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세계명화이야기
삼성출판사 편집부 지음 / 삼성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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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절판된 책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다.  큰 아이 유치원 다닐 무렵 사준 책이다.  이 책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세계명화>라고 지O사에서 나온 책도 구입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책이 아이들이 보기에 훨씬 수월하다.  수월하다는 의미는 책의 크기에 맞게 그림의 크기가 시원시원할 뿐 아니라 인쇄의 질도 더 좋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체로 써놓았기 때문이다.

큰아이의 경우 아뇰드 브론치노의 작품인 <시간과 사랑의 비유>라는 그림을 재미있어 했다.  아마 그림만 보았으면 벌고벗고 있는 여자와 아이들만 얼핏보고 넘겨버렸을 그림인데, 저자 김선정씨가 이야기처럼 풀어놓은 글을 통해 수수께끼처럼 숨어있는 그림들의 의미를 알고는 무척 재미있어 했다. 

절판이 되었다니 무척 아쉽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전시된 작품들 앞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는 일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미술전시회를 가면 작품앞에 머물러 감상할 틈도 없이 아이따라 휙휙휙 지나쳐버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출구에 와있게 된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올 때면 얼마나 허무한지.. 그럴 때 저자 김선정씨처럼 재미있고 쉽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다면 아이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의 외형 뒤에 숨겨진 넓은 세계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음악분야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주회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접하게 된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라든가 곡이나 악기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가며 진행되는 이야기 음악회등이 그것이다.  예술의전당이나 국악원 등에선 상설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분야에서는 아이들에게 만들기나 그리기를 지도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안다.  예술분야에서는 배우기 보다 즐기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아이가 그것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관련서적과 전시들이 양적으로도 다양해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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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바꾼 명화의 스캔들
조이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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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0년대 말이었을까? 현대미술관으로 뉴욕현대미술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본 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는데 앤디워홀의 작품 (마릴린 먼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과 신디셔먼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만 기억난다.  신디셔먼의 사진은 작품집에서 보며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엄청난 크기의 대작이었던 데서 오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신디 셔먼이 나와 같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곱상한 사진이 아니라 꽤 실험적인 사진(내가 생각하기에)이어서 사진집에서 볼 때도 인상적이었는데 거대한 작품을 앞에 두고는 감탄에 감탄을 마지 않았다.  이래서 실제 작품을 봐야 하는 거로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워홀의 작품은?  그 생경함 때문에 기억이 난다. 전시관을 보다가 난데없이 생뚱맞은 마릴린먼로. 그것도 갖가지 원색으로  똑같은 마릴린먼로를 여러 장 이어붙인 듯한... 실크스크린이라고? 그건 미대 다니던 오빠들이 포스터 작업 같은 거 할 때 쓰던 방법이었는데.. 오빠가 밀대로 실크스크린 물감을 밀어서 종이에 찍어내면 나는 그걸 한 장 한 장 잘 마르게 펼쳐 두곤 했었는데.. 이게 대체 뭐가 좋은 작품이라는 거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구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나 보수적인 부류에 속하는 인간형인가 보다.  새로운 정신, 새로운 시도, 새로운 모험 따위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걸 보면 말이다.

여기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책에는 전통과 보수, 고전주의 정신, 기존의 사조흐름 따위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온갖 비방과 욕설을 뒤집어쓰고 스캔들에 시달리면서 새로움을 창조해나갔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창조력이 부족한 단순 무식한 자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던  카르바조, 예술의 척도를 전통의 권위에서 개인의 주관성으로 옮겨온 낭만주의의 프리드리히, <올랭피아>, >풀밭위의 식사> <나나>같은 전통적인 누드화와 차별되는 작품때문에 또는 새로운 색의 시도로 구설수에 올라 괴로워했으나 종국엔 '인상주의를 가능하게 한, 미술사에서 기술적으로나 묘사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하여 20세기 회화를 전면적으로 바꿔놓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마네, 얼치기에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나치의 예술정책에 희생되어야 했던 뭉크,  레디-메이드 대량복제예술의 시대를 여는 뒤샹과 워홀이 그들이다. 

전통적인 흐름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뉴욕현대미술전을 본지 20 여 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나는 다다이즘이나 아방가르드 작품에는 약간 소화불량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뒤샹이나 워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 까지는 무리겠지만 그들의 예술관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때 작품은 작가의 지적인 행위임과 동시에 관람자 또한 예술 작품을 보면서 지적인 탐구와 놀이를 해야 한다.  그의 예술론에 유희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라는 말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량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예술은 더이상 숭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 - 예술가 자신까지도 - 상품으로 존재하며 예술은 돈을 버는 사업이라는 말은 수긍을 하면서도 어쩐지 씁쓸해진다. 

난 아직도 고흐나 르노와르, 샤갈, 모네 등의 작품에 더 끌린다.  사진작품도 솔직히 말하면 만레이나 신디셔먼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유진스미드의 인간가족같은 것들이 좋고,, (만레이의 <유리눈물>이란 작품은 인상적으로 남았지만)  물론 진품은 구경하기도 힘들고 기껏해야 인쇄된 종이조각을 보고 흐뭇해하는 수준이다.  결국 고상한 척 하면서도 대량복제시대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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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닝스는 꼴찌가 아니야 사계절 아동문고 16
앤터니 버커리지 지음, 최정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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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닝스는 꼴찌가 아니야>를 읽으며 내내 즐겁고 유쾌했다.  제닝스와 더비셔가 벌이는 말썽을 따라가다보면 '맞아, 어릴 땐 충분히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짓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전교생이 79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초등학교의 기숙사 - 온통 남자아이들 뿐이다 -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제닝스와 수줍음 많고 소심한 더비셔의 일상은 늘 사건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사건들을 제닝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이들의 생각과 심리를 작가가 너무 잘 알고 써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건 하나 하나를 어쩌면 그렇게 애들 눈높이에 맞춰 구상해 써갔는지.. 감탄스럽다. 

한 가지 더, 제닝스와 더비셔가 말썽을 일으키는 배후엔  말썽을 일으키도록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상황들이 있다.  제닝스와 더비셔는 말썽을 일으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상황안에서 자기나름대의 대처법으로 움직였을 뿐인거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달리기를 마치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는 선생님 때문에 버스를 타게 된것이고, 자유시간에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노는 꼴을 못보는 선생님 때문에 우표사건이 터진 것이며,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극장으로 제닝스와 더비셔를 들여보낸 삼촌 때문에 극장사건이 일어난 것이니까..

오히려 어른들 특히 윌킨스 선생님 같은 분은 제닝스와 더비셔의 말을 무시하고 귀담아 듣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고, 권위와 규율, 체면 등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을 짓밟는 우를 범하는 문제 선생님이다.  그런데 정말 살다보면 윌킨스 선생님 같은 어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느닷없이 야단부터 치고 보는 어른들 앞에선 누구나 문제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윌킨스 선생님이 연극에서 헨리 5세의 대사를 외우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은 통쾌하다.  물론 윌킨스 선생님이야 선생님의 권위를 내세워 공연 당일 날 연극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며 오히려 제닝스를 야단쳤지만 말이다.

그러니 제닝스는 꼴찌도 아니고, 천부적인 말썽꾸러기라고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단순하다고 할 만큼 순수하다.  도토리에서 떡갈나무를 보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라고 했던가?  아이들의 장난이나 실수를 말썽이나 문제행동으로 보지 않고 그 뒤에 숨은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도량을 가져야겠다.  아이들은 우리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 주는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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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잠 (양장) - 말문 틔기 그림책 말문 틔기 그림책
신혜은 지음, 장호 그림 / 사계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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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책을 아이에게 보여준지 2주일이 다 되어간다.  처음 아이는 이 책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이 파스텔톤 - 그것도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노랑과 고동색, 밤하늘의 푸른색 정도의-  으로 채색된 데다가 윤곽조차도 어렴풋하게 그려져서 전체적으로 뿌연 간유리를 통해서 그림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글도 조용조용하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진다.  요란스런 의태어 의성어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니다. '부비부비'라든가 '아아-함'하는 하품소리가 나오지만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가 아니다.  잠으로 빠져들게 하는 주문같은 소리일 뿐이다

그런 이유들로 우리 아이에게 외면당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하더니 이제 잠자기 전에 꼭 두세번은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한다.  아이가 하품하는 장면에선 자기도 하품하는 흉내를 내고, 그림책 속의 아기가 엄마품에 안길 땐 아이도 내품으로 파고 든다. . 아이가 잠이 와서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동물들의 행동과 대응된다.  아이는 자기와 닮은 행동을 하는 동물들(고양이, 하마, 원숭이, 강아지, 달팽이, 나비)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 번에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지는 못하지만 아이를 끌어당기는 은근한 힘을 가진 그림책인가 보다.  그림책 속의 아이나 동물들이 자기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그림책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달님 뿐이다.  처음엔 조그맣고 빛도 약하던 달님이 장을 넘길 수록 크고 환해져서 마지막 그림에선 펼친 양쪽 화면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커지고 환하다. 환한 달빛을 받으며 날아다니는 나비들과 누워있는 아기의 모습이 정말 꿈 속 같다.  그림책 속의 아기는 달님이 커질수록 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림을 뿌옇고 흐리게 그린 것은 잠이 쏟아져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보다보면 정말 졸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펼치면 아지랑이 처럼 잠이 피어나는 그런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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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밤 - 공원지기 퍼시 아저씨 시리즈 1 공원지기 퍼시 아저씨 시리즈 1
닉 버터워스 지음 / 사계절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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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추운 겨울밤에 아이들이랑 나랑 이불 속에 다함께 들어가 누워 읽던 그림책이다.  수채화로 맑고 담백하게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그림과 주인공 퍼시아저씨의 인자하고 너그러운 웃음이 마음에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책이다.

첫애와 둘째애가 크면서 다른 그림책들은 차곡차곡 정리절차를 밟아 창고로 들어갔는데 이 그림책과 몇몇은 아직도 책꽂이 한구석에 당당히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퍼시아저씨가 통나무집 현관에 앉아 새들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는 장면을 집에서 장난삼아 따라 그려보곤 했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은 학교 미술시간의 펜화 과제를 이 책의 그림으로 선택했었다.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인데도 이 책의 그림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 보다.

퍼시아저씨의 직업은 공원지기다.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 통나무집에서 산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 밤, 퍼시아저씨의 통나무집에 누군가가 찾아온다.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다람쥐, 토끼, 여우, 오소리와 오리, 고슴도치에 생쥐까지 차례차례 퍼시아저씨의 현관문을 두드리며 잠자리를 청한다.

우리의 마음씨 좋은 퍼시아저씨는 동물친구들과 함께 침대에 눕지만 동물들이 너무 많아 침대가 비좁다. 서로 밀고 밀치고 침대 밑으로 떨어지고,, 아수라장이다.  그 때 마루 밑에서 들리는 소리.. 누굴까? 괴물이 아닐까?

동물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너무 순수하고 귀엽다.  어느새 다들 아늑한 자기만의 안락한 잠자리를 찾은 동물들과 추운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내는 퍼시아저씨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겨울은 이래야 한다.  서로 따뜻함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혹독한 계절이 되고 마니까.  12월이다.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과 송년인사라도 따뜻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겨울에 다시 펼쳐든 퍼시아저씨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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