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달도 더 된 사진들이다.
뮤지컬 캣츠를 너무 좋아해서 노래를 몽땅 외우고 있는 유진이가
오리지널 공연을 보러가자고 졸랐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같이 보게 된 캣츠.
(남편의 크나큰 배려로 VIP석에서도 소위 말하는 잴리클 석에서
관람하는 영광을 누렸다, 내 인생에 길이 기록해 두어야 할 사항이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샤롯데 극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하고 있는 외국인들,,,
유진이가 캣츠 배우들 아니냐며 같이 사진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머뭇거리며 말걸기를 망설이기에
'딸을 위해서라면!'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내가 말을 걸었다.
당당하게 영어로,

"Are you a CATS actor?" 하고..
그랬더니 "Yes!"하더구만.
그래서 사진 찍는 시늉으로 바디랭귀지를 구사했더니
"OK!"

그래서 캣츠에서 무슨 역할을 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팜플렛 뒤져보니까 아무래도 마법사 고양이 미스토 펠리스가 아닌가 싶다.
우리끼리 대박 났다며 너무너무 좋아했었다.
유진이는 그 사람이 미스토 펠리스인줄 알았다면
자기가 노래를 불러주는 거였는데, 하며 아쉬워한다.
미스토 펠리스는 대사가 없는 고양이지만 럼텀터거가 미스토 펠리스를 소개하는
노래가 있으니까 그걸 불러주고 싶다는 뜻이다.
한 술 더 떠서 사진 찍을 때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캣츠공연단 버스에라도 올라가서
럼텀터거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하며 무척 안타까워했었다.

공연으로 말하자면...
럼텀터거 역에 조금 실망.  미스토 펠리스는 무척 만족.
아무래도 전설적인 럼텀터거, John Partridge가 너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인듯.
DVD에서 그가 보여주는 럼텀터거는 정말 환상적이다.

아무튼 6월 10일 8시, 딸과 함께 캣츠를 보는 동안 남편은 유빈이랑 명보를 데리고
롯데월드에서 놀고 있었다는,,,, ㅎㅎㅎ
그리고 아직도 유진이는 캣츠에 나오는 노래들을 입에 달고 흥얼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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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유진이가 34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이 녀석 초췌한 모습으로 지쳐 돌아올 줄 알았더니
지나치게 싱싱했다.
떠날 땐 서로 서먹했던 아이들끼리 지나치게 친해져서
공항에서 서로 끌어안고 핸드폰에 서로들 번호 찍고 사진찍고 난리도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문자질이다. ㅎㅎ
어제만해도 시차적응이 안된 너덧명의 아이들끼리 새벽 다섯시까지
문장를 주고 받느라고 분주했다.

유럽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그 곳에서 쓴 기행문을 들여다보면서,
유진이는 다시 돌아가고 싶단다.
(그렇겠지, 왜 아니겠어.)

큰딸이 돌아오기 전에 우리 부부는 농담삼아
"얘, 오기 싫어서 거기 수도회에 수녀로 입소해서 그냥 눌러살겠다고 하는 거 아냐?"하며
낄낄거리곤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현실적응에 무지 애를 먹고 있는 중이다.

내일이면 개학이다.
방학숙제는 해가야 한다며 오늘도 정신이 없다.
내일이면 평화가 돌아올까????

우선 파리에서 찍은 사진만 살짝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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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공주 힘찬문고 35
조지 맥도널드 지음, 김무연 그림, 이수영 옮김 / 우리교육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들은 모두 하나같이 완벽한 모습들이다.  재투성이거나 100년 동안 잠을 자더라도, 그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마음씨도 고울 뿐 아니라 역경 앞에서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하늘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그 인내와 착한 마음, 완벽한 미모에 대한 보상으로 그녀들은 백마를 타며 등장하는 멋진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한평생을 보내게 된다는 게 주된 줄거리다.  외적인 상황이 그녀들에게 고난과 역경을 가져오지만, 그 역경과 고난이라는 게 오히려 그녀들을 더 돋보이게 하지 않던가. 그녀들에게는 그저 참고 기다리면 행복은 굴러들어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그녀들은 현대여성의 모델로는 기준미달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해서 그녀들이 만들어낸 온갖 신드롬과 콤플렉스들을 생각하면 속았다는 불쾌함과 함께 아직도 이 사회 속에 건재하고 있는 공주에 대한 환상과 고정관념들에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여기 또 하나의 공주 이야기가 있다.  <가벼운 공주>라는 독특한 제목이 <종이봉지 공주>만큼이나 눈에 확 들어온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공주 까부수기에 은근히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조지 맥도널드다.  지금 중3인 큰딸이 초등학교 2,3학년 때쯤 이 작가가 쓴 <공주와 고블린>이란 책을 무척 좋아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과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이 좋아하는 작가였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공주와 고블린>이라는 책에서도 ‘아이린’이라는 이름의 공주가 등장하는데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파격적인 외모를 갖추지는 못한 아름다운 공주지만, 모험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벼운 공주>는 <공주와 고블린>에 등장하는 아이린보다 훨씬 더 독특하다.  고모인 마켐노이트 공주(사실은 사악한 마녀)의 저주 때문에 무게를 잃어버린 공주는 단순히 몸무게 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무게를 모두 잃게 된다. 바로 이 ‘무게’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상상력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무게를 잃었기 때문에 공중을 둥둥 날아다니는 공주는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에 대한 정서적 공감과 소통이 불가능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불가능한 공주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가벼운 자기 세계 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세계를 확장하는 일 자체가 고모의 저주로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공주에게 가장 좋은 일은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게가 없는 공주가 무엇엔가 빠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라고.  이런 공주가 자기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하고 있는 왕자의 노래를 듣고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단순한 문장은 가벼운 공주가 타인과의 진지한 관계 맺기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고 이는 곧 그녀의 가벼운 세계에 금이 가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공주는 호수에 빠져 죽을 뻔한 왕자를 구해내고 생전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내고 무게를 되찾는다.  작가는 ‘마침내 그 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공주가 두 발로 서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마침내 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무게를 찾고 내 두 발로 설 수 있다는 그 말이 어쩐지 가슴에 와 박혔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너무나 가벼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겪어가야 할 일들을, 너와 내가 함께 따뜻한 관계를 일구어야 가야 하는 일들을 아직도 충분히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도 너무나 가벼운 사람으로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에 <가벼운 공주>와 함께 <거인의 심장>이라는 동화가 한 편 더 들어있다. 트릭시위와 버피보브라는 남매가 우연히 거인의 나라로 들어갔다가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못된 거인 선더섬프를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해를 맞이하러 가기 위해 가족을 돌보지 않는 종달새를 보고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가 아름답고, 거인 선더섬프가 아주 어린 아이들을 잡아먹고는 그 죄책감을 씻기 위해 일요일에 희고 긴 양말을 신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야기 마지막에 트릭시위와 버피보브는 거인의 심장을 쥐고 위협하면서 선더섬프에게 어린아이를 잡아먹지 않고 거인국 국경을 넘어오지 말라는 것과 함께 ‘앞으로 다시는 평생토록 일요일에 흰 긴 양말을 신지 말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과오를 우스꽝스러운 방법으로 합리화하고 위로하는 우리 모습에 대한 풍자다.  일주일 내내 죄를 짓고는 주일에 교회에 가니까 자기는 착한 사람이고 구원받을 것이라 떠드는 사람과 선더섬프의 모습이 뭐가 다를까.  우리는 모두 거인 선더섬프의 희고 긴 양말을 가지고 사는 셈이 아닐까. 

1800년대를 산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당시로서는 꽤 새롭고 신선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나도 뭔가 고전적인 분위기이면서도 새롭고 참신한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재투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손톱 밑이 까맣지도 않을 뿐 아니라 희고 매끈한 손을 유지한 신데렐라나 100년 동안 잠을 자고도 왕자님의 입맞춤 한 방에 침 흘린 자국이나 눈꼽 하나 달지 않고 냉큼 깨어나는 미녀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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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행진 - 야누시 코르차크 양철북 인물 이야기 1
강무홍 지음, 최혜영 그림 / 양철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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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 야누슈 코르착.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그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폴란드 고아들의 아버지이며 어린이 인권의 주창자, 의사이자 훌륭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타이틀은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은 눈에 보이는 업적보다도 ‘사랑한다.’라는 말이 가진 의미, 그 거대함과 감당키 어려운 무게감을 온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받아 안은 그 품의 넓이와 깊이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당시의 배고프고 상처 받은 고아들의 곁으로 떠나 아이들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 그리고 사랑을 심어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게토 지역으로 쫓겨나게 된 그와 아이들은 두려움과 공포, 배고픔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어려움을 견뎌가지요.  특히 그는 몸소 구걸을 하면서까지 아이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려 했고,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음악회를 열면서 아이들의 마음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지워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에 의해 게토의 아동시설마저 폐쇄되고 아이들이 가스실로 이송되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그는 아이들에게 가장 깨끗한 옷을 입히고 숲을 상징하는 초록 깃발을 높이 들게 하고는 ‘여름 휴가’를 가는 거라며 200여 명의 아이들과 ‘천사들의 행진’을 시작합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가스실로 향하는 그 죽음의 기차에 오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훌륭함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피신시키려 했으니까요.  기차에 오르는 마지막 순간에는 독일군 사령관으로부터 석방 허가까지 받았지만 ‘그는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습니다.’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순교를 앞두고는 깊은 고뇌에 빠져 순교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만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었을 때,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할 합리화의 근거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아이들과 마지막을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행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진정한 아버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사회복지 사업가나 교육자이기만 했다면 기차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았을 겁니다.  복지사업 대상자는 그 아이들 말고도 많았을 것이고,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런 시각에서라면 그의 죽음은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는 아버지였습니다.  그것도 믿음직스럽고 사랑 깊은 아버지였지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고통 속에 버려두고 혼자서만 살겠다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아버지로서는 그럴 경우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회사업가나 교육자가 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숙연해졌습니다. 덧붙여 야누슈 코르착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운명을 같이한 ‘고아들의 어머니 스테파니아’의 삶과 죽음도 야누슈 코르착 못지않게 훌륭하고 위대했음을 새롭게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사기법’이라는 어려운 방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이 책의 글과 참 잘 어울립니다.  당시의 어둡고 짓눌린 분위기는 물론이고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야누슈 코르착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것까지도 따뜻한 배경색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외국작가의 글과 그림인 줄 알았다가 우리 작가의 것이라는 걸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답니다.  그만큼 글과 그림이 책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는 뜻이겠지요.  아이들에게 보충해서 설명해줄 수 있도록 그림책 뒤편에 야누슈 코르착에 대한 설명글과 자료 사진들을 따로 실어놓은 것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야누슈 코르착이 아이들과 ‘천사들의 행진’을 할 때 ‘숲을 상징하는 초록 깃발’을 들었다는 글과는 달리 그림에선 유태인을 상징하는 별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들이 읽는 책이고 글과 그림이 함께 중요한 장르인 그림책이니만큼 사소한 것에도 세밀한 주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라도 바로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이 출판사의 인물이야기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인데 그 첫 걸음이 묵직하고 참신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위 말하는 기존의 ‘위인전’류를 버전만 바꾸어 찍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훌륭한 인물 이야기를 잘 어울리는 좋은 그림과 함께 소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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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랑 딱 맞는 어떤 사람,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텔레파시처럼 지지직 통하는 그런 사람, 결코 풀어지지 않는 운명의 끈으로 단단히 엮인 사람, 서로의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되고 절대로 나를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남겨주지 않는 사람을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러나 ‘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관계’ 속에서 나는 찢기고 찢겨서 너덜거린 적도 있었고, ‘관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깊이 외로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는 노래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 과정 속에서 ‘관계’에 대한 모든 꿈과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고, 저절로 이어지는 ‘관계’는 있을 수 없으며 서로 노력을 기울여도 자칫하면 깨질 수 있는 게 ‘관계’라는 것을 배웠다. 그건 연인관계에서도, 부부관계에서도, 친구관계나 부모자식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때는 아니더라도 중고등학생 때나, 뭐 대학 다닐 때라도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시행착오를 좀 덜 겪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좀 더 일찍 성숙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이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에게 선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 의하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마치 만화 속 로봇들이 변신 합체하듯이 두 사람이 만나 너도 나도 아닌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내가 너를 만났다고 갑자기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상이 확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너와의 만남으로 한동안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쁠 수는 있지만, 평생을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가끔은 없어지는 열쇠나 가끔 막히는 자물쇠’같고 ‘드넓은 바다 위에 따로 떠있는 두 개의 섬’이며 ‘나란히 한쪽으로 나 있는 두 창문’이고, ‘모래시계의 두 그릇’이며 ‘지붕을 받치는 두 벽’이고 때로는 ‘서로 엇갈리는 낮과 밤’이고 ‘뿌리가 얽혀 나란히 자라는 서로 다른 두 나무’이기도 하고, ‘바퀴 하나에 바람이 빠지면 다른 바퀴가 멀쩡해도 달릴 수 없는 자전거의 두 바퀴’이고 ‘단단히 서로 엮인 사랑에 관한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가 되기도 할 뿐이다.  나를 버리고는 너에게 이를 수 없고, 네가 나를 사랑해서 너 자신을 버리는 순간 내가 사랑하던 대상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건 단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뿐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그렇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라도 그 아이는 자주 내가 열지 못하는 꽉 막힌 자물쇠가 되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을 가진 섬이기도 하며, 배터리가 떨어진 시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너에 대해 다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서로에게 줄 상처가 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려운’ 이 관계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좀 더 현명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마음을 가다듬으며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관계에 대한 비유들이 절묘하고 초현실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즐겁다.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이지만,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성인까지 두루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연륜과 경험의 깊이에 따라 울림이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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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1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새로운 상상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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