이다.

 

결국 잘 정리된 언어는 뼈대와 비늘을, 씹을 수 없거니와 혀에 상처까지 남기는 부분을 우리에게서 벗겨내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무해하고 다정한 환대를 말하는 책들이 우리를 우아하게 모욕한다고 느꼈다. 우리를 매대에 올릴 만한 상품으로 소모시켜버린다고 느꼈다. 이 정도의 누추함은 감당할 수 있다는 오만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덩어리에서 슬픔과 연약함처럼 투명한 감정만 추출하고 기이함과 추함과 주먹질과 발작적인 웃음 따위는 모두 없는 척 내버리는 것이다.”

 

뇌가 그렇게 기능한다니,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편견과 선입견이라지만, 늘 기억하고 직시하고 조심하는 대신, 더 배우려고 하는 대신, 게으르고 편한 선택을 하는 삶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질문을 던지는 문학이다.

 

포착하기란 하나의 상을 확정하며 시야 바깥을 잊는 일이고, 말하기란 보이는 것에 언어를 덧씌우고 나머지를 거스러미처럼 내버리는 일이다.”

 

고단하고 버거워서, ‘상식을 고민하던 시절에서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그저 견디는 시절을 사는 동안, 도덕과 윤리의 하한선은 계산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타인에게 피해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만 하면 된다고. 단요 작가가 써낸 고차방정식을 제대로 풀려면 이기호 작가의 추천사처럼 무서운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는 철저히 계산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깔끔하게 줄 거 주고, 받을 거 다 받으면서 살아온, 성실하고 모범적인 일차방정식의 신봉자일 수도 있다.”

 

세상을 구분선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본다고 해서, 내가 모른 척 하는 어느 정도까지가 비겁하지 않은 걸까. 도대체 내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무력감조차 내 일인 걸까. 상식에서 멈추지 않고, ‘정상성을 신봉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그리 멀리 갈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함께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태어나보니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나있어 추락부터 배운 아이가 약함과 악함의 경계를 묻는다. “본질을 보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속물이 되는 유형인 어른들에게, 가지 않을 가게의 할인권 같은 쓸데없는 호의에 대해. 뒤섞여 있는 악함과 약함과 불쌍함의 체계들에 대해, ‘에 대해.

 

만약 내 엄마가 그런 여자고 내가 그런 애라면, 너희는 나를 이렇게 취급해도 되냐는 것이다. (...) 예쁘지도 선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짓밟아버려도 되냐는 것이다.”

 

라면 절도와 수백억 유용의 형량이 같고, 한쪽은 기어이 사면을 받는 현실에서, 여기저기 내몰리다 휘두른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주먹질에 쏟아지는 거대한 사회적 폭력과 거의 잊고 사는 거대한 살육 전쟁을 멈추지 못한 현실에서, 나는 그저 쩔쩔매며 필사를 마쳤다.

 

세상은 악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고통으로도 가득 차 있으며, 두 고통의 결과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케이크 손 남자의 선택을, 거룩함을 생각한다.




 

! 호의와 성의와 도의의 한자어 차이를 배웠다. 호의(好意), 성의(誠意), 도의(道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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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재발명하라 - 가부장제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을 망가뜨리나
모나 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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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 대답하려면 어렵다. 십 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란 더 어렵다. 좋아한다는 감정과는 영향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존재와 삶의 방식을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감정이자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적어도 이렇게 아주 중요한 사랑을 재발명하라, 는 명령 같기도 한 프로젝트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더구나 억압적인 질서와 시스템을 벗어난 방식이라면 더욱 흥미롭다. 반대를 무릅쓴 사랑에 대한 찬사가 동서고금 존재한 것은 사랑은 거짓과 위선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내재한 해방의 동력일 수 있다.

 

정의는 상상을 위해 거쳐야 할 필수적인 출발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 될 수 없다.” 벨 훅스bell hooks, Gloria Jean Watkins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이 책이 아주 진지하고 무거울 거라는 잘못된 느낌을 전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표지가 주는 경쾌한 느낌처럼, 작가가 인용하고 기술하는 방식과 다양한 대중 문화 자료는 탄탄하고 재밌고 유연하다. 충분한 지식과 단단한 확신을 재밌고 자유롭게 변주하는 작가의 능력이 멋지다.

 

특히 성적 자극은 난무하나 억압과 강제 - 가부장제 - 도 몹시 강한, 이상한 모순 같는 메시지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유용한 질문과 고민과 방향을 찾아가는 중요한 가이드이자 참고 자료가 된다.



 

사랑은 일상이고 삶이고 지속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는데, 사랑의 열정 혹은 열기만 강조해서 판매하는 온갖 문화상품들이 왜곡하는 이미지들은 사랑도 사람도 망가뜨린다. 세상에 순정파 재벌3세가 몇 명이나 될 것이며, 선한 능력자인 남성 구원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또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폭력과 범죄를 대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반응과 태도 역시 심각한 문제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주로) 남성 가해자를 대신 변명해주는 사회적 부조리*가 반복되는 한 사랑이 깃들고 깊어지고 확산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 힘패시himpathy(himsympathy의 조합): 폭력적인 남성을 포함해 모든 남성의 감정, 경험, 관심사 등에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의 부조리함. 케이트 만(철학자)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통계가 될 정도로 빈번하게 사랑이 실패하고, 삼무, 오무처럼 사랑을 아예 시도하지 않는 삶이 확대되는 것은, 그러한 사랑의 실패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작가는 가장 큰 원인이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는 사회라고 조명하며 그 사회적 조건들을 분석한다.



 

점점 더 크게 말할 여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리라고 희망하자.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의 속에 온전히 자리를 잡으리라고 희망하자.”

 

기자이자 작가님 모나 숄레의 전작들도 읽어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무척 희망적인 사랑을 재발명하자는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흐름을과 집중하는 주제에 대한 이해한 더 분명하게 깊어질 듯하다. 번역 출간이 반갑고 고마운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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