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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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미하엘 엔데를 좋아하는 건, 그의 판타지가 따뜻하기 때문이다.  <모모>나 <끝없는 이야기>를 읽으면 신비스러운 인물들과 흡인력 강한 모험담들 아래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흐르고 있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의 판타지가 사람의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랄프 이자우의 책 <비밀의 도서관>을 갖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질 못했다.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미하엘 엔데의 두터운 책 <끝없는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계속 다음으로 미루고 있는 사이에 미하엘 엔데에게 후계자로 인정받았다는 랄프 이자우라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자꾸 커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끝없는 이야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랄프 이자우를 만날 기회,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을 내 손에 쥐었다.

우선은 미하엘 엔데의 작품과 분위기가 많이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시황의 진흙병사와 수메르의 쐐기문자, 고대 바빌론의 유물과 유적들, 신화적 동물들과 시대와 연대의 구분을 허무는 인물들의 등장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인공을 돕는 세헤라자데의 유리새 니피와 나폴레옹의 외투 코퍼, 소크라테스의 잊혀진 제자 엘레우키데스, 벨레로폰의 페가수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그런 신기함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판타지 문학의 기본 조건(?)이므로 다른 판타지 작품들과의 차별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의 자료수집에 대한 열성과 그 방대한 자료를 한데 엮어내는 능력은 높이 사야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놀랐던 건 작가가 판타지 속에 엮어 넣은 이야기의 주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작가는 우리의 본질이 ‘기억’ 속에 있다고 말한다.  현실을 중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이나 오래되고 낡은 사물에 대한 애정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 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증오하지 않는, 그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아서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린’(p.367)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염려를 지우기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며 만약에, ‘이 세상에서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그렇게 하얗게 잊혀진다면, 과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하는 물음 하나를 갖고 가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보통은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고 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아메바에 비유하고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잊혀진다는 것은 우리가 존재의 본질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야기에서 자기의 진정한 본질을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잃어버린 기억의 세상, 크바시나로 들어가게 된다.  잃어버린 기억들, 지워진 꿈들, 잊혀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크바시나에서 자기가 좋아하던 일을 계속하며 살아가지만 지배욕으로 가득 찬 크세사노의 등장으로 이쪽 세계와 크바시나의 균형이 무너지고 평화가 깨어지고 만다.  크바시나는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이며 크바시나와 이쪽 세계를 모두 자기 손안에 넣으려는 크세사노는 곧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지배함으로써 세상을 정복하려는 난폭한 무법자라고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소홀히 하며 엄청난 속도로 오직 앞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갖고 있는 랄프 이자우의 책은 ‘도서관’이라든가 ‘박물관’과 같은 기록과 보존의 의미를 가진 낱말이 들어 있다.  망각으로 본질을 잃기 쉬운 우리에게 기록과 보존은 본질을 지켜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본질에 대한 사유가 참신하고, 주인공인 쌍둥이 남매 제시카와 올리버가 크바시나에서 아버지 토마스 폴락을 구하고, 지배욕으로 불타는 크세사노를 물리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제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2>을 펼쳐야겠다.   (08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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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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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라는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이 책이 1941년 당시 베스트셀러였고 작가에게 오헨리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긴 책이라는 간단한 소개글 정도의 밑천만 갖고 첫 장을 펼쳤다.

<흰기러기>와 <작은 기적>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 두 편이 책의 전부였고 두께도 얇고 행간도 넓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조금은 만만한 기분으로 집어든 책이기도 했다.  노틀담의 곱추를 연상시키는 우울한 표지그림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흰기러기
그레이트 마시라는 큰 늪지대의 낡은 등대에 살고 있는 필립은 비틀리고 구부러진 흉측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따뜻하고 고운 심성을 가지고 있다.  늪지대를 찾아 날아온 새들을 돌보고 등대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던 필립은 어느 날 사냥꾼 총에 맞은 흰기러기를 안고 찾아온 소녀 프리다와 고운 인연을 맺게 된다.  흰기러기와 프리다, 필립은 해가 거듭되면서 마음과 영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로 이어진다.  필립은 프리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속으로만 그 사랑을 간직한다.  2차 세계대전 중인 어느 날,  자신이 필립을 사랑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은 프리다는 필립의 등대로 향한다.  그러나 필립은 자신의 나룻배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독일군부대에 포위당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영국군들을 구하기 위해 덩게르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채 헤어진 두 사람은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만다. 

덩게르트에서 독일군의 포위를 뚫고 구출된 영국군에 의해 전해지는 필립의 용감한 행동은 한 마리 흰기러기와 함께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프리다는 필립을 따라 날아갔던 흰기러기가 돌아와 등대를 휘감으며 나는 것을 보고는 필립의 죽음을 알게 된다.  프리다는 필립의 영혼과 함께 날고 있는 흰기러기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한다. 

맑고 차분한 문체로 전해지는 애잔한 사랑이야기가 추운 겨울 웅크렸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놓았다.  이런 사랑이야기를 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사랑도 속전속결해야 하고 쿨해야 한다는 요즘의 애정법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정말 고전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속으로는 이런 사랑이 날이 갈수록 푸석해져가는 이 메마른 마음 사이로 따스하게 흘러주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게 현대인들 아닐까....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닫아버리고 어리석어 보일까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저울과 눈금자를 들이미는 이 황량한 ‘현대’라는 늪지대에서 낡은 등대를 지키며 살아가는 따뜻하고 고운 심성을 가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그가 될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작은 기적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성인이 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인데 청빈한 수도자로 동물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그 성인이 남긴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성당 신자들 사이에 애송되는 기도이기도 하다. ‘작은 기적’은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아시시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고아소년 페피노는 부지런하고 유순하며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당나귀 비올레타와 함께 시장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착한 소년이다.  페피토에게 비올레타는 ‘어머니이자 아버지였고, 형제이자 친구, 그리고 동반자이자 위안’(p.84)이였기에 페피노는 비올레타에게 언제나 사랑을 쏟았고 비올레타는 그런 페피노에게 ‘충성과 순종과 애정으로 보답했다.(p.85)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비올레타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이다. 애가 타던 페피노가 비올레타를 살려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비올레타를 동물을 사랑했던 성 프란시스의 납골묘까지 데리고 가서 병이 낫도록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페피노는 기적을 믿었기에 실행에 옮겼지만 성 프란시스는 교회의 평신도 관리인에게 기적의 성인이 아니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단이 된지 오래였다.  평신도 관리인은 페피노의 부탁을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자상한 다마코 신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낭패를 본 페피노는 평신도 관리인에게 명령을 내려 자신의 계획을 가능하게 해줄 더 높은 사람을 찾게 되었고 결국 교황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신앙은 논리가 아니라 신비라는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 따져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경이롭게 펼쳐지는, 그저 순간의 깨달음처럼 번쩍이는 신비로 찾아오는 것이 신앙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똑똑한 자들에게는 감추고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펼쳐 보이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말씀이 성서에 있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굳이 신앙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순수’라는 것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 더 가까운가.  페피노인가, 다마코 신부인가, 평신도 관리인인가.  지금의 내가 평신도 관리인의 모습을 너무 많이 닮아 버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그건 단순히 내가 순수하지 않다는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 속의 평신도 관리인이 페피토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았듯이 나도 누군가의 순정한 마음을 짓밟고 상처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두 편의 글이 끈적임 없이 맑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어쩌면 요즘 소설들에 비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괴기와 엽기마저 판치고 있는 소설계에서 이 책의 서정성은 상큼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각박하고 삭막한 요즘의 현실을 비판하는 아름다움을 갖췄다는 생각마저 드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08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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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 스패로우 선장의 모험 Carlton books
존 매튜스 지음 / 삼성당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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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지른 감탄의 소리들을 들려주고 싶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만화 ‘원피스’ 등에 매료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해적>은 또 다른 상상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나 다름없었다.



거칠고 비밀스런 모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겉표지부터가 압권이다. 빨간 루비 눈알과 금니 하나가 반짝이는 해골이라니... 게다가 군데군데 불에 그을린 듯한 표지그림은 해적선 깃발 한 폭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다.





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붙어 있는 편지 봉투. 해골인장 스티커를 살살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안의 내용을 펼쳐보면 해적규약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우리는 해적이란 말이지!!! 책 주인의 서명까지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 넣으며 얼마나 뿌듯해할지 안 봐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책 속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장치들이 여러 군데 숨어 있다. 

해적은 ‘버커니어’, ‘코세어’, ‘해변의 형제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처음에 일어난 해적활동이 기원전 7세기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 벌어진 약탈행위라니 해적의 역사가 생각보다 참 유구하구나, 싶다.  1660년부터 1730년에 이르는 시기가 ‘해적의 황금시기’라고 한다.  아마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도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적의 옷차림을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해적 패션을 살펴보면, 잭 스패로우가 얼마나 패션감각이 뛰어난 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 쪽에 해적 속어가 책 속의 작은 책처럼 붙어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2탄의 제목 ‘망자의 함’은 관을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꼬리가 아홉 달린 고양이’라든가 ‘달콤한 장사’, ‘사수의 딸에게 키스하다’, ‘밧줄 춤을 추다’ 라든가 하는 속어가 설명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예를 들어,
‘자, 왈왈이를 잘생기게. 이제 달콤한 장사를 벌여야지. 이번 장사에서 장화를 빼돌리거나 하는 썩은 달걀이 발견되면 장사가 끝난 다음 사수의 딸에게 키스를 해야 할 거야. 그것도 꼬리가 아홉 달린 고양이가 덤벼들테니 당하기 전에 조심하는 게 좋을걸. 얼마 전에 바닷개밧줄 춤을 춘 것 모두 알고 있지? 다들 조심하도록 해. 닥쳐! 달콤한 장사를 벌이기 전에 굵은 밧줄부터 꼬자구~“ 란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해적들의 속어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보라색으로 표기한 글들은 모두 해적 속어들이지만 해석을 일일이 달기는 곤란하다.) 단, ’젠장 맞을 니 눈깔‘이라고 하면 그건 욕이니까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알아두는 게 좋을 듯.



해적들의 깃발을 ‘졸리 로저’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해적 깃발이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잭 랙컴의 졸리 로저가 가장 맘에 든다.  어떤 건 좀 우스운 것들도 있는데, 악명을 떨쳤다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깃발도 우스운 깃발 중 하나다. 







유명한 해적들을 소개받는 것도 재미있다.  헨리 모건은 초상화에서부터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해적질하던 사람이 기사 직위까지 받고 자메이카의 총독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니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앤보니나 메리리드 같은 여성해적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끌리는 해적은 윌리엄 키드다.  해적 허가증을 가지고 해적 노릇을 하던 윌리엄 키드는 해적 행위에 대한 죄로 체포되었을 때 허가증을 이유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항해 중에 허가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어 결국 1701년 교수형을 당한다.  그것도 시체가 썩을 때까지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교수형을.  그런데 200년이 흐른 뒤 윌리엄 키드의 해적 허가증이 런던의 정부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큰딸과 나는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난다면서 “이거 잘 만들면 이야기가 되겠는데~”하며 좋아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결과 윌리엄 키드가 해적으로 활동하던 당시는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앤여왕 시기이다.  18명의 아이를 모두 사산하거나 일찍 잃은 앤여왕의 시대이니만큼 왕위의 후계자를 두고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윌리엄 키드 선장의 죽음에 대한 비밀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혹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다음 이야기의 소재로 이 이야기는 어떨까 하며 큰딸과 함께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해적들이 항구에 내리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도박이었다고 한다.  18세기 카드 세 장이 첨부 되어있었는데 카드 뒷면은 잭 랙컴의 졸리 로저가 나부끼는 해적선이 바다를 배경으로 떠있는 그림이다. 

해적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  윌리엄 키드 선장의 의문의 교수형이 집행되 뒤 영국정부는 해적 행위를 영원히 없애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했다고 한다. (역시 음모와 계략의 냄새가 진동한다.) 반 해적행위에 대한 법안이 모든 식민지 국가에서 통과되고 효력이 발휘되기 시작하자 18세기 말에 이르러 해적들의 전성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책에 들어 있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현상수배 포스터와 1722년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부하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문이 그 당시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전달해 주고 있다.




지금도 해적들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이름을 떨친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윌리엄 키드, 헨리 모건의 그 막대한 재산의 행방이 아직 묘연하다고 한다.  맨해튼 근처의 카디나 섬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근처의 오크라코크 섬에서 해적의 보물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데..  이 책에서도 프랑스에서 1758년에 만든 자메이카 보물지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해적들 덕분에 보물을 거머쥔 진짜 주인공들은 바로 해적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영화로 재생산해낸 사람들이 아닐까.  이를테면  매력적인 해적 존 실버 선장이 등장하는 <보물섬>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든가, 길버트와 설리반이 쓴 희극적인 오페라 <펜젠스의 해적들>이라든가, ‘캐리비언의 해적’ ‘후크선장’등의 해적영화를 만든 헐리우드 영화사들 말이다.




해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사진 자료와 첨부자료, 그리고 세련된 그래픽과 디자인으로 치장한 책을 통해 만나는 일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꺼내 보여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핸드폰에 이 책의 사진을 담아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이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부탁했다나...) 지금이야 해적을 낭만적인 모험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실제로 해적과 맞닥뜨린다면 끔찍하고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허구로서의 해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해적을 소개받으면서도 여전히 그 이름 위에 낭만을 덧씌우는 아이들을 보며 그저 웃음 짓는다.

해적은 이제 현실이 아니라 꿈이며 낭만으로 변한지 너무 오래라서 굳이 아이들에게서 그걸 빼앗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08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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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나라에 간 코끼리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진일상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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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만나본 아르토 파실린나의 소설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토끼와 함께 한 그 해>도 주인공 바타넨과 토끼를 따라 핀란드 구석구석을 여행한 느낌이었는데 이번 소설 <모기나라에 간 코끼리>도 한 편의 아름다운 로드무비를 연상시킨다. 

러시아춤 트레팍을 출 줄 아는 코끼리 에밀리아는 따뜻하고 섬세한 감정과 우아하고 선한 품성의 낭만적인 성향의 코끼리다. 그런 에밀리아를 보살피며 따스한 우정을 나누는 루치아는 강인한 성격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매력적인 아가씨다.  유럽연합의 새 지침에 따라 동물들을 이용한 서커스 공연이 금지되자 루치나는 에밀리아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러시아를 떠돌며 서커스 공연을 벌인다.  그 자체만으로도 영상이 아름다운 한 편의 로드무비가 그려진다.

핀란드에서 러시아, 그리고 다시 핀란드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에밀리아와 루치아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네 사는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러시아 기차여행길에서 에밀리아의 사육사 일을 맡은 마흔 살의 역무원 이고르 루초프스키는 에밀리아에게 트레팍을 전수한 장본인이다.  다정한 성품을 가졌지만 다분히 몽상가다운 그는 고향 헤르만토프스크에서 비록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루치아와 성대한 결혼식 축제를 벌이는 꿈을 실현한다.

루치아가 이고르와 헤어지고 핀란드로 돌아오는 길에 루비아에서 만난 오스카리 렌지외와 그의 아내 라일라는 부부로서의 미덕이나 상호존중 따위 잃어버린 지 오랜, 그저 관성에 의해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정뱅이에다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서슴지 않는 오스카리를 게으르긴 하지만 ‘말짱한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쓸모가 있는’ 남편이라며 두둔하는 라일라는 종속된 여성의 표본이라고 할만 하다.

육류가공공장의 생산부장이며 노련한 소시지 기술자 루히넨은 어떤가.  코끼리 소시지의 레시피를 짜면서 그가 꿈꾸는 것은 이윤의 극대화이고, 에밀리아를 도살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강구하는 모습은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에 우선하는 현대 산업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타이스토 오얀페레.  루치아의 젊고 생기 있는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끼고는 에밀리아가 겨울을 지낼 유리공장을 임대하고 루치아를 위한 방을 마련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루치아가 에밀리아를 아프리카로 보내기 위해 길을 나설 때 자신의 생활터전인 가게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남자다.  타이스토라는 인물을 생각하다보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떠오르곤 했다. 룻의 아내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어기고 자기가 살던 터전에 대한 미련을 못 이기고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타이스토 오얀페레는 어쩌면 자기의 재산, 가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아름다운 루치아를 놓치고 말았던 것 아닐까. 

그런 타이스토 오얀페레에 비해 농부 파보는 행운아다.  아내 카리나와는 애정보다는 재산상의 이유로 유지되고 있는 결혼관계였다.  게다가 그는 자기 자신을 주교 헨릭을 살해한 농부 랄리 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남성답고 유능하다.  결국 루치아의 사랑을 얻어내지만 아주 현실적인 성격이라 아내 카리나와의 이혼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만약 카리나가 이혼하면 나랑 결혼할래요?”하는 루치아의 질문에 “너한테 100헥타르 경작지가 있으면 결혼하지.”(p.188)라고 대답할 정도로 야멸차고 매정하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사랑일까? 현실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열정적인 사랑은 이제 가능하지 않은 걸까? 파보의 아내 카리나도 체육 교사이자 소방대 대장인 타우노 리이지칼라와 부정을 저지르지만 파보와 카리나는 타협과 묵인 아래 상대방의 부정을 서로 눈감아준다. 이제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관계라는 것도 쿨하다 못해 서류상의 기록, 재산의 공유, 공적으로 인정받는 규범적 틀만으로 유지되는 삭막한 관계로 이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삭막한 가정이 양산하는 것은, 부도로 사업이 망하고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우울증을 앓다가 잠수함 만들기에 심취해 살아가는 고독한 인물 레오 발카마 같은 인물일 것이다. ‘가진 것은 고양이와 자신의 원대한 꿈 뿐’(p.201)인 그는 파보와 루치아에게 자신의 쓸쓸함을 호소하지만 그 또한 파보와 루치아를 따라 훌쩍 떠나지는 못한다.  그에겐 고양이와 잠수함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귀향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떠남’이라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은 아닌가 보다.  지금 여기서 이루어야 할 꿈이, 크고 작게 맺어진 여러 관계들이, 지금까지 다져온 생활 터전이, 매일매일 해결해야할 일들이 자유로운 유목민으로 훌쩍 떠나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아르토 파실린나의 소설들이 모두 한편의 로드무비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읽은 두 편의 소설을 생각해보면 자유로운 유목민에 대한 꿈과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집착이 소설 속의 ‘독특한 여정’ 안에 어우러져 우리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다.

후우톨라의 타락한 목사와 탐페레의 녹색당원들도 묘한 대조를 이루며 등장한다.  후우톨라의 목사는 술에 빠져 살면서 스스로를 비관할 뿐 아니라 삶의 목적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탐페레의 녹색당원들은 지나치게 과장된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목적을 상실했건 또는 과장했건 간에 진실한 삶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선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에밀리아를 아프리카로 보내기 위한 여정 속에 만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은 에밀리아와 루치아, 파보의 여행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인간군속의 지지고 볶고 아등바등한 삶에 비해 코끼리 에밀리아가 내딛는 걸음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듬직하고 품위 있게 느껴지는지..  핀란드의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를 누비고, 맑은 호수 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유연한 코로 인간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하고,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즐거울 땐 코로 트럼펫 소리를 내거나 트레팍을 추는 코끼리 에밀리아의 모습은 삶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가슴 속에서 떠오를 것만 같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남아프리카의 아도 자연공원에서 에밀리아를 만났다고 했다. 물론 소설의 연장선에서의 이야기겠지만,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배경으로 서있는 에밀리아를 생각하니 가슴이 다 후련해진다.  에밀리아에게 우리 인간이 사는 모습이란 모기 떼들의 앵앵거림과 별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는 나도 이 모기 나라를 벗어나 에밀리아가 살아가는 그 큰 세계를 느껴보고 싶다. 거침없는 큰 걸음으로 흔들림 없이 내딛고 싶다.   (08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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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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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김선우 시인의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시인인 김선우 님께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시집이 아닌 산문집으로 두 권을 더 구입했었다.  그 중 하나가 <물밑에 달이 열릴 때>이다.  <우리 말고 또 누가~>는 지난 2007년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었지만 <물밑에 달이 열릴 때>는 2002년도에 펴낸 책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감성적이고 조금 더 물기를 많이 가진 듯, 습윤한 분위기다.

읽어가는 내내 호두 같은 단단함이 느껴지는 글의 견고한 밀도가 내 마음에 공명의 울림을 만들어내고 자연과 생명, 원초적인 몸에 대한 작가의 몽환과 그 몽환이 현실과 맞닿는 글의 찰랑한 흐름에 푹 젖어들었다.

관념적이라든가 추상적이라든가 하는 수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김선우의 글은, 그래서 그 느낌이 직접 피부에 닿는 듯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마치 원시적이고 감각적인,  그래서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인 관습이나 규범 따위로부터 자유로운 한바탕의 내림굿 같다고나 할까....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이 빚어내는 풍부한 시적 상상력 덕분에 나는 글을 읽다가 숨겨진 신화를 만난 듯 잊혀졌던 동화를 만난 듯 아련한 느낌에 젖어 종종 멍해지곤 했다.  더구나 먼 우주 품에 안긴 별빛을 바라보는 듯 아스라한 느낌으로 뻗어갈 즈음 갑자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일갈할 때엔 작가의 사유의 깊이와 통찰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울릉도 기행을 담은 글에서는 무차별한 개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허난설헌 생가에 대한 어릴 적 추억담을 꺼내놓는가 했더니 여성성과 약자에 대한 착취와 폭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은은한 정취를 풍기는 달의 이야기는 꾸르베와 프리다 깔로, 뚤루즈 로트레끄, 장욱진의 그림에다 조선시대 춘화까지 보태어진 정직하고 당당한 에로스의 세계로 이어진다.  이어서 모네와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미클로시 얀초의 영화 ‘붉은 시편’이라든가 따르꼬프스키의 영화 ‘잠입자’, ‘희생’, ‘향수’등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감독도 영화도 다 처음 들어봤다) 경주나 작가의 고향인 강원도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스인 조르바>나 <침묵의 세계>를 비롯한 몇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책 속에서 작가가 다루고 있는 글의 소재는 다양하고, 그 다양한 글의 소재들이 각각 하나의 문이 되어 작가가 그려내는 몽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몽환의 세계에서 습윤한 물기를 머금고 작가의 글을 따라 걷다보면 현실의 문제로 빠져나오는 문을 하나 더만난다.  학교문제, 약자와 제3세계에 대한 착취, 억압된 성,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혁명, 인간의 오만, 정신적 가치의 빈곤을 이야기하는 현실은, 몽환의 경로를 거쳤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고 내가 김선우라는 시인에게 각별한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 작가가 쓴 두 권의 책이 모두 만족스러웠던 까닭에 다음 책에 대한 기대와 혹 실망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반반이다. 시인이라는 직함을 앞에 둔 작가이니만큼 시집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나서 시집 두어 권도 읽어볼 생각이다.  단, 너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08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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