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공주백과사전> 서평단 알림
잊혀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공주백과사전
필립 르쉐르메이에르 지음, 김희정 옮김, 레베카 도트르메르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집에 도착한 책을 택배 포장 봉투에서 꺼낼 때 큰딸과 나는 동시에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판형인데다가 신비로운 빨간색 바탕의 표지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보다 중학교 2학년인 우리 딸이 먼저 잡고 읽었다.  워낙 예쁜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딸이라서 서평단에 당첨되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했었고, 내내 책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딸아이는 글보다는 그림에 빠져 “엄마, 엄마!! 이 그림 좀 봐!”하며 연신 나를 불러댔다.

정말 그림만으로도 아이들을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한 책이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집에는 미술을 공부하는 오빠들 덕택에 미술관련 외국 원서들과 도감류들의 책들이 많았다.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은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책들 속의 그림들을 보며 상상의 세계 속으로 얼마나 자주 빠져들곤 했었는지..  어느 나라 책이었는지는 몰라도 유럽 쪽 국가에서 출판된 가구와 인테리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보면서 그 예쁜 공간 안에 사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또 내가 그런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고, 그러다가 왜 우리나라는 가구 하나도 이렇게 만들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분해서 울던 기억도 난다.  지금도 인테리어가 훌륭한 공간을 보면 그 때 그 책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멋진 그림의 책을 만나고 보니 이 책 속의 그림 하나하나를 구석구석 뜯어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이들은 나같은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이 책의 그림을 통해 보고 만나고 느끼며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큰딸에게서 책을 넘겨받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글을 읽었다.  그림보다는 글의 힘이 많이 약한 느낌이다.  반짝이는 재치와 기발하고 아기자기한 발상이 돋보였지만 환상적인 분위기의 일러스트가 없었다면 이 책의 매력은 싹 빠져버리고 마른 나뭇잎을 씹는 것처럼 푸석푸석하지 않았을까. 

소개되는 공주들은 성품이나 개성, 모습들이 어찌나 다양하고 유머러스한지 우리가 갖고 있던 정형화된 공주의 틀을 박살낸다. 우리 큰딸이 어렸을 때, 내게 한창 공주님을 그려달라며 졸라대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공주그리기가 너무나 귀찮아진 나는 보자기 같은 천으로 몸을 두르고, 펑퍼짐한 코에 두터운 입술,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에는 나뭇잎 왕관을 쓴 검은 피부의 공주를 그려준 적이 있었다.  “에이~~ 이게 무슨 공주야~~”하며 투정을 부리는 딸에게 “이건 아프리카 우탕카 부족의 왕인 우가우가 추장의 딸, 와탕코 공주야.”라고 설명했더니 딸이 긴가민가하며 더 이상 떼쓰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따지고 보면 나나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엔 디즈니 풍의 외모를 가진 동화 속 공주들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디즈니 풍의 공주님들을 몰아내고 공주에 대한 사고의 경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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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노엘 샤틀레 지음, 정미애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날 식탁에서 아들 녀석이 내게 물었다.
“엄마, 만약 누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뭘 빌 거야?”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내 손으로 밥 해 먹고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거.”
“?”

6학년짜리 아들에게는 엄마의 대답이 뜬금없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상적이고 완벽한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아름답게 떠받치는 아흔 두 살 노모의 삶이 내가 망설임 없이 건강하고 편안한 죽음을 소원하게 만들었다.

이상적이고 완벽한 죽음이란 어떤 모습일까. 몇몇 죽음이 떠올랐다. 서서히 곡기를 끊음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떠들썩한 장례절차를 거부했던 스코트 니어링과 고통 없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길 바랐다던 헬렌 니어링의 교통사,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장면으로 다가왔던 체 게바라의 죽음, 얼마 전에 읽었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에서 읽었던 죽음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깝게는 올 여름에 작고하신 시할머님과 작년에 세상을 떠난 시동생까지..

아흔 두 살의 노모가 죽음을 예고한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어머니 앞에서 쉰아홉 살의 딸은 고통과 두려움, 어이없음을 맛보면서도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책에서 엄마는 본질적인 기발함(p.36)을 가진 자유로운 여자(p.73)였으며 해방과 레지스탕스의 이미지(p.77)를 가진 부드러우면서도 짓궂은(p.107) 운명론자(p.70)로 묘사된다.  자신의 죽음과 함께 딸이 떠안을 애도의 강도를 조절하고 훈련시킬 줄 아는 어머니, 딸에게 열렬한 숭배와 사랑을 받는, 이 책 속의 아흔두 살의 어머니는 내가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이다.  

정말 이런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가능한 걸까?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아주 극소수의 모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수지 모건스턴, 알리야 모건스턴 지음/최윤정 옮김/웅진주니어)라는 책의 작가서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엄마들은 엄마라는 이름의 일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하고 있다.  말하자면, 들볶고 조바심치고 불안해하고 기를 꺾어놓고 기운을 돋우어주고 잔소리하고 상처 입히고 부려먹고 가슴 뿌듯해 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한 마디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엄마와 딸이라는 한 쌍을 이루는 각각의 짝들은 그럭저럭 살아남는다. (중략)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엄마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그렇게 효과적이지가 못하다.  늘 그런 식이다.  엄마들도 딸들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난 이 글을 읽고 얼마나 깊이 공감했었던가. 수지 모건스턴의 글대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이를테면 애증의 관계다.  미워하면서도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 관계. 그래서 더욱 결속이 단단하고 찐득찐득해서 도무지 지워버리거나 끊어버릴 수 없는 관계인 것 아닐까.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100% 순수한 숭배와 사랑이라니!!!  죽는 순간까지 딸에게(그것도 쉰아홉 살이나 먹은 딸에게) 자연스럽고, 가볍고, 정당하고, 심지어 완벽한(p.156)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어머니의 완전무결함이 이 책을 말할 수 없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자살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 휘청거리는 엄마를 보고 말았어요.  죽음이 이미 엄마에게 동지로, 친구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어요.  우리를 제쳐놓고 말이에요.  나는 엄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마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있는데, 죽음이란 놈이 나보다 엄마를 더 잘 알고, 가까이서 보살피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요, 엄마를 더 다정하게 다독거려주고 있었어요."(p.11)

이 구절은 오래 전 우리 큰딸과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딸은 그 때 자살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엄마, 왜 죽는 거야? 죽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쉽잖아. 죽을 용기 갖고 살면 될 텐데.”
아마 딸은 그 때 벌써 자살은 어리석은 행동이며 잘못된 판단에서 오는 죄악이라는 가치판단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글쎄.. 엄마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이가 먹을수록 삶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생각이 들거든. 엄마는 특별히 고생한 적도 없이 무난하게 잘 살아온 편인데도 그런 느낌이 들어.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살다가 삶이 점점 무거워지고 더 무거워져서 삶의 무게가 죽음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오면 그 땐 미련 없이 죽음을 선택해서 훌쩍 떠날 수도 있겠다는. 그래서 이다음에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죽음이 가까이 오면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선뜻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자살한 그 사람도 나이에 상관없이 삶이 너무너무 무겁게 느껴졌던 거겠지. 그 사람이 자살한 걸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도 그 사람의 고통을 모를 테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도록 모른 척하고 방치한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크지 않을까.” 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 늙은 어머니의 다정한 친구로 다가왔다는 글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죽음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행동이 “삶을 너무 사랑하기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p.117) 이고 그래서 ”때때로 죽음은 삶에 바치는 예찬“(p.117)이란 글에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쉰아홉의 딸이 쓴 글이라고 여기기엔 감정의 여린 선을 건드리는 지나치게 섬세한 문체(물론 번역작가의 의도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 여지가 크지만), 에둘러 말하는 듯한 글에서 느껴지는 답답함, 되풀이 되는 듯한 딸의 감정노출은 책으로의 몰입을 방해했다. 이상적인 삶과 죽음을 맞이하자면 치매에 걸리거나 중풍으로 쓰러지는 일없이, 아이들 앞에서 꽥꽥 소리 지르며 화를 내거나 지겨운 잔소리조차 늘어놓는 일없이 아들딸들의 우아한 우상이 되어 숭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죽음과 삶을 동시에 꿈꾸게 하고 지금의 내 삶을 더욱 빛내라고 재촉하는, 그리하여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더욱 아름답게 하라는 이 책의 목소리가 내 가슴 위로 내려앉는 그 느낌 또한 지우기 어렵다.  죽음이 삶을 아름답게 하고 삶이 죽음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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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잠이 안 와
김향수 지음, 김완진 그림 / 한솔수북
아이가 아빠를 재우는 이야기.  예쁘고 우아한 느낌의 그림이 돋보인다.
(비니는 별 셋. 나는 별 넷)

 

도서관에 개구리를 데려갔어요
에릭 킴멜 지음, 신형건 옮김, 블랜치 심스 그림 / 보물창고

비니가 너무 좋아한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을 안지는 꽤 됐는데 아직까지 읽어보질 못했었다.  생각보다 단순하면서도 재밌는 짜임새를 가진 그림책이다.
도서관에 온 동물들의 다양한 가지각색의 모습과 상황 묘사가 재밌다.
비니는 별 다섯, 나도 별 다섯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호백 글 그림 / 재미마주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 토끼 한마리가 집안을 돌아다니며 어질러 놓는 이야기.  완전범죄(?)를 꿈꾸었으나 집 안 곳곳에 남겨진 배설물들 때문에 토끼가 의심받게 되는.. 
정겨운 그림이 펼쳐지지만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한 듯..
(비니는 별 둘, 나는 별 셋)

또르의 첫 심부름
토리고에 마리 글 그림, 이정선 옮김 / 베틀북

수줍음 많고 부끄럼 많이 타는 아기 고슴도치의 심부름 이야기.  그림이 아주 귀엽다.  엄마 심부름으로 할머니댁에 버찌를 사가지고 가다가 친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귀여운 여자 친구를. (비니는 별 넷, 나도 별 넷

꼬마 곰과 작은 배
낸시 카펜터 그림, 이브 번팅 글, 김서정 옮김 / 웅진주니어(웅진닷컴)
아름다운 내용의 그림책이다.  작은 배를 타며 노는 것을 좋아하던 곰이 점점 자라서 몸집이 커지자 더이상 작은 배를 탈 수 없게 된다.  곰은 작은 배를 다른 아기곰에게 선물하는데..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그림책이었다.  비니가 이 그림책의 맛을 알기엔 아직 어렸던 것 같다. 비니는 별 셋, 나는 별 다섯

하늘만큼 땅만큼 무서웠어요
메라 버그만 지음, 윤지영 옮김 / 작은책방

비니가 좋아한 그림책이다.  무시무시한 악어가 등장하고 무서움에 떨던 아이들이 용기를 내어 오히려 악어에게 겁을 주는 이야기.  그 긴장감 도는 스토리가 비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보다.  (비니는 별 다섯, 나는 별 넷)

서서 걷는 악어 우뚝이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마루벌
이 책도 이 달에 본 그림책 중 성공적인 그림책. 레오리오니의 <파랑이와 노랑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비니가 이 책은 몇 번이나 다시 읽어달라고 가져왔다.  특별한 재주를 가진 우뚝이와 유머러스한 결말에 슬쩍 웃음이 나는 그림책.
(비니는 별 다섯, 나도 별 다섯)

안에서 안녕 밖에서 안녕
린지 배럿 조지 지음, 이명희 옮김 / 마루벌

세밀한 그림이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비니도 좋아라 했다.  집 안에 사는 집쥐와 집 밖에 사는 들쥐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그림이 예쁘다. 

(비니는 별 넷, 나도 별 넷)

 

토실이와 마법의 콩알
믹 잉크펜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플랩북이다.  당연히 비니가 좋아했다.  특히 마지막 닭을 찾아내는 그림에서 나뭇잎 두 개를 들추고, 닭의 날개를 들추는 2중 3중의 플랩이 비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 하다.  (비니는 별 다섯, 나는 별 넷)

안녕, 해리!
바바라 퍼스 그림, 마틴 워델 글, 노은정 옮김 / 비룡소
느림보 거북이와 누가 친구 해주려나..  느림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이 반영된 그림책.  비니는 거북이가 친구를 만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비니는 별 넷, 나도 별 넷)

파란 의자
클로드 부종 글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글쎄... 별다른 매력을 느낄 수 없었던 그림책이다.  비니가 좀 더 자라면 재밌어 할라나?  그런데 나도 별로 재미없게 읽은 그림책이다.  의자 하나를 두고 벌이는 상상놀이가 그나마 좀 흥미롭다.  상상력의 중요성을 어필한 듯한데, 어딘지 좀 부족하다.
비니는 전혀 관심 없었음.  나도 별로,,,

오늘은 무슨 장난을 칠까?
도이 카야 지음, 고광미 옮김 / 아이세움
장난꾸러기 코요테의 위기~!!! 흑백으로만 그려진 그림이 정겹다. 하이에나가 본의 아니게 코요테를 구해주는 장면도 익살맞고.. (비니는 별넷, 나도 별 넷)

안녕, 친구야!
마르쿠스 피스터 지음, 김경연 옮김 / 아이즐북스
그림이 무척 기발하고 예쁜 그림책이다.  친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  내용도 좋지만 그림의 표현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나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니는 별 다섯, 나도 별 다섯)

시원한 응가
모리야 루리 그림, 나나오 준 글,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음식물의 소화와 배설과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그림도 정겹고 썩 괜찮은 것 같은데, 아직 인체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관심없는 비니다.  이 시리즈가 몇 권 있는데, 여섯,일곱살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된다.
(비니는 별 관심 없었음.  나는 별 넷 정도?)

위층 할머니, 아래층 할머니
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이미영 옮김 / 비룡소
잔잔한 감동을 주는 그림책인데, 비니에겐 너무 일찍 읽어준 그림책이다.  읽으면서 돌아가신 시할머님이 떠올라 가슴이 더 짠해졌다. (비니는 별 하나, 나는 별 다섯)

말썽꾸러기 또또
김성은 지음, 한병호 그림 / 길벗어린이

말썽장이 고양이 또또와 할머니의 애증(?)의 관계를 그린 그림책.  한병호님은 참 다양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내시는 것 같다.  (비니는 별 둘, 나는 별 넷)

파리의 휴가
구스티 글 그림,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코믹한 그림책이다.  비니보다 큰아이와 둘째아이가 보고 더 낄낄거리며 재밌어 한 그림책이다.  불쌍한 파리, 하필이면 휴가를 그 곳으로 떠나다니..아직은 비니가 이 그림책을 보고 웃을 나이는 아닌가 보다.  읽어줄 때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비니는 별 둘, 나는 별 넷)

새 구두를 샀어요
수잔 롤링스 지음, 노경실 옮김 / 계림닷컴
비닌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은 그림책.  새 구두, 신발에 대한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글의 그림책인데 비니는 너무너무 좋아했다.  예쁜 걸 좋아하기 시작한 비니의 취향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역시 아이들의 취향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비니는 별 다섯,여섯.. 나는 별 넷)

곰 아저씨의 소풍
데비 글리오리 지음, 김종렬 옮김 / 계림닷컴

소풍가면서 도시락 바구니가 아니라 장난감 바구니를 들고 가는 바람에 고생하는 곰아저씨 이야기.  이웃집 아기곰 세마리까지 데리고 가는데, 서로 좀 뜻이 어긋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두 흡족한 결말을 보여준다. (비니는 별 넷, 나도 별넷)

닭들이 이상해
브루스 맥밀란 글, 귀넬라 그림, 최윤정 옮김 / 바람의아이들
이 그림책도 나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비니는 두어번 읽고는 끝! 이 그림책의 유머를 이해하기엔 비니가 너무 어렸던 걸까?(비니는 별셋, 나는 별다섯)

 

전집류에서 (비니가 좋아했던 그림책은 보라색으로 표기)

<웅진 마술피리 그림책 꼬마>
와니와니의 목욕
어디에 갔었니?
사박사박 즐거운 모래장난
어디 가니?
개구리가 폴짝 (김지영 글/김복태 그림)
무얼 넣을까? (조은수 글,그림)
모두모두 나와라 (최은정 글/사석원 그림)
오늘은 내 생일이야 (헬렌 옥슨베리 글, 그림/햇살과 나무꾼 옮김)

<몬테소리 토들 피카소>
한 마리 돼지와 100마리 늑대 (미야니시 다쓰야 글,그림/강미해 옮김)
머리에서 발끝까지 (에릭 칼 글,그림/사과나무 옮김)
곰이 우리집에 왔어요 (릭 윌턴 글/제임스 워홀라 그림/공경희 옮김)
꿈도둑 (미야자키 히로카즈 글, 그림/사과나무 옮김)
수탉 버나드가 화가 났어요 (메리 워멜 글,그림/이상희 옮김)
엘엠엔오피오 (해리엇 지퍼트 글/도널드 사프 그림/공경희 옮김)
내가 괴물이라고? (키스 베이커 글, 그림/이철숙 옮김)

<프뢰벨 자연관찰>
코끼리, 무당벌레

<명품 꼬마 자연관찰>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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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물꼬물 세균대왕 미생물이 지구를 지켜요 - 자연의 아이들 지구를 살리는 친구 (풀빛 지구지킴이) 1
김성화.권수진 지음, 박재현 그림 / 풀빛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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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있는 과학도서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공룡, 우주, 지구, 식물, 동물, 곤충, 물리, 화학 등등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중에는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나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처럼 과학 전반에 관한 글이 실려 있는 책도 있다.  집에 있는 과학도서들이 전문서적이 아니다 보니 나처럼 소위 말하는 ‘이과 두뇌’를 갖지 못한 사람도 재밌게 읽으며 이런 책을 써서 세상에 나오게 해준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워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받고 나서야 우리집에 세균이나 원생생물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과학의 세계는 얼마나 넓은 것인지!!!)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딱딱하게 여기지 않도록 여기저기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익살스런 일러스트도 돋보이고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쓴 글들도 편안했다.  지은이 소개를 보니 <과학자와 놀자>를 쓴 분들이다.  예전에 아이들과 재밌게 읽은 바로 그 책을 쓴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책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깊어졌다. 

책을 읽다가 새롭게 알게 된 신기한 사실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관심을 보인다.  우리 몸무게의 10%가 세균의 무게라는 얘기에 반짝, 똥의 1/3이 음식찌꺼기이고 1/3은 죽은 세포들이며 나머지 1/3은 대장균을 비롯한 세포들이라는 얘기에 또 반짝, 세균과 박테리아의 차이점을 얘기했더니 또 반짝,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는 세균이 병균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말에 또 반짝인다.  결국은 내가 다 읽기도 전에 애들이 책을 빼앗다시피 가져가 읽고, 학교에까지 싸들고 가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재주를 가지고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세균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넘어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도 과학의 영역은 나날이 팽창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지하에서 우주 끝까지, 미세의 세계와 거대한 천체,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의 비밀까지 샅샅이 뒤지고 드러내려 애쓰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과학의 그 넓은 영역을 두루 보여줄 수 있다면 아이들의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서 과학의 영역 한 귀퉁이를 새롭게 보여준 것 같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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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니가 양말 벗는 장면을 목격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양말을 못 벗어 낑낑댔었다.

무조건 양말 앞부리만 잡아당기는 비니에게 뒷꿈치부터 벗어야 양말이 쉽게 벗겨진다는 걸

반복해서 가르쳤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가깝다.

몇 주 전만해도 발을 끌어당긴 채 앉아서 양말 뒷꿈치를 내리려고 낑낑댔었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양말 벗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는데..

 

어제는 벽을 붙잡고 서서 한쪽발 뒷꿈치로 다른쪽 발 양말 앞부리를 누르더니

그 상태로 발을 스윽 들어올려 양말을 벗는 것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누구에게서 보고 배웠을까?

 

뽀랑 지니랑 나랑 그 모습을 보고

드디어 비니까지 귀차니스트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며 깔깔댔다.

 

그렇게 커가나보다.

아이들은

양말 벗는 것 하나조차도 내가 생각했던대로, 내가 의도했던대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터득하고 자연스럽게 익혀간다.

 

첫 아이 때에는 내가 잘 하면 아이는 내 계획대로 자랄 줄 알았었다.

그래서 참으로 열심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오만하고 교만하고 허황된 생각이었다.

세상의 작은 일 하나도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드물건만

어쩌자고 한 아이가 성장해가는 그 커다란 일이 내 계획대로 되기를 바랐을까..

 

아이들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불쑥

자기만의 살아가는 비법을 드러내곤 한다.

비니가 가르치지도 않은 방법으로 양말을 벗은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욕심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때로는 아이가 성장하는 그 경이로운 단계들을 지켜보고 따라가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벅찬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은 지난 추석 때 큰오빠가 찍은 비니 사진이다. 
같이 찍힌 참한 아가씨는 작은 오빠네 큰딸, 내 친정 조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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