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아이들 - 웅진 푸른교실 3 웅진 푸른교실 3
황선미 지음, 김진이 그림 / 웅진주니어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 민서.  맘에 드는 친구가 생기면 그림공책 하나 만들어 거기에 그 친구의 모습만 잔뜩 그려놓는 아이다.  다가가 친구하잔 말은 꺼내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에게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되는 일은 아주 특별한 행사다.  생일파티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밌게 놀아도 좋은 이벤트라서가 아니다.  그런 생일파티에 초대되었다는 것이 내가 친구들에게서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고,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친구에게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내가 꽤 괜찮은 아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샌님'소릴 듣는 민서는 좋아하는 친구 성모의 생일에 초대받지 못한다. 너무 너무 속상해 죽겠는데 엄마마저 자꾸 짜증을 내며 화를 돋군다.  그러던 어느날 책가방에서 발견된 분홍색 초대장. 누구의 것일까..

드러나는 성모의 실체(?)에 실망하지만 민서는 성모의 생일파티를 통해서 마음을 볼 줄 아는 다른 좋은 친구를 얻는다.  인기 많은 보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줄 줄 아는 친구가 더 좋은 친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거다.

읽으면서 민서 엄마가 참 멋진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아들과 남편에게 서운함이 컸을텐데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산뜻했다.  성모 때문에 속상해 하고 있는 민서에게 성모를 그려놓은 그림공책을 선물로 주라고 조언한다. 

"민서야, 이건, 멋지게 화내는 방법이기도 해. 더 잘해 줘 버리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참 멋진 엄마다.  아이에게 그런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다니~!!!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도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시대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물을 할 땐 그냥 물건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을 선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선물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민서는 성모의 생일초대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이 책을 읽는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황선미님은 그냥 생각치 못하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과 일상생활들을 참 잘 잡아내는 분이다.  그래서 어른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하나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12-30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에요. 아이들의 심리를 어쩜 그리 꼬집어보는지.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하난 얻는 기분, 공감입니다.^^

섬사이 2007-01-0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이예요. 아이마음을 그렇게 잘 헤아릴 수 있다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텐데.. 전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내 마음 상한 것부터 보이니 어쩌면 좋을까요.
 
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가방 들어주는 아이 석우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직 철모르는 나이다.  영택이라는 친하지도 않은 아이의 가방을 1년동안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불만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은 왜그리 말이 많은지, 못본 척 해주면 좋으련만, 가방 두개 들고 가는 것이 뭐 그리 신기한 일이라고 골목대장 부하냐, 공부 못하는 아이 아니냐 하며 입방아들을 찧는다.  가방을 들어다 주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도 친구들이랑 축구도 못하고 친구네 놀러가지도 못해서 화도 난다.  가방만 들고 왔다갔다 해줄 뿐 영택이와 나란히 걷지 않는다. 

그렇게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석우에게 영택이 어머니가 고생했다며 초콜릿을 쥐어주셨다.  초콜릿을 받고 보니 웬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돈이 없어 준비물을 사가지 못하게 된 날에도 영택이 어머니가 문방구에서 준비물 사라며 이천원을 주셨다.  문방구 아저씨는 석우더러 좋은 일을 한다며 사탕도 주신다.  가방 들어주는 일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한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축구를 한 석우는 목발을 짚고 휘청거리며 집으로 가고 있는 영택이의 뒷모습을 본다.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그런 영택이를 보고 값싼 동정을 섞어 한마디씩 하는 말이 석우의 가슴에 와서 박힌다.  그날 석우는 잰걸음으로 달려가 영택이 곁에 선다.  처음으로 나란히 함께 걸어 간다.  둘 사이에 우정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영택이의 생일날.  반친구들을 모두 초대했지만 영택이 생일에 참석한 사람은 석우와 서경이 단 두명 뿐이다.  장애인은로 태어난 것에 절망하며 생일을 기뻐하지 못하는 영택이의 아픔이 석우의 마음으로 전해진 날이다. 

겨울방학동안 영택이는 수술을 받아 지팡이 하나에만 의지하면 될 정도로 많이 나아진다.  학년이 바뀌면서 영택이와 석우는 서로 다른 반이 된다.  어쩐지 석우는 이제 가방을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썩 좋지만은 않다.  새학년 첫날, 석우는 영택이의 가방을 오늘도 들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나가던 아이들의 수근거림에 그냥 학교에 오고 만다.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가방을 안들어주고 그냥 와버린 것이 후회되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그날 조회시간에 석우는 영택이의 가방을 1년동안 들어준 일로 모범상을 받게 된다.  연단에 올라가 교장선생님이 내민 상장을 받지도 못하고 석우는 울음을 터뜨린다.

석우는 이제 가방을 두개 들어야 하는 자기의 불편보다도 영택이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  영택이 편에 서서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한 아이가 진정으로 '성장'한다는 건 이런게 아닐까. 다른 이의 아픔을 껴안아줄 수 있는 넓이와 깊이를 가지는 것.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땅의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며 거리로, 지하철 철로로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로 나가 본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세상이 유모차 하나 굴려가기에도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졌는지.. 하물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밖깥세상으로 걸음을 내딛는 일 하나가 얼마나 복잡하고 골치아픈 일일지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들이 우리와 보다 가까운 자리에 함께 있도록 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아쉽다.  

지은이 고정욱님은 장애를 소재로 한 글을 많이 쓰셨다.  죽는 날까지 장애를 다룬 이야기만 쓰시겠다는데 아직 못 다쓴 장애의 종류만도 수십가지인데다가 새로운 장애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어 걱정이시란다. 고정욱님의 글을 읽은 아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없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러면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다른 세상, 좀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평하며 저만치 앞서가던 석우가 영택이와 나란히 걷게 된 어느날 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샌드위치 백작과 악어 스테이크
이향숙 지음, 강경효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사준 책이었다. 아마도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아들녀석이 책 제목을 보고 사달라고 졸랐던 건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많은 우리 딸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유치한 호기심들을 자극하는 책이 아닌가 싶어서 좀 망설였던 것 같다. '오싹오싹 공포체험'같은 류의 그런 책들처럼.

지금은 아이 작은 아이 모두 좋아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몇번을 읽었는지.. 아마  두아이 모두 최소한 너댓번은 읽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고 또 꺼내보고..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첫장에 나오는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 이야기를 하면서 맨 앞에 이탈리아 지도가 나오고 역사가 간단히 소개 된다.  책 가장자리에 이탈리아의 공식이름, 면적, 인구, 언어, 수도 등이 따로 박스 처리되어 적혀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음식 소개. 오늘날 세계 최고의 요리로 꼽히는 프랑스 요리도 이탈리아의 요리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면서 피자와 파스타가 맨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대표피자라는 마가리타 피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13개국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다음장에는 '알고 먹으면 더 맛있어요'라는 제목 아래에 햄버거와 돈가스, 아이스크림, 초콜릿, 껌, 커피, 샌드위치... 등등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3장에서는 지구촌 엽기음식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독거미 구이, 철갑상어 알, 악어 스테이크, 곰 발바닥, 말고기, 흰개미 등등이 그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독일맥주가 그 유명세에 비해 미국맥주처럼 전세계에 널리 퍼지지 않은 이유라든가, 예전에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끼를 먹었다는 것, 세계라면협회가 지정한 '인스턴트 라면의 날'이라는게 있다는 것,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이 만들어진 유래, 햄버거가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몽골계 기마민족 타타르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  아이스크림이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으로 인해 서양에 소개된 사실, 껌이 비행기 사고를 막은 사실, 커피의 원산지가 에티오피아이며 브라질과 콜럼비아가 세계최대의 커피생산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케첩이 중국 양념이라는 것, 캐비어를 먹을 때는 금속으로 된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곰 발바닥 중에 오른쪽 앞발바닥이 가장 맛있다는 것,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길에서 동상에 걸린 말의 궁둥이살을 베어 소금대신 화약을 묻혀 먹으며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것, '캥거루'가 '나도 모르다'라는 원주민들의 말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것들이 꽤 많다.  읽고 나니 꼭 전세계를 누비다 온 것 같다.  이 책이 '음식으로 떠나는 재미있는 세계사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세계사 보다는 음식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세계사에 대해 깊은 지식을 얻게 될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문화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세계가 좀더 내 가까이 와있는 느낌을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도록 하고 나면 아마도 부모님들이 조금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  부모 앞에서 아이들은 자기가 새롭게 얻은 신기한 지식들을 과시하려고 계속 말을 걸테니까.

"엄마, 그거 알어? 케첩이 어느 나라 음식인지.." 하면서.. 엄마가 모른다고 도리질을 하거나 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하는 뜨악한 표정을 하면 아이들은 엄마도 모르는 걸 자기가 안다는 사실에 콧대를 높이며 설명하려 들테니... 뭐, 좀 피곤하더라도 열심히 들어주자.  책을 읽더니 우리 00, 엄청 유식해졌네 하고 칭찬도 해주면서..

혹은 "엄마, 우리도 캐비어나 푸아그라 좀 먹어보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재밌어하지만 엄마들은 여러가지로 피곤해질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을 아이들에게 줄 때, 우리 엄마들은 박0스라도 몇 병 미리 준비해두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로 쓰여진 가난을 읽는 일은 쉽다.  이만큼 떨어져 앉아 얼마간의 동정심을 가지고 내 처지가 그들과 같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아늑하고 따뜻한, 절대로 그들과 눈맞출 일 없는 안전한 공간에 머물며 그들의 가난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낭만적인 체험활동 코스 같다.  드라마 속에서 옥탑방이나  좁고 허름한 골목길이 연인들의 낭만의 장소가 되듯이 말이다.  또는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발이 시려오면 얼른 빼면 그만인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난은 맨발로 눈길을 걷는 것과 같다.  발은 시리다 못해 꽁꽁 얼어 더이상 계속 가기가 어렵다.  잠시 쉬면서 언 발을 비벼 녹여보지만 뼛속까지 파고든 냉기가 사라지질 않는다.  그래서 그만 주저앉아 될대로 되라며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반나절도 못되어 사라질 아픔이고, 이 책 역시 언젠가는 그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을 것을.  어쩌다 본드를 마시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서 동수의 아픔을 보기 전에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이고, 버릇없고 먹을 것만 밝히는 꾀죄죄한 아이를 만나면 호영이의 애정결핍을 찾아내지 못하고 밉살맞다고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숙자나 숙희, 동준이 같은 친구가 생긴다면 그들을 마음으로 따뜻하게 끌어안기 전에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파올 게 너무 뻔하다. 부끄럽게도 그게 나의 솔직한 모습이다.  애들이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 가져오란다고 할 때 만원짜리 하나 선뜻 내놓을 수 있을라나?  겨우 그게 전부다.  딱 거기까지다.  아니면 사회복지시설에 가서 빨래나  청소, 부엌일 거들며 봉사라는 명목아래 일을 하고 자기만족을 하던지.

책 속의 명희처럼 그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들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적인 고통과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우리가 모르는 코드를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사람.  영호처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덥썩 끌어안기부터 할 수 있으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아픔과 내가 이심전심응로 닿아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가난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가난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저자는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힘을 기울였을까..  가난이 주는 고통들을 책을 통해 세상밖으로 드러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저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난한 그들의 아픔을, 그 아픔을 글로 담아낸 저자의 노고를 한낱 독서라는 내 사치스런 취미생할의 하나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려고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것들, 우리가 그들과 나누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 너머 저편의 어둠과 가난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건 취미생활인 독서를 통해 만난 가난을 소재로 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고 소리치고 있는건 아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애우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은 지워버릴 수 없는 얼룩처럼 우리의 생각 밑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바르톨로메는 선천적으로 기형을 타고났다.  혹이 튀어나와 굽은 등, 제대로 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뭉툭한 발, 걷는 것보다 개처럼 기는 것이 더 빠른 신체구조가 바르톨로메가 안고 있는 장애다.  바르톨로메는 이런 장애들 때문에 가정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아버지 후안은 바르톨로메를 아들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차라리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매정함을 보인다. 

예전에 나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산다는 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가면서부터 잔뜩 긴장이 되었다.  산밑에 자리잡은 낮은 건물.   건물 앞 마당은 햇볕이 가득 들어  과다노출된 사진처럼  하얬는데,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낮인데도 어두컴컴했었다.  내가 긴장하고 주눅들어 있다는 걸 감추려고 애쓰면서 안내하는 사람을 쫓아 캄캄한 복도를 걸었다.  복도바닥에서 꽤 높이 달린 방문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안내하던 사람이 어느 한 방문을 열었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한 분이 어둠 속에 앉아 있다가 고개만 돌려 우리 쪽을 보았다.  창백한 얼굴, 윤곽이 희미한 그 얼굴.    내 마음 속엔 그들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던 거다.  어두운 건물에서 하얀 마당으로 나왔을 때 내 위선이 부끄러워 어디론가 빨리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힘들고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한센병에 대한 오해가 사라진 오늘에도 나의 의식 밑바닥에는 '나와 다른 존재'와 맞닥뜨려야 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말도 안되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다. 

바르톨로메는 15세기 사람이다.  장애의 원인을 죄에서 찾던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그 편견과 두려움은 훨씬 더 가혹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터이다.  바르톨로메네 가족이 고향마을을 떠나 왕궁이 있는 마드리드로 이사를 가면서 바르톨로메의 시련을 더욱 커져간다.  바르톨로메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후안은 이사하는 내내 바르톨로메를 궤짝안에 넣고 마드리드 집에 도착해서도 바르톨로메는 외진 골방에 거의 갇혀 생활하게 된다.  그래도 바르톨로메는 꿈을 꾼다.  언젠가 자기도 돈을 벌만큼의 능력을 갖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겠노라고. 

어머니 이사벨과 형 호아킨, 누나 후안나의 도움으로 크리스토발 수사에게 글을 배우게 된다.  크리스토발수사는 바르톨로메가 가진 맑은 영혼과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아버지 몰래 수도원을 오가던 바르톨로메는 어느날 공주의 마차를 몰고 나온 아버지 후안에게 발각되고,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철부지 공주는 바르톨로메를 인간개로 보고 자기가 갖고 놀고 싶다며 왕궁 안으로 불러들인다. 

왕궁안에서 바르톨로메는 개로 훈련받는다.  개처럼 짖고 개처럼 구르고 개처럼 먹는다.  그런 고통스런 나날들 중에서도 바르톨로메는 개처럼 분장하기 위해 찾는 궁정화가들의 작업실에 갈 때만큼은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궁정화가들의 도움으로 바르톨로메는 자기에게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보였던 바르톨로메의 꿈이 다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어 벨라스케스의 제자가 된 파레하는 바르톨로메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아버지 후안은 바르톨로메를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그림을 모티브로 펼쳐지는 작가적 상상력이 놀라운 책이다.  책 속에는 온갖 사회적 편견으로 상처받는 바르톨로메의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을 함께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주려는 사람들과 그 고통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르톨로메의 장애 너머에 있는 영혼과 재능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가 가진 장애마저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르톨로메가 겪는 편견에 대한 고통과 불평등으로 인한 상처는 비단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으로 불평등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빈부의 격차와 성차별, 강자와 약자간의 불평등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문득 어느 한 여인네가 생각난다.  남편은 집을 나갔고 아들은 백혈병에 걸리고 그 자신의 폐도 온전치 못한 여인이 있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그 여인의 손톱에 곱게 빨간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말했다.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저리 한가롭게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를 수 있냐고. 사람들은 그녀가 손톱에 천원짜리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조차도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원짜리 매니큐어는 그녀의 숨막히게 답답한 현실 속에서 유일한 낙이었는데, 천원짜리 매니큐어 하나면 몇달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는데 너그럽게 봐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편견의 한 단면이다. 

그래도 우리가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을 그리던 15세기의 사람들보다 좀 더 고상하고 이성적이며 너그럽다고 할 수 있을까?  별로 자신이 없다.  요즘은 바르톨로메처럼 개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  그들을 궤짝 안으로, 또는 외진 골방으로 몰아넣고 모른 척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정말 자신이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6-12-28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우가 아직도 숨어 사는 시대에 우린 공동 책임이 있어요. 따가운 시선을 제일 못 견뎌한다고 하죠. 님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불편한 시설도 그렇구요. 이 책, 참 충격적이었어요. 소재도, 기발한 상상력도, 그리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궁중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당시 약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하더군요. 님 리뷰 중의 한 여인네 이야기는 참 안타까운 우리네 속내라고 생각됩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모두를 판단해버리는, 편견이라는 폭력이네요..

섬사이 2006-12-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그래요.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은 내 눈엔 보이질 않는 것 같으니까 더 걱정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