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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니가 양말 벗는 장면을 목격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양말을 못 벗어 낑낑댔었다.
무조건 양말 앞부리만 잡아당기는 비니에게 뒷꿈치부터 벗어야 양말이 쉽게 벗겨진다는 걸
반복해서 가르쳤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가깝다.
몇 주 전만해도 발을 끌어당긴 채 앉아서 양말 뒷꿈치를 내리려고 낑낑댔었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양말 벗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는데..
어제는 벽을 붙잡고 서서 한쪽발 뒷꿈치로 다른쪽 발 양말 앞부리를 누르더니
그 상태로 발을 스윽 들어올려 양말을 벗는 것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누구에게서 보고 배웠을까?
뽀랑 지니랑 나랑 그 모습을 보고
드디어 비니까지 귀차니스트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며 깔깔댔다.
그렇게 커가나보다.
아이들은
양말 벗는 것 하나조차도 내가 생각했던대로, 내가 의도했던대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터득하고 자연스럽게 익혀간다.
첫 아이 때에는 내가 잘 하면 아이는 내 계획대로 자랄 줄 알았었다.
그래서 참으로 열심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오만하고 교만하고 허황된 생각이었다.
세상의 작은 일 하나도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드물건만
어쩌자고 한 아이가 성장해가는 그 커다란 일이 내 계획대로 되기를 바랐을까..
아이들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불쑥
자기만의 살아가는 비법을 드러내곤 한다.
비니가 가르치지도 않은 방법으로 양말을 벗은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욕심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때로는 아이가 성장하는 그 경이로운 단계들을 지켜보고 따라가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벅찬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은 지난 추석 때 큰오빠가 찍은 비니 사진이다.
같이 찍힌 참한 아가씨는 작은 오빠네 큰딸, 내 친정 조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