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굿즈를 만들어 봤다.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는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토니 타키타니에서도, 하나레이 만에서도 그렇고, 하루키의 단편은 어디로 뻗어가야 할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다 알 수는 없는, 그래서 여러 방향의 길이 있고 각자의 길로 들어가면 그 길이 곧 세계로 이어지는 이상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이 단편을 이렇게나 긴 시간을 짧게 느끼게 만들어 버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곧 봉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을까. 나란히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칭찬을 아낌없이 주고 싶은 감독이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 생각을 예술가처럼 말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운전면허 따고 싶게 만드는 영화. 다양한 생각을 불러내게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사코에서도 그러더니. 다 알겠지만 원래는 부산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드라이브 마이 카 팬들은 지나가다가 굿즈 달라고 하면 드릴게요 ㅎㅎ. 혼자 든 생각이지만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의 하이 홉스다. 하이 홉스를 들으면 몸이 분해되어 먼지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데 이 영화도 그렇다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하루키 #村上春樹#むらかみ#はるき#MurakamiHaruki #드라이브마이카 #영화 #DriveMyCar #굿즈 #goods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브런치에 링크를 걸어둔 나의 인스타그램은 순전히 하루키의 글과 소식을 올리는 피드다. 하루키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와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 같은 것들만 올리고 있다.


해시태그를 걸어 놓으면 하루키를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들어와서 본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피드를 보는 건 소설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다. 나처럼 하루키에 대한 각종 그림을 그리고 굿즈를 만들고 하루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정말 하루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이브 마이 카 굿즈에 대한 피드에도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왔기에 그 사람들 피드를 둘러보다가 이런 소식이 있기에 깜짝 놀랐다. 처음 들어보는 소식인 2020년 여름에 가벼운 교통사고로 조깅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 –가벼운 교통사곤데 왜 조깅을 하지 못할까. 또 그런 소식이라면 아마도 하루키가 직접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언급을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무자비한 소식은 병원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단골 주점에서 티브이로 그 소식을 접했다는 것.

솔직히 너무 놀라기도 해서 네이버를 검색해도 전혀 나오지 않기에 구글, 일본 야후 등 닥치는 대로 검색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소식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놀란 부분은 투신이라는 것이다. 그 투신이라는 말에 하루키가 작가라는 관념을 배제하고 한 인간으로 고뇌와 불안이 있지만 투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헤밍웨이에 대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비록 말년에 힘을 떨어졌지만 죽을 때까지 글을 쓰다 죽은 피츠제럴드에게 손을 들어줬다.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그런데 투신이라니. 이건 정말 나에게는 손 떨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 소식이 정말이냐고. 하지만 답글은 없고, 그래서 인스타그램에서 하루키를 좋아하고 일본에서도 공부한 분에게 부탁을 드렸다. 그분도 이 피드를 보고 너무 놀라서 알아봤지만 그런 소식은 없다고 한다. 만약 그런 소식이, 하루키가 죽었다는, 또 투신을 했다면 일본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라고 했다. 오보이거나 글쓴이가 잘못 들었거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들어가 보니 하루키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거나 또는 조금은 화가 났다.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해버린 것에 대해서. 글쓴이의 다음 피드에는 이 글의 다음 글이 이어지면서, 거기에는 해시태그로 초 짧은 소설,라고 달았다. 그러니 저 피드의 글은 어떻든 거짓이라는 말이다. 저기 피드에는 해시태그에 그저 하루키와 기사단장 죽이기가 달려있을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요즘 시기에 정말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전쟁이 발발하는 나라도 있으니까. 거기에 비하면 저 정도야 거짓이니까 오, 아니었구만. 하면서 헤헤 거리며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각이라는 게 생각하면 할수록 왜 저렇게 올렸을까. 다른 사람들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대부분 너무 놀라거나 하루키의 소식이 있나 시간을 들여 기사를 찾아봤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하루키가 투신했다는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 글은 나의 소설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또 이렇게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답글을 다는 건 어려운 일일까.

아무튼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노래 핑크 플로이드의 하이 홉스를 라이브로 들어보자. https://youtu.be/HX_du6Gcp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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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2집


이승환의 1집은 사라졌고 2집은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째서 같이 묶어서 구석에 두었는데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는 남아있을까. 사라지는 물품은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서 찾아보면 도망가 버리고 만다. 아아, 나는 주인인 네가 싫어, 너무 싫단 말이야, 라며 어느 날 찾으면 없어지고 난 후다. 이승환의 노래는 학창 시절에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일찍 들어와 라면을 하나 끓여 먹은 후 누워서 마당이 겨울의 추위에 표백되는 것을 보며 들었다. 그래서 이승환 2집은 겨울의 노래, 계절송처럼 되어 버렸다. 기이하지만 여름에는 들어지지 않는다.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기이하다. 배도 부르고 볼 거라고는 1도 없는 마당인데 그만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멍하게 마당 뷰를 보며 이승환의 노래를 몇 번이고 돌려가며 들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행복은 순간의 기억이고 기억은 희미해질 뿐이라, 그때 그 순간의 희미한 행복했던 기억은 지금 그때의 음악을 들으며 조금 느껴볼 뿐이다. 1집에서도 그랬지만 2집도 이별, 헤어짐과 사랑을 말하고 있다.


너를 향한 마음

https://youtu.be/PpTWMyaYUwc

트랙의 맨 처음의 가장 유명한 노래 ‘너를 향한 마음’은 그리움을 말하고 있다. 언제라도 내게 돌아오기를 바보처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어리석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마음이라는 건 머리와 다르게 사고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또 너를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한 번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변한 그리움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 스탠딩 에그의 오래된 노래까지 내려왔다. 우리는 애틋하고 애달픈 이런 마음을 죽을 때까지 질질 끌고 가야만 한다. 나의 마음이 이렇다고 들리지 않는 너에게 말한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https://youtu.be/KKX2guoAPU8

어쩌면 이 노래가 가장 유명한 노래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승환 하면 공연에서도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부르니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알 수 없던 그때 언제나 세월은 그렇게 잦은 잊음을 만든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는 정들은 그대는 어쩌면 영영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단어 ‘정’이라는 말도 참 좋다. 정들자 이별이네, 같은 말을 예전에는 많이도 했다. 소설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초코파이 광고에서도 ‘정’이 있었다. 영어로 해결되지 않는 단어 ‘정’. 정든 날에 대해서 노래는 말하고 있다. 여자가 노래를 부른다. 난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겠지. 세상을 살아가고 삶에 부딪히다 보니 무뎌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만 무뎌지는 건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


회상이 지나간 오후

https://youtu.be/z1ziSSJR5iE

이 노래는 도입이 마치 소설의 첫 시작처럼 출발한다. 입김처럼 흐려지는 먼 기억의 끝을 찾아 붙들고픈 마음으로 멍해진 내 모습, 시간은 나를 두고 저 혼자만 가버렸나, 하릴도 없이 흘러간 세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이야기도, 모두가 흐르고 변하는데 나만 그곳에 머물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픔을 말하고 있다. 잎진 가로수 아래에는 부서진 추억과 낙엽만이 쌓여 있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마음이 너무나도 애절하다. 무엇보다 이승환의 초기 목소리로 덤덤하게 부르기 때문에 더 애틋하게 들린다. 회상이 지나간 오후에는 그저 부질없고 멍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먼 시간 속에 추억

https://youtu.be/2b-K8SqYdQs

이 노래에는 철학이 깊게 배어 있다. 나의 슬픔 속에는 떠나버린 그들의 수많은 외로움이 있어서 고민을 하고 사고해도 진실에는 접근할 수 없다. 추억만 남아있는 삶 때문에 웃어 본 지도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시인 여림의 시도 스쳐 지나가고, 기형도의 정거장에서도 떠오른다. 정거장은 늘 배경이 되는 내 몸이며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갈 뿐이다. 누구도 머무르지 않는 쓸쓸하고 황망한 정거장에서 나는 기형도를 노래한다. 정거장에서 나는 고립을 먹고 희망을 노래한다. 모두가 빠져나간 정거장에서 나는 큰 소리로 노래한다. 어디에도 갈 데가 없는 이들에게 고한다. 닳고 허물어져 가는 내 육체에서 머물다 가라고.


하숙생

https://youtu.be/V6AV1O--LYs

하숙생은 최희준의 노래를 이승환이 빠르게 다시 불렀다. 하숙생이라는 노래는 지금 들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인생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하게 하니까.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우리는 놓여 있는 작은 존재일 뿐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도 죽고 나면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정일랑 두지 말고 미련일랑 두지 말자고 노래를 부른다. 이 처절하고 고풍스러운 노래를 이렇게 템포를 달리해서 불러 이상할 것 같은데 들어보라. 얼마나 좋은지.


슬픔에 관하여

https://youtu.be/LplsAwaXrqc

1집의 가을 흔적처럼 2집에서는 숨은 노래가 슬픔에 관하여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면 2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곡처럼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내용을 파보면 사실 지질한 이야기다. 도입부의 전주가 참 좋다. 시작을 알리는 연주가 꼭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이 노래의 특징이라면 ‘어찌 살아갈런지~’ 다음에 바로 ‘하지만’으로 쉬지 않고 이어지게 부르는 게 포인트다. 자칫 다른 노래들과 비슷해서 잊힐 수 있는 노래일지도 모르는데 포인트 때문에 이 노래가 계속 불러진다. 그걸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가사도 시적이고 노래도 의외로 높게 불러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들도 좋다. 특히 '이 밤을 위로' 같은 노래도 계속 부르게 된다. 그저 듣게 되고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게 된다. 그리움 속으로, 그리웠던 곳으로, 그리운 사람에게로 데려다준다. 노래는 분명히 그런 기이함을 가지고 있다. 노래라는 것은 이상하게 꼭 나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것 같고, 나의 마음이 들켜 버린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음을 붙여서 불러준다. 그러다 보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https://youtu.be/7pzQr72ZOBA


코로나 전 이승환의 콘서트는 작정하고, 몸을 만들어서 가야 한다. 이승환은 공연이 끝나면 발이 부어서 신발이 벗겨지지 않을 정도인데, 길게 몇 시간씩 해서 그렇다. 팬들의 고령화를 고려해서 쉬는 시간도 있지만, 더 신나고 길게 터져라 공연을 펼친다. 록스타 적인 이승환도 좋고, 이렇게 발라드 적인 이승환도 좋다. 언젠가 코로나가 끝이 나고 이승환의 공연에서 또 열심히 몸을 움직이려면 신체를 만들어놔야 한다. 그저 어물어물 보내다가 이승환의 공연을 가게 되면 한 시간이 지나면 주저앉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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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2-23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제 이승환도 60 바라 볼 텐데 지금도 왕성하게 공연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승환 좋아하는데...

그런데 교관님 나름 젊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밑의 글도 그렇고 꼭 그렇지만도 않으신가 봅니다.
카세트 테이프와 데크 요즘도 나오나요?ㅋ

교관 2022-02-23 14:32   좋아요 1 | URL
이승환 형님 왕성하게 공연을 합니다! ㅋ
저는 78년 생인데 너무 늙었습니까 ㅋㅋ

stella.K 2022-02-24 15:41   좋아요 0 | URL
읏따, 화끈해서 좋구마잉~!
아직 젊으신데요 뭐.
요즘엔 50줄은 타야 슬슬 늙었다고 합니다.ㅋㅋ

교관 2022-02-25 11:04   좋아요 1 | URL
보니 타일러 2017년도 공연 보니까 너무 왕성해서 놀랐어요 ㅋㅋㅋ
 


지금이 딱 브라이언 아담스를 듣던 그때의 날씨다. 겨울이지만 썩 춥지 않고 흐리고, 그래서 어딘가 작은 카페에 들어가서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듣던 브라이언 아담스. 그때에도 저 카세트테이프를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저 앨범을 듣고 있다니.


음악이라는 건 들으면 그 음악에 심취해있던 그때로 나를 되돌려 준다. 우리는 왜 지난 유년의 시기를 잊지 못하고 자꾸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할까. 그 추억 속에는 아마도 가슴 저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하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무엇은 그리움이며, 그리움 속에는 장소도 포함되어 있고 그 장소에서 듣던 음악, 마시던 음료, 먹었던 음식 그리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이기도 하다.


지금 시기는 뭐랄까 너무나 혼란스럽고 가혹한 시기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부림을 하지 않을 뿐이지 미워하기 대회를 일상에서 보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 속에 있다. 사람을 죽이는데 칼과 총보다는 말로 죽인다는 게 이제 놀랍지 않은 시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리운 것들이 많은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강해진다. 영화 범블비도, 원더우먼 1984도, 공포영화 피어 스트리트도, 넷플의 기묘한 이야기도 배경이 전부 80년대와 90년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대를 보냈던 아이들이 커서 지금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귀재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 속에는 7,80년대의 음악이 잔뜩 나온다. 모두가 그런 이유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가슴 저리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시기는 아픈 사람이 너무 많고, 멀쩡하게 보이는데 아픔이 짙은 사람은 더 많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픈지 모르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할 수 있는 건 시간의 틈을 벌려 그리움 속으로 파고는 것뿐.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고 쓸 수밖에 없다.



목요일 배캠의 ‘철수는 오늘’이 나를 사색케 한다

이하 배철수 육성의 맨트 -


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작가들은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많이 쓴다. 반면 중년시절과 노년시절을 써내는 일은 드문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작가 존 쿳시의 자전소설 3부작 소년 시절, 청년시절, 서머타임은 엄밀히 말해 작가의 일대기가 아니다. 1940년생인 작가는 회고록 비슷하게 써 내려간 작품에서 1970년대까지만 언급한다. 그는 특히 유년과 청년을 보내며 겪은 고뇌에 집중하여 1940년대 남아공 식민의 역사 1950년대의 인종차별로 얼룩진 사회, 1960년 조국을 떠나 런던에 와서 느낀 불안과 좌절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사에 취직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일 년에 두 주뿐인 휴가를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이기는 정당이 법을 바꿀 수 있다면 선거를 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누가 공을 던지고 던지지 않을지를 타자가 결정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못마땅한 소년은 불만과 부정과 회의 속에서 아무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지만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만다. 그는 청년이 되자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국을 등지고 런던에 와서 예술가가 되려 한다.


하지만 런던은 그에게 무표정하고 미로 같고 차가웠다. 방 하나에 찬물만 나오는 싱크대, 더구나 욕실과 화장실은 위층의 공용 시절을 이용해야 하는 작고 초라한 원룸을 그는 룸메이트와 나눠 쓴다. 영국에 올 때 그에게는 이런 계획이 있었다. 우선 직장을 잡고 돈을 모으는 것, 그러다 돈이 충분히 모이면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는 것. 그는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곧 알게 된다. 아무리 예술이 결핍과 열망과 고독을 먹고 큰 다지만 그에게는 친밀감과 열정, 사랑이 필요했다. 철수는 오늘 유명 작가들이 자신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자꾸 뒤돌아보며 고통을 반추하는 까닭을 생각해본다. 나아가 세상의 누구도 청년기를 불안하지 않게 보내기란 어렵다는 보편적 생각에 이른다. 청년시절의 존 쿳시는 라디오 방송 그중에서도 BBC의 제3 프로그램으로 위안을 얻는다. 힘든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라디오를 켜고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나 근사하고 지적인 대화를 듣는 일, 제3 프로그램이 장파가 아니라 단파로 방송되었다면 그래서 케이프 타운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면 고국을 떠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배철수 형님의 목요일 '철수는 오늘'이었다. 많은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평소에 조건 없이 약간의 위안을 받고 위로가 되는 건 지난 시간의 음악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들의 음성이다. 그리고 소설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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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이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책 표지라면 바로 이 책 ‘하루키의 여행법’이지 싶다. 마치 포토샵을 막 배운 사람에게 “그래, 너 좋을 대로 한 번 (멋지게) 디자인을 해봐”라고 해서 호기롭게 덤벼들어 초보 북디자이너가 열정(만) 가득하게 디자인한 것 같다.


표지의 이 난해한 배열과 아메바 같은 와꾸 모양, 난데없는 그러데이션과 푸름과 푸르댕댕과 파랑의 균형적이지 않는 조화. 7가지나 되는 폰트의 남발과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루키만의 세계에 있는 패션 센스와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실사화 해 놓은 것 같은 점, 선, 면으로 된 얼굴이다.


그런데 이 촌스러운 디자인 덕분에 ‘하루키의 여행법’이 유명하게 되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기념으로는 그만인 하루키의 책이다.

이 여행 에세이가 유별난 이유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루키 만의 유머를 잃지 않고 있지만 또 몰래 찍은 사진도 실려 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얼씨구 반가운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도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짬짜면에 탕수육까지 있는 세트메뉴 같은 느낌이다. 노몬한 여행길은 '태엽 감는 새'의 노몬한과 만주 이야기를 보고 잡지사에서 실제로 가보지 않겠냐, 해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ㅇㅅㅇ ‘우천 염전’에도 나오는 걸로 아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행지에서 먹는 것이 안 맞아서 구시렁거리는 것부터 쇠파리, 구더기, 철조망, 국경까지 긴박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잊지 말아야 할, 잊을 수 없는 노몬한 전투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을 한다.


해가 지면 몽고의 하늘은 별들로 뒤덮인다로 시작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기록은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에 잘 나온다. 포로의 가죽을 벗기는 이야기나, 전투 중에 버려진 군인들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전쟁의 아이러니는 평화를 위해 서로의 몸에 충을 겨누고 총구멍을 낸다. 평화를 부르짖으며 전쟁을 한다니 참으로 모순이다.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여행 에세이는 ‘먼 북소리’와 비슷하다. 먼 북소리가 저쪽으로 다니면서 적은 기록이라면 이 책은 이쪽으로 다니면서 적은 기록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하루키의 얼굴은 아주 젊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세상의 시름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또 그런 맛이지.





재미있는 챕터는 하루키의 중국에 대해서 기억하는 부분이다.

요즘 동계 올림픽을 보며 정말 중국이란 뭐지? 이런 생각이 든 사람들이 많다. 모든 중국 사람들이야 그렇겠냐마는 동계 올림픽을 보면 엉망진창도 이런 엉망진창이 없다.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대회를 이렇게 방구석에서 하듯이 운영을 하다니 참 이상하고 또 이상한 나라다.


중국에 대해서 놀라고 기가 막힌 것은 하루키도 그렇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보면 그런 일화를 잘 말하고 있다. 하루키가 중국에 처음 갔을 때다. 일본에서 중국까지는 너무나 짧은 거리였다는 것에 놀란 하루키는 더 깜짝 놀란 것은 일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도쿄의 일본에도 사람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한국도 그렇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빠져나오면 대체로 한산하거나 양팔을 휘저으며 편안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하루키가 본 중국은 어디를 가나 인파였다. 인간이 없는 정경이라는 건 전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어디서 인지도 모르게 꾸역꾸역 인간들이 나타나는데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마찬가지다. 버스든 뭐든 교통수단이면 엄청난 사람들 때문에 넋을 잃을 정도라고 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장소를 상관 않고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으며 고함을 치거나 멋대로 물건을 팔고 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두려움마저 든다고 했다. 어쨌든 도로 상황은 최악에 가깝지만 자동차는 모두 달리고 싶은 대로 달리고 사람들은 모두 걷고 싶은 대로 걸어 다닌다. 교통이 복잡한 여러 나라의 도시를 돌아다녀봤지만 중국의 도시 교통의 과격함에는 그야말로 압도되어 버렸다. 할 말을 잊었다. 이런 곳에서는 아예 운전대는 잡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물론 그때는 꽤나 오래전이고 그런 중국의 모습은 해외에 많이 소개되었지만 한 나라의 국민성이라든가 도민성 같은 경우는 쉽게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더불어 쇼트트랙 남자 계주 은메달을 따고도 뭔가 미안하고 죄짓는 듯한 선수들 모습에서 울컥하는데 아마 한국인들 모두가 정말 기분 좋을 텐데. 값진 은메달이니까 기분 좋아했으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암담하고 억울한 이번 올림픽이었지만, 그래서 분노가 일이지만, 그렇기에 메달은 아주 값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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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종식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이 될까. 팬데믹 시기를 끔찍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회로 삼고 도약해서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후자에는 속하지 못한다.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호러블 한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이 시기에 2년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학교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졸업을 하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생들은 만나서 거의 놀지 못하고 폰으로 대화를 하며 폰이 없이는 친구들과 사귀지도 못하는 생활이 되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라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어딘가에서 구멍이 나고 그 구멍에 빠지기도 했고 거기서 그만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응해가면서 팬데믹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또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기록이 될까. 아마도 수치로 모든 것이 기록이 될 것이다. 기간, 걸린 사람들, 이동, 사망자 등등. 모든 것들은 수치로 기입이 되고 후세의 사람들은 역사를 들여다보며 숫자로 지금의 펜데믹을 간접 경험할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군고구마를 먹었다. 군고구마에는 일가견이 있다. 제대 후 돌아오는 겨울에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그에 따른 이야기를 한 번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148


군고구마 장사를 호기롭게 가스통 두 대나 놓고 팔아치웠다. 그때 군고구마를 왕창 팔아서 그 돈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갔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갔는데 녀석들이 돈이 없다고 해서 경비를 고구마를 판 돈으로 갔다. 군고구마는 생각 외로 너무나 많이 팔렸고 매일 바빴는데 친구들이 도와줬다. 본문에도 적었지만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고구마를 팔았는데 구워놓으면 바로바로 팔려서 아파트에 배달을 했다. 그게 먹혀들었다. 뜨거운 군고구마를 집에서 받아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도와줬다. 고구마를 농산물 시장에서 떼 오는 것도, 운반하는 것도, 아무튼 장사를 하면서 나는 자질구레 한 이벤트를 했는데 주위에서 다 도와주었다. 재미있었다. 그런 친구 두 명과 7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갔다. 7번 국도를 타는 일은 늘 신났다. 고속도로와는 다르다. 외가가 불영계곡에 있어서 어릴 때에도 7번 국도는 나에게 신나는 도로가 되었다. 바다가 계속 보이고 국도 변에 있는 아담하고 기분 좋은 휴게소도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달랐다.


여행은 친구의 차를 타고 갔다. 친구는 해남 땅끝 마을에 동행했던 친구였다.https://brunch.co.kr/@drillmasteer/2292


나의 여행 스타일은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그냥 4일이라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7번 국도를 타고 오르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이면 그곳에서 머무르는, 그런 재미없는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고 친구들도 거기에 기꺼이 동참을 했다. 올라가다가 포항에 도착을 하면 우리는 포항공대로 들어가서 식당 밥을 먹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포항공대 식당은 유명한 곳이었다. 뷔페식이며 반찬이 아주 맛있다. 밥을 먹고 포공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어도 멋지게 잘 나온다.


포항에는 사촌 누나가 살고 있고 사촌 누나의 남편이 목사님이라 친구와는 고등학생 때에도 포항으로 가서 사촌 누나 집에서 신세를 지곤 했다. 그때는 아직 목사님이 되기 전이고 학생 신분으로 신학을 열심히 공부를 할 때였다. 포항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하니까 사촌 누나의 집은 청하에 있었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은 곳에 작은 교회가 있고 교회 정원 한쪽에 아담한 집이 있고 우리는 거기서 잠을 잤고 저녁에는 교회의 다락방 같은 곳에서 거기 여고생들과 이야기를 하며 지내곤 했다. 나는 사진부라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친구 녀석과 여고생을 같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토요일에 사진을 열심히 찍고 일요일에 인화된 사진을 다 같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하튼 제대를 하고 고구마를 판 돈으로 우리는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갔다. 우리의 특징은 휴게소가 보이면 전부 들어가서 오줌을 싸고 음식을 사 먹었다. 7번 국도를 따라 나오는 휴게소는 대체로 바다가 보이기에 들어가 앉아서 음료를 마시고 컵라면 같은 것을 먹으며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한 1분 정도 바다를 볼뿐 주로 헤헤 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목적지가 없어서 몇 시까지 도착해서 그곳의 무엇을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주 느긋하다. 휴게소가 보이면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먹었다. 배가 늘 부른 채로 여행을 하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여행도 없다. 7번 국도에 있는 참새방앗간 같은 망향휴게소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계단 밑으로 내려가서 보이는 탁 트인 바다는 우리가 사는 곳의 바다와는 느낌이 다르다. 바다는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시어머니 같아서 한 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혀를 한 번 날름거리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친구 두 명 중에 운전을 하는 친구를 친구 1이라 하자. 친구 1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번에 해남 땅끝 마을에 같이 갔던 친구이고, 친구 2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같은 반으로 보낸 친구로 뭐랄까 그냥 막사는 느낌이 드는 친구였다. 친구 2는 형도 두 명인가 있고 누나들도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발로 뻥 차면 떨어지는 지점에 누워서 그대로 쿨쿨 잠드는, 그런 친구였다.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머니가 "한창 때잖아요, 가만 두면 집으로 기어 들어와요"라고 우리 어머니에게 말할 정도였다. 친구 2는 낚시도 못하면서 자주 낚시를 다녔고 낚시하는 꾼들 옆에서 이것저것 간섭을 많이도 했다. 하지만 그 간섭을 기분 나빠하는 꾼들은 또 없었다.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하는 낚시를 끝내고 단골 곱창전골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 2는 겁 없이 티브이를 낚시채널로 돌린다. 녀석은 잡아 본 적도 없는 감성돔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한다. 그러면 모르는 테이블에서 밥과 술을 마시던 아저씨들도 전부 한 마디씩 한다. 모두가 감성돔을 낚시만 하면 잡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한다. 참 이상한 도미노 현상이다.


그런 녀석들과 휴게소마다 들러서 뭔가를 배에 집어넣으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과 대화가 쓸데없을 것 같은데 아마도 하루 중 가장 재미있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요컨대 여자 친구와 함께 어딘가 여행을 가서 일박을 보내고 아침 해 뜨는 걸 보기 위해 일찍 나와서 해돋이를 보고 난 후 근처의 따뜻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들어가서 한 숨 잠을 청하기로 하고 아주 편안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 그때 잠시 한 대화가 아마도 여행 중에 가장 깊고, 담백하고, 느긋하며 편안하고 재미있는 대화일지도 모른다.


휴게소마다 들러서 그렇게 뭔가를 배에 집어넣었음에도 작은 휴게소가 보이면 들렀다. 경상북도를 벗어나 강원도로 접어들면 어쩐지 정말 여행지에 온 기분이 든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의 국도를 타다가 설렁탕을 파는, 식당 겸 휴게소가 있기에 또 들어가서 설렁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운전하는 놈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두 명은 소주를 마셨다. 꿀맛이다. 어딘가 집 떠나서 마음 편하게 낯선 곳에서 마시는 술은 이상하게 맛있다. 일탈인 것이다. 일탈 속 술맛은 버터 칩보다 달콤하다. 아마도 강원도도 술과 설렁탕의 재료에 속해서 더 맛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운전하는 놈도 생각해야 하니 딱 한 병만 건드린다. 우리는 또 붕 하며 위로 올라간다. 기분 좋은 해수욕장이 나오면 들어갔고, 그 근처가 마음에 들면 그곳에서 숙소를 잡고 그대로 일박을 했고, 시간을 보내다가 아직 해넘이 직전이면 또다시 출발했다.


동해에서 일박을 했는데 동해는 좋은 기억이 있다. 도시가 깨끗했고 숙소를 잡고 들어가서 술을 마신 곳에서는 주인이 너무나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친절했고 여행객인 우리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나는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마치 이탈리아 인 같았다. 하루 일과를 꼼꼼하고 촘촘하게 보고하는 사람처럼 다다다 다다 말을 쏟아냈다. 친구 1과 친구 2가 주인에게 붙어서 오 그렇지요? 맞습니다, 아니고 말고요,를 경상도 사투리로 대꾸를 했다. 맞심더, 아잉교? 그랬더니 더더욱 말이 많아졌다. 멜리사 맥카시 주연의 영화 스파이에서 이탈리아 첩보원 알도 역으로 나온 피터 세라피노윅 같았다. 정말 하하하. 그때 잠시 느낀 건 동해도 강원도 같은데 사투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은 표준말을 사용하고 – 그건 강릉에서도 그렇고 – 흔히 알고 있는 강원도 사투리를 잘 들을 수 없었다.


주인이 우리를 좋아하게 된 건 아무래도 우리는 목적지가 뚜렷한 여행 노동자 같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말 중에 자신의 여행 경험담이 많았다. 우리는 그렇게 술과 사람에 취했다. 이렇게 술과 사람에 취할 수 있는 날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걸 보통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지금에 와서야 그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깊고 깊은 밤으로 취해 들어갔다.


친구 2는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다. 친구 2가 으 하며 일어나 우리를 깨웠다. 전부 구울 같은 모습으로 으 하며 일어났다. 대사는 없고 그저 의성어인지 으 하는 소리만 짧거나 길게 내뱉으며 뭉그적 일어나 그대로 십 분 정도 앉아 있는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똥 멍청이 같은 모습이다. 누구도 씻을 생각은 없다. 여기서 으 하면 저기서 으 하고, 저기서 좀 길게 으,,, 하면 여기서 좀 길게 으 할 뿐이다. 이상하지만 그러면 소통이 된 것이다. 모두가 구울 같은 모습에 옷만 걸치고 일어나서 숙소를 나왔다. 숙소라고 해봐야 그 전날 여인숙 같은 여관처럼 보이는 모텔이다. 그것도 친구 2가 카운터에 붙어서 수건을 쓰지 않을 것이다, 샤워도 않을 것이다, 같은 말을 시전 하면서 숙박비도 조금 깎았다. 오전 8시에 우리는 나왔다. 도대체 우리는 몇 시간을 잔 것일까. 허기 때문에 아침밥이 되는 곳을 찾았다. 친구 1은 속이 쓰려서 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어딘가 해안 쪽을 걷다가 아침식사가 된다는 아주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처럼 보이는 분이 식당을 하는, 주력으로 하는 음식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간판도 잘 보이지 않고 문 열고 싶을 때 열어서 닫고 싶을 때 닫는, 그런 동네 선술집 같은 작은 식당이었다. 우리는 찌개 3인분을 주문했다. 찌개가 나왔다. 찌개는 정말 김치가 가득 들어있는 그런 찌개였다. 두부가 숭덩숭덩 빠져있고, 좋게 말하면 집에서 만드는 그런 찌개의 맛이지만 식당에서 내놓을 만한 맛은 아니었다. 육수를 우려내서, 같은 것은 생략된 맛이었다. 묵은 김치를 그대로 끓이고 그 안에 햄을 넣고 비계가 많은 부위의 돼지고기가 좀 들어가 있는 찌개였다. 그리고 고춧가루가 엄청 많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아주 잘 먹었다. 찌개는 참 맛없는데 아주 맛있었다. 녀석들은 얼굴을 파묻고 찌개를 밥에 비벼서 전투적으로 먹었다. 묵은 김치에서 나오는 매콤함에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더해져서 나에게는 너무나, 몹시, 아주 매워서 가까이 갈 수 없었는데 녀석들은 콧등에 땀이 나오는데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친구 1은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더니 콧물까지 시원하게 흘렸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해치우는 것이다. 배가 좀 부르니 그제야 서로의 몰골에 대해서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어라는 걸 했고, 미친 친구 1은 소주가 당기는데,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엇보다 기가 막혔던 건, 친구 1은 덩치는 크지만 밥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데 밥을 한 공기 더 달라했고, 주인 할머니는 잘 먹네, 라면서 찌개를 더 끓여 줄까?라고 해서 3분 1 정도 남았을 때 찌개 냄비를 들고 가서 그 안에 다시 가득 채워서 내주었다. 맛을 떠나 나는 매워서 거의 손을 댈 수 없었는데 친구 1과 친구 2는 무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그 찌개를 퍼 먹었다. 그 모습이 마치 ‘허니와 클로버’에서 어떤 맛이라도 아무런 표정 없이 먹어치우는 모리타의 모습과 닮았다. 그렇다고 모리타만큼 멋진 건 절대 아니고. 그러고 보니 곧 봄이다. 봄이 되면 ‘허니와 클로버’ 1기는 늘 챙겨서 봤는데. 그 시리즈 1기는 정말 열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세상에 그런 애니메이션이 존재하다니. 드라마 연애시대도 그만큼 많이 본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씩, 어떤 계절이 돌아서 오면 그에 맞게 연애시대를 꺼내 본다. 이제 곧 봄눈이 팡이 팡이 터지는 봄이오니 또 허니와 클로버를 펼쳐봐야겠다. 첫 회에서 하구미를 보며 사랑에 빠지는 타케모토, 그런 모습을 보는 마야마, 그리고 자신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하라다 리카, 그런 리카를 사랑하는 마야마, 그리고 그런 마야마를 사랑하는 야마다. 사랑이란 늘 쌍방향이 아니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이런 힘들고 애매한 첫사랑들의 이야기.


디자인과 건축, 미대생들의 첫사랑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모습에 나는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린 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보고 있다. 라면을 먹으며 불안해하는 타케모토에게 마야마는 가만히 듣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튀김 하나를 주문해서 타케모토 라면에 올려 준다. 이 장면이 정말 좋다. 아직 2학년인 타케모토에게 초조해하지 말고 뭐든 해 보라고,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으면 뭐든지, 손을 움직이다 보면 쉽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마야마는 말해준다. 타케모토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 마야마 같은 선배가 있다는 건 정말 복 중에 축복이다. 좋은 음식, 좋은 물건만큼 좋은 게 좋은 사람이니까.


한때는 오프닝곡과 엔딩곡을 다 따라 불렀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까먹게 된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늘 다시 보면 20년 전의 주인공들은 그 모습 그대로 사랑에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의 간섭을 받았다. 시간이란 정말 그런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의 드라마 버전도 좋았지만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영화는 또 별로였다. 2시간 안에 이 긴 이야기를 때려 넣으려다 보니 뒤죽박죽인 것이다. 오프닝곡은 목소리가 아주 특이한데 주디 앤 마리의 보컬 유키가 부른다. 주디 앤 마리,,,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관두자. 아무도 모를 테니.


어떻든 친구 1과 친구 2는 그 많은, 맛이 없는 찌개를 아무쪼록 맛있게 먹고 난 후 약국에서 가스활명수와 훼스탈을 입에 때려 부었다. 그래도 말이야, 여행 와서 이렇게 배가 빵빵하게 부른 느낌은 좋다고. 라며 다시 7번 국도에 올랐다.


우리는 속초로 가기로 했다. 속초에는 예쁜 진경이가 살고 있다. 친구들은 한 껏 들떴다. 현지인이 있다는 건 그만큼 편하다. 페달을 밟아라, 붕붕 달려가 보자. 브라이언 아담스의 워킹 업 더 네이버 앨범을 들으며 7번 국도를 타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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