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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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은 지워버릴 수 없는 얼룩처럼 우리의 생각 밑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바르톨로메는 선천적으로 기형을 타고났다.  혹이 튀어나와 굽은 등, 제대로 서는 것조차 불가능한 뭉툭한 발, 걷는 것보다 개처럼 기는 것이 더 빠른 신체구조가 바르톨로메가 안고 있는 장애다.  바르톨로메는 이런 장애들 때문에 가정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아버지 후안은 바르톨로메를 아들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차라리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매정함을 보인다. 

예전에 나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산다는 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가면서부터 잔뜩 긴장이 되었다.  산밑에 자리잡은 낮은 건물.   건물 앞 마당은 햇볕이 가득 들어  과다노출된 사진처럼  하얬는데,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낮인데도 어두컴컴했었다.  내가 긴장하고 주눅들어 있다는 걸 감추려고 애쓰면서 안내하는 사람을 쫓아 캄캄한 복도를 걸었다.  복도바닥에서 꽤 높이 달린 방문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안내하던 사람이 어느 한 방문을 열었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한 분이 어둠 속에 앉아 있다가 고개만 돌려 우리 쪽을 보았다.  창백한 얼굴, 윤곽이 희미한 그 얼굴.    내 마음 속엔 그들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던 거다.  어두운 건물에서 하얀 마당으로 나왔을 때 내 위선이 부끄러워 어디론가 빨리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힘들고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한센병에 대한 오해가 사라진 오늘에도 나의 의식 밑바닥에는 '나와 다른 존재'와 맞닥뜨려야 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말도 안되는 두려움이 있었던 거다. 

바르톨로메는 15세기 사람이다.  장애의 원인을 죄에서 찾던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그 편견과 두려움은 훨씬 더 가혹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터이다.  바르톨로메네 가족이 고향마을을 떠나 왕궁이 있는 마드리드로 이사를 가면서 바르톨로메의 시련을 더욱 커져간다.  바르톨로메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후안은 이사하는 내내 바르톨로메를 궤짝안에 넣고 마드리드 집에 도착해서도 바르톨로메는 외진 골방에 거의 갇혀 생활하게 된다.  그래도 바르톨로메는 꿈을 꾼다.  언젠가 자기도 돈을 벌만큼의 능력을 갖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겠노라고. 

어머니 이사벨과 형 호아킨, 누나 후안나의 도움으로 크리스토발 수사에게 글을 배우게 된다.  크리스토발수사는 바르톨로메가 가진 맑은 영혼과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아버지 몰래 수도원을 오가던 바르톨로메는 어느날 공주의 마차를 몰고 나온 아버지 후안에게 발각되고,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철부지 공주는 바르톨로메를 인간개로 보고 자기가 갖고 놀고 싶다며 왕궁 안으로 불러들인다. 

왕궁안에서 바르톨로메는 개로 훈련받는다.  개처럼 짖고 개처럼 구르고 개처럼 먹는다.  그런 고통스런 나날들 중에서도 바르톨로메는 개처럼 분장하기 위해 찾는 궁정화가들의 작업실에 갈 때만큼은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궁정화가들의 도움으로 바르톨로메는 자기에게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보였던 바르톨로메의 꿈이 다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어 벨라스케스의 제자가 된 파레하는 바르톨로메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아버지 후안은 바르톨로메를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그림을 모티브로 펼쳐지는 작가적 상상력이 놀라운 책이다.  책 속에는 온갖 사회적 편견으로 상처받는 바르톨로메의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을 함께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주려는 사람들과 그 고통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르톨로메의 장애 너머에 있는 영혼과 재능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가 가진 장애마저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르톨로메가 겪는 편견에 대한 고통과 불평등으로 인한 상처는 비단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으로 불평등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빈부의 격차와 성차별, 강자와 약자간의 불평등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문득 어느 한 여인네가 생각난다.  남편은 집을 나갔고 아들은 백혈병에 걸리고 그 자신의 폐도 온전치 못한 여인이 있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그 여인의 손톱에 곱게 빨간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말했다.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저리 한가롭게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를 수 있냐고. 사람들은 그녀가 손톱에 천원짜리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조차도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원짜리 매니큐어는 그녀의 숨막히게 답답한 현실 속에서 유일한 낙이었는데, 천원짜리 매니큐어 하나면 몇달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는데 너그럽게 봐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편견의 한 단면이다. 

그래도 우리가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을 그리던 15세기의 사람들보다 좀 더 고상하고 이성적이며 너그럽다고 할 수 있을까?  별로 자신이 없다.  요즘은 바르톨로메처럼 개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  그들을 궤짝 안으로, 또는 외진 골방으로 몰아넣고 모른 척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정말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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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28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우가 아직도 숨어 사는 시대에 우린 공동 책임이 있어요. 따가운 시선을 제일 못 견뎌한다고 하죠. 님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불편한 시설도 그렇구요. 이 책, 참 충격적이었어요. 소재도, 기발한 상상력도, 그리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궁중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당시 약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하더군요. 님 리뷰 중의 한 여인네 이야기는 참 안타까운 우리네 속내라고 생각됩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모두를 판단해버리는, 편견이라는 폭력이네요..

섬사이 2006-12-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그래요.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은 내 눈엔 보이질 않는 것 같으니까 더 걱정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