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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ㅣ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8년 6월
평점 :
나랑 딱 맞는 어떤 사람,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텔레파시처럼 지지직 통하는 그런 사람, 결코 풀어지지 않는 운명의 끈으로 단단히 엮인 사람, 서로의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되고 절대로 나를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남겨주지 않는 사람을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러나 ‘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관계’ 속에서 나는 찢기고 찢겨서 너덜거린 적도 있었고, ‘관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깊이 외로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다는 노래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 과정 속에서 ‘관계’에 대한 모든 꿈과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고, 저절로 이어지는 ‘관계’는 있을 수 없으며 서로 노력을 기울여도 자칫하면 깨질 수 있는 게 ‘관계’라는 것을 배웠다. 그건 연인관계에서도, 부부관계에서도, 친구관계나 부모자식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때는 아니더라도 중고등학생 때나, 뭐 대학 다닐 때라도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시행착오를 좀 덜 겪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좀 더 일찍 성숙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이나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에게 선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 의하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마치 만화 속 로봇들이 변신 합체하듯이 두 사람이 만나 너도 나도 아닌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내가 너를 만났다고 갑자기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상이 확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너와의 만남으로 한동안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쁠 수는 있지만, 평생을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가끔은 없어지는 열쇠나 가끔 막히는 자물쇠’같고 ‘드넓은 바다 위에 따로 떠있는 두 개의 섬’이며 ‘나란히 한쪽으로 나 있는 두 창문’이고, ‘모래시계의 두 그릇’이며 ‘지붕을 받치는 두 벽’이고 때로는 ‘서로 엇갈리는 낮과 밤’이고 ‘뿌리가 얽혀 나란히 자라는 서로 다른 두 나무’이기도 하고, ‘바퀴 하나에 바람이 빠지면 다른 바퀴가 멀쩡해도 달릴 수 없는 자전거의 두 바퀴’이고 ‘단단히 서로 엮인 사랑에 관한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가 되기도 할 뿐이다. 나를 버리고는 너에게 이를 수 없고, 네가 나를 사랑해서 너 자신을 버리는 순간 내가 사랑하던 대상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건 단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뿐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그렇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라도 그 아이는 자주 내가 열지 못하는 꽉 막힌 자물쇠가 되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을 가진 섬이기도 하며, 배터리가 떨어진 시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너에 대해 다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서로에게 줄 상처가 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려운’ 이 관계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좀 더 현명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마음을 가다듬으며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관계에 대한 비유들이 절묘하고 초현실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즐겁다.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이지만,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성인까지 두루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연륜과 경험의 깊이에 따라 울림이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