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베이션 - 2,000달러짜리 작은 차가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
케빈 프레이버그 외 지음, 신현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나노베이션은 한 소형차가 어떻게 전 세계에 크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성장하는 거대 시장을 위해 안전하고 저렴한 전전후 운송 수단 개발에 나섯으며,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던 엔지니어와 설계사와 사업가호 구성된 놀라운 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타타 모터스가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

 

책의 저자 케빈과 재키 프레이버그 부부는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리더들의 독특한 관행들에 대해 강연하고 글을 쓴다. 그들은 기업 문화, 리더십과 서비스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연자의 대열에 속해 있으며, 샌디에이고 컨설팅 그룹과 freibergs.com을 창설했다. 리더들이 변화의 세계를 준비하도록 돕는 그들의 인상적인 활동은 <월 스트리트 저널>, <인디아 이코노믹 타임스>, <USA 투데이>, <비즈니스 위크>등을 통해 보도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너츠! 사우스웨스트 효과를 기억하라>를 저술했으며, <것츠(GUTS)!>와 <붐(BOOM)!>을 공동 저술했다. 

 

80여 개국에 약 1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한 해 총수익이 710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업의 총수가 이제 막 빈곤층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싼 자동차를 개발하기로 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전 세계 전문가들이 불가능한 일이라 못 박고, 홍수와 정치적인 저항으로 공장 부지를 두 번이나 이전하고, 원자재 값이 40퍼센트나 폭등한 상황에서도 그 차의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매도한 그 일을 타타 그룹의 회장인 라탄 타타는 해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스쿠터에 매달리듯 올라탄 한 일가족이 미끄러운 빗길 위에서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그들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노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차의 가격은 10만 루피(2,000달러)로 확정되었다. 강철 바디와 4개의 좌석, 4개의 문을 가진 '진짜 자동차'가 고작 스쿠터 한 대 가격으로 출시된 것이다.


타타 그룹이 이루지 못할 허튼짓에 돈을 쓴다고 폄하한 전 세계 전문가들을 흥분시키고, 인도의 시민들은 물론 개발도상국들의 서민층에게까지 열광적으로 사랑받게 된 이 차 타타 나노는, 오직 '회장님의 바보짓'과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굳게 믿은 직원들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실패해도 도전하길 장려하는 타타 그룹의 기업 문화와 '불가능에 도전하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다'라는 신념, 그리고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소통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노베이션>은 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이루어낸 위대한 도전의 과정이며, 산업에 한 획을 그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도에서 140년 동안 자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다른 기업들이 성장 제일주의를 모토로 각종 비리와 정경유착을 저지른 반면, 이들은 대규모 자선 단체와 병원을 운영하며 인도 국민들의 삶을 바꿔놓기 위해 애썼다. 타타 그룹의 설립자인 잠셋지 타타는 간디의 후원자였으며 국가의 산업 발전에 기여했고, 현 회장인 라탄 타타는 그룹의 규모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도 하위 계층의 삶을 위한 사업들을 추진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물들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바로 '타타 나노'였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됐는데, 1부 나노 스토리에서는 타타 나노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게 묘사되었고, 2부 나노베이션의 정의에서는 '나노베이션'이 타타 그룹 내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3부 나노베이션을 위한 8가지 법칙에서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행동들을 8가지 법칙으로 명확하게 정의했고, 4부 나노베이션 효과에서는 타타 나노의 출시가 인도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는지, 다른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고찰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만큼 타타 나노의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나노 개발팀에 극한의 혁신 정신을 심어주어야 했으며, 거래처들을 설득시켜야 했고, 지금까지 시행되어서 성공한 방법과 그렇지 못한 방법의 차이를 가려내야 했다. 사람들은 결코 '플라스틱 장난감'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골프 카를 만들어서도, 플라스틱 바디를 가진 자동차를 제작해서도 안 됐다.

 

하지만 나노 개발팀은 그 모든 불가능을 헤쳐나갔고, 마침내 타타 나노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세상에서 가장 싼 자동차'의 개발 과정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이는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성공한 기업의 이야기이며, 기업이 옳은 가치관과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냈을 때 그것이 전 세계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명 과정이다.

 

 

 

 

 

 

 

스쿠터를 탄 가족의 교통사고

 

우중충한 날씨였던 바로 그날, 라탄은 도로 사정이 위험한지 뻔히 알면서도 승용차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다. 도로가 미끄러우니 조심 운전을 하라는 그의 말에 운전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에서 멀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라탄의 승용차가 교차로로 접근했을 때 스쿠터를 탄 가족이 그들을 지나친다.

 

그는 스쿠터를 가리키며 운전사에게 " 저사람들을 조심해요"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스쿠터가 잘 넘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운전사는 반응하고, 스쿠터 뒤를 따라 교차로에 진입하면서 "조심하고 속도를 낮춰요"라고 또 한번 주의를 준다. 바로 그 순간, 사고가 발생한다. 스쿠터가 한쪽 방향으로 쓰러지면서 가족들은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만약 우리가 더 빨리 달렸다면 그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가족이 차 밑에 깔릴 수도 있었지요. 참으로 불행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또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녁 시간에다 차량 속도가 더 빨랐다면, 운전도 미숙하고 차량의 운행 방식도 더 위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라탄에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경종의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하면 어떻게 될까(What if)?"라는 식의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저렴하고 안전한 이동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라탄 타타는 어려서부터 타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법은 이미 익숙했다.

 

 

'산업계의 간디'처럼 리더십을 발휘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인들이 스스로 훌륭한 국가의 가치 있는 국민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잠셋지 타타와 J. R. D. 타타는 인도인들이 스스로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진 훌륭한 '산업' 국가이자, 리더십 능력을 가진 지적인 국가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라탄 타타는 인도인들이 스스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혁신 국가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타타 그룹의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일단 사업이 궤도에 올라 수익성이 확보된 이후 비로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처음부터 모든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CSR팀은 새로운 제조 공장에 착공하기 이전에 이미 현장에서 주변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강구한다. 타타 그룹은 실제로 각각의 공장 주변에서 선정된 100개 이상의 마을에 거주하는 10만 명 이상의 주민들에게서 개발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타타 모터스의 CSR 활동

 

보건~ '나브 자그라트 마나브 사마즈' 설립, 나병 환자를 치료

환경~ 대규모 나무 심기 운동

교육~ 밤찬드라 고등학교, 장학금 제공

고용 능력~ 훈련을 통해 재정적 독립을 지원

 

 

 

 

나노베이션을 위한 8가지 법칙

 

나노베이션에 열중하라

혁명을 이끌어라

혁신의 문화를 만들어라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의심하라

고객의 상상력 그 너머를 바라보라

트렌드의 교차로로 가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라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라, 더 빨리 실패하라, 더 강하게 반등하라

 

나노베이션은 당신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능력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한다. 리더십은 사람들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라탄 타타는 크게 생각하면서 우아한 것을 수용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해내는 나노 개발팀의 역량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라탄은 나노 개발팀에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을 전달하면서 팀원들 각자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모든 이들이 누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특정한 시기에는 자신의 방향 감각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혁신을 밀고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용기는 배가되기 마련이다.

혁신가들이 확신과 자신감을 상실하는 바람에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사장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가? 아무도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나노 개발팀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좌절과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했다. 라탄 타타 회장부터 프로젝트 리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타 모터스는 약자를 배려한다

 

 

 

이 책은 이 사진을 갖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운송 수단으로써 스쿠터를 사용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이자 인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타타 모터스의 나노는 기존의 저가 자동차 가격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됐다. 그렇다고 허접한 엉터리 제품이 결코 아니다. 쓸만한 진짜 자동차인 것이다.

 

빗 속 길을 위험천만하게 다니는 스쿠터를 보고 라탄 타타는 스쿠터 가격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동차 개발을 꿈꾸게 된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기업의 이윤 추구보다 고귀한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섬기는 리더십의 본보기를 보여주었고 마침내 나노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나노베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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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 갈 곳 잃은 민심, 표류 중인 국가에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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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년간 발생한 주요 정치 현안 및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소견과 대책을 모은 칼럼집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병리와 적폐를 아프게 지적하고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진정 누구인가를 준엄하게 물으며 참된 리더십의 핵심을 파고든다. 집단 이기주의의 덫에 빠진 줄도 모른 채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마치 각성제를 처방하는 듯하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 우리들 자신이다

 

2016년 4월을 시점으로 3년 연속 전국 규모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2016), 대통령 선거(2017), 전국 동시 지방선거(2018년), 그리고 보궐선거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가볍게 내던지는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선심성 공약과 당선만이 지상과제인 선거 과열로 국론이 분열되고 정국이 요동칠 것이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책의 저자 김형오는 1947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나와 기자, 공무원, 정치인을 거쳐 오래 유보해 두었던 제3의 길을 걷기 위해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작가로, 역사에 대한 탐구자로 본격적인 방향 전환을 했다. 2012년에 발표한 <술탄과 황제>는 작가가 4년 남짓한 산고 끝에 완성한 집념과 열정의 산물이다.

 

그는 전쟁의 무대였던 터키 이스탄불을 다섯 번 다녀왔고, 특히 지난 4월 중순부터 6월 초순까지 47일간 현지에 머물면서 막바지 취재 및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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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1~2 세트 - 전2권 -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 지음,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 엮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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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역사의 분화噴火였다. 조국근대화의 비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오늘, 온 국민의 피와 땀이 모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하면 된다'는 지도자의 결기와 4천만 국민의 세찬 각오가 어우러졌던 그 어제가 이런 오늘을 만든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다. 뿌리 없는 열매는 결코 없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 '저자 서문'중에서

 

 

5.16혁명과 현대사의 물결을 증언하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운정 김종필은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책에서 밝힌다.

 

5천 년 가난을 벗어나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나라 한번 만들어보자'고 궐기한 군사혁명은 마침내 '무항산 무항심'의 명언이 지향하는 바 민주복지 국가 건설로 이어졌다.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복지는 경제 건설이라는 '항산恒産'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라는 '항심恒心'을 일구어낸 것이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해석을 입히는 것은 호사가나 역사가의 몫이다. 운정雲庭은 그저 굽이치는 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에다 '증언록'이란 이름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론'이란 타이틀을 붙이지만 굳이 이렇게 명명한데는 있었던 사실만을 얘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는 1년 동안 매주말 서울 청구동 운정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2015년 3월 3일부터 연재된 중앙일보의 '소이부답笑而不答' 기사는 12월까지 114회로 이어지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연재물을 가감없이 그대로 묶어서 책으로 출간했다.

 

 

 

 

 

 

처음 본 박정희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한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아흔에 이르러 회상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발령식 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 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실로 가서 인사 드려라"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근데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실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을 벗었다"고 간단히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으로 일하던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미국, 박정희를 의심하다

 

'황태성 사건' 하면 1961년 KBS TV방송국 개국이 떠오른다. 1961년 여름, 나는 오재경吳在璟 공보부 장관을 만나 TV 방송국 설립 계획을 논의했다. 서로 뜻이 통했고 오 장관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정부 예비비에서 1억 환을 마련해 TV 방송국을 연내에 짓기로 했다. 개국 예정일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0월 남산 기슭에 TV 방송국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내가 일본 도쿄에 가서 마주친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부러웠고 또 속상했다. 우리나라도 집에 TV가 한 대씩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방송 스튜디오 건물은 착공됐지만 방송용 기자재를 사올 돈이 부족했다.


나는 오재경 장관을 불렀다. 중앙정보부는 그동안 간첩들로부터 압수한 공작금 20여만 달러를 갖고 있었다(1961년 20만 달러는 2억 6,000만 환). 거기엔 황태성이 가져온 돈도 포함됐다. 내가 "이 돈으로 방송 기자재를 사면 크리스마스이브에 개국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오 장관은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박 의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그 돈을 오 장관에게 넘겨줬다. 그 돈으로 카메라를 포함해 필요한 기자재를 미국에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KBS TV 개국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 정주영과 이병철


내가 총리로 재임하던 1971년 어느 날이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총리실로 찾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장소를 찾아봤더니 경기도 용인 쪽이 제일 좋은데, 거기에 섞여 있는 국유지를 사지 못해 골치가 아픕니다"고 하소연했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유럽의 티볼리나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를 세우려고 계획한다는 것이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그가 "산림청이 땅을 나한테 좀 팔도록 해주시오"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산림청장을 만났더니 땅을 절대 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산림녹화가 국정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이다. 하도 강경하게 반대하기에 머리를 짜냈다. 나는 이 회장에게 "정부 땅의 두 배쯤 되는 땅을 사서 주고 용인 땅과 교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바로 "그거 좋습니다"며 반겼다. 산림청은 대토代土를 받고 삼성에 땅을 내줬다. 그 자리에 지금은 '에버랜드'로 이름이 바뀐 용인 자연농원이 들어섰다. 테마파크의 원조가 이렇게 탄생됐다.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호출이 와서 가니까 박 대통령이 "차지철이를 시키기로 했어"라며 말을 바꿨다. 뜻밖이었다. 내가 본 차지철은 그런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인물이 못 됐다. 나는 "그래요? 차지철을요?"라고만 대꾸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차지철을 추천했나. 내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박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 전 대사가 차지철을 후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추천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였다. 생전에 육 여사는 "차지철 의원 같은 고지식한 사람을 데리고 일해 보시라"고 대통령에게 권유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효자로 알려졌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차지철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육 여사는 차지철을 박 대통령 곁에 두면 대통령 주변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와 얘기를 나눈 그날 밤 육 여사가 없는 방에서 혼자 주무시다 밤새 생각이 달라졌다. 차 실장 임명은 육 여사가 남긴 유작遺作인 셈이다.

 

 

권력의 빈틈과 혼돈의 시절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1997년 대선, 최후의 3김 격돌

 

1997년 10월 27일 밤 8시 30분. 김대중 총재가 한광옥 부총재를 데리고 청구동 우리 집을 비밀리에 찾아왔다. 나는 마당으로 마중 나가 그를 기다렸다. 김 총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감정이 상당히 북받치는 모습이었다. DJ가 이런 방식으로 친밀함을 표시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인사를 한 뒤 갑자기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김 총재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DJ를 소파에 앉도록 권하며 "그러잖아도 도와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총재님(DJ)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寃과 한恨을 다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이 시키지도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그 일은 이후락이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낸 '자기가 죽을 꾀'였다. 내가 김대중에게 직접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점에서 나 외에 박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가슴에 맺힌 원寃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겪은 전쟁과 사랑

 

중공군을 생포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세밑 금성천의 칼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했다. 연대장인 허영순 대령으로부터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건네주는데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인 박정희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출장차 인근 7사단장에게 왔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대령은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었다.

 

"여기 오는 길에 춘천 시장통에서 우연히 애를 업고 있는 옥이를 만났어. 자네가 중공군과 싸우고 있는데 죽을 거라는 소문이 나서 '같이 죽으러 왔다'면서 남편을 찾아왔다고 해. 빨리 가봐"


'옥'이는 아내 박영옥이었다. 연대장 허 대령은 고맙게도 자기 지프에 쌀 한가마니를 실어주고 아내를 만나고 오라고 했다. 춘천 거리는 폭격으로 집과 건물이 다 무너진 쑥대밭이었다. 급히 가서 보니 아내는 소양강 옆에 가마니로 바람막이를 하고서 애를 데리고 있었다. 아내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군수용 화물 열차를 타고 왔어요. 서울서 춘천까지는 GMC 군용 트럭에 태워 달라고 했고요. 당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해서 무작정 올라왔어예"라며 엉엉 울었다.

 

돌 지난 딸 예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연락병에게 부대에서 모포 대여섯 장을 가져오게 했다. 부대를 출퇴근하면서 일주일을 함께 지낸 뒤 아내를 대구로 내려 보냈다. 그때 40만~50만 군인 중에서 남편이 죽을지 모른다고 얼굴이 시커멓게 돼 가지고 그 고생을 하며 최전방까지 찾아온 여자가 또 있을까. 아내 박영옥은 그런 여자였다.

 

 

 

 

 

JP는 역사다

 

김종필의 삶은 현대사다. 한국 현대사는 격동과 파란이다. 그는 그 시대를 증언했다. 그가 연출한 시대다. 그가 몸담았던 시절이다. 성취와 고뇌, 좌절과 영광의 이야기다. 그는 군사혁명으로 세상에 등장해 5.16 혁명 공약을 만들었는데, '반공을 국시국시의 제1의義로 삼는다'에 숨은 사연을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소령 시절 좌익으로 몰려 구속, 예편당한 불행한 때가 있었으므로 주한미군은 그런 박정희를 의심했기 때문에 이를 잠재울 목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거다.

 

혁명은 야망의 분출이다. 1961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 수준이었으니 구습舊習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그런 혁명은 애국심의 발로였다. 미국 CIA가 박정희를 견제할 목적으로 김형욱을 활용해 <김형욱 회고록>을 출간, 온갖 비난으로 박정희를 헐뜯었지만, 조작된 내용이 너무 많다고 그는 증언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법정에서마치 자신이 민주화 투사인 양 행세햇지만, 그는 차지철과의 충성 경쟁에서 패한 후 발작을 일으켜 총을 쏜 살인범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영원한 이인자였다. 권력은 냉혹하다. 이는 나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거되지 않은 이인자였으니 그만큼 박정희도 순수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두 번의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집권당의 당대표 등 노욕의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내 무덤을 파헤치라고 하고 싶어"라고 했다. 한국 정치사에 앞으로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다. 격동기의 한국정치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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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다시 청춘
이성민 지음 / 씽크뱅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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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90, 100세를 사는 시대가 되면서, 죽기 직전까지 하루라도 더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 80, 90세 노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직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이니, 각자 자신의 일자리는 자기가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자영업 시대가 온 것이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60세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100세 장수 시대가 도래한다

 

저자 이성민 1995KBS 공채 21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후, <6시 내 고향>, <역사 저널>, <여성 공감> 등의 TV 프로그램과 <KBS 정오뉴스>, <KBS 마감뉴스>, <KBS 2시 뉴스> 등의 주요 뉴스, 이산가족 상봉과 재해재난 관련 특별보도,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각종 선거의 개표 방송을 진행했다.

일본 NHK 라디오의 한

 

 

 

 

 

 

"직장은 부업, 주업은 노후준비"

 

이 책은 '지금은 100세 시대'라는 인식 하에 퇴직 후 30년을 준비하자는 주제로 6부로 구성돼 있다. '100세 시대? 곧 나의 문제다', '직장 생활의 목표 퇴직후 준비이다', '퇴직 후 준비는 어떻게? 단순하게 시작하라', '퇴직 후 준비의 출발점? 생각부터 바꿔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력을 길러라', '인생의 궁극적 목표?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 순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이 주제에 맞춰 100세 시대의 다양한 현상들을 살핀다. TV나 영화 등의 미디어, 서양과 동양의 갖가지 사례,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실제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퇴직 후 준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지 정리한다. 마치 에세이를 읽어나가듯이 책장을 넘기면서, 자신의 노후 문제를 성찰하는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꽃보다 할배

 

2013년 하반기부터 방송을 타면서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으로서 드물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꽃보다 할배>는 텔레비전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착안한 할아버지 4총사의 배낭여행 프로젝트이다. 원로 연기자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네 사람의 할아버지 연기자들은 20대 대학생들이나 할 법한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다. 해외 여행지는 프랑스와 스위스, 대만, 그리고 그리스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모두 다 알 만한 유명 연기자들이고, 누구라도 한 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들이다.

 


개성 강한 네 명의 출연자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이들 출연자를 돕는 또 한 명의 히든카드가 잇어서 더욱 재미를 유발했다. 바로 아들 또래의 연기자 이서진이었다. 사십대의 이서진은 칠십대 연기자들 사이를 오가며 시중과 안내를 맡아 시대감이 무뎌진 노인들의 현실 연착륙을 훌륭하게 도왔다.

 

체력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결코 사오십대에 뒤지지 않는 칠팔십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기관리만 철저히 한다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젊은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세상이 요즈음이다. 이젠 젊고 늙음의 기준이 나이가 아니라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로 바뀌는 것 같다. 즉 비록 나이가 적어도 사회에서 도태되면 늙은이가 되는 셈이다. <꽃보다 할배>는 '나이는 숫자일 뿐,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노후준비를 잘하라'는 메세지를 우리들에게 전한 것이다.

 

 

두 번 맞는 정년퇴직

 

우리나라 노인과 관련된 기록 중에서 세 가지가 OECD 회원국 가운데 1등을 차지하고 있다. 노인 빈곤율 상승 속도, 고령화 속도, 노인 자살률이 그것이다.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세계가 인정한 사실이다. 빈곤율이란 말은 상대적 빈곤을 나타내는 지표로 같은 연령대의 평균소득의 50%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의 비율을 가르킨다. 하지만 슬프게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압도적인 1위이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에는 노인 비중이 14%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의 통셰자료에 다르면 최근 5년 동안 자살한 노인은 2만 439명이다. 1년에 4천여명, 하루 평균 11명의 노인이 지친 삶을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다.

 

 

 

 

과거 평균 수명 65세 시대엔 58세에 정년퇴직하고, 10년쯤 더 살다가 68세쯤 사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1,2년이 아니라 10년, 20년씩 순식간에 늘어난 것이다. 이젠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83세이며, 조만간 100세가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100세 노인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58세에 정년퇴직한 후 100세까지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도대체 몇십 년을 더 사는가 말이다. 정부는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30년의 직장생활로는 나머지 인생 40년의 생활을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60세에 또다시 신입사원이 되어, 90세에 두 번째 정년퇴직을 해야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죽음의 방식   

 

 

평균수명 80대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죽음의 방식이다. 가족도 없고 친구나 지인도 없는 경우, 외로워서 죽거나 굶어 죽는 것은 앞으로 흔한 일이 될 수 있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고독사를 맞이할 수도 있고,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지 못해 기력이 떨어져 아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젊은 나이에 미래를 설계하는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

 

방송국을 퇴직한 63세의 여성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루는 집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에 문을열고 나갔더니 구청 사회복지사가 독거노인 건강실태를 파악하러 왔다면서 설문지 작성을 요청했다고 한다. 왕년에 방송국 PD를 했든, 외국 유학물을 먹었든 알 바 아니고 혼자 살고 있는 게 분명하므로 독거노인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통화를 하자고 하면서, 갑자기 외롭거나 이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면 곧바로 자신에게 연락해달라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남겼다고 한다. 맞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직장도 없고, 따로 사람 만나는 모임을 갖기도 힘들다. 통장 잔액은 계속 줄어들고 건강은 점점 나빠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반려동물인 개를 기르는 노인들이 많다. 개를 기르던 독거노인이 사후 2주 만에 발견됐는데, 시신이 개에게 훼손되었다는 보도는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직장 생활 30년이 미래를 결정한다  

 

퇴직한 지 20년 이상 지난 직장 선배가 여전히 정정한 모습을 목격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자신의 현실로 비춰볼 줄 아는 지혜이다. 오래 도니 선배의 지금 모습이 바로 30년 후의 자신의 모습임을 말이다.

    
결론을 말하면, 요즘 직장 생활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직장인의 직업윤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 이후의 노후 생활을 위해서도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입사가 늦어지는 요즘의 추세에 비춰 보면, 30세 전후까지의 취업 준비기를 제1기 인생, 직장 생활 30년 정도를 제2기 인생, 그리고 퇴직 이후 30년 정도를 제3기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2기 인생, 즉 직장 생활 30년 동안 받는 급여만으로도 충분히 노후 준비가 마무리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시라도 서둘러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산업화에 목을 매던 20세기 후반까지, 모든 자기계발서는 기업형 인간 양성이 목표였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에서부터 <이런 간부는 사표를 써라>에 이르기까지, 직장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는 접근법이 대세였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패러다임을 깨뜨리는 여러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로 한국은 경제 성장 모델을 새롭게 구축해야 했고, IMF 금융위기로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그리고 IT 붐, 문화 산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산업 질서 조정이 발생했다.


일본식 종신고용은 깨져버렸고, 이직과 전직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45세가 기업의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나, 56세에도 직장 다닐 생각을 하면 도둑놈 심보라는 '오륙도'라는 신생어들이 양산될 정도로 기업 근무 환경이 각박해졌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요즘의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비장함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퇴직 이후에도 일을 하라

 

직장인들은 가끔 착각을 한다. 공동운명체인 것으로 말이다. 아무리 회사가 좋아지고, 회사일이 즐거워져도 회사는 단지 회사일 뿐이다. 직장 상사와 동료, 후배들이 아무리 정이 많이 들었다해도 그들은 여전히 인생 경쟁자일 뿐이다. 상황이 매우 나빠지면 자기만 살아남겠다고 뻔뻔하게 궤변도 늘어놓을 사람들이다. 인정해라. 이는 엄염한 현실이다.    

 
퇴직은 사실 별것 아닐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대단한 별것이다. 직장인들 거의 대부분은 회사에서 받는 급여로 호의호식할 수도 없지만 20년, 30년 쓸 노후자금을 충분히 저축할 수도 없다. 회사는 언제나 생활에 적정한 수준 이상의 급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직원은 대기업 직원대로, 중소기업 직원은 중소기업 직원대로, 급여에 맞게 생활을 하다 보니 언제나 빠듯하다. 알뜰살뜰하게 아껴 쓰고 남겨서 저축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돈 쓸 구멍이 도처에서 뚫린다. 형제자매의 결혼, 부모님의 병환, 자녀들의 진학, 그리고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바로 자녀들의 결혼이 닥치고, 퇴직을 목전에 두게 된다. 그게 직장 생활이다. 폼 나는 직장 다닌다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녀도 퇴직하게 되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인 것이다.

 

 

 

은퇴 후의 제2의 직업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처절한 생존방식이다. 직장까지는 못 되어도, 일이라도 있어야 백수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일이 있는데 쉬는 것과 일리 없어서 쉬는 것은 정신적으러나 경제적으로나 천양지차다. 각설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퇴직 후의 제2의 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가장 중요한 일이자 현명한 재테크임을 알아야 한다.

 

시간의 개념을 바꿔라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직장 생활은 하루에 열 시간 정도이다.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가정하면, 기껏해야 50시간이다. 그렇다고 하면, 1주일 168시간 중에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또한 생존에 꼭 필요한 수면 시간 50시간 정도를 더 빼더라도, 나머지 68시간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다. 일주일 중 무려 40%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다. 물론 그 사이에 밥도 먹고, 가족과 어울리고, 여가 시간도 갖고, 출퇴근도 한다. 그렇다고 쳐도, 3분의 1도 못 되는 직장 생활이 1주일의 전부가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50시간 남짓한 직장 생활이 자기 인생의 전부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생존에 필요한 돈을 지급해주는 직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장 생활은 직장에서 제공하는 급여만큼만 중요하게 여기면 된다. 직장 생활은 급여 수준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10만 원짜리 운동화를 100만 원짜리처럼 귀중하게 여길 필요도 없고, 1만 원짜리처럼 함부로 대할 필요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월급 주는 만큼 노동하고, 월급 주는 만큼 가치를 느끼면 족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만 모든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마치 외바퀴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외바퀴 자전거는 중심을 잡기도 어렵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이라는 외바퀴에만 의존하는 태도는 개인 자신뿐만 아니라 회사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숙한 직장인은 직장 생활이라는 바퀴와 인생이라는 또 다른 바퀴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 직장 생활은 8,90년 인생 중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퇴직 후를 준비하는 직장인이라면, 자동차 속에 혼자 앉아 교통체증에 시달리기보다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리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현실을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지 말라는 게 아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몹시 피곤한 날은 그 정도 호사를 누려도 된다. 그래도 자동차 관리에 다른 비용만큼 들지는 않을 것이다.  

 
평균수명 80대 시대인 만큼, 대중교통 활용은 언젠가 맞이할 숙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신경이 무디어져서, 아니면 하다 하다 돈에 쪼들려서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놓게 될 바에야, 차라리 젊을 때부터 미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훨씬 더 유익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리미리 그 돈을 모아놓으면, 10년 뒤나 20년 뒤에는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될 것인가. 100세를 살지 모르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건강과 돈임을 잊지 말자.

 

 

현장에서 현실의 온도를 체감해라

 

자그마한 점포를 차리거나 식당을 열 생각이라도, 최소한 10년 이상 준비를 해야 한다. '그까짓 가게 하나 여는데, 무슨 10년이 필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려고 하는 일은 대기업을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가게 하나 열어서 삼시 세끼 밥술이나 넘기려는 것이다'라고 쉽게 덧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대기업을 창업하든, 동네 입구에 열 평짜리 구멍가게 하나를 열든, 살아남기로 생각하면 둘 다 어렵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나 골목길의 구멍가게 주인이나 목숨 걸고 사업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치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2013년 3월에 퇴직한 김능환 대법관의 사례이다. 그는 퇴직 후 로펌으로 가지 않고 대신에 아내가 하고 싶다는 편의점 사업에 동참했다.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조그마한 매장에 매일 출근해서 계산대를 지켰다. 그런데, 그는 1년도 못가서 편의점 문을 닫았다. 왜 그랬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편의점 경영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 없이 덤비면 성공은 고사하고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변화의 방향을 읽고 길목을 지켜라

 

인생도 낚시와 비슷하다. 포인트가 있고, 급소가 있다. 주먹을 수십 대 얻어맞아도 쓰러지지 않던 사람이 바늘로 한 군데를 꾹 찔렸을 뿐인데도 고꾸라지는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급소이다. 인생을 살면서, 포인트 모르고 급소 못 찾으면 말짱 헛일이다. 그래서 낚시를 할 때는 포인트를 항상 찾듯이, 시험을 볼 때는 급소를 외워야 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실세를 찾아가서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하고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맞겠다는 결심을 한 이 순간이다. 20년 뒤, 30년 뒤의 세상을 짐작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포인트를 찾아서 공략을 하냐는 말이다. 속담에서처럼, 열 길 물속은 알고서 낚싯줄을 내리기는 하겠는데, 한 길 속모를 사람들 사이 어디에 목표를 두고 노후를 준비할지 감감하기만 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히 나온다. 물고기 잡는 포인트와 노후 생활을 준비하는 급소가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물고기 많이 모인다고 포인트가 될 수 없듯이, 사람들이 붐빈다고 노후 생활의 급소가 될 수는 없다. 모이되 미끼를 무는 곳이 포인트가 되듯이,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급소인 것이다.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100살까지 사는 세상에는 사회 변화에 걸맞도록 새로운 버릇을 익혀야 한다. 그에 적당한 시점은 50살 전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속담이 생겨난다면, 아마도 '50살 버릇이 100살까지 간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하필 50살이라고 꼭 꼬집어서 이야기한 이유는 50살은 퇴직을 시작하는 나이이거나, 퇴직이 현실로 찾아온 나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50살이라는 나이는 평균수명 80대 시대에 자칫 100살까지 살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자각할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50살 전후로, 빠르면 40대 중반이나 30대 후반부터, 앞으로 익혀야 할 새로운 버릇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100세 시대를 살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습관의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들 정도이다.

 

 

내 인생의 경영자가 되어라

 

'퇴직 후 노후 준비'는 직장에 내맡겼던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즉, 직장형 인간에서 자립형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한다. 저축을 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모으는 이유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돈이 없으면 돈에 끌려 다니거나 돈을 꿔주는 사람에게 끌려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약해지고, 의존적이 된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매달 월급을 쥐어주는 직장에 코뚜레를 꿰인 황소처럼, 코 하나만 뚫렸는데도 큰 덩치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 '퇴직 후 노후 준비'는 이런 상황을 맞지 말자고 시작하는 자기 능력 계발이다.

 

저축왕 이야기를 들어보라. 2013년 10월 29일, 배우 현빈이 저축왕 표창을 수상했다. 대체로 연예인들은 이런 상을 회피한다.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이 상을 수상했다. 자신이 저축하고, 꼬박꼬박 세금 내고 모은 돈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저축을 한 이유는 어느날 갑자기 대중들이 등을 돌릴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퇴직 후 노후 준비도 마찬가지다. 설령 운이 좋아서 장년퇴직이라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지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세월은 덧없이 지나가 버린다. 어제는 주요 거래처와 술 약속, 오늘은 동창회, 내일은 돌잔치 등등 노후 준비를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무수히 날마다 생겨난다. 현빈의 저축처럼, 노후 준비 시간을 먼저 저축한 후 나머지 시간을 즐겨야 한다.

 

 

절대로 준비 없이 늙지 마라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때는 원칙이 있다. 잘 하는 일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즐거운 일로 준비하는 것이 더 좋다. 그래야 더 오래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미 삼아 즐겼던 일들, 마음에 있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일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5~10년쯤 익히면서, 창업이나 비정규직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 할 수 있겠다.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특용작물 재배나 하우스 농사를 모색해볼 수도 있고, 요리에 관심이 있으면 제빵사, 제과사나 한중일 요리를 배워볼 수도 있다. 손재간이 있으면서 패션 감각이 있으면 의상 관련 업무도 해볼 수 있으며 자동차 정비, 청소, 이사 용역, 아파트 세차와 같은 일들을 준비해볼 수도 있다.


창업도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창업이라고 해서 거창한 회사를 차리자는 것이 아니다. 대졸 신입사원 수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그마한 점포를 얻어서 취미 겸 업무로 접근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창업자의 겨우 7퍼센트만이 3년을 넘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도 사실은 벅찬 과제이다. 그래서 새로운 직업을 준비할 때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는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밥벌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다

 

80대에는 어떤 직업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80대에는 직업이 아니라 생존이 문제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20대에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만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마음의 귀천이 있을 뿐이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늘어가는 이 시대는 귀한 직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직업이 귀한 줄을 모르는 천한 마음만 있기 때문이다.

 

제 몸을 움직여 삼시 세끼 밥벌이를 하고 가족을 부양하기가지 한다면, 결코 어떤 일이든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무엇이 창피하며, 무엇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제 몸을 움직여서, 제 밥벌이를 하는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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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이 이야기가 시작되던 날은, 북극의 신들이 눈가루를 뿌리고 있는데 태양은 밝게 빛나고 새 한 마리가 무화과나무에 앉아 즐겁게 지저귀던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 그의 삶은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는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모든 인생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 소설은 자살을 결심하는 사십대 의사와 세상 일에 모두 참견하려는 여성 택시 운전사 간에 벌어지는 일주일간의 동행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스토리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는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자는 것이다. 즉 어떤 삶을 살았던 간에 인생은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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