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와 당근을 이렇게 해서 밥에 쓱싹쓱싹 비벼 먹으면 맛있어


양배추와 당근을 이렇게 해서 밥에 쓱싹쓱싹 비벼 먹으면 맛있어


당근사랑이라고 하니 옆에서 나도 당근거래 너무 사랑해,라고 하잖아. 내가 말하는 당근은 그 당근이 아니라 당근으로 당근이라고. 당근 너무 웃겨, 한 번에 당근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하잖아, 그러면 당근이 꼭 명사가 아니라 어떤 부사 같은 느낌이야.


나는 당근을 참 좋아해. 그냥 생으로 먹어도 당근은 정말 맛있는 거 같아. 당근을 잔뜩 넣은 카레는 너무 좋아. 오뚜기 카레 있잖아 그걸 부글부글 끓인 다음에 당근만 넣는 거야. 그리고 당근이 푹 익을 때까지 끓여서 밥에 올려 먹는 걸 아주 좋아했지. 오래 끓여야 해서 좀 귀찮아. 하지만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당근카레는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에 나만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지.


도대체 이렇게 맛있는 당근을 사람들은 왜 싫어할까. 김밥에 당근이 가득 들어가면 정말 맛있지 않아? 예전에 김밥을 일 년 동안 매일 먹었는데 그때 김 선생 김밥인가, 거기 김밥을 매일 사 먹었지. 그 안에 당근이 가득 들어가 있었거든. 정말 맛있는 거야. 나의 김밥 사랑도 무시 못하지. 김밥이 나에게는 가장 최상의. 이상적인 음식이거든.


뭔가 상 위에서 끓이고 볶고 지지고 할 것 없이 그냥 들고 먹으면 되니까. 바닷가에 앉아서 먹기도 좋기 때문에, 전혀 귀찮음이 없는 음식 이잖아. 김밥에 참치를 넣고 소고기를 가득 넣어서 먹을 바에 그냥 따로국밥으로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드네.


당근은 정말 생으로 아작아작 먹어도 좋고 삶아서 먹어도 좋아. 군에서 당근 주스도 꽤 먹었지. 하지만 당근 주스는, 색은 당근 색인데 당근 맛보다는 약간 비켜간 맛이 났지. 당근을 갈아서 마시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채소나 과일을 갈아서 마시는 건 썩 좋지 않다고 생각해. 흡수가 빠르니까 과당도 너무 과하게 몸에 들어오는 것 같아. 채소나 과일은 그냥 껍질까지 먹을 수 있으면 잘 씻어서 아작아작 먹는 게 좋은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해. 적어도 나는 그래.


요즘 8인분 점보 컵라면과 대형 크리미 빵이 인기지. 엄청나더라고. 팔도 도시락 8인분짜리라 편의점에서 상표를 팔도에서 들고 와서 비슷하지만 새롭게 만든 피비 상품이라고 하지? 그래서 맛이 비슷하지만 어딘가 달라. 아, 나는 먹어보지 않았어. 아무튼 그래서 먹다 보면 8인분이기에 물리게 되는 것 같아. 컵라면의 특성상 밑에 깔린 면발이 시간이 지나면서 불어서 밀가루 맛이 더 나게 되겠지.


유튜브 영상을 보면 대부분 대형 컵라면을 사들고 와서 집에서 먹잖아. 편의점에서는 먹지 못하나 봐. 아마 물양이 너무 많아서 편의점에서 뜨거운 물을 한 번에 받아먹기 힘들겠지. 편의점에서 만약 물을 받는데 뒤에 일반 컵라면 먹으려고 기다렸다가 물이 떨어지거나 차가운 물이 나온다면 낭패겠지. 라면 끓일 때 당근도 같이 넣어서 끓이면 더 맛있는데, 8인분짜리 도시락 컵라면도 당근을 넣으면 반 정도는 먹지 않을까 하고 실언을 한 번 해 본다.


이건 다른 얘긴데 당근을 먹으면서 생각해 보면 요즘 선거 때문에 떠들썩하잖아. 대통령은 좌파 우파가 아니라 대파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말도 하잖아. 정치인들을 보면 이전에 멀쩡했던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둔갑하는 순간 이상해지는 거 같아. 정치를 하고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 모두가 들어줄 거라 생각을 한다는 거야. 실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한다고 착각을 하는 거 같아. 거기서 가장 큰 오류를 범하는 거 같아. 그런 후보자는 선택받지 못하겠지. 그래도 자신은 왜 선택받지 못하는지 모를 거야. 또는 그런 후보자가 선택되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어. 아니 그동안 많았지. 그래서 그 지역은 나 몰라라 팽개치고 서울에서만 놀고 있는 정치인들이 많잖아.


그런데 너무 이상한 건, 시장에서 할머니들이나 할아버지들에게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많이 배운 사람이 잘 알아서 하겠지,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부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더 잘 돌봐줄 거라고 하거든. 이런 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거 같아. 그런데 이런 기류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좀 그래.


정치인이 되면 왜 얼굴이 변할까. 얼마 전에 한선교가 신애라와 토크 방송을 할 때의 영상을 봤는데, 아나운서 때였는데 너무 멋있고 잘 생겼더라고. 온화하고 미소가 좋고 말이야. 정치인이었을 때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어. 안철수도 정치인이 되고 나서 앵그리 버드 같은 얼굴이잖아. 반면에 김용남은 탈당하고 나서 얼굴에 빙구미가 도는 게 아주 부드럽게 변했더라. 또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국민들은 다시 한번 들어보라고 그러면 달라질 거라고 가스라이팅 같은 발언을 한, 잘 나가는 사모님일 텐데 노래까지 부르며 선택해 달라는 모습을 보면 모든 걸 내려놓고 뭐든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는 민낯 비슷한 모습까지 볼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번에 공직자들 재산이 공개 됐잖아 도대체 뭘 하면 200억씩 벌 수 있을까. 움직이기만 하면 몇억씩 통장에 쌓이나 봐. 그래서 기를 쓰고 악을 쓰고 대통령실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겠지.


나는 초장을 뿌리지 않고 당근과 오징어를 그대로 냠냠


그런 모습을 보니까 당근이나 좋아하는 내 모습이 우습기 그지없네. 게다가 당근 좋아해서 당근 거의 매일 먹는데 오늘은 또 이런 기사가 떴더라. 고작 당근 정도 좋아하는데 당근까지 먹는 것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https://n.news.naver.com/article/024/0000088199?cds=news_media_pc&type=edi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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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모니


봄날에 비가 오는 건, 초봄에 내리는 비는 겨울에 내리는 비보다 잔인한 거 같아. 이른 봄에 쏟아지는 비는 추위를 몰고 오잖아. 까탈스러운 추위 말이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다고.


이런 비가 내리는 봄날에 우산 이외에 들어야 하는 짐이 많으면 그건 정말 낭패야. 어딘가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건 너무 귀찮아.


우산 드는 것이 너무 싫어서 우비를 입었던 적이 있었어. 우비는 우산이 필요 없지만 우비를 입고 많이 걸으면 더워서 땀이 빠져나가질 못해서 옷이 축축해지더라고. 우비는 옷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래. 우비를 입고 다니다가 어딘가 들어갈 때 우비를 입고 벗고 하는 건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의 몇 배는 귀찮은 거 같아. 우비가 우산보다 나으면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우비를 우산보다 더 입고 다닐 텐데. 우비는 어린이들이나 입고 다닐 뿐이야.


느닷없는 말이지만 비가 온다고 우산을 들고 감독을 봤던 녀석이 클린스만 아냐. 클린스만 웃는 모습은 너무나 얄미워. 웃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을 수 있을까. 웃는 얼굴이 그렇게도 미워 보일 수 있나. 대단한 사람들은 참 많아.


무라카미 류도 무의식 중에 들리는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면서 부정적으로 말했지. 아주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있어. 비웃는 소리처럼 들리는 웃음 말이야. 큭큭큭 하면서. 영화 버닝에서 아주 잘 나왔지. 종수가 벤에게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라고 애타게 말을 했음에도 벤은 그저 큭큭큭 웃으며 대마를 피우잖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안 그런 척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멸시당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그런 웃음이 있어. 벤처럼 그렇게 웃는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파고 들어오지. 내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온다구. 벌레처럼 말이야.


무라카미 류의 소설도 꽤나 읽었어, 교코부터 식스티나인, 단편소설집까지. 코인로커 베이비는 정말 빠져서 읽었었지.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은 너무 재미있는데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을 때 구매했는데 제목과 책표지만 달랐지 이전의 단편집을 그대로 재출간한 것이었어. 이게 한국 출판사의 계략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구입을 한 나의 잘못인지. 설령 나의 잘못이라고 해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야.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나인’은 영화로도 나왔는데 감독이 이상일이야. 식스티나인 영화 정말 재미있었어. 몇 번이나 봐버렸는지 몰라.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몇 번이나 보게 되는 것 같아. 이상일 감독의 최근 작품도 무척 빠져서 봤어. 거기에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주인공이 나와. 이 사회에 섞여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러나 우리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돼. 방식은 다르지만 말이야. 여기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 사람들은 일본의 영화, 애니메이션이 죽었다고 하지만 이상일 같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감독들이 있어서 쉽게 망하고 그렇지 않을 거야. 아무튼 설레발에 혹 하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봄비가 내리는 날에도 방향제 냄새를 맡았어. 방향제 냄새는 봄을 알리는 향이야.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 목련 꽃에서 나는 향과 비슷하며 다른 계절에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반드시 봄이래야 이런 방향제 냄새가 나거든. 지나치다 방향제 냄새가 나면 그 자리에 서서 흠흠 하며 봄이구나, 잠시 서 있어. 며칠 전에도 그랬는데, 골목의 작은 나무에서 방향제 냄새가 나더라고, 한참을 맡았지. 내일 또 와야지 하며 어제 다시 그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어제는 나지 않더라고. 분명 방향제 냄새, 봄의 향이 났는데 어제는 그저 풀 냄새, 그냥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 마치 나무가 그냥 오브제 같은 거야. 이상하더라고. 이건 무슨 나무일까.


초봄의 차가운 비는 땅에 닿아 시가 되는 것 같아. 시는 온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늘 보던 비에서 시를 느끼지 못해. 시는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잖아. 어젠가 변상욱 대기자가 그랬지.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가고 공연장을 가고 어딘가를 악착같이 간다고. 그러나 아름다움은 주위에 널려 있대, 아름다움은 찾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고만 한대지.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움을 찾아야겠지. 시는 슬퍼서 몸이 차가워져. 초봄의 비는 슬픔을 안고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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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카가 지 외할머니를 그렸다.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미술 하고 싶다더니 중학생 주제에 곧잘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똑같이 그려버릴 줄은 몰랐다. 지 할머니가 동네 자랑하고 다니니까 친구분들이 자신들도 좀 그려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신나서 조카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무시당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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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진

요즘 부쩍 도로에 포트홀이 많아진 것 같다. 뭐랄까 도로가 40년 만에 고질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20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가끔 하나 정도였는데 요즘은 50미터 안에 대여섯 개의 포트홀이 있을 정도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 숨어 지내던 외계종족이 50년 만에 꾸물꾸물 기어 나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몇 달 사이에 포트 홀이 여러 개 생겼고 아스콘으로 메우고를 반복했다. 내가 다니는 도로만 그럴까.


도로라는 게 오래되었고 차들은 점점 많아지고, 매일 수십수백 대의 차들이 붕붕 거리며 오래된 도로 위를 달리니 몸살이 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요즘 한 번에 구멍이 숭숭 나버리는 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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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에 나온 공각기동대는 정말 대단했다. 나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봤지만 입이 쩍 벌 어질 정도로 빠져서 봤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와 티브이 판으로도 다 봤지만 그 세계관은 대단했다. 95년도에 이미 안드로이드라든가 현재의 AI 모습이라든가, 인터넷 망을 타고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가에 대해서 현재를 고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공각기동대에서도 현재의 휴대폰의 모습은 예측하지 못했다.


예전의 백 투 더 퓨처에서도 미래가 나온다. 영화 속 미래가 2015년인데 영화가 현실보다 훨씬 앞서 있지만 현실의 휴대폰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키보드의 모습도 최초 나온 이후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시대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전기 자동차가 나왔고 자율주행자동차까지 나온 마당에 키보드는 양손으로 타이핑을 하는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분명 이 형태보다 더 간단하게 타이핑을 할 수 있는 키보드가 나와도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모든 부분이 새것으로 바뀌고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지만 어떤 부분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변화의 물결에 흐르지 못하고 머무르는 웅덩이 같은 기분이 든다. 여러 번 시도를 해봤지만 다시 원래대로의 키보드 형태로 되돌아가고 마는. 그래서 양손으로 타이핑을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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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간다


요즘 일드에서는 한국 대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쪽 ‘그리고, 살아간다’에서는 강지영이 나와서 한국말을 극 중에서 가끔 한다. 그러면 사타구니 켄타로가 뭐야 그 말은?라고 궁금해한다.


저쪽 ‘아이 러브 유’에서는 채종협이 나카이도 후미와 함께 작정하고 한국말에 한국음식에 한국문화로 일본 여자들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대고 있다.


강지영은 연기를 아주 잘한다. 슬픔을 안고 바라보는 연기를 하더라고. 강지영은 일본 영화에서도 단독주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문화적 개방은 일본이 우리보다는 더 위에 있다.  

eye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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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너무 밉상 얼굴이야

요즘 꽃샘추위 때문에 아주 쌀쌀하다. 하루 중 잠잘 때와 조깅할 때를 제외하고는 쌀쌀한 채로 지내는 것 같다. 사실 요즘 가장 핫이슈는 아무래도 총선이다. 쌀쌀함을 잊게 만든다. 엎치락 뒤치락이라는 말로도 모자라고, 제일 재미있고 스릴 있고 조롱거리에 실컷 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느닷없이 사태가 터지고, 사건이 일어나고, 발언이 문제 되고, 기자회견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몰려다니고, 사진을 찍고 으 하는 부분이 캡처되어서 돌아다니고. 엉망진창인데, 엉망진창이라 너무 재미있다.


만약 우울증으로 괴롭다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어라 하고 싶다.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릴 수가 없다. 매일 매시간 뭐가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욱하는 부분은 상대방을 향해 토해내면 된다. 그 과정에서 욕을 할 수도 있고 비방도 가능하다. 얼마나 좋아.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간 숨어 있던 야수를 깨우기도 했다. 와 그 같은 야수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니.


그리고 수천 대나 되는 도시 곳곳의 카메라와 녹음기능 덕분에 정치인이 뒷돈을 받는 장면을 영화처럼 볼 수 있었다. 수순처럼 기자회견에서 그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그것 역시 거짓말이라는 것도 우리는 다 보았다. 지금까지 그럴 거야,라는 추측만 난무했지만 이렇게 대 놓고 실제로 볼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영화 속에서 지내고 있는 기분이다.


이번 대통령의 그간 지지율을 보면서 이건 정말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간 40% 정도가 나왔는데, 온 언론이 밀어주는데 80%는 나와야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행보를 그동안 보면서 임기 기간 중에 이혼을 할 수도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혼을 당한다면 대통령 임기 기간 중에 이혼을 한 대통령 몇 번째일까. 석 달 가까이 두문불출하는데 실은 얼마나 멋지게 입고 꾸며서 나타나고 싶을까. 그 행보를 못하는 것에 남편이 있어서 매일 화를 내지는 않을까. 국가는 국민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 짝이지 싶다. 우리 엄마 어제 밥상 위에 망고를 올리더라! 망고가 웬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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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갈비탕은 결혼식장에서 나오는 그런 갈비탕이다. 나는 그 갈비탕이 제일 좋다. 적당히 고기가 들어있고 적당히 당면도 들어있는 갈비탕. 간간하니 간을 더 하지 않아도 괜찮은 갈비탕의 맛. 똑 그 정도의 맛이 내겐 딱이다. 내가 좋아하는 갈비탕의 모습이다.


맛으로만 따지면 갈비탕 전문점의 갈비탕이 맛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맛있어서 나에게는 별로다. 갈비탕 전문점에서 갈비탕은 한 대 여섯 번 정도 먹어봤나? 그 정도 먹었는데 맛은 좋으나 맛이 너무 난다. 간간한 맛이 아니라 육향이 짙고 갈비의 맛이 아주 잘 나는 그런 맛? 이 있다.


갈비탕은 뜨거운 음식이라 추운 겨울에 자주 먹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지만 여름에 주로 먹었다. 여자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고 오전에 문을 여는 갈비탕 집은 전문점이었다. 여름의 오전은 푹푹 찌고, 열을 받은 아스콘은 달아오르고, 숙취는 온몸을 전부 분리하려고 하고, 그때 갈비탕 전문점에 들어가면 시원하니 갈비탕의 그 달큼하고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숙취가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라나 전문점 갈비탕은 맛이 너무 났다. 맛이 너무 난다고.


초등학교 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대구에 가서 거기 숙소를 잡아서 하루 묵었다. 가족이 전부 대구에 갔었다. 대구에는 왜 갔을까. 기억이 없다. 대구는 큰집이라 불리는 큰아버지의 댁이 있어서 제사 때 가곤 했었다. 그리고 가면 보통 큰집에서 하루 자고 왔다. 큰집은 방도 많고 가정부도 있었다. 가정부 누나는 청각장애자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벙어리 누나라고 불렀는데 우리만 보면 무섭게 으 하면서 좀비처럼 양손을 앞으로 뻗어서 놀리곤 했다.


그러면 동생이나 다른 친척 아이들은 울곤 했다. 가정부 누나는 큰집에서 아기 때 고아원 같은 곳에서 데리고 와서 키워주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든 대구는 큰집이 있어서 대구에 가면 큰집에서 잠을 잤지 숙소 같은 곳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는 뭣 때문인지 큰집에 간 것은 아니고 숙소에서 하루 자고 이른 아침, 거의 새벽에 숙소에서 나왔다. 잠이 쏟아지는데 겨울에 나와서 아버지가 문을 연 식당에서 갈비탕을 사주었다. 그게 딱 내가 좋아하는 갈비탕의 맛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그 입맛에 길들여졌나 보다. 그 뒤로 친척들 결혼식에 가면 결혼식에 딸려 나오는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다.


갈비탕은 갈비로 만든 탕이니까 기본적으로 고깃국이다. 고기가 들어간 국, 탕이 많아서 우리나라 음식은 어떤 면으로는 축복받은 음식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탕이나 국으로 먹게 된 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못살았던 서민들이 닭 한 마리 잡으면 많은 식구가 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닭을 삶으면 나오는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모두가 배부르게 한 끼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고깃국이 우리네 밥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는 이렇게 탕이나 국은 몸에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일단 뜨겁기 때문에 빨리 먹게 된다. 뜨거운 음식은 늘 빨리 먹는다. 뜨거우니까 식혀서 천천히 먹는 게 아니라 뜨거운 음식은 식으면 맛이 없다는 인식이 가득해서 뜨거울 때 빨리 먹는 게 맛있다고 느끼고 있다.


국물문화가 발달된 아시아에서도 탕에 밥을 말아먹는 탕반문화는 한국만 발전했다. 그래서 국밥집부터 탕이나 국을 파는 식당이 아주 많다. 보통 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3 40대가 되면 살이 많이 찐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찌지 않는다면 그건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축복받은 유전자는 그런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20대 때 아무리 먹어도 날씬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국에 밥을 말아먹는 걸 좋아하면 살이 많이 붙는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열에 한 명 정도는, 아니 천명에 한 명 정도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아서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갈비탕을 좋아하던 아버지, 고모들 전부 일찍 돌아가셨다. 그런 유전자를 달고 태어났다. 정말 너무나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런 저주받은 유전자를 나 역시 이어받았다. 매일 조깅을 하지만 하루 이틀 조깅을 하지 않고 하루만 평소 양보다 많이 먹어도 살이 쪄 버린다. 1년 내내 관리하며 지냈어도 다 소용이 없다. 예전에는 이런 신체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늘 어딘가를 향해 불만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건 요즘도 비슷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그런 몹쓸 유전자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조깅을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이미 이렇게 생활한 지도 오래되어서 이런 루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인간이란 어떤 면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대단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손톱 모양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아주 하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데 어떤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너는 참 많이 변했네]라는 말을 듣기도 하다가 누군가에게는 [넌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같은 말을 듣는다. 나는 비정상일까.


누군가 나에게 변함이 없어서 참 좋네요,라고 했다. 그 말을 좀 삐딱하게 들으면 변화도 없다는 말로 들린다. 나는 늘 행복하게 보인다고 했다. 사람이 늘 행복할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이지. 하지만 겉으로는 예예 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다. 이런 날은 갈비탕 한 그릇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국물 있는 음식을 먹지 않은 게 좀 되어서 갈비탕이 먹고 싶은 그 마음만 가지고 저녁이 도리 때까지 끌고 간다. 막상 저녁이 되어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먹지 않는다. 국물이 정말 간절하게 당길 때는 컵라면을 먹는다. 작년까지는 끓여 먹는 라면을 먹었는데 욕심이 생겨 라면 속에 이것저것 자꾸 넣어서 끓이다 보니 항상 찌개가 되어서 요즘은 컵라면을 가끔 먹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체했다. 그렇게 심하게 체한 건 몇 년 만인 거 같다. 소화가 안 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러면 병으로 된 소화제를 찾아서 마신다.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위장을 달고 태어나서 위가 부담을 느끼면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먹는 음식이 위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싶으면 숟가락을 놓는다. 그랬는데 엊그제는 뭔가를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심하게 체하고 말았다. 사촌동생이 서울에서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왔는데 그게 아마 속에서 아다리가 된 것 같다. 다음 날 아침부터 체기가 있는 것 같더니 머리도 어지럽고 그 더부룩한 느낌. 거기에 설사까지. 마치 숙취 같은 그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몸이 힘이 전부 빠져나가고, 정말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몸이 고통스러운 이 느낌은 진짜 별로다. 결국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다. 다시는 느껴보고 싶지 않은 느낌. 이런 혹독함이 휩쓸고 지나가는 이런 날에는 어릴 때 먹던, 결혼식장의 그런 갈비탕이 먹고 싶다.


어린 시절에는 갈비탕을 먹으러 갈 때 혼자 가지 않는다. 항상 부모님이 함께 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와 함께 먹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혼자서 갈비탕이나 국밥을 먹을 수 있다. 그게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나는 위 때문에 빨리 음식을 먹지 않는데 일행은 대체로 뜨거운 국밥 같은 경우 빨리 먹는다. 그러면 나는 일행의 속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여자와 함께 먹으면 속도가 얼추 비슷했다. 여자들은 국밥이나 갈비탕이나 그렇게 빨리 먹지 않는다. 이토록 갈비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놓고 막상 식사 때에는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 인간이란 제 멋대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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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젤리비가 내린다. 골목에 내리는 젤리비를 맞으면 똥이 젤리가 되어 나온다. 젤리비는 골목에만 내린다. 몸에서 나온 젤리는 꿈틀꿈틀 움직여 서로 붙어서 새로운 골목을 만든다. 젤리비를 맞은 후 48시간 안에 젤리똥을 누면 괜찮은데 48시간이 지나도 젤리똥이 나오지 않으면 몸이 점점 젤리로 변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몸이 녹아서 없어진다. 정부는 이 세계에서 골목을 전부 없애려 하고 골목은 전부 사라지는 골목길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골목은 하늘에 물질을 쏘아 올려 먹구름에서 비를 뿌릴 때 젤리비를 내리게 했다. 그렇게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정부는 애써 막으려 했고 골목은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정부에게 위협을 가했다. 어느 비가 오는 날 골목에 내리던 젤리비가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



골목이 사라지고 있다.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릴 때 골목에서 놀고 시간 가는 줄 몰랐지. 엄마가 몇 번이나 불러야 겨우 집으로 마지못해 들어갔다.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노는 게,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뭘 하며 놀았냐고 한다면 뛰어다니며 놀았던 것 같다. 보자기 울러 매고 슈퍼맨 놀이를 하기도 했고, 칼 들고 마징가가 되기도 했다. 골목에 있는 집들은 전부 대문을 열어 놨는데, 이 집 저 집 아이들이 나와서 놀다 보니 이 집 저 집으로 마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우르르 몰려다녔다. 대체로 아버지들은 회사에 다 나가고 엄마들이 집에 있었는데 나무라지는 않았다. 간혹 야간하고 들어와서 잠자는 김 씨 아저씨가 이놈들아!라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옥상과 옥상을 건너뛰어 다녔다. 옥상과 옥상은 거의 붙어 있지만 그래도 공간이 있다. 떨어지는 죽는 거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 나왔는지 용기가 불쑥 올라올 때가 있는데 동네 형들이 다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뛰고 나면 우리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또 보자기를 등에 착용하면 정말 슈퍼맨이 되어서 날아갈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꼭 누구 하나가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부러졌다.


봄이 오면 골목에는 표가 확실하게 났다. 블록 사이에서 잡초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집집마다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시면 놀던 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들어가서 밥상에 빙 둘러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한 십 년 동안 내가 살던 동네로 조깅을 하면서 돌아왔다. 사람들이 여전히 동네에 빼곡하게 들어앉아서 생활을 했는데,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더니,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철거가 찍히고, 집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동네 고양이들도 다 떠나고, 벌판이 되더니 철근이 박히고 아파트 단지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래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놔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다.


골목은 감성에 기인한다. 이성적으로 골목의 오래된 집들은 불안해 보인다. 아주 긴 시간 버텨왔기 때문에 담장이 무너질 것 같기도 하고, 장마나 폭설에 위험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화재에 대해서 취약하다.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놈의 골목 빨리 떠나야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진으로는 운치 있어 보이지만 70년대부터 있던 전깃줄이 신경줄처럼 골목에 널어서 있어서 간당간당하다. 몇 번이나 새 전깃줄로 갈았을까. 아마 한 번도 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골목은 기묘하지만 동네마다 느낌이 다르다. 골목의 분위기? 골목의 스타일이 동네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뛰어다니며 놀기 좋은 골목이 있는가 하면 연인끼리 몰래 키스하기 좋은 골목도 있다. 저녁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장판 깔고 소담을 나누기 좋은 골목이 있다.


골목은 상당히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골목이 많이 남아 있다. 골목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있다. 혹시 모르지. 시간이 흘러 신문사에 팔아먹을지도.




여기서부터는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동네다. 21년도에 찍은 사진들인데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느껴진다. 21년도 초반에는 골목 집집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가 점점 사람들이 빠져나가더니 철거가 시작되고 벌판으로 바뀌고 지금은 몽땅 아파트 단지가 되어간다.




여기 골목은 스타일이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시에서 밀어주는 골목이다. 오래된 골목이기는 하지만 도심지 중앙에 있는 골목이라 없애지는 못하고 사람들이 더 모이게끔 문화의 거리로 만들었다. 꽤 긴 시간 공을 들여서 이쪽 동네는 모든 것이 바뀌어서 골목 어디에서나 사진 찍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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