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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평점 :
뾰족뾰족한 가시덤불 터널을 지나다 몇 번이나 깊숙이 찔리고야 마는 읽기 경험이다. 현실을 직시하기도 버겁고, 희생도 싫고, 필요한 변화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삶 대신 책을 도피처로 삼은 방식의 독서를 어렵게 하는 문학이다.
“결국 잘 정리된 언어는 뼈대와 비늘을, 씹을 수 없거니와 혀에 상처까지 남기는 부분을 우리에게서 벗겨내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무해하고 다정한 환대를 말하는 책들이 우리를 우아하게 모욕한다고 느꼈다. 우리를 매대에 올릴 만한 상품으로 소모시켜버린다고 느꼈다. 이 정도의 누추함은 감당할 수 있다는 오만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덩어리에서 슬픔과 연약함처럼 투명한 감정만 추출하고 기이함과 추함과 주먹질과 발작적인 웃음 따위는 모두 없는 척 내버리는 것이다.”
뇌가 그렇게 기능한다니,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편견과 선입견이라지만, 늘 기억하고 직시하고 조심하는 대신, 더 배우려고 하는 대신, 게으르고 편한 선택을 하는 삶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질문을 던지는 문학이다.
“포착하기란 하나의 상像을 확정하며 시야 바깥을 잊는 일이고, 말하기란 보이는 것에 언어를 덧씌우고 나머지를 거스러미처럼 내버리는 일이다.”
고단하고 버거워서, ‘상식’을 고민하던 시절에서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그저 견디는 시절을 사는 동안, 도덕과 윤리의 하한선은 계산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타인에게 피해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만 하면 된다고. 단요 작가가 써낸 고차방정식을 제대로 풀려면 이기호 작가의 추천사처럼 무서운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는 철저히 계산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깔끔하게 줄 거 주고, 받을 거 다 받으면서 살아온, 성실하고 모범적인 일차방정식의 신봉자일 수도 있다.”
세상을 구분선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본다고 해서, 내가 모른 척 하는 어느 정도까지가 비겁하지 않은 걸까. 도대체 내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무력감조차 내 일인 걸까. 상식에서 멈추지 않고, ‘정상성’을 신봉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그리 멀리 갈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함께’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태어나보니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나’있어 ‘추락’부터 배운 아이가 “약함과 악함의 경계”를 묻는다. “본질을 보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속물이 되는 유형”인 어른들에게, “가지 않을 가게의 할인권 같은” 쓸데없는 호의에 대해. 뒤섞여 있는 “악함과 약함과 불쌍함의 체계들”에 대해, ‘죄’에 대해.
“만약 내 엄마가 그런 여자고 내가 그런 애라면, 너희는 나를 이렇게 취급해도 되냐는 것이다. (...) 예쁘지도 선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짓밟아버려도 되냐는 것이다.”
라면 절도와 수백억 유용의 형량이 같고, 한쪽은 기어이 사면을 받는 현실에서, 여기저기 내몰리다 휘두른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주먹질에 쏟아지는 거대한 사회적 폭력과 거의 잊고 사는 거대한 살육 전쟁을 멈추지 못한 현실에서, 나는 그저 쩔쩔매며 필사를 마쳤다.
“세상은 악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고통으로도 가득 차 있으며, 두 고통의 결과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케이크 손 남자의 선택을, 그 ‘거룩함’을 생각한다.
! 호의와 성의와 도의의 한자어 차이를 배웠다. 호의(好意), 성의(誠意), 도의(道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