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평점 :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욕구 하나,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찹쌀풀 쑤어 열무김치 담가서 찬물 말은 밥 위에 얹어 먹고 싶단 생각.. 아니면 열무김치 넣고 고추장 넣고 쓱쓱 비빈 밥에 보글보글 뚝배기에 끓여낸 된장찌개 곁들여 먹고 싶단 생각.. 그것도 햇볕 따스한 마루에 앉아서..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보니 나의 이 대책없는 낭만이 우습기만 하다.
그러니까 한 7,8년전이었던가. 다니고 있던 성당에서 밭에 열무며 고구마, 오이 등등을 심어 가꾸는 일을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얼마간 팔을 걷어 붙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나의 대책없는 낭만은 그랬다. 일주일에 한두번, 아이들과 함께 밭을 돌보며 자연을 가르쳐주리라.. 하면서.
농사에 농자도 모르던 내가 밭에 앉아 호미들고 김을 매면서 새삼 농사짓는 분들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여름 풀은 얼마나 빨리 자라나던지 모기에 뜯겨가면서 깨끗하게 김을 메고 난 다음 며칠 후에 오면 다시 또 풀이 수북하곤 했다. 그러니 농사 짓는 분들은 제초제를 쓰지 않으면 매일매일 김을 메는 게 보통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그래도 열무 씨를 뿌리고 어느 정도 자란 뒤에 솎아낸 열무를 집에 가져와 김치를 담글 땐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아삭아삭하고 연한 열무는 정말 가슴 뿌듯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농사일을 견디지 못했다. 같이 덤벼 일했던 사람들 모두 그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닭똥이며 토끼똥을 거름으로 쓰는 일은 우리가 하지도 않았으니 농사일의 모든 걸 맛도 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농사는 확고한 원칙과 신념을 가진 농부가 없이는 불가능하리라. 열집의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그러짐 없는 생명을 담은 온전한 밥상 하나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몫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농부들의 우직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유기농을 고집하는 농부들의 기름지지 않은 밥상이 단촐하고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러워 보인다. 책 속 사진을 부엌 싱크대에 붙여 놓고 자연과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농부들이 가족들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나에게 주는 교훈으로 삼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