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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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여진 가난을 읽는 일은 쉽다.  이만큼 떨어져 앉아 얼마간의 동정심을 가지고 내 처지가 그들과 같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아늑하고 따뜻한, 절대로 그들과 눈맞출 일 없는 안전한 공간에 머물며 그들의 가난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낭만적인 체험활동 코스 같다.  드라마 속에서 옥탑방이나  좁고 허름한 골목길이 연인들의 낭만의 장소가 되듯이 말이다.  또는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발이 시려오면 얼른 빼면 그만인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난은 맨발로 눈길을 걷는 것과 같다.  발은 시리다 못해 꽁꽁 얼어 더이상 계속 가기가 어렵다.  잠시 쉬면서 언 발을 비벼 녹여보지만 뼛속까지 파고든 냉기가 사라지질 않는다.  그래서 그만 주저앉아 될대로 되라며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반나절도 못되어 사라질 아픔이고, 이 책 역시 언젠가는 그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을 것을.  어쩌다 본드를 마시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서 동수의 아픔을 보기 전에 눈살을 찌푸리게 될 것이고, 버릇없고 먹을 것만 밝히는 꾀죄죄한 아이를 만나면 호영이의 애정결핍을 찾아내지 못하고 밉살맞다고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숙자나 숙희, 동준이 같은 친구가 생긴다면 그들을 마음으로 따뜻하게 끌어안기 전에 머리부터 지끈지끈 아파올 게 너무 뻔하다. 부끄럽게도 그게 나의 솔직한 모습이다.  애들이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 가져오란다고 할 때 만원짜리 하나 선뜻 내놓을 수 있을라나?  겨우 그게 전부다.  딱 거기까지다.  아니면 사회복지시설에 가서 빨래나  청소, 부엌일 거들며 봉사라는 명목아래 일을 하고 자기만족을 하던지.

책 속의 명희처럼 그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들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적인 고통과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우리가 모르는 코드를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 사람.  영호처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덥썩 끌어안기부터 할 수 있으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아픔과 내가 이심전심응로 닿아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가난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가난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저자는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힘을 기울였을까..  가난이 주는 고통들을 책을 통해 세상밖으로 드러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저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난한 그들의 아픔을, 그 아픔을 글로 담아낸 저자의 노고를 한낱 독서라는 내 사치스런 취미생할의 하나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쩌면 저자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려고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것들, 우리가 그들과 나누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 너머 저편의 어둠과 가난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건 취미생활인 독서를 통해 만난 가난을 소재로 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고 소리치고 있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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