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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흰기러기>. 폴 갤리코라는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이 책이 1941년 당시 베스트셀러였고 작가에게 오헨리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긴 책이라는 간단한 소개글 정도의 밑천만 갖고 첫 장을 펼쳤다.
<흰기러기>와 <작은 기적>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 두 편이 책의 전부였고 두께도 얇고 행간도 넓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조금은 만만한 기분으로 집어든 책이기도 했다. 노틀담의 곱추를 연상시키는 우울한 표지그림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흰기러기
그레이트 마시라는 큰 늪지대의 낡은 등대에 살고 있는 필립은 비틀리고 구부러진 흉측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따뜻하고 고운 심성을 가지고 있다. 늪지대를 찾아 날아온 새들을 돌보고 등대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던 필립은 어느 날 사냥꾼 총에 맞은 흰기러기를 안고 찾아온 소녀 프리다와 고운 인연을 맺게 된다. 흰기러기와 프리다, 필립은 해가 거듭되면서 마음과 영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로 이어진다. 필립은 프리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속으로만 그 사랑을 간직한다. 2차 세계대전 중인 어느 날, 자신이 필립을 사랑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은 프리다는 필립의 등대로 향한다. 그러나 필립은 자신의 나룻배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독일군부대에 포위당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영국군들을 구하기 위해 덩게르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채 헤어진 두 사람은 그것이 마지막이 되고 만다.
덩게르트에서 독일군의 포위를 뚫고 구출된 영국군에 의해 전해지는 필립의 용감한 행동은 한 마리 흰기러기와 함께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프리다는 필립을 따라 날아갔던 흰기러기가 돌아와 등대를 휘감으며 나는 것을 보고는 필립의 죽음을 알게 된다. 프리다는 필립의 영혼과 함께 날고 있는 흰기러기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한다.
맑고 차분한 문체로 전해지는 애잔한 사랑이야기가 추운 겨울 웅크렸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놓았다. 이런 사랑이야기를 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사랑도 속전속결해야 하고 쿨해야 한다는 요즘의 애정법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정말 고전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속으로는 이런 사랑이 날이 갈수록 푸석해져가는 이 메마른 마음 사이로 따스하게 흘러주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게 현대인들 아닐까....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닫아버리고 어리석어 보일까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저울과 눈금자를 들이미는 이 황량한 ‘현대’라는 늪지대에서 낡은 등대를 지키며 살아가는 따뜻하고 고운 심성을 가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그가 될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작은 기적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성인이 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인데 청빈한 수도자로 동물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그 성인이 남긴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성당 신자들 사이에 애송되는 기도이기도 하다. ‘작은 기적’은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아시시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고아소년 페피노는 부지런하고 유순하며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당나귀 비올레타와 함께 시장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착한 소년이다. 페피토에게 비올레타는 ‘어머니이자 아버지였고, 형제이자 친구, 그리고 동반자이자 위안’(p.84)이였기에 페피노는 비올레타에게 언제나 사랑을 쏟았고 비올레타는 그런 페피노에게 ‘충성과 순종과 애정으로 보답했다.(p.85)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비올레타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이다. 애가 타던 페피노가 비올레타를 살려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비올레타를 동물을 사랑했던 성 프란시스의 납골묘까지 데리고 가서 병이 낫도록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페피노는 기적을 믿었기에 실행에 옮겼지만 성 프란시스는 교회의 평신도 관리인에게 기적의 성인이 아니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단이 된지 오래였다. 평신도 관리인은 페피노의 부탁을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자상한 다마코 신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낭패를 본 페피노는 평신도 관리인에게 명령을 내려 자신의 계획을 가능하게 해줄 더 높은 사람을 찾게 되었고 결국 교황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신앙은 논리가 아니라 신비라는 말이 있다. 과학적으로 따져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경이롭게 펼쳐지는, 그저 순간의 깨달음처럼 번쩍이는 신비로 찾아오는 것이 신앙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똑똑한 자들에게는 감추고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펼쳐 보이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말씀이 성서에 있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굳이 신앙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순수’라는 것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 더 가까운가. 페피노인가, 다마코 신부인가, 평신도 관리인인가. 지금의 내가 평신도 관리인의 모습을 너무 많이 닮아 버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그건 단순히 내가 순수하지 않다는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 속의 평신도 관리인이 페피토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았듯이 나도 누군가의 순정한 마음을 짓밟고 상처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두 편의 글이 끈적임 없이 맑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어쩌면 요즘 소설들에 비해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괴기와 엽기마저 판치고 있는 소설계에서 이 책의 서정성은 상큼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각박하고 삭막한 요즘의 현실을 비판하는 아름다움을 갖췄다는 생각마저 드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08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