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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재덕이 ㅣ 작은도서관 24
이금이 지음, 성병희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9월
평점 :
이금이님의 책을 읽으면 늘 책 속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 갈등들이 여러겹의 파장을 타고 전해지는 걸 느낀다. 글로 풍경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것도 어려운데 사람의 마음을 어쩌면 이렇게 글로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친구 재덕이>에서도 그렇다. 명구가 같은 동네에 사는 바보 재덕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이금이라는 작가의 맑은 창을 통해서 그대로 우리에게 투영되어 보여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명구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덕이가 뒤따라 오다가 사라졌을 때
' 나는 거추장스러운 짐을 벗어 던진 것처럼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 바보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갑자기 집이 더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구요.'
또 다른 날 재덕이가 앞서 가고 있다가 산길로 사라져버렸을 때는
"어쨌든 앞에서 얼쩡거리던 재덕이가 사라지고 나니까 속이 시원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몇 발자국 떼지 않아 어쩐지 앞이 휑해 보였습니다. 마치 재덕이가 길잡이라도 했던 것처럼 문득 길 잃은 기분이 들기도 했구요." 라고 쓰여진 글에서 재덕이와 나란히 걷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가는 길 위에서 사라져 버린 재덕이에 대한 시원섭섭한 명구의 마음이 그대로 잘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내가 곁에서 명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명구는 똑똑한 아이가 아니다. 학교에서 우수한 모범생도 아니고 받아쓰기를 20점 받고 나머지 공부를 하고 친구에게 놀림 받는 아이다. 그런 명구도 재덕이 앞에서는 "구구단을 다 못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는 꼴찌 대장도 아니고, 집에서는 말썽만 피운다고 욕 얻어먹기 일쑤인 골칫덩어리"가 아닌 아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재덕이와 어울리는 동안 자기가 "점점 커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재덕이는 바보니까, 나보다 한 살 많더라도 동생처럼 여겨야지, 그리고 앞으론 때리지 말아야지 하는" 제법 의젓한 생각을 하게도 된다. 그리고는 하늘과 구름을 담고 있는 재덕이의 맑은 눈동자를 알아볼 줄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재덕이와 명구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이 명구네 엄마의 시선과 닮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명구가 바보 재덕이랑 어째서 단짝이예요? 행여 남들 있는 데선 그런 소리 마세요."하는.. 그런 명구 엄마에게 "명구가 재덕이하구 동무한 게 어떻다구 그러냐. 재덕이가 모자라는 아이긴 해도 우리 명구가 그 애한티 배운 것도 한두 가지는 있을 게여."하는 명구 할머니의 말씀은 우리에게 던지는 이금이님의 일침같기도 하다.
우리는 '마음보기'에 서투르다. 현실 속에서 명구나 재덕이를 만나면 그 마음을 살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무심한 우리들 속에서도 재덕이와 명구는 키가 자라고 마음이 커간다는 사실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리고 다행히 모든 사람이 다 나같지는 않아서, 이금이님처럼 마음보기에 능숙한 분들도 많아서, 그 분들을 통해 이렇게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같이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것도 무척이나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