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여행법


이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책 표지라면 바로 이 책 ‘하루키의 여행법’이지 싶다. 마치 포토샵을 막 배운 사람에게 “그래, 너 좋을 대로 한 번 (멋지게) 디자인을 해봐”라고 해서 호기롭게 덤벼들어 초보 북디자이너가 열정(만) 가득하게 디자인한 것 같다.


표지의 이 난해한 배열과 아메바 같은 와꾸 모양, 난데없는 그러데이션과 푸름과 푸르댕댕과 파랑의 균형적이지 않는 조화. 7가지나 되는 폰트의 남발과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루키만의 세계에 있는 패션 센스와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실사화 해 놓은 것 같은 점, 선, 면으로 된 얼굴이다.


그런데 이 촌스러운 디자인 덕분에 ‘하루키의 여행법’이 유명하게 되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기념으로는 그만인 하루키의 책이다.

이 여행 에세이가 유별난 이유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루키 만의 유머를 잃지 않고 있지만 또 몰래 찍은 사진도 실려 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얼씨구 반가운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삽화도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짬짜면에 탕수육까지 있는 세트메뉴 같은 느낌이다. 노몬한 여행길은 '태엽 감는 새'의 노몬한과 만주 이야기를 보고 잡지사에서 실제로 가보지 않겠냐, 해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ㅇㅅㅇ ‘우천 염전’에도 나오는 걸로 아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행지에서 먹는 것이 안 맞아서 구시렁거리는 것부터 쇠파리, 구더기, 철조망, 국경까지 긴박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잊지 말아야 할, 잊을 수 없는 노몬한 전투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을 한다.


해가 지면 몽고의 하늘은 별들로 뒤덮인다로 시작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기록은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에 잘 나온다. 포로의 가죽을 벗기는 이야기나, 전투 중에 버려진 군인들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전쟁의 아이러니는 평화를 위해 서로의 몸에 충을 겨누고 총구멍을 낸다. 평화를 부르짖으며 전쟁을 한다니 참으로 모순이다.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여행 에세이는 ‘먼 북소리’와 비슷하다. 먼 북소리가 저쪽으로 다니면서 적은 기록이라면 이 책은 이쪽으로 다니면서 적은 기록처럼 보인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하루키의 얼굴은 아주 젊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세상의 시름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또 그런 맛이지.





재미있는 챕터는 하루키의 중국에 대해서 기억하는 부분이다.

요즘 동계 올림픽을 보며 정말 중국이란 뭐지? 이런 생각이 든 사람들이 많다. 모든 중국 사람들이야 그렇겠냐마는 동계 올림픽을 보면 엉망진창도 이런 엉망진창이 없다.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대회를 이렇게 방구석에서 하듯이 운영을 하다니 참 이상하고 또 이상한 나라다.


중국에 대해서 놀라고 기가 막힌 것은 하루키도 그렇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보면 그런 일화를 잘 말하고 있다. 하루키가 중국에 처음 갔을 때다. 일본에서 중국까지는 너무나 짧은 거리였다는 것에 놀란 하루키는 더 깜짝 놀란 것은 일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도쿄의 일본에도 사람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한국도 그렇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빠져나오면 대체로 한산하거나 양팔을 휘저으며 편안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하루키가 본 중국은 어디를 가나 인파였다. 인간이 없는 정경이라는 건 전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어디서 인지도 모르게 꾸역꾸역 인간들이 나타나는데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마찬가지다. 버스든 뭐든 교통수단이면 엄청난 사람들 때문에 넋을 잃을 정도라고 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장소를 상관 않고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으며 고함을 치거나 멋대로 물건을 팔고 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두려움마저 든다고 했다. 어쨌든 도로 상황은 최악에 가깝지만 자동차는 모두 달리고 싶은 대로 달리고 사람들은 모두 걷고 싶은 대로 걸어 다닌다. 교통이 복잡한 여러 나라의 도시를 돌아다녀봤지만 중국의 도시 교통의 과격함에는 그야말로 압도되어 버렸다. 할 말을 잊었다. 이런 곳에서는 아예 운전대는 잡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물론 그때는 꽤나 오래전이고 그런 중국의 모습은 해외에 많이 소개되었지만 한 나라의 국민성이라든가 도민성 같은 경우는 쉽게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더불어 쇼트트랙 남자 계주 은메달을 따고도 뭔가 미안하고 죄짓는 듯한 선수들 모습에서 울컥하는데 아마 한국인들 모두가 정말 기분 좋을 텐데. 값진 은메달이니까 기분 좋아했으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암담하고 억울한 이번 올림픽이었지만, 그래서 분노가 일이지만, 그렇기에 메달은 아주 값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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