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에 두부집 딸내미가 있었다. 그 애는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부모님이 두부 장사를 하는데 도와줘야 한다며 늘 곧장 집으로 갔다. 그 애의 집은 시장 한 편에 있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서 저녁까지 팔았다. 그래서 그 애는 대체로 일찍 일어났다. 야무지게 입을 앙 다물고 두부를 사러 온 손님에게 잘 담아서 건네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도시락으로 질릴 법도 한데 두부가 반찬에 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4, 5, 6학년에도 클럽활동을 했는데 동화 부였다. 동화 부라고 해서 동화를 전적으로 많이 읽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이틀만 동화 부이고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 – 요컨대 방패연을 만들어서 날리기도 하고, 골목에 대해서 조사를 하기도 하고,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이 무엇을 하며 노는지에 대해서도 관찰하는 등 동화부 선생님이 기묘한 사람이라 기묘한 활동을 많이 했다. 물론 동화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기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거의 안 읽었던 것 같다. 톰 소여의 모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번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이 시장에서 어떤 음식이나 식재료를 파는지 조사를 한 번 하라고 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두부집 딸내미에게 말해서 두부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4시면 부모님이 일어나서 콩물을 쑤어 두부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애와 같이 두부를 팔고 청소도 했다. 저녁에 집에 갈 때 그 애의 아버지가 두부를 여러 모 주셨다. 그대로 먹어도 좋다고 했다. 두부는 투박했지만 맛있었다. 두부에는 온도가 있다. 데우지 않아도 두부를 만든 사람의 온도가 두부 속에는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 애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두부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에 ‘요리는 생명을 위해 복무하지만, 그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에서 얻는다. 육식하는 사람의 태생적 딜레마랄까, 번민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요컨대 요즘의 개고기 논란도 생명이라는 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소도, 돼지도, 그리고 닭도 열심히 애지중지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것만 놓고 보면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생계와 생존이 개입을 하면 또 달라진다.
역사 속에서 음식은 늘 계급을 나타낸다. 소나 돼지를 잡으면 등심 같은 구이 감은 부자나 권력자들에게 내어주고, 노동자와 민중들은 내장이나 부속물로 탕을 끓이거나 졸여 먹었다. 중국의 북경오리도 3천 원짜리부터 25만 원짜리까지 계급이 나뉜다.
하지만 두부는 위의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먹는 두부는 그저 두부다. 두부는 두부일 뿐이다. 새벽에 바다에서 와서 콩으로 만들어진 두부는 그날 해치우는 두부가 가장 맛있고 몸에도 좋다. 두부는 계급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가 두부를 먹기 시작한 지가 놀랍게도 고려 시대로 올라간다. 고려 시대 문헌인 ‘목인집’을 보면 ‘오랫동안 맛없는 채소 국만 먹다 보니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성긴 이도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늙은 몸을 장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라고 쓰여 있다.
후에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칙서가 이르거든 특히 두부 만드는 솜씨를 익히 보내주기 바라오’까지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두부는 이렇게 역사가 깊고 맛도 깊었다. 연포탕이라는 이름은 원래 두부가 들어간 국을 칭하는 것이다.
두부를 거의 매일 편이다. 두부는 음식 중에 대체로 저렴한 편이고, 담백하고 나처럼 위가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사람에게는 역시 좋은 음식이 아닌가 싶다. 맥주와도 어울리고 굽듯이 튀겨낸 두부는 아주 맛있다.
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두부 역시 두부다. 그게 바로 두부의 맛, 온도의 맛이다.
좀 익은 김치를 걸쳐 쌉싸름한 싸구려 와인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시고르자브종 와인은 씨유에서 7천 원 정도에 판다.
들기름에 구우면 두부의 민낯이 아주 뽀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