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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비밀 ㅣ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평점 :
아이들은 종종 가출을 상상하거나 더 나아가 계획을 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나아가 실제로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가출은 부모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생각만해도 가슴떨리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고 나면 아이들은 부모의 지시와 참견, 잔소리등에서 벗어나고 싶어 독립을 꿈꾸고, 그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가출'은 꽤 매력적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너무 충동적이라 본인 인생에 생각만큼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클로디아는 꽤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다. 클로디아가 세운 가출 계획은 맹랑하고 깜찍해서 가출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자고로 말이야, 가출이란 건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거야' 하고 잔소리를 곁들여가며..
클로디아는 남동생 제이미와 함께 가출을 하기로 결심한다. 가출동기는 가정내의 성차별과 늘 똑같은 일상을 참을 수 없어서이다. 제이미를 가출동지로 선택한 건 제이미가 돈이 많아서이고, 가출 장소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야무진 클로디아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머물게 된것을 공부하고 배우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부하기로 한 첫날 이탈리아 르테상스 전시관에 갔다가 문제의 천사조각상을 보게 된다.
그날부터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그 천사상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데만 온힘을 기울이게 된다. <뉴욕타임즈>를 읽고 도서관에 가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자료를 찾고, 미켈란젤로의 표시를 찾고, 결국엔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프랭크와일러 부인을 찾아가게 된다.
'내가 자네한테도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찾아야 할 대상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유익할 때가 많다고 말이야.'
클로디아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했다. '다른 사람'이 되는 방법은 '비밀'을 갖는 것이다.
' 비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클로디아가 원했던 일이야. 천사상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클로디아를 설레게 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지. 클로디아는 모험을 바라지 않아. 모험을 하기에는 목욕과 편안한 느낌을 너무 좋아하거든. 클로디아에게 필요한 모험은 바로 비밀이야. 비밀은 안전하면서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비밀이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아이의 모든 것을 너무 꼬치꼬치 캐물어 알려고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비밀을 가짐으로써 자기를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을테니까.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비밀을 가진 아이가 좀 서운하게 느껴지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사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클로디아의 할아버지이자 자신의 변호사이기도 한 색슨버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물론 너희는 지금도 배워야 하고,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거야. 하지만 너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들이 스스로 무르익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도 세상일에 훤해지는 날도 올게다. 그러면 느껴질 거야. 만약 느낄 만한 여유가 없다면, 그건 사실들을 그냥 쌓기만 했다는 거야. 그렇게 쌓인 사실들은 안에서 요란하게 들썩이며 까불대겠지. 사실을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런 소움을 낼 수는 있지만 뭔가를 진정으로 느낄 수는 없지. 그것은 다 쭉정이들이니까.'
현명하고 지혜로운 프랭크와일러 노부인의 보석같은 말들이 있어 더 빛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