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가의 똥냄새는 향긋하다고 엄마들은 말한다. 사랑하게 되면 연인의 발 냄새도, 정수리의 냄새도 좋아하게 된다. 단 사랑이 식을수록, 사랑이라는 애매한 무형태의 크기도 줄어들면 더 이상 좋은 냄새도 향기가 아니게 된다.


잠을 잘 때 혹 안 좋은 냄새가 나면 잠드는 게 힘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방이 아닌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에 그렇다. 호텔이나 펜션 같은 숙박업소에는 안 좋은 냄새가 도사리고 있지 않지만 텐트 속이나 여인숙 같은 곳에서 잠을 청할 때 가끔 냄새가 숙면을 방해하기도 한다.


친구의 자취방에 가면 나는 냄새가 있다. 베개를 하도 빨지 않아 나는 냄새, 담배를 피워대서 연기가 천장에 배어들어 나는 냄새, 설거지를 제때에 하지 않아서 나는 냄새, 제대로 빨지 않은 빨래를 제대로 말리지 않아서 나는 냄새가 전부 뒤섞여 나는 냄새가 있다. 참으로 오묘한 냄새로 한 마디로 싫다. 잠이 오지 않는다.


모텔에 가면 모텔만의 냄새가 있다. 모텔에서 냄새가 난다기보다 모텔이 지니고 있는 모텔만의 단단한 냄새가 있다. 커튼과 대형 티브이와 이인용 탁자와 욕실의 문, 그리고 일괄적인 스킨로션과 드라이기가 주는 모텔만의 색채에서 나는 냄새가 있다.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스며드는 그런 냄새다.


하루 동안 지내다 보면 여러 가지 냄새를 맡는다. 좋은 냄새가 있고 기분 나쁜 냄새가 있다. 요컨대 전기배선이 타는 냄새라든가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는 기분이 나쁘다. 그 외의 안 좋은 냄새는 기분이 나쁠 것 까지야 없어서 수용할 만한 안 좋은 냄새에 속할지도 모른다. 똥냄새는 싫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물론 점성이나 물성 내지는 양에 따라 냄새도 달라지지만 퉁 쳐서 똥이라는 것의 냄새. 안 좋기는 하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물론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정말 기분이 안 좋은 냄새는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다. 그래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안 좋은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 열심히 씻고 샤워하고 뭔가를 발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입을 벌리면 옆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입에서 똥내가 난다고 하는 블록버스터급의 말을 듣게 된다.


참 묘하게도 좋은 냄새는 대체로 인공적인 냄새다. 일단 음식 냄새가 그렇다. 불에 지지고 볶고 끓이고 튀기는 냄새는 너무 좋다. 분자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키는 냄새일까, 음식을 하면서 식재료의 분자가 마구 뒤틀리는 냄새는 좋다. 오전에 아파트 계단으로 퍼지는 계란 프라이 냄새, 일요일 늦은 아침에 솔솔 풍기는 짜파게티 냄새는 늦잠을 결국 포기하게 만든다. 짜파게티 냄새 정말 좋지 않습니까? 미칠 것 같아요 짜파게티 냄새는. 그리고 좋은 냄새라고 하면 향수라든가 방향제, 비누나 샴푸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냄새다.


제대를 하고 잠시 토건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늘 현장에서 일을 했다. 현장에서 하수구를 파서 파이프를 연결하는 일을 했는데 내가 직접 하지는 않고 그 일은 하청을 받은 회사에서 인부들이 했다. 나는 설계도면대로 되는지 그런 걸 체크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인부 아저씨들과 친하게 된 후로 연장을 나르고 하수구에도 직접 들어가고, 그래서 몸에서 하수구 냄새가 났다. 아후 하수구 냄새만큼 싫은 냄새도 없다. 그렇지만 내 몸에서 하수구 냄새가 난다고 나를 피한다거나 냄새가 난다고 나무라는 인부 아저씨들은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트럭 뒤에 전부 올라타서 기사식당에서 열심히 밥을 먹고 볕이 드는 곳에 앉아서 하하하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또 오후 시간에 열심히 하수구를 팠다. 물론 아저씨들 몸에도 하수구 냄새가 났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수구 냄새인데 싫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가 있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을 해서 작업을 했다. 그때 김 과장님과 같이 점심을 먹을 때가 있었다. 김 과장님은 비빔냉면을 먹고 겁도 없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업무지시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냄새에 비빔냉면과 자판기 커피와 담배냄새가 뒤섞여 악마의 고름 같은 냄새가 났다. 죽을 것 같았다. 욕이 튀어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10분 만에 두통이 찾아왔다. 김 과장 놈, 게보린이라도 사주고 말을 하던가, 양치질이라도 하고 나서 말을 하던가. 냄새로 머리를 아프게 하다니, 두통이 오는 냄새가 바로 그 냄새였다. 냄새가 사람에게 고통을 주다니. 인간이 입으로 만들어낸 이 지독한 냄새.


순간 저 김 과장의 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 중에 땅 밑으로 굴을 파고 다니는 적군을 물리칠 때 이 냄새를 뿌리는 것이다. 서서히 조여 오는 두통으로 적들은 미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헤헤헤.


나는 나의 고민을 사무실에 남아서 sns에 올렸다. 사람들은 대부분 격려를 해줬다. 사람들 덕분에 그 하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는 너무 아팠다. 냄새의 여파가 너무 컸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두통이 심했다. 컴퓨터를 끄려는데 빨간빛이 화면에 깜빡깜빡거렸다.


그 빨간불이 계속 신경이 쓰여서 클릭을 했다. 클릭을 하니 어플이 열리면서 하나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텍스트가 보였다. 텍스터의 모양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글자꼴이었다. 아우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서 어플에 반짝이는 텍스트를 클릭했다. 그랬더니 여자 문제에 관한 부분은 여기를, 시험 점수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여기를, 가족문제, 친구 같은 카테고리가 있었다. 나는 직장 상사 카테고리 부분을 눌러 들어갔다. 거기에는 미운 직장 상사를 보내는 카테고리가 있었다.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클릭, 클릭, 더블 클릭.

 

다음 날 김 과장님은 점심에 감자탕으로 통일을 했다. 반드시 감자탕이어야 한다. 감자탕 집에서 부서원들이 점심을 말없이 먹고 있다. 김 과장님도 감자탕을 먹었다. 국물을 떠먹고 마늘을 먹고 양파도 먹고 김치도 먹고 밥도 먹고 묵은지도 먹고 뼈다귀도 뜯어먹는 김 과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잘 먹는다. 점심을 다 먹은 다음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한대 피운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 과장님은 양치질을 한다. 그런데 입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다. 냄새는 사무실을 악취 속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원들은 코를 막다가 나중에는 숨을 헐떡거렸다. 김 과장님이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코를 막고 목을 부여잡더니 기침을 심하다가 구토를 했다. 구토물은 더한 악취가 나더니 구토물에서 어떤 생물체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남들은 싫어하는데 자기만 좋아하는 냄새도 있다. 가령 자동차 정비소에서 나는 기름 냄새나 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작업복 냄새가 그럴지도 모른다. 기억에서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것이 후각이라고 한다. 냄새는 추억에게 신세를 지며 들러붙어있는다. 추억이 물에 불은 신문지처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붙어 있는다. 그때 그 냄새, 그 향기가 나는 것 같아.


생각해보면 좋은 냄새 중에 평소에 맡을 수 있는 자연적인 냄새는 꽃향기 정도뿐이다. 꽃집에 들어가면 나는 냄새가 있고 봄이면 강변에 들에 나는 꽃냄새가 있다. 동네 곳곳에 심어 놓은 나무가 꽃을 피우는데 거기서 나는 냄새가 얼씨구 ‘봄’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린다. 그런 꽃냄새가 가득한 봄이 좋다. 봄 냄새가 나니까.



꽃은,

꽃이 피고 지는 건 인간의 삶과도 흡사하다. 피었다 싶으면 언젠가는 시들고 만다. 하지만 개화기의 처녀처럼 또 시기가 되면 반드시 그 예쁜 모습을 궁극적으로 보여준다. 좌절을 맛보았다고 해서 다시 찬란하게 빛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의 굴곡을 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꽃이 가득한 집에 살고 싶다. 마당이 있어서 한가득 꽃을 심어놓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해마다 바라보다가 죽고 싶다. 벌레가 일 거야, 청소는? 같은 따위의 충고는 신경 쓰기 싫다. 말을 하지 못하는 꽃이지만 매일 관리를 해준다. 알록달록 일렬로 죽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면 그 뒤의 어떤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모르고 당장 꽃을 보며 웃게 될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에도 꽃을 친구의 어머니께 선물한다. 꽃을 받은 어머니는 꽃에 얼굴을 묻고 옛일을 잠시 생각할 것이다. 꽃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네가 나에게 필요하듯이. 비록 계절이 바뀌어 변심한 그처럼 시들어 나를 버릴 지라도. 꽃은 삶이기 때문에, 너는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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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구로 어린이 공화국이 생겨났고 1대 어린이 대통령과 어린이 국회가 생겼다. 그때 흥미 있게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1대 어린이 대통령이 라디오 어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던 게 생각이 난다. 6학년이었는데 아주 말을 조리 있게 잘했다.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2274.html

어린이 헌법에는 놀 권리가 담겨 있다. 전쟁 폐허 속에서도 재미있게 놀아야 하는 게 어린인데 근래에는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여기서 놀면 안 된다, 뛰면 안 된다, 올라가지 마라.라고만 할 뿐이다. 만약 어린이들이 뛰지 않고 뒷짐 지고 다니고 저음으로 말하면 이상하지 않나. 2017년에는 아주 흥미롭게 지켜봤는데 이후 2대 어린이 대통령은 나왔는지, 어린이 국회는 잘 돌아가는지 검색이 안 되어서 나도 관심이 떨어졌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우리도 다 어린이를 거쳤기에 지금의 모습에 닿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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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동네 병원이 보이는데, 의원이라고 된 간판이 있고 병원이라는 간판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진료과목이 같은데 병원과 의원으로 다르게 간판이 있어서 궁금했다. 왜 그렇지?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유튜브도 있었다. 호오 이런 이유에서 간판이 달랐구나.

https://youtu.be/DdqIHM8n_5w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냥 가는 '병원'과 '의원'의 중요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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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울려 퍼지는 캐럴은 늘 따뜻한 느낌이다. 근래에는 예전만큼 캐럴이 나오지도 않고 그런 느낌이 많이 죽었지만 카페에 들어가면 그래도 캐럴은 나온다. 캐럴의 최고봉은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지만 넷 킹 콜의 크리스마스 캐럴도 좋다. 재즈의 신이라 불리는 넷 킹 콜, 그의 노래에는 소울이 있어서 듣고 있으면 좋다. 이유가 없다. 마치 지금, 현재의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좋다. 올백의 잘생기고 입이 큰 넷 킹 콜. 그가 부르는 ‘웬 아이 폴 인 러브’를 듣고 있으면 정말 편안하게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https://youtu.be/GfAb0gNPy6s

 넷 킹 콜 하면 그의 딸인 나탈리 콜과의 콜라보인 ‘언포게터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미 넷 킹 콜이 죽었기에 나탈리 콜은 컴퓨터로 살려낸 아버지와 함께 한 무대에서 같이 언포게터블을 불렀다. 그랬던 나탈리 콜도 얼마 전에 아버지를 따라갔다. 그렇게 빨리 죽을 나이도 아니었지만 병이라는 건 여지를 두지 않는다.

https://youtu.be/DhpmxjRXneY


넷 킹 콜이 1964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아리랑을 불렀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서프라이즈 티브이에서 한 번 했다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유튜브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찾아봐도 없다. 아리랑을 들어보면 우리네 감정을 알고 부르는 느낌이다. 특히 아라이라이요이 하면서 유머스럽게 부르고 사람들이 웃음으로 화답할 때 참 좋다.

https://youtu.be/9DCPhieHD7U

넷 킹 콜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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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다 보면 일본 사람들은 지금도 시디가 들어가는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다는 식의 영상이 있고 또 그게 마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일본을 싫어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이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게 마치 모든 일본인들이 그렇게 한다고 몰고 가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일본 드라마만 봐도 거의 맥북을 사용하고 있고 일본 친구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구독자와 조회수에 눈이 멀면 그렇게 되는가 싶기도 하다. 근래에 영화에서는 한국과 일본 배우들이 더 손을 잡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시야 유야 감독의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강릉에서 촬영을 했고 주인공이 한국 배우와 일본 배우들이다. 이케마츠 소스케와 오다기리 죠, 김민재와 최희서, 김예은이 주인공들이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 시기에 어렵게 영화를 촬영했다.

희망이라고는 1도 없는 일본의 형제가 1의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와서 일을 하려다 사기를 당한다.


행복이라고는 1도 없는 한국의 3남매는 엉망진창인 처지를 좀 바로잡으려 엄마의 산소로 간다.


형제 중 동생은 소설가에 어린 아들도 있지만 형에게 속아서 한국에서 돈을 다 날리고 형이 강릉으로 가서 미역 사업을 하자고 한다.


한때 아이돌이었던 3남매 중 둘째는 기획사 사장을 잘못 만나 몸도 마음도 다 빼앗기고 무능력 오빠와 천식 동생과 함께 엄마 산소가 있는 강원도로 간다.


희망도 행복도 없는 일본과 한국의 가족이 만나 같이 강원도의 길에 오르면서 로드 무비가 시작된다.


오다기리 조가 등장하는 순간, 웃긴 장면이 된다. 오다기리 조는 멋진 역할을 그간 다 버리고 예수나 지질하거나 거지꼴의 역할로 나와 웃음을 피식 자아낸다. 그런데 거지꼴로, 어눌한 한국말을 해도, 여자를 보고 완전 반한 표정을 지어도 멋있다.


나는 이 감독이 좋아서 이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봤다. 그래서 독립영화인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도 재미있게 봤다. 일본 감독이 일본 배우들을 데리고 한국의 강릉에서 한국 배우들과 영화를 코로나 시기에 찍었다.


꿈도 희망도 없고 매일 울고 싶은 일들만 잔뜩 있지만 실컷 울지도 못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나중에 전부 우당탕탕 일들이 끝나고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 때 헤어지게 되려는데, 서울로 가도 좋은 것은 없다. 힘든 현실만 있을 뿐이라며 마지막에 모두가 솔의 집에서 밥을 먹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잡채, 불고기, 김치, 육개장 컵라면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한일 가족. 제대로 된 가족은 무엇인지, 가족의 형태라는 게 어떤 건지 영화는 조금씩 드러낸다.

https://youtu.be/AZTnw5P1CoQ



2020년에 개봉한 ‘용길이네 곱창집’은 또 어떤가. 김상호, 마키 요코, 이노우에 마오, 사쿠라바 나나미, 이정은, 오타니 료헤이 등 한국과 일본의 잘 나가는 배우들이 주인공들이다.

일본 영화이자 한국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이다. 1960년대 일본 오사카의 판자촌에서 사는 한국 가족 용길이네가 곱창집을 하며 일본에 녹아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일본 전시에 나가서 한쪽 팔을 잃어버린 아버지 김상호,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서 다리를 저는 큰 딸 마키 요코, 가족의 일이라면 다 던지고 나서는 엄마 이정은, 지긋지긋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이 생활 속에서 돌파구를 찾는 둘째 딸 이노우에 마오, 그의 철없는 예비 남편  오오이즈미 요, 닐리아를 기가 막히게 부르며 가수를 꿈꾸는 셋째 딸 사쿠라바 나나미, 그리고 조선인이라 학교에서 늘 맞아서 학교 가기 싫은 일본 사립학교 다니는 막내 토키오. 이 모든 등장인물이 한국인으로 나온다.


내가 대사를 듣기에 한국 배우들이 하는 60년대 일본 대사는 잘하는 거 같은데 일본 배우들이 말하는 한국어는 어눌하다.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못한다고 나온다. 그래도 사쿠라미 나나미는 한국어를 꽤 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의 내놓아라 하는 배우들과 한국의 배우들이 한 가족으로 나온다. 보면서 일본 배우들이 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일본의 잘 나가는 배우들이 한국인을 연기하는데 그들의 입으로 한국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이지만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김치는 김치다, 다들 한국인들이 우습지? 같은 대사를 한다.


영화를 보면 각본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요소가 곳곳에 있어서 보는 내내 재미있다. 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대사들이 일본 속 1세대 한국인들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재일’은 모순덩어리야. 차별과 편견 속에서 일본을 증오하고 한국을 그리면서도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니.


당연하지, 한국 가봤자 먹고살 길이 없잖아. 한국어도 서투른데.


결국 이거야돈에  있는 거지 손에  손에 눈물눈물의 ‘재일’ 스토리.


벗어날 수 없으니 그곳에서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놈의 고문 같은 희망을 품으며 내일은 밝으리라.


재미있게 봤다. 각본이 정말 좋다. 정의신 감독은 일본 영화판에서 각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 영화계의 안톤 체호프라 불린다. 비록 60년 대의 이야기지만 80년대, 2000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영화 이전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용길이네 곱창집,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연극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일본 영화와 한국 영화를 좋아하면 보기 바람요.

https://youtu.be/vsIpW5wf5_U


그 외에도 많은 한일 영화가 배우들이 합작으로 서로 영차영차 하며 만들어가고 있다. 문화와 예술에서는 모두가 친하게 손을 잡고 친밀하게 지내는데 어째서 방송, 정치, 유튜브 같은 곳에서는 서로 미워하라며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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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에 두부집 딸내미가 있었다. 그 애는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부모님이 두부 장사를 하는데 도와줘야 한다며 늘 곧장 집으로 갔다. 그 애의 집은 시장 한 편에 있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서 저녁까지 팔았다. 그래서 그 애는 대체로 일찍 일어났다. 야무지게 입을 앙 다물고 두부를 사러 온 손님에게 잘 담아서 건네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도시락으로 질릴 법도 한데 두부가 반찬에 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4, 5, 6학년에도 클럽활동을 했는데 동화 부였다. 동화 부라고 해서 동화를 전적으로 많이 읽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이틀만 동화 부이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 – 요컨대 방패연을 만들어서 날리기도 하고, 골목에 대해서 조사를 하기도 하고,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이 무엇을 하며 노는지에 대해서도 관찰하는 등 동화부 선생님이 기묘한 사람이라 기묘한 활동을 많이 했다. 물론 동화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기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거의 안 읽었던 것 같다. 톰 소여의 모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번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이 시장에서 어떤 음식이나 식재료를 파는지 조사를 한 번 하라고 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두부집 딸내미에게 말해서 두부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4시면 부모님이 일어나서 콩물을 쑤어 두부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애와 같이 두부를 팔고 청소도 했다. 저녁에 집에 갈 때 그 애의 아버지가 두부를 여러 모 주셨다. 그대로 먹어도 좋다고 했다. 두부는 투박했지만 맛있었다. 두부에는 온도가 있다. 데우지 않아도 두부를 만든 사람의 온도가 두부 속에는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 애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두부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에 ‘요리는 생명을 위해 복무하지만, 그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에서 얻는다. 육식하는 사람의 태생적 딜레마랄까, 번민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요컨대 요즘의 개고기 논란도 생명이라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소도, 돼지도, 그리고 닭도 열심히 애지중지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것만 놓고 보면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생계와 생존이 개입을 하면 또 달라진다.


역사 속에서 음식은 늘 계급을 나타낸다. 소나 돼지를 잡으면 등심 같은 구이 감은 부자나 권력자들에게 내어주고, 노동자와 민중들은 내장이나 부속물로 탕을 끓이거나 졸여 먹었다. 중국의 북경오리도 3천 원짜리부터 25만 원짜리까지 계급이 나뉜다.


하지만 두부는 위의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먹는 두부는 그저 두부다. 두부는 두부일 뿐이다. 새벽에 바다에서 와서 콩으로 만들어진 두부는 그날 해치우는 두부가 가장 맛있고 몸에도 좋다. 두부는 계급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가 두부를 먹기 시작한 지가 놀랍게도 고려 시대로 올라간다. 고려 시대 문헌인 ‘목인집’을 보면 ‘오랫동안 맛없는 채소 국만 먹다 보니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성긴 이도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늙은 몸을 장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라고 쓰여 있다.


후에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칙서가 이르거든 특히 두부 만드는 솜씨를 익히 보내주기 바라오’까지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두부는 이렇게 역사가 깊고 맛도 깊었다. 연포탕이라는 이름은 원래 두부가 들어간 국을 칭하는 것이다.

두부를 거의 매일 편이다. 두부는 음식 중에 대체로 저렴한 편이고, 담백하고 나처럼 위가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사람에게는 역시 좋은 음식이 아닌가 싶다. 맥주와도 어울리고 굽듯이 튀겨낸 두부는 아주 맛있다.


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두부 역시 두부다. 그게 바로 두부의 맛, 온도의 맛이다.


좀 익은 김치를 걸쳐 쌉싸름한 싸구려 와인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시고르자브종 와인은 씨유에서 7천 원 정도에 판다.


들기름에 구우면 두부의 민낯이 아주 뽀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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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09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부의 역사가 꽤 깊네요.
맥주 안주로 정말 잘 어울리겠습니다.
두부는 어찌보면 닝닝할 것 같은데 먹으면 의외로 맛있어요.
저도 다음에 맥주 먹을 때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 언제 먹을지 모르겠지만...ㅋ
두붓집 따님 어린 나이에도 생활력이 강하고 씩씩한 것 같습니다.^^

교관 2021-12-10 11:51   좋아요 1 | URL
두부를 거의 매일 먹는 저로서는 두부만한 음식은 없다고 믿어버렸습니다 ㅋㅋㅋ 무엇보다 해먹기 편하고요, 가격이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하고, 아무 음식과도 어울리고요 ㅋㅋ
 

근래에 들어서 보면 예전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연걸의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영화에 속하는 황비홍 1편. 황비홍의 영화가 주는 매력은- 이전의 중국 무협극에서는 빌런에게 많이 얻어맞다가 이기는 액션에 비해 황비홍은 빌런에게, 빌런들에게 몸을 내주지 않는다. 절대 한 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점이 아주 좋다. 무영각을 사용할 때는 발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봐도 1편은 명작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이연걸의 대역이 대부분 액션을 한다. 그게 표가 많이 난다.

 

좀 더 이전의 영화,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플래시 댄스’의 알렉스의 춤도 근래에 보면 제니퍼 빌즈가 아니라 대역의 표가 그대로 드러난다. 제니퍼 빌즈는 당시에 춤을 전혀 추지 못해서 대역을 사용했는데 감독이 애매하게 말을 흘리는 바람에 제니퍼 빌즈만 안 좋게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픽이라든가, 전혀 표가 나지 않는 영화가 있다. 뭐야 그게 그래픽이라고? 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더 울프 오브 윌스트리트’가 그렇다. 이 멋지고 약 빨고 만든 것 같은 약 빤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고 로비가 나온다. 욕 버전의 번역이 있는데 그 버전이 너무 좋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천억이 들었고 그 대부분의 돈이 그래픽에 들어갔다. 아니 이 영화에 무슨 그래픽이 나오며 천억이나 쏟아붓지? 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배경이 거의 다 그래픽이다. 그러니까, 큰 요트도, 태풍도, 파도도, 물도, 집도 모두가 다 그래픽이다. 이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그래픽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도 눈으로 알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온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할까.


방송에 대한 잘못된, 눈에 드러나는 호러블 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빨간고 무통을 빌려 한 번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338


방송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대역이 눈에 보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대역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방송이라는 것에 몰입하게 되고 이입이 된다. 그리하여 어머니, 아버지들이 방송에서 이게 좋다고 하면 주머니를 털어 영양제나 평소에 먹지 않던 식품을 왕창 구입을 한다.


음식을 먹고 병이 낫는다던가, 또는 그 결과를 보려면 기본적으로 매일, 1.5톤 트럭으로 여섯 트럭은 먹어야 그게 가능할 텐데, 그런 것 따위 방송에서 말해주지 않으니 방송에 보이는 모습만 맹목적으로 믿게 된다.


방송에 대한 이런 민낯은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방송가에서도 알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누군가 문제를 지적해도 거대한 방송가는 흥, 하며 코웃음을 칠 뿐, 그것에 대해서 적극 해명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은 개돼지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졌을 때 다른 문제를 터트리면 자연스럽게 대중은 꿀꿀하며 그쪽으로 몰려가게 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방송은, 방송가는 대역을 사용하던, 또는 거짓을 말하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시청률,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에 직접 뛰어든 피디가 있었다. 김재환 감독으로 정말 골 때리는 프로듀서다. 김재환 감독은 ‘미각 스캔들’을 연출한 피디로 미각 스캔들을 통해 음식, 식당, 식재료의 진실을 알려서 크게 화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시청률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회차를 더 늘려 방송을 더 하자고 했지만 정해놓은 방송 분량만 기획을 하고 조사를 했기에 할 수 없다며 딱 정해진 회차만 하고 방송사의 거대한 유혹을 뿌리쳤다.


김재환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2011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만들면서 방송가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에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트루맛쇼를 보지 않았다면 롸잇 나우. 당장 가서 보기를 바란다. 당시에 트루맛쇼가 극장에 걸리고 난 이후 대단한 후폭풍이 있었다.


그저 생방송 투데이, VJ특공대 같은 방송에 돈만 많이 주니 식당을 맛집으로 둔갑시키는 그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제작자들이 직접 식당을 차려서 그들과 접촉을 하고 티브이에 방송이 되는 과정까지, 그 민낯을 세세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MBC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그것이 기각되면서 트루맛쇼는 더 큰 관심을 모으게 된다. 김재환 감독의 인터뷰 전문이다.


https://star.mt.co.kr/stview.php?no=2011060909034500908

영화를 한 번 보면 입이 크게 벌어지며 실 웃음이 나온다. 허허 그것 참. 그리고 지금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지난번 빨간고 무통의 방송처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역을 쓰고, 그 대역이 사람들에게 대역이라는 사실이 크게 드러날 때쯤이면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가 버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방송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모른다. 각자도생이며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내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한 번씩 리셋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모든 갈등과 문제는 일어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1Mv07WEnrXk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를 보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 시흥 미디어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2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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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아주 가깝다. 1분 정도 떨어진 거리다. 좀 걸어서 늘 가는 로컬카페에 가지 않고 오늘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로컬 카페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린다. 그 정도 걷는 동안 들어오는 오전의 도심지 풍경이 좋다. 매일 똑같은 곳인데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옆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자주 왔던 곳이다.  


스타벅스의 기둥에는 미술작품이 걸려 있었다. 나는 한참 쳐다보았다. 기둥 뒤에는 온통 유리창인데, 때마침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카페 안으로 와장창 쏟아졌다. 미술작품을 보고 있으니 작품 속으로 감각을 잃은 나의 마음도 같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전에 왔을 때는 분명 없었던 그림인데 때가 되면 갈아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악마의 피처럼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들고 다니는 텀블러가 있어서 커피는 늘 거기에 담아서 마신다. 텀블러에는 술도 담아서 마시고 어묵 국물도 담아서 마시기도 한다.


텀블러에 받아서 온 커피를 홀짝이며 그림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림은 입체감이 드는 작품으로 글자 속에 숲이 가득했다. 초록과 세피아의 중간으로 보이는 색감의 나무와 숲이 글자의 음각 밑으로 펼쳐져 있는 착각이 드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글자 속의 숲에도 빛이 마구 쏟아졌다.


한참을 보시네요.

왕왕 가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직원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예, 시선을 끄네요, 좋네요.

이 자리에 원래 불이 나면 이쪽 계단으로 나가시오,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어머, 맞아요, 주임님이 그 팻말은 저기로 옮기고 여기에는 그림을 걸었어요.라고 직원이 말했다.


커피를 더 드릴까요?라고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예? 그래도 됩니까?라고 내가 직원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이 따라오세요,라고 했다. 그제야 그림에서 눈을 떼고 기둥을 돌아서 가는 직원을 봤다. 직원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 빨간 조끼? 게다가 키가 좀 작아진 것 같았다.


기둥을 돌아서니 햇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렇게 보니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것은 빨간 조끼를 입고 귀가 큰 토끼였다. 기둥 뒤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쑥 들어갔다. 문이 막 닫히려고 했다. 나는 텀블러를 들고 그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가 어쩐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떨어졌다. 나는 떨어지면서 옆으로 누웠다가 슈퍼맨처럼 팔을 뻗어 보기도 했다. 가끔 잠도 청했다. 이렇게 3박 4일 떨어지다 보면 저기 저 숲으로 떨어져 빛이 될까.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Somewhere Only We Know의 귀요미 버전 https://youtu.be/mer6X7nOY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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