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이제 곧 40이다.
"어른답다"라는 말의 무게가 정말 실감나게 느껴진다.
어른으로서의 원숙한 향기를 풍겨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물리적인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의 불균형이라니..
비극이다.
그것도 아주 추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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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2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6-12-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모습이신가요??눈이 참 이쁜 모습이에요..
40이란 나이는 제게 왜 슬프게 들리더라구요..예전부터말이에요..하지만 닥치면 또 살만하다는 ....
균형을 이루며 잘 견뎌 냅시다..

섬사이 2006-12-1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스물다섯에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일찍 한 편이죠? 그런데 제 친구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했어요.
배꽃님, 제 눈만 찍은거예요. 점점 눈가가 쳐지는 것처럼 보여서요. 20대에서 30대로 들어설 때랑 많이 다르네요. 40대로 들어선다는 거요.

2006-12-12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2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6-12-1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저도 사람이름과 얼굴 외우는 거에 참 더딘 편이라서 님의 실수에 까탈부릴 처지가 못된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저의 닉넴보다 더 좋은 닉넴으로 불러주시면 제가 닉넴을 바꿀수도.. 하하하

꽃임이네 2006-12-12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속삭였답니다 ,정말 님 이신가요 .아름다우십니다 ,ㅎㅎ행복한 오후되세요님

프레이야 2006-12-1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눈이 참 맑고 고와요. 물리적 나이와 정신적/심리적 나이,, 저도 멀어요. 그래도 님, 사십은 아름다운 나이랍니다. 그리고 그 간격이 그리 추한 것도 아니어요. 충분히, 그래서 더욱 봐줄만 하답니다.^-^

섬사이 2006-12-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 고마워요. 사진이 좀 잘나온 것 같아요. 거기다가 갈색톤에 오래된 사진처럼 수정을 해서 더 그런 것 같네요.
배혜경님, 노화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노력하려구요. 고집불통 외골수에 인색하고 궁상맞은 노년을 맞고 싶진 않거든요. 네, 아름다운 사십대가 될수 있도록 으랏차차~~할 겁니다. ^^
 
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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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종종 가출을 상상하거나 더 나아가 계획을 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나아가 실제로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가출은 부모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생각만해도 가슴떨리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고 나면 아이들은 부모의 지시와 참견, 잔소리등에서 벗어나고 싶어 독립을 꿈꾸고,  그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가출'은 꽤 매력적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너무 충동적이라 본인 인생에 생각만큼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클로디아는 꽤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다.  클로디아가 세운 가출 계획은 맹랑하고 깜찍해서 가출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자고로 말이야, 가출이란 건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거야' 하고 잔소리를 곁들여가며..

클로디아는 남동생 제이미와 함께 가출을 하기로 결심한다.  가출동기는 가정내의 성차별과 늘 똑같은 일상을 참을 수 없어서이다.  제이미를 가출동지로 선택한 건 제이미가 돈이 많아서이고, 가출 장소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야무진 클로디아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머물게 된것을 공부하고 배우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부하기로 한 첫날 이탈리아 르테상스 전시관에 갔다가 문제의 천사조각상을 보게 된다. 

그날부터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그 천사상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데만 온힘을 기울이게 된다.  <뉴욕타임즈>를 읽고 도서관에 가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자료를 찾고, 미켈란젤로의 표시를 찾고,  결국엔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프랭크와일러 부인을 찾아가게 된다.

'내가 자네한테도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찾아야 할 대상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유익할 때가 많다고 말이야.'

클로디아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했다.  '다른 사람'이 되는 방법은 '비밀'을 갖는 것이다.

' 비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클로디아가 원했던 일이야.  천사상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클로디아를 설레게 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지.  클로디아는 모험을 바라지 않아. 모험을 하기에는 목욕과 편안한 느낌을 너무 좋아하거든.  클로디아에게 필요한 모험은 바로 비밀이야.  비밀은 안전하면서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비밀이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아이의 모든 것을 너무 꼬치꼬치 캐물어 알려고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비밀을 가짐으로써 자기를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을테니까.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비밀을 가진 아이가 좀 서운하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사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클로디아의 할아버지이자 자신의 변호사이기도 한 색슨버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물론 너희는 지금도 배워야 하고,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거야.  하지만 너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들이 스스로 무르익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도 세상일에 훤해지는 날도 올게다.  그러면 느껴질 거야.  만약 느낄 만한 여유가 없다면, 그건 사실들을 그냥 쌓기만 했다는 거야.  그렇게 쌓인 사실들은 안에서 요란하게 들썩이며 까불대겠지.  사실을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런 소움을 낼 수는 있지만 뭔가를 진정으로 느낄 수는 없지.  그것은 다 쭉정이들이니까.'

현명하고 지혜로운  프랭크와일러 노부인의 보석같은 말들이  있어 더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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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엄마 김순영의 아이밥상 지키기
김순영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몇 해전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발간했던 것인데, 방송이라는 매체가 가진 여러가지 제약들 때문에 미처 방송에 내보내지 못했던 것까지 묶어서 펴낸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며 우리가 무심코 먹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이후에 내 식생활패턴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먹거리에 대한 찜찜함은 늘 마음 한구석에 옹크리고 있어서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사주거나 외식을 할 때면 개운치 않은 무언가가 찌꺼기처럼 남곤 했다.  알면서도 실천할 수 없었던 나와는 달리 '환경엄마'라는 별칭까지 얻어가며 '아이밥상을 지키'고 있다는 책 제목에 끌려서 책을 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 김순영씨가 우리 엄마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라면 아이와의 싸움에서 엄마들이 당당히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제철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고, 육류 위주의 식단을 바꾸고, 식용유의 사용을 자제하고, 현미밥을 먹고, 패스트푸드를 멀리한다는 갖가지 원칙들이야 이미 웬만한 주부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원칙들이다. 실천이 안되서 그렇지..

그런 원칙들 보다 이 책에서 더 유심히 봐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로서의 저자가 그런 나쁜 먹거리들의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밥상을 지켜온 과정들이다.  아이들에게 식품첨가물과 유전자조작식품들에 대한 위험성을 알려주고,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의 점심 식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는 실천의 움직임들이 나에겐 더 크게 다가왔다.

책의 뒷부분에는 환경엄마 김순영씨가 제안하는 건강밥상 요리법들이 나와있다.  이유식부터 아이들 간식거리에 이르기까지 나와있는 요리법이 꽤 다양하다. 

책을 읽었으니 실천이라도 해봐야지 싶어 요리법 중에 현미식혜를 만들어 보았다.  현미라 그런지 일반식혜의 밥알 보다 거칠고 뻣뻣했다.  그래도 건강에 좋다는데... 저녁에 아이들과 남편에게 예쁜 그릇에 담아 냈다.  아이들과 남편의 반응. "이게 뭐야?" 

"뭐긴~~ 식혜지. 어서 먹어봐. 내가 특별히 공들여서 만든거야."

"근데 왜 시커매?"

"몸에 좋은 현미로 만들어서 그래."( 먹진 않고 자꾸 따져 묻는 애들과 남편에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에이~~ 좀 그렇다."

마지못해 한모금 입에 떠넣더니, 우리 남편이 하는 말.

"난 됐다.  OO 엄마 다 먹어. "

그날 밤,  마누라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만든 건데 애들 앞에서 그냥 '맛 괜찮네'하며 먹어주지 한 모금 먹는 시늉만 하고는 '너 다 먹어라'하면 어떻게 하냐며 난 남편에게 싸움을 걸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밥상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고난의 길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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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홀든 콜필드 16살 사춘기의 소년.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정말 질풍노도답게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학교생활의 부적응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을 바라보는 콜필드의 시선 역시 그 나이의 소년답다. 

사춘기 소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어린이 시절에서 사춘기로 접어들 때의 불안과 당황스러움을 기억한다면 콜필드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어린시절에 동경하는 어른의 세계는 완벽하고 안정되어 있으며, 어떤 일 앞에서도 흔들림없이 강하고 고상할 뿐 아니라 막강한 권력과 무한한 자유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였다.  조금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법도의 세계. 어서 자라서 나도 그 세계에 빨리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았었던가.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어른들이 생각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기적인 모순덩어리이며 계산적이고 비겁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속물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선생님을 비롯한 기성세대에 반항하고, 동시에 허점투성이인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룰에 아무런 비판도 없이 순응하는 친구들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꼭 콜필드가 그렇다.  퇴학당하는 자기를 불러서 훈계하는 스펜서 선생님에게서 비열한 자기과시욕을 엿보게 되며, 기숙사 동료 스트라드레이터의 아무런 의식도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게 되기도 하고, 형 D.B의 헐리우드 진출을 두고 속물의 냄새를 맡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콜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난 싫어.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어해. 그 뿐만이 아니야. 모든 것이 다 그래. 뉴욕에서 사는 것도 싫고, 택시니, 매디슨 가의 버스들, 뒷문으로 내리라고 고함이나 질러대는 운전 기사들, 런트 부부를 천사라고 그러는 멍청이에게 소개되는 일이나, 밖에 잠깐 나가려고 해도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 일이나, 브룩스에 가서만 바지를 맞추는 놈들, 언제나 사람들은..."

"언제 한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같은 녀석들 뿐일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축구팀이 경기에서 지면 온갖 욕설이나 해대고, 온종일 여자나 술, 섹스 같은 이야기만 지껄여대. 더럽기 짝이 없는 온갖 파벌을 만들어, 그놈들끼리 뭉쳐 다니지 않나.  ..(생략)"

콜필드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초등학교 4학년짜리 여동생 피비뿐이다.  또다른 남동생 앨리를 그리워하지만 그 동생은 백혈병으로 죽어버렸다.  왜 콜필드가 편안함을 찾는 곳은 어린 동생들에게서 뿐일까.  그건 아마도 콜필드가 이미 떠나온 세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콜필드가 가야하는 어른의 세계가, 또는 어른으로 가는 그 과정이 감수성 예민한 콜필드가 소화하기엔 너무 역겹고 삼키기엔 너무 단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 피비에게서 지나간 자기의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보고 편안해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책 마지막에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그 때가 오면, 세상의 부조리함도 사람들의 비열함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주는 너그러움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아니, 너그러움이 아니라 체념이라 해야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지금도 콜필드처럼 방황하고 있을 우리의 십대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건,  우리 기성세대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한  스스로 우리의 잘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부끄럽고 미안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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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2-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이 리뷰를 보면서 이제야 제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듯 했더랍니다..
어제 밤에 분명 추천도 했는데 왜 없어졌지?/
알라딘 귀신이 물어갔나??

섬사이 2006-12-1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번째 읽고서야 리뷰를 쓰게 되네요. 그냥 덮어둔 책들의 기억을 되살리려면 다시 읽는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확실치 않은 기억에 의존해서 리뷰를 쓰자니 찜찜하구요. 다시 또 펼쳐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던데요.
 

우리집엔 키재기 벽이 있다.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에도 키재기 벽이 있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8년에 걸친 성장기록이 담겨 있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벽을 뜯어올 수는 없으니 참 아쉬웠다.

이사오고 나서 한동안 아이들 키를 재지 않다가 지난 10월에 아이들이 키재기 벽을 만들자고 졸라대기에 안방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좁다란 벽에 오랜만에 아이들 키를 재어 표시해 두었다.  이번엔 막내 비니까지 포함해서. 앞으로 이 집에서 사는 동안엔 우리 아이들의 성장 기록판이 되어줄 벽이 생긴 것이다.

이제 겨우 한달하고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아이들이 또 키를 재보자고 했다. 얼마나 자랐을라구~하면서 재미삼아 키를 쟀는데 둘째 뽀와 막내 비니는 거의 2센티미터정도 더 자란 것 같다.  첫째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이 더디어 지는지  1센티미터도 안되게 자랐고.    뽀는 뽐내가며 지 누나를 쳐다보았고 첫째는 그런 뽀를 까불지말라는 듯 꿀밤을 때렸다. 

첫애가 언젠가부터  내 키를 넘어섰다.  씽크대 찬장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이 손끝이 닿을락말락해서 애먹고 있을 때 이제 첫째가 와서 쓰윽 꺼내 내려준다.  그러면서 뽀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도 조금은 거만한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보곤 한다는 걸 첫애는 모르나 보다.

키는 길이를 의미하는 거라서 그런지 수첩에 숫자로 기록되는 것보다 벽에 눈금으로 표시하는 편이 훨씬 시각적으로 와닿는다.  아이들도 눈금 옆에 써놓은 날짜를 보면서 "애개.. 내가 (  )살 때 겨우 요만했어?"하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뽀는 누나 키를 따라 잡으려면 이만큼 더 커야 하는 거구나 하며 투지(?)를 불사르기도 한다.  나는.. 애들이 커가는 걸 기쁨 반, 서운함 반, 또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가지고 바라본다. 

아이들이 크는 키만큼 내 마음의 도량도 점점 크고 깊어져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품안에 쏘옥 안기던 작은 아기가 아니니까.. 내 품이 좁을 만큼 저리도 많이 컸으니까  마음으로 안아주는 수밖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풍덩 안겨와도 언제든 다 감싸 안을만큼 나도 아이들따라 커야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어느새 한 해가 다 가버렸을까.. 12월도 이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한살씩 더 나이를 먹었다고 즐거워할 것이다.  어릴 땐 나이 먹는 게 즐거우니까.  내년에 아이들은 또 얼마나 더 클까.. 다시 찾아올 봄엔 또 짧아진 아이들의 바지가 생겨있을 테고  새바지를 사야겠다며 나는 생활비를 계산해볼 것이다.  뽀는 운동화며 실내화가 작아졌다고 투정을 부릴 지도 모르겠다.  첫째의 사춘기는 더 깊어갈테고, 막내 비니는 기저귀를 뗄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에서 함께 해온 긴 시간들을 확인하고 웃겠지.  이제 함께 늙어가는 일도 같이  잘 해보자며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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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2-11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그래요..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섬사이 2006-12-1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부쩍 눈에 들어오고, 거울 속에 제 모습이 변해가는 것도 느낍니다. 늙어간다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