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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행진 - 야누시 코르차크 ㅣ 양철북 인물 이야기 1
강무홍 지음, 최혜영 그림 / 양철북 / 2008년 6월
평점 :
낯선 이름, 야누슈 코르착.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그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폴란드 고아들의 아버지이며 어린이 인권의 주창자, 의사이자 훌륭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타이틀은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은 눈에 보이는 업적보다도 ‘사랑한다.’라는 말이 가진 의미, 그 거대함과 감당키 어려운 무게감을 온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받아 안은 그 품의 넓이와 깊이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당시의 배고프고 상처 받은 고아들의 곁으로 떠나 아이들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 그리고 사랑을 심어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게토 지역으로 쫓겨나게 된 그와 아이들은 두려움과 공포, 배고픔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어려움을 견뎌가지요. 특히 그는 몸소 구걸을 하면서까지 아이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려 했고,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음악회를 열면서 아이들의 마음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지워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에 의해 게토의 아동시설마저 폐쇄되고 아이들이 가스실로 이송되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그는 아이들에게 가장 깨끗한 옷을 입히고 숲을 상징하는 초록 깃발을 높이 들게 하고는 ‘여름 휴가’를 가는 거라며 200여 명의 아이들과 ‘천사들의 행진’을 시작합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가스실로 향하는 그 죽음의 기차에 오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훌륭함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피신시키려 했으니까요. 기차에 오르는 마지막 순간에는 독일군 사령관으로부터 석방 허가까지 받았지만 ‘그는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습니다.’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순교를 앞두고는 깊은 고뇌에 빠져 순교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만큼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었을 때,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할 합리화의 근거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아이들과 마지막을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행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진정한 아버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사회복지 사업가나 교육자이기만 했다면 기차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았을 겁니다. 복지사업 대상자는 그 아이들 말고도 많았을 것이고,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런 시각에서라면 그의 죽음은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는 아버지였습니다. 그것도 믿음직스럽고 사랑 깊은 아버지였지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고통 속에 버려두고 혼자서만 살겠다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아버지로서는 그럴 경우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와 함께 죽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회사업가나 교육자가 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숙연해졌습니다. 덧붙여 야누슈 코르착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운명을 같이한 ‘고아들의 어머니 스테파니아’의 삶과 죽음도 야누슈 코르착 못지않게 훌륭하고 위대했음을 새롭게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사기법’이라는 어려운 방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이 책의 글과 참 잘 어울립니다. 당시의 어둡고 짓눌린 분위기는 물론이고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야누슈 코르착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것까지도 따뜻한 배경색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외국작가의 글과 그림인 줄 알았다가 우리 작가의 것이라는 걸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답니다. 그만큼 글과 그림이 책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는 뜻이겠지요. 아이들에게 보충해서 설명해줄 수 있도록 그림책 뒤편에 야누슈 코르착에 대한 설명글과 자료 사진들을 따로 실어놓은 것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야누슈 코르착이 아이들과 ‘천사들의 행진’을 할 때 ‘숲을 상징하는 초록 깃발’을 들었다는 글과는 달리 그림에선 유태인을 상징하는 별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들이 읽는 책이고 글과 그림이 함께 중요한 장르인 그림책이니만큼 사소한 것에도 세밀한 주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라도 바로 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이 출판사의 인물이야기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인데 그 첫 걸음이 묵직하고 참신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위 말하는 기존의 ‘위인전’류를 버전만 바꾸어 찍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훌륭한 인물 이야기를 잘 어울리는 좋은 그림과 함께 소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