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1월이 되었다. 그 말은 겨울로의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말이고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는 미국과의 분위기와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그저 평일처럼 훅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브가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지지도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딜 가나 북적이는 북새통의 골치 아픈 날이었다. 울고 짜고 가장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싸우고 헤어지는 커플이 우르르 쏟아진다.


또 분위기가 80년대, 90년대, 2천 년대 초반과도 많이 다르다. 오히려 그때가 더 미국스럽다. 미국스러운 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미제가 좋아 보인다. 각 가정에 케이크 하나씩 놓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캐럴을 들으며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2천 년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면서 2015년쯤에는 성탄절 주간에 울려 퍼지던 길거리의 캐럴도 사라졌다. 그래서 배캠에서 배철수 형님도 흥청망청의 연말 분위기는 별로지만 길거리의 캐럴이 사라지고 구세군 냄비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어떻게 봐도 별로라고 했다. 그랬는데 이제 21년의 크리스마스가 되면서 코로나 시국이라 완전히 분위기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흥! 하게 되었다.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성탄절이 휴일이다. 하지만 전혀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캐럴도 다양함에서 멀어졌다. 북치는 소년이나 탄일종이 땡땡땡 같은 캐럴은 이제 아예 들을 수 없고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송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1월이 되면 나는 슬슬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준비를 한다고 해서 딱히 별다를 건 없다. 그저 혼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12월 25일까지 죽 이어가는 것이다. 옆에서는 또 시작이군, 같은 반응이지만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근래에도 옆에서 캐럴이 좋아서 잘 듣고 있다.


먼저 잠들기 전에는 피아노곡 캐럴을 듣는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 루더 벤더로스의 캐럴과 빙 크로스비의 캐럴을 조금씩 듣는다. 크리스마스 장식도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놓는다.


하루키가 라디오 방송으로 ‘무라카미 라디오’를 하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특별 방송을 지금부터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매일 한 시간씩 듣는다. 여기에서 하루키는 10곡의 하루키가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송을 틀어 주는데 전부 다 좋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080


삼일에 두 편 정도 영화를 보는데 [영화 리뷰만 올리는 인스타 계정이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주야장천 올리다 보면 감독이 댓글을 달기도 하고, 제작사가 와서 댓글도 달고, 배우도 댓글을 달기도 한다. 심지어는 옆 나라 일본의 배우도 와서 조용하게 좋아요를 누르고 간다. 재미있다] 6일에 한 편 정도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다. 지금부터 성탄절 당일까지 죽 본다. 그래서 매년 봤던 걸 또 보게 된다. 그래도 재미있다. 시즌 영화는 8, 90년대의 크리스마스 영화들이 의외로 재미있다. ‘그렘린’부터 ‘34번가의 기적’이나 ‘패밀리 맨’ 같은 영화들. 촌스럽지만 내가 촌스러워서 더 좋게 와닿는다. 그렘린은 2편까지 있는데 그렘린 녀석들이 화난 얼굴을 하고 뉴욕, 뉴욕을 부르는 장면은 참 재미있다.


그리고 곤 사토시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도 매년 볼 때마다 재미있다. 그건 대단히 이상한 현상이다. 볼수록 재미가 더해진다. 초반에 일본의 길거리 속 삼계탕 간판의 모습도 인상 깊다. 곤 사토시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영화를 와장창 만들었을 텐데, 얼마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저메키스 감독의 스쿠루지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과 ‘폴라 익스프레스’는 나의 영원한 시즌 영화다. 스쿠루지의 목소리를 짐 캐리가 해서 그런지 정말 좋다.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는 마빈 게이의 딸, 노나 게이가 소녀의 목소리를 낸다. 마빈 게이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마빈 게이의 죽음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노나 게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영화도 좋다. 재미있다. 예전만큼의 충만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시즌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 부부가 함께 나오는 ‘크리스마스 연대기’도 커트 러셀과 골디 혼이 같이 나온다. 2편까지 나왔는데 아주 재미있다. 산타가 21세기에 맞춰 우당탕 하는 이야긴데 빠져든다. 역시 하늘을 나는 장면은 크리스마스 영화의 멋진 장면이다. 작년에도 딱 이맘때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140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이다. 내가 만드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특별해서 단 시간에 만들지 못한다. 하루 만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몇 날 며칠 카드를 만들면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컴퓨터로 레이아웃을 잡고 사진을 여러 장 일일이 선별해서 작업을 한다. 텍스트도 그에 맞게 다시 집어넣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진짜 크리스마스라는 기분이 든다. 작업이 끝나면 카드로도 만들고 액자에도 넣을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나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을 주위 몇몇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라는 관념은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인데 사람들 각자가 느끼는 크리스마스는 다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몹시. 단지 드러내 놓고 왁자지껄하게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 나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건 6세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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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맘때 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바닷가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코로나 방역도 예전만큼 심하지 않고 해변도 오늘 이전보다 오늘 이후 더 활기를 찾게 되지 않을까. 여기는 아직 낮동안은 더워서 반팔이 어울렸다. 해변이 어둠이 이불처럼 깔려도 바람이 없어서 앉아서 맥주를 마시기 좋은 날이다.


앉아서 책을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술이 오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면 이만큼이나 마셔야 술이 취하지만 책을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면 이상하게도 요만큼만 마셔도 술이 오른다.


고개를 들어 바닷가를 보면 바닷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마시는 맥주와 안주로 먹는 튀김을 씹는 소리가 어울리다 보면 저 달달한 불란서 식 맥주를 마시는데도 금방 술이 오른다. 술이 오르면 책을 잠시 덮고 밤바다의 정취에 취하거나 풍경을 멍하게 보는 것도 좋다. 바다는 아주 고요한데 파도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등을 보이며 바다를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본다. 다른 이들보다 오랫동안 앉아서 바다를 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계절의 바다를

당신보다

오래 붙잡아 두려 한다.


이 바닷가에서 신기한 건 여기 바다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한 바다의 짠 내가 전혀 없다. 대포항에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작은 횟집이 몰려 있는 곳에도,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에도 바다의 짠 내가 있지만 여기는 없다. 보통 바다는 가물면 짠 내가 더 심해지는데 여기 바다는 그런 바다의 냄새가 없다.


몹시 가물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유월에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게 나는 날에도 짠 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여있는 호수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난다. 민물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여기 바다에는 도사리고 있다.


저기 수평선에 오징어 배가 일렬로 죽 떠 있으면 어두워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같다. 도화지에 검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 같다. 저기 옆에서는 오랜만에 버스킹이 한창이다. 일요일이라 일찍 바닷가에 산책을 하러 나온 동네 사람들과 이 바닷가로 온 관광객이 섞여서 노래를 듣는다.


바다를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조급해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영차영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이 지구 밑에서 지구가 잘 굴러가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라디오에서 토미 페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소년 같은 목소리로 ‘알 비 어 에브리띵’을 오랜만에 들었다. 토미 페이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오래전 배철수의 음캠에도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라이브가 엉망이었지만 끝까지 부르려고 했다. 배철수도 그런 태도를 존중했다. 그랬던 토미 페이지는 어디로 갔을까. 프린스는 프레디 머큐리를 만나러 갔고 얼마 전에 보위도 사라졌다.


그들의 음악을 잔뜩 늘어놓고 들었던 기억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기억이 되어간다. 바닷가에서 술이 오르면 멍하게 바다를 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쓸데없지만 쓸모없지는 않다. 그런 생각의 바다에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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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했을 때 그 속에 아줌마들도 있었다. 사실 아줌마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외모에 운동을 많이 해서 배에 11자 복근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나보다 훨씬 동생들이다. 그래서 "나 결혼하고 아이가 둘 있는 아줌마예요"라고 하지 않는 이상 아줌마라고는 전혀 알 수 없는 회원들이 있었다. 독서모임의 주최자는 나니까 나도 뭔가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보통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을 열거해서 이야기를 한다. 주로 시인 백석 이야기나 윤동주의 이야기나 저 먼 나라의 보들레르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주절주절 했다.


백석은 자야를 만났을 때 가장 찬란한 시들이 탄생했다. 나타샤부터 흰 바람벽이 있어 같은 시는 온통 자야에 대한 이야기다. 백석이 가장 좋아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시 12살 많은 루 살로메를 사랑했을 때 가장 찬란한 시가 나왔다. 릴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목숨을 걸었다. 일명 루(미 비포 유의 루가 아니다)에게 목을 매는 남자들이 많았다. 니체와 프로이트도 루의 남자들이었다. 루는 자신의 처녀성을 바친 사람은 아버지뻘의 교회 목사였다. 그 사람이 루의 재능을 눈치챈 사람이었다.


루 살로메라는 영화로도 있다. 당대의 지성인 남자들과의 염문도 볼 수 있다.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를 사랑할 때 최고의 글들이 나왔고, 보들레르도 흑백 혼혈 잔 뒤발을 사랑했을 때 최고의 시가 나왔다.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은 당시에 프랑스 정부에서 금지시켰다. 판매를 하지 못하게 했다. 죄악, 탐욕, 어리석음의 인간 군상을 표현했는데 사람들이 열광하다시피 했다. 아무튼 보들레르의 시는 지금도 문학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이기도 하다.


어떻든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독서모임에서 하면 사람들은 재미있어했다. 아줌마 회원이(라고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고) 글을 잘 쓰려면, 문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을뿐더러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인문계 고교를 나왔지만 거기서 사진부 활동만 하다가 졸업을 했다. 그리고 건축을 전공했다. 어떤 식으로 보면 나는 자연계 쪽이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기둥도 모른다. 그런데 또 소설을 좋아해서 한때는 열심히 읽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끼인 존재 같은 인간이다. 그러니 내가 글을 잘 쓴다던가, 문학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알 수는 없다. 이런 걸 알려면 작가들의 강연을 듣거나 그들의 서적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가 소설에 빠져서 소설을 읽고 또 읽다 보니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없고 유명 작가들에게 빠져 있지 않는 이상 쉽게 그들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조촐하게 하며 우리끼리 어떤 응어리 같은 것을 풀었다. 문학이라는 게 사실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마도 문학이라는 건 계란찜처럼 별거 아니게 너무나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이지 싶다.


계란찜, 계란찜이라는, 이거 먹고 싶으면 언제나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다. 그저 물만 넣고 휘휘 저어서 폴폴 삶아 시간만 되면 맛있는 계란찜을 맛볼 수 있다. 계란찜이라는 건 묘해서 특별히 맛있는 계란찜은 있지만 딱히 맛이 없는 계란찜은 없다. 식어도 맛있는 것 같다. 문학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하게 좋은 문학은 있지만 딱히 안 좋은 문학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좋지 않다고 느낀 문학이라는 건 문학을 읽은 후니까 그것대로 아 이런 건 좋지 못하구나, 라며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문학은 접하지 말아야지 하는 경험이 생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모르지만 글이라는 건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형태는 일단 우리가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이라는 건 어딘가에 쓰여야 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공책이든, 노트북이든 쓰면 된다. 무슨 글?라고 묻는다면 나의 글, 자신의 글을 쓰면 된다. 여기서 자신의 글이라 해서 나 자신의 글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글도 자신의 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글이 쓰고 싶을 때 내 아이의 얼굴을 글로 써보면 재미있다. 웃을 때 이런 모습이 되는구나, 여기에 점이 있었네, 잠을 잘 때 내 아이는 이런 얼굴을 하고 있구나. 같은 모습이 떠오르며 다 적고 나면 몹시 재미있다. 아무래도 글은 재미있게 적으면 좋겠지. 내 아이의 모습을 글로 적다 보면 글이 순식간에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다 쓰고 난 글을 보면 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이제는 내 엄마의 얼굴을 한 번 써본다. 하지만 내 아이의 모습을 적을 때처럼 수월하게 적히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주름이 몇 개가 있는지, 짐꾸러미처럼 잠을 든 모습에서, 갈라진 발 뒤꿈치에서 나는 어떤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 엄마의 모습을 내가 곧 답습하게 된다. 내가 내 엄마 품에서 벗어나 내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듯이 내 아이도 나를 벗어나 자신의 울타리 속으로 갈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별거 없다. 별거 아이야. 계란찜과 같은 것이다. 늘 곁에 있지만 관심 가지지 않으면 잘 모르는, 늘 접하지만 손을 뻗지 않으면 촉감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재미있게 본 오징어 게임이나 듄 같은 영화의 기초는 시나리오다. 문학이다. 거기서 시작한다. 매일매일 듣는 노래는 가사에 음을 붙은 것이다. 가사는 바로 시다. 역시 문학이다.


문학, 즉 예술이라는 게 우리가 밥을 먹고사는 생활에 불필요할지 모른다. 없어도 무관하다. 하지만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를 서로에게 이어준다. 문학과 예술이 발전한 나라는 대체로 몹시 선진국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계란찜은 참 별거 아니어서 별거다. 계란찜과 문학 그거 뭐 별거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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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1-03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교관 2021-11-04 12: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셔요!
 


앞마당에 겨울이불을 빨아서 널어놓고 이불의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항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계속 보게 된다. 이불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마당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습이 꽤 재미있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두꺼운 솜이불은 흠뻑 젖어서 무거웠고, 그 몸을 지탱하는 빨랫줄은 아슬아슬하지만 용케도 이불을 받치고 있었다. 빨랫줄은 그런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얇지만 튼튼한 빨랫줄을 신뢰했고 빨랫줄은 긴 시간 온갖 빨래의 무게를 잘 견뎠다. 나는 마당에 앉아 물이 뚝뚝 떨어져 마당 위에 떨어진 물이 만들어내는 무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마도 꿈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토록 심도 있게 이불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꿈속의 나는 이불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물방울과 함께 마당으로 슬쩍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표백제로 깨끗하게 닦아버려 물이 다 빠진 마당의 차가운 온도에 나는 물방울과 함께 떨어져 말라 없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건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꿈에서 융해되는 내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다.


마당의 한쪽에는 화단이 있었다. 화단에는 무화과나무도 있고 내가 심어 놓은 포도나무가 올곧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자라서 거짓말처럼 철이면 몇 송이 열렸다. 생긴 건 포도라는 것을 알겠지만 맛에서는 멀어진 포도였다. 약을 뿌리거나 하지 않았기에 포도는 맛이라는 것이 빠져나가버린 포도였다. 어쩌면 포도는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화단의 여러 나무들 틈바구니 속에서 적은 양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신기하게도 포도가 열렸다. 그런 포도나무도 겨울을 나고 있었다.


마당에 강아지가 있었다. 개를 자본주의보다 더 싫어했던 아버지는 개가 새끼를 낳으니 직접 수프를 끓여서 일일이 먹이곤 했다. 새끼들이 수프를 잘 먹을 수 있게 무엇을 만드는 일은 온통 아버지가 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일찍 귀가했기에 왜 그러나하고 보니 강아지들에게 먹일 고기를 준비하느라 그랬다. 덕분에 무럭무럭 자란 강아지들은 마당에 앉아 있으면 내 옆에 자석처럼 와서 붙었다. 꼬물꼬물 거리던 작은 생명체들이 한없이 귀엽게 보였다.


1월의 겨울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날이면 나는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지하 인간을 읽었다. 처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는 스탠리 브로더스트와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대생 수전. 이들과 함께 산장으로 간 아들 로니를 찾아달라는 진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루 아처. 루 아처의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 ‘지하 인간’이다.


지하 인간을 읽으며 이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가끔씩 쳐다봤다. 우리 집 개, 깜순이가 옆으로 와서 엎드리면 나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면 깜순이는 나의 손길이 마냥 좋은 듯, 그 검고 윤기 나는 털을 햇빛과 나의 손에 내어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졸음에 겨워한다. 깜순이의 새끼들은 배가 불러 서로 앙증맞게 굴러다니고 있다.


이불빨래를 너는 따뜻한 겨울의 일요일이면 마당에 앉아서 고민 없이 한두 시간씩 책을 읽었다. 불안도 없고 생각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공포와 두려움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아버지도, 깜순이도, 마당도 전부 소멸해 버렸다. 그때의 그 마당은 오로지 차가운 공기의 냄새와 입자, 그걸 덮어줄 따뜻한 햇살의 기운이 가득했던 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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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과 맹신


나는 빵돌이라 빵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는 단팥빵을 많이 좋아하는데 어린이 때에도 단팥빵을 좋아했다. 단팥빵이 맛있는 빵집은 대체로 모든 빵이 맛있는 거 같고, 단팥빵은 그 모양이나 형태가 변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빵을 맹신하다 보면 몸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적당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란 좋아하는 걸 모두 다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살면서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어릴 때는 엄마와 아빠가 그 대부분의 대상이며, 이성에 눈을 뜨면 그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직장에서는 당연하지만 나의 사수, 나의 직속 선배가 회사 내에서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를 이끌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험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아닌 것에도 믿음이라는 묘한 풍족한 감성으로 대하며 기대게 된다. 요컨대 나 같은 경우는 ‘시’에 많이 기대는 편이다. 소설이나 시에 힘들 때에는 기대게 된다. 시에 뭐가 있기에 왜 기대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시는 꽤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치가 그렇다. 정치는 특정한 형태가 없으니 정치인이 정치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주로 정치인을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치라는 건 아주 기기묘묘해서 내가 믿는 정치인이 어떤 저속한 잘못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면 비슷한 정치이념을 가진 다른 정치인을 믿으면 되는데 인간은 그게 안 된다. 그만 정치와 정치인을 동일시해서 내가 믿는 정치인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거나 내가 믿는 정치인은 그럴 리 없다며 경주마처럼 그저 앞으로 돌격만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교에 우리는 집착을 한다. ‘신’을 믿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지만 시간이 흐르면 믿는 종교에 폭 빠져서 맹신하게 되고 그에 따른 이해관계에 얽히다 보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하기도 한다. 요컨대 95년 일본의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을 보더라도 그렇다. 사린 가스는 걸프전 이후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제조를 금지했다.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린 가스를 종교라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제조하고 뿌린 신도들은 일본에서 상위층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에 늘 1등을 차지하며 어른들, 친구들이 모두 우러러보던 엘리트들이 사회로 나가서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것 같았는데, 이 세계라는 것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일류 엘리트가 하나의 점 같은 존재하는 것에 환멸을 느낀 마음을 뚫고 옴진리교가 파고든다. 네가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 네가 이 세계를 뒤집어야 한다, 너처럼 엘리트가 존경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이 의식을 파고들어 이들은 결국 종교에 맹신하며 집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맹신을 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중간 매개에 '종교'를 집어넣어서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돈이 뜯기는 사람들은 그것이 그저 후원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돈을 뜯는 사람이 돈을 뜯어내려는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다손 치더라도 자기 합리화를 한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너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상관 마라,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무너질지 모른다. 또 믿었던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에 허망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믿음을 가지되 맹신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믿음에 약간의 틈을 두고 그 안에 의심을 놓아둔다. 믿음에 의심을 가지지 마라, 같은 말은 무시하고 내가 믿는 것에 의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부터도 좋은 왕은, 현명한 왕은 자신 옆에 자신을 의심하는 신하를 두는 왕이라 했다. 왜냐하면 인간이니기에 늘 올바른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어딘가에 치우치고 망가지는 게 인간이니 그걸 지적해 줄 수 있는 신하를 둔다는 건 정말 현명한 왕이다. 그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조직에서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아귀의 배를 가르면 그 안에 작은 물고기가 가득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아귀는 뱃속에 소화가 안된 작은 물고기가 가득 있어도 계속 먹이를 잡아먹는다. 사자도 그러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사자 앞에 토끼가 있어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귀는 배가 차도 계속 채운다. 탐욕 때문이다. 식탐이 강하다 못해 너무 강하면 탐욕도 강하다. 탐욕이 깊어지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배가 너무 부르면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기분이 상하면서도 탐욕 때문에 숟가락을 놓을 수 없다.


단팥빵은 물론 내 기준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다. 여러 맛있는 빵들이 있지만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서 단팥빵이 가득 있다면 아주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맹신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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