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브릭 로맨스 - Sewing in the Garden
정은 지음 / 성안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겐 메마르지 않는 감동이 필요하다. 특히 가슴 사무치게 느껴지는 감동은 우리의 작업에 흠뻑 스며들어 강력한 빛을 발하게 된다.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앞두고 있다면 급하게 작업에 뛰어들기보다 우선은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럴 때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주면서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는 아티스트를 안다는 건 커다란 이점이다. 언제라도 그들의 책을 꺼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홀로 나서는 산책, 여행, 명상의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몰입을 이어나갈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패브릭과 사랑에 빠지다

 

얼마전 아내의 요청으로 시골집에 다녀왔다. 홀로 계신 어머님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러 가는 길에 부탁을 받았다. 결혼 후 아내는 어머님이 사용하시던 물품 중에서 물려받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어머님의 오랜 손 때가 묻은 재봉틀이었다. 요즘은 그리 흔하지 않은 '싱어'사 제품이다. 이것을 오는 길로 가져와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나의 어머님 만큼이나 재봉질을 좋아했다. 두 딸을 기르면서 왠만한 옷들은 손수 제작하거나 고쳐서 입히곤 했다. 우리들의 결혼은 한참 늦은 만혼晩婚인 탓에 아내의 친구들은 자녀들에게 입히던 깨끗하고 예쁜 옷들을 골라 아내에게 주곤 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시집올 때 혼수로 장만해 온 'ㅂ' 미싱이 자주 고장나서 속을 태우곤 했었다.

 

심지어 내가 입는 잠옷, 덮고 자는 이불과 요, 베개 커버, 식탁 보, 책상 보 등은 모두 아내의 작품이었다. 집안의 어른끼리 맺어준 인연이라 사실 아내를 잘 모르고 결혼했기에 이런 궁금증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을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장인 어른의 극구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아내에게 선물하려 한다. 아내의 취향에 꼭 들어맞고 평소에도 늘 관심이 많은 패브릭 관련 제품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다. 책의 내용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의 스튜디오, 가방, 앞치마, 스커트, 이불, 커튼, 자투리 원단 등이 잇달아 소개되고 있다. 특히, 화려한 색상과 많은 사진 컷들이 나에겐 무척 인상적이다.

 

작가 정은은 영어학을 전공한 후 지금껏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삼고 있다. 취미 생활로 시작한 패브릭 작업이 이젠 그녀의 일상에 있어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다. 2012년 개인전을 시작한 이래 매년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진행해 온 작업과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작가의 작업 공간은 전주시에서 번화가에 속하는 중화산동에 위치하고 있다. 8년 전 이곳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골목에 커피숍이 한 곳이었고, 듬성듬성 이런저런 가게들이 있었다. 이후 몇 차례 이사 끝에 현재의 1층에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패브릭 작업을 행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나아가 이들이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굳이 1층을 고집했다.

 

비록 북적거리는 도심 속에 작업실이 있지만 한 골목 차이로 비교적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가끔 진열창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행인들도 있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용기를 내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한적한 동네에 굳이 갤러리로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작업실을 보여줄 수 있다.

 

수국, 리시안셔스, 아네모네, 라넌큘러스, 카네이션, 금어초, 델피니움, 양귀비, 설유화, 금잔화, 부르니아, 동백꽃, 튤립, 접시꽃 등 책 속엔 많은 꽃 사진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패브릭 작업을 몰랐다면 아마도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꽃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나도 한때 야생화에 미쳐서 넓은 화단이 있는 아파트 1층으로 이사했고, 철철이 야생화를 만나려고 이산저산 다녔던 생각이 떠올라서다.

 

 

 

 

작가는 패브릭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들었던 작품이 가방이란다. 4년 전에 기록한 갯수가 1,000을 넘어섰다. 이렇게 많이 제작하다보니 이젠 선호하는 가방이 몇 종류로 압축된다고 한다. 친환경 에코백, 크로스백, 클러치백, 빅백, 백팩 등이 차례로 책에 소개되면서 에코백 만들기와 염색하기도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여성들의 패션에 있어서 가방은 필수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적어도 가방을 두 개는 메고 나온다. 서너 권의 책과 스카프, 파우치를 넣을 수 있는 비교적 큰 사이즈의 가방 하나와 핸드폰과 지갑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크로스백 하나. 이 두 가방은 어딜 가나 나의 필수품이다. 가끔 짐이 더 있으면 가볍게 접을 수 있고 은근히 수납도 많이 되는 에코백을 활용한다. 여행할 때도 백팩의 앞주머니에 에코백을 작게 접어서 꼭 넣고 다닌다. 이게 정말 유용하게 사용된다" - 36 쪽에서

 

피곤하고 지친 자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뭔가 허전하거나 피곤할 때 찾는 것이 있다. 바로 쿠션이다. 포근한 감촉이 좋아서다. 의자에도 소파에도 쿠션은 이들의 친구다. 크기도 색상도 각양각색이라 어떨 때는 베개와 헷갈리기도 한다. 커버를 많이 준비해둔다면 자주 교체함으로써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으므로 기분 전환에도 무척 좋다. 

 

 

 

어느 집에나 앞치마는 하나쯤 있을 것이다. 앞에서 보면 마치 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스커트형 앞치마를 작가는 선호한다고 한다. 원피스형이든, 스커트형이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다면 더욱 애착이 갈 것이다. 취미로 뭔가를 만드는 핸드메이드의 진수는 무엇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 눈과 귀, 촉감 등 우리 몸 감각기관의 촉을 세우고 진지하게 집중해보라. 그 과정 자체가 바로 기쁨이 된다. 서툴고 귀찮다고 방치해두지 말고, 한 번쯤 관용을 베풀어서 당신의 손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줘보면 어떨까?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용도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어떤 수작업이든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패브릭 작업은 용도의 전환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이 작품 역시 싱글사이즈 이불을 생각하면서 시작했으나 결과물은 커튼이 되었다. 햇살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그 느낌은 마치 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는 것처럼 찬연해진다.

 

비록 결과물이 커튼이 되었을지라도 그 용도는 도 다시 바뀔 수 있다. 어중간한 공간을 가리거나 공간을 분리하고 싶을 때 가리개로 사용하면 딱이다. 커튼이든 가리개든 한 폭의 패치워크가 선사해주는 다챠로운 색상의 에너지가 우리들에게 한없이 생기를 준다. 잠시 시선을 고정해 이를 바라볼 때 마음 한 가득 풍요로움이 느껴질 것이다.

 

 

작가가 패브릭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원단은 디자이너 원단이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특유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작업시 기분이 좋다. 그리고 색감의 표현이 우수하고 세탁 후에도 색이 전혀 변하거나 탈색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패브릭은 20수 새틴 원단과 30수 원단을 사용한다.

 

본격적으로 바느질 작업을 할 때엔 꼭 필요로 하는 도구들이 있다. 가위, 쪽가위, 시접자, 재봉틀, 다리미, 줄자, 연필, 시침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천을 자를 때 커터기를 사용하면 여러 장을 한꺼번에 편리하게 자를 수 있지만 칼날의 교환이 번거롭고 날카로운 칼날에 손을 베일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묵직한 쇠가위가 의외로 섬세하게 천을 잘라주지만 오래 작업하다 보면 손목이 아프다. 그래서 작가는 스프링이 달린 가위를 추천한다.

 

 

자신만의 감성을 표현하자

 

책을 덮는 순간 자신이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설 것이다. 남자인 나도 그런데 여성들이라면 더 할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머그컵을 사더라도 꽃 그림이 있는 제품을 찾듯이 각자의 감성에 따라 패브릭 작업은 각양각색으로 진행될 것이다. 벌써 머리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재봉질을 즐겨하는 아내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야생화 그림이 들어간 등받이 쿠션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스스로의 내면의 끼를 발산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