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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 책 읽는 가족 11 ㅣ 책읽는 가족 11
이금이 지음, 원유미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큰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였던 것 같다. 준비물을 두고 갔길레 갖다 주려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분명 수업중인 시간이었는데 한 남자 아이가 학교 1층 중앙통로에 있는 커다란 어항 밑에 누워서 어항 속을 헤엄쳐다니고 있는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좀 이상한 아인가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교실에 안들어가고 여기 있냐, 어서 교실로 들어가라' 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내 아이 준비물만 가져다 주고 온 적이 있다. '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게 되고, 당황한 걸 감추느라 못 본 척, 모르는 척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도 정서장애를 가진 수아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도시학교를 다니다가 고종사촌인 영무가 사는 농촌학교로 전학오면서 펼쳐지는 일들이 때론 웃기게, 때론 마음 짠하게 전해진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살아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느라 수아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수아네 엄마의 이야기는 같은 엄마로서 안타까웠고, 우리 나라의 남아선호사상과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의 대표주자라 할만한 영무 할아버지를 보면서는 갑갑했다. 무엇보다 수아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없다는 현실이 막막하게 여겨졌다.
수아처럼 정서장애를 가진 아이를 알고 있다. 그 아이도 처음엔 도시의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무슨무슨 시범학교라는 딱지가 붙은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지만 그 아이 엄마는 죗값을 치르는 심정으로 먼 통학길을 아이와 함께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시범학교라는 그 학교에서도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 모두가 강원도 평창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과 살던 집을 처분한 돈을 합쳐서 평창에 근사한 통나무집을 짓고 부부가 민박일을 시작했다. 아이는 학생수가 얼마되지 않는 시골학교를 다니면서 실컷 축구도 하고, 들로 냇가로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휙 집어던지는 걸로만 알았던 책을 이제 읽기도 한단다.
무슨 통조림 공장도 아니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공산품 찍어내듯이 할 수 있으랴. 누가 그랬더라. 21세기를 살아가야할 아이들에게 20세기 교실에서 19세기 교육을 시키는 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라고.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수아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도시학교를 다니다가 농촌학교로 전학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반대로 농촌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도시학교로 전학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국수영과사를 못해도 갖고 있는 저마다의 다른 재능과 능력으로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똑같은 높이의 콧대를 유지할 수 있는 학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기가 가진 또 다른 재능으로 자기 존재를 밝힐 수 있는 터전이 되어주는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은 수아를 놀리고 괴롭히긴 하지만 무관심하지는 않다. 수아가 공부를 못하고 맘대로병에 걸린 아이라고 해서 책을 많이 읽고 춤과 노래를 잘한다는 장점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수아의 돌출행동에 재밌었던 적도 있다고, 미리 급식 때 뭐 먹는지 알수 있어 좋았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확실히 어른들보다 마음이 넓고 너그럽다. 수아네 반 선생님도 반아이들을 공부 잘하는 모범생과 공부 못하는 문제아로 나누던 이분법적 분류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아이들의 조금씩 다른 좋은 점들을 보기로 말이다.
아이들이 보는 책에 장애에 대한 글이 많아지는 것이 반갑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까지도 장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점점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주의력 결핍이니 과잉행동장애니 하는 말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학교 선생님들로부터도 그런 아이들이 해마다 많아진다는 걱정을 듣는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우리의 아이들로 흡수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과 한교실에 앉아 똑같은 수업을 들을 기회만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수업시간에 아이가 교실밖으로 나가 어항밑에 누워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그런 교육말고, 좀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수아와 함께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영무나 성남이나 병수 같은 아이들도 괴롭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을 꾸어본다.
그러고보니 길지 않은 동화임에도 그 안에 참 많은 것을 꼬집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