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 스패로우 선장의 모험 Carlton books
존 매튜스 지음 / 삼성당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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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지른 감탄의 소리들을 들려주고 싶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만화 ‘원피스’ 등에 매료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해적>은 또 다른 상상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나 다름없었다.



거칠고 비밀스런 모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겉표지부터가 압권이다. 빨간 루비 눈알과 금니 하나가 반짝이는 해골이라니... 게다가 군데군데 불에 그을린 듯한 표지그림은 해적선 깃발 한 폭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다.





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붙어 있는 편지 봉투. 해골인장 스티커를 살살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안의 내용을 펼쳐보면 해적규약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우리는 해적이란 말이지!!! 책 주인의 서명까지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 넣으며 얼마나 뿌듯해할지 안 봐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책 속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장치들이 여러 군데 숨어 있다. 

해적은 ‘버커니어’, ‘코세어’, ‘해변의 형제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처음에 일어난 해적활동이 기원전 7세기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 벌어진 약탈행위라니 해적의 역사가 생각보다 참 유구하구나, 싶다.  1660년부터 1730년에 이르는 시기가 ‘해적의 황금시기’라고 한다.  아마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도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적의 옷차림을 살펴보는 것도 즐겁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해적 패션을 살펴보면, 잭 스패로우가 얼마나 패션감각이 뛰어난 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 쪽에 해적 속어가 책 속의 작은 책처럼 붙어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2탄의 제목 ‘망자의 함’은 관을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꼬리가 아홉 달린 고양이’라든가 ‘달콤한 장사’, ‘사수의 딸에게 키스하다’, ‘밧줄 춤을 추다’ 라든가 하는 속어가 설명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예를 들어,
‘자, 왈왈이를 잘생기게. 이제 달콤한 장사를 벌여야지. 이번 장사에서 장화를 빼돌리거나 하는 썩은 달걀이 발견되면 장사가 끝난 다음 사수의 딸에게 키스를 해야 할 거야. 그것도 꼬리가 아홉 달린 고양이가 덤벼들테니 당하기 전에 조심하는 게 좋을걸. 얼마 전에 바닷개밧줄 춤을 춘 것 모두 알고 있지? 다들 조심하도록 해. 닥쳐! 달콤한 장사를 벌이기 전에 굵은 밧줄부터 꼬자구~“ 란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해적들의 속어임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보라색으로 표기한 글들은 모두 해적 속어들이지만 해석을 일일이 달기는 곤란하다.) 단, ’젠장 맞을 니 눈깔‘이라고 하면 그건 욕이니까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알아두는 게 좋을 듯.



해적들의 깃발을 ‘졸리 로저’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해적 깃발이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잭 랙컴의 졸리 로저가 가장 맘에 든다.  어떤 건 좀 우스운 것들도 있는데, 악명을 떨쳤다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깃발도 우스운 깃발 중 하나다. 







유명한 해적들을 소개받는 것도 재미있다.  헨리 모건은 초상화에서부터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해적질하던 사람이 기사 직위까지 받고 자메이카의 총독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니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앤보니나 메리리드 같은 여성해적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끌리는 해적은 윌리엄 키드다.  해적 허가증을 가지고 해적 노릇을 하던 윌리엄 키드는 해적 행위에 대한 죄로 체포되었을 때 허가증을 이유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항해 중에 허가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어 결국 1701년 교수형을 당한다.  그것도 시체가 썩을 때까지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교수형을.  그런데 200년이 흐른 뒤 윌리엄 키드의 해적 허가증이 런던의 정부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큰딸과 나는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난다면서 “이거 잘 만들면 이야기가 되겠는데~”하며 좋아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결과 윌리엄 키드가 해적으로 활동하던 당시는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앤여왕 시기이다.  18명의 아이를 모두 사산하거나 일찍 잃은 앤여왕의 시대이니만큼 왕위의 후계자를 두고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윌리엄 키드 선장의 죽음에 대한 비밀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혹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다음 이야기의 소재로 이 이야기는 어떨까 하며 큰딸과 함께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해적들이 항구에 내리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도박이었다고 한다.  18세기 카드 세 장이 첨부 되어있었는데 카드 뒷면은 잭 랙컴의 졸리 로저가 나부끼는 해적선이 바다를 배경으로 떠있는 그림이다. 

해적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  윌리엄 키드 선장의 의문의 교수형이 집행되 뒤 영국정부는 해적 행위를 영원히 없애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했다고 한다. (역시 음모와 계략의 냄새가 진동한다.) 반 해적행위에 대한 법안이 모든 식민지 국가에서 통과되고 효력이 발휘되기 시작하자 18세기 말에 이르러 해적들의 전성기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책에 들어 있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현상수배 포스터와 1722년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부하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문이 그 당시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전달해 주고 있다.




지금도 해적들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이름을 떨친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윌리엄 키드, 헨리 모건의 그 막대한 재산의 행방이 아직 묘연하다고 한다.  맨해튼 근처의 카디나 섬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근처의 오크라코크 섬에서 해적의 보물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데..  이 책에서도 프랑스에서 1758년에 만든 자메이카 보물지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해적들 덕분에 보물을 거머쥔 진짜 주인공들은 바로 해적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영화로 재생산해낸 사람들이 아닐까.  이를테면  매력적인 해적 존 실버 선장이 등장하는 <보물섬>을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든가, 길버트와 설리반이 쓴 희극적인 오페라 <펜젠스의 해적들>이라든가, ‘캐리비언의 해적’ ‘후크선장’등의 해적영화를 만든 헐리우드 영화사들 말이다.




해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사진 자료와 첨부자료, 그리고 세련된 그래픽과 디자인으로 치장한 책을 통해 만나는 일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꺼내 보여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핸드폰에 이 책의 사진을 담아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이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부탁했다나...) 지금이야 해적을 낭만적인 모험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실제로 해적과 맞닥뜨린다면 끔찍하고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허구로서의 해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해적을 소개받으면서도 여전히 그 이름 위에 낭만을 덧씌우는 아이들을 보며 그저 웃음 짓는다.

해적은 이제 현실이 아니라 꿈이며 낭만으로 변한지 너무 오래라서 굳이 아이들에게서 그걸 빼앗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08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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