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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의 기술 - 트럼프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The Art of the Deal 한국어판
도널드 트럼프 지음, 이재호 옮김 / 살림 / 2016년 5월
평점 :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내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훌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 '거래는 예술이다' 중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었다. 그의 막말은 도를 넘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미 그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터라 이런 막말 뒤에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슬림 입국을 전면 통제하겠다", "멕시코 이민자들이 못
넘어오게 국경을 봉쇄하겠다", "한국에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물리겠다", "중국이 미국(경제)을 성폭행하고 있다" 등등 그의 말들은 연일
화제거리였다. 어디 정치인들의 폭언이나 실언이 미국에만 해당되겠는가. 한국의 정치판에도 자주 이슈가 되는
일이다.
대개 막말 시비가 생기면 본질은 아예 숨어버린다.
한국정치판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것처럼, 트럼프의 막발 시비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는 후보 지명이 거의 굳어지자 자신의
그런 말들을 뒤집어버렸다. 즉 자신은 일종의 제안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지, 꼭 그렇게 실행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을 바꾸었다. 후보 지명을
위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언행을 한 셈이다.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 와튼 스쿨을 졸업하고 1971년 뉴욕
맨해튼에 사무실을 개소해 부동산업에 뛰어들엇다. 그때 그의 나이는 25살이었다. 당시 그의 수중엔 20만 달러가 있었다. 당시 임대주택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도우면서 번 돈이었다. 이 돈도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어서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34살에 맨해튼에 그랜드 하얏트
호텔을 세웠다. 이는 그의 신화 창조 서막이었다.
이 책에서 드러난 트럼프는 매우 영리하고 치밀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남보다 빨리 읽고,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신조는 '크게 생각하되, 발로 뛰고, 언제나 최고의
물건을 만들라'는 것이다. 일을 되도록 하려면 '지렛대'도 사용하고 언론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할 정도로 야비한 냉혈한으로 비춰진다.
이미 이번 미국의 대선은 지저분한 폭로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나에게 자선 만찬을
주재해달라거나, 자선 모임에 나와 연설을 해달라고 부탁할까?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그것은 내가 위대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만찬회에 나가면 부자 친구들이 몰려와 테이블을 사고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게임을
이해한다. 싫다 해도 멋지고 근사하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 '나의 일주일' 중에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업 스타일과
생활 방식, 부를 축적해 온 과정들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다. 뉴욕 시에 초호화 빌딩인 트럼프 플라자를 지어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든 과정,
애틀랜틱시티 최고의 카지노를 손에 넣게 된 거래 등 구체적인 협상의 뒷얘기까지 빼놓지 않고 들려주고 있다. 막대한 부와 권력을 쥔 재벌이
이렇게도 솔직하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크게
생각하라
트럼프는 크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규모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이 그에게는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브루클린과 퀸스에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건축했는데, 당시에도 그는 더 좋은 장소에 구미가 당겼다. 퀸스에서 일할 때 그는 포리스트힐스 쪽이 유망하다고 생각했으나, 조금 나이가 들어
보니 포리스트힐스보다는 5번로가 훨씬 유리한 장소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맨해튼 쪽을 노리게 됐는데 이런 것으로 보아 그는 목표에 대한 센스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좀 여유 있게 산다고 해서 만족하지는
않았다. 뭔가 기념비적인 건물, 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
트럼프는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한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위험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식으로 투자했다. 가장 좋은 예는 애틀랜틱시티에서의 경험이다. 별로 전망이 좋지 않은
대지 여러 필지를 구입했는데 성공 여부는 이 땅들을 한 필지로 팔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 땅들을 하나로 묶은 뒤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취득세를 물고 수백만 달러의 경비를 들여가며 도박장 허가가 나오기 전까지 천천히 건물 공사를 진행시켰다.
도박장 허가가 나온 뒤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홀리데이 호텔그룹에서 동업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왜 수익의 절반을 포기하면서 동업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트럼프가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한 대금과 건축하는 몇년 동안 입은 손해까지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는 위험 부담을 다 떠안으면서 혼자
카지노를 소유하느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절반만 소유하겠다고 말했다.
발로 뛰면서 시장을
조사하라
트럼프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그럴듯한 시장조사는 믿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낼 뿐이다. 그는 결론을 내기 전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땅을 살 생각이 있으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어떤지,
도둑은 없는지, 장보러 다니기는 편리한지 물어본다. 자신이 사는 지방이 아닐 경우에는 택시를 잡아탄 뒤 운전사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묻고
묻고 또 물어서 의문을 해결한 뒤에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신통하게 아무에게든 직접 물어서 얻는 결론이 항상 자문회사의 조사
결과보다 유용했었다. 자문회사는 보스턴에서부터 직원을 보내 뉴욕에 방을 빌린 뒤 10만 달러씩 대가를 받고 조사를 해주지만, 별 신통한 결론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조사가 끝났을 때는 이미 그의 사업이 완결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또 비평가들도 신통하게 보지 않는다. 비평가들이란 서로서로
영향을 주기 위해서 무언가 끄적거릴 뿐이며, 유행에 따라 너무나 잘 변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유리탑을 칭찬하다가 다음
주가 되면 옛날 건물을 끄집어내 세세한 부분과 장식들을 높이 평가하는 변덕쟁이들이다. 그들은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
지렛대를
사용하라
남이 갖고 있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해야 이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보다 다소 유능하더라도 부족하다. 겨우 남과 비등해서는 일을 제댜로 할 수가 없다. 때로는 상상력과
세일즈맨으로서 자질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한다. 거래를 할 때는 무엇인가 일을 추진시킬
지렛대를 이용해야 한다.
언론을
이용하라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물건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모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매일 그의 차고에서만 노래를 부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남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동요를 일으키게 해야 한다.
홍보 책임자를 고용해 많은 돈을 주고 당신의 소유물을 팔리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시장조사를 위해 조사원을 고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당신 스스로 활동하는 만큼의 효과는
절대로 얻을 수가 없다.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했으며,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내가 관여한 거래는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 덕분에 나는 아주 젊어서부터 꽤 사업 수완을 보였다.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
언론이 항상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때는 긍정적인
기사를 쓰지만 어떤 경우에 헐뜯는 기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순전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사가 나가면 항상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기
마련이다. 수치로 보아도 명백하다. <뉴욕 타임스>에 1쪽짜리 전면광고를 하려면 4만 달러가 든다. 그래도 독자들은 광고 내용을
의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가 그의 사업에 관해 다소 호의적인 기사를 한 줄이라도 쓰면 돈 한 푼 들지 않았지만
그 효과는 4만 달러 이상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비판적인 기사일지라도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신시내티 촌놈, 부동산 사업에
눈뜨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신문의 만화나 가십을 읽고 있을 때 트럼프는 연방 주택관리국(FHA)의 저당권 상실 명단을 살펴보곤 했다. 이 명단은 정부에서 융자를 받았다가 저당권을 잃은
건물의 목록이었다. 여기서 트럼프는 스위프튼 빌리지를 찾아냈다. 대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건물을 사들였는데 그가
벌인 최초의 큰 사업이 됐다.
여기서 그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정부 부처와 저당권이 압류된 물건을 거래해보면 정부는 될
수 있으면 빨리 손을 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을 떠맡을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건물들은 매우 싼 가격으로 사들일 수 있다고
충고한다. 트럼프 부자부자는 남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스위프튼 빌리지에 최소의 가격으로 입찰을 했고, 건물을 낙찰받았다.
아파트 단지를 인수한 뒤의 성공 여부는 관리 및 임대에 따라 결정된다고 그는 말한다. 임대료를 낼 능력도 없고 건물을 험하게 쓰는 나쁜 입주자는
오히려 내보내는 게 득이다. 나쁜 입주자를 내보낸 뒤에는 약간의 손질로 임대료를 올려받아 수익을 올린다. 당시 뉴욕에서는 보수를 하더라도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법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신시내티에서는 가능해 즉시 임대료를 올려 수입을 늘렸다. 특히 그는 청소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아파트 관리인을 고용할 때 그의 기준은 도덕성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과주의였다. 그는 전과자여도 일만 효율적으로 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고용했던 전과자 출신 관리인이 빼돌린 돈이 1년에 5만달러쯤은 될 것이라고 추산했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고 판단해서
계속 고용했다.
레 클럽에
가입하다
트럼프가 맨해튼에서 첫 번째로 했던 일은 당시 가장 인기 있고 배타적이던 사교클럽 '레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이스트 54번가에 위치한 이 클럽은 75세의 부유한 노인네가 스웨덴 출신의 금발 미녀 세 명을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이 클럽에 가입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화로 가입 신청을 했다가는 퇴짜 맞기 일쑤였다.
어느날 그는 클럽 회장에게 보낼 것이 있다는 거짓말로 연락처를 알아낸 후 직접 회장을 만나 가입 승낙을 받았다.
레 클럽에 나가는
동안 성공한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밤마다 밖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그것 역시 일의 연장이었다. 뉴욕이라는 곳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울 수 있었으며, 뜻하지 않던 사람을 만나 거래를 틀 수 있었다. 또 유럽과 남미 같은 곳에서 온 갑부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나중에
트럼프 타워와 트럼프 플라자에서 가장 비싼 방들을 사들였던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트럼프 호텔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다
트럼프는 1975년 말 어느 날 카지노 사업이 경제성이 있다는 사실에 눈떴다.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코모도어 호텔에 관한 상담 때문에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들은 라디오 뉴스 덕분이었다. 라스베이거스와 네바다에서 호텔 종업원들이 투표를 통해 파업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 2개의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던 힐튼 호텔의 주가가 폭락했다는 것에 관심이 끌렸다. 전 세계에 걸쳐 최소한
100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가가 그 중 겨우 2개의 호텔에서 파업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렇게 폭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해답은 카지노에 있었다. 힐튼은 전 세계에 걸쳐 150개 이상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2개의 카지노 호텔에서
얻는 수익이 이 회사가 거두어들이는 순이익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그는 먹잇감을 놓칠리가
없다. 지체없이 카지노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애틀랜틱시티로 떠났다. 당시엔 에틀랜틱시티에 국한하여 도박을
합법화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도박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도박 자체에 대한 도덕적인 저항감은 없었다. 오히려 뉴욕 증권거래소야말로 세계
최대의 도박장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힐튼 카지노
쟁탈전
트럼프는 힐튼 카지노를 인수 협상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힐튼이 계약을
무효로 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3일간 계속 협상을 해놓고 한마디 해명도 없이 발뺌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비도덕적인
일일 뿐 아니라 명예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파렴치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언성을 높여 나무라지는 않았다. 거래의 대부분은 이미 협상을 거쳐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에 공연히 힐튼 측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계약에
합의했다.
트럼프는 방송국 NBC가 자신의 건물에 들어오고 싶어할 정도로 매력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 두 사람의 건축가와 면담을 했는데 한 사람은 리처드 메이어로 뉴욕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비평가들도 칭찬했고 추종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사색하고 분석하고 논리를 따지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메이어가 열정적인 인물이
아님을 간파했다.
다른 건축가 헬무트 얀은 달랐다. 독일 태생인 얀은 시카고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었고 뉴욕 건축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외자였지만 사업에 대한 안목이 높고 선전에 아주 능했다. 그는 처음 만난 지 3주일도 안 돼 건물의
축소모형을 가지고 와 트럼프를 흡족하게 했다. 트럼프는 1985년 얀을 건축 책임자로 고용했다.
다음엔
무엇을?
"나와 내 인생에서 자랑거리라고는 두 가지밖에 없다. 난관을 잘 극복한다는 점과 좋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점이다. 앞으로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지금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써온 이 같은 재능들을 이제부터는 남을 위해 훌륭히 발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라. 나는 다시 거래, 큰 거래를 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것도 불철주야로"
항상 최고를
지향하다
항상 최고를 지향하는 트럼프는 "거래를 위해 거래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거래 자체를 사랑하는 프로페셔널이다.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도
바로 그에겐 거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