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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하나, 아기는 열 - 취학전 그림책 1004 ㅣ 베틀북 그림책 5
베네딕트 게티에 지음, 조소정 옮김 / 베틀북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열명이나 되는 아기를 돌봐야 하는 아빠의 이야기.
이 책을 비니에게 읽어주며 은근히 고소해 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나.
꽤 커다란 판형이고 굵은 윤곽선에 서툴게 칠한 듯한 그림들이 익살스런 책이다. 색채의 대비효과도 잘 이용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이다. 어쩌다 열명이나 되는 아기를 돌보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암튼 그림책 속에 아빠는 피곤에 절어 있다.
첫 장의 그림, 아기들은 행복한 얼굴로 아빠에게 매달려 있는데 아빠는 면도도 제대로 못했는지 턱에 수염이 거칠다. 두번째 장에선 아침식사 시간, 아빠는 아침마다 열 그릇의 아침밥을 차리는데 아기들은 식탁 밑에 넷, 전등에 매달린 아기 하나, 아빠 어깨에 올라타 있는 아기 하나, 식탁에서 저만치 떨어져 팔짱끼고 앉아 있는 아기 하나....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겠다.
그런데 다음장을 넘기니 더 난리다. 팬티를 열 장 입히고 셔츠를 열 장 입히고, 양말을 스무짝 신기고, 바지를 열 장 입히고 신발을 스무짝 신겨야 하는 아빠는 벌써 지쳤는지 울상이고, 머리에 팬티를 쓴 녀석부터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아기, 바지 한 쪽에 두 발을 끼고 서 있는 아기, 양말을 입에 물고 있는 아기, 그 와중에 잠자고 있는 아기... 나같으면 벌써 버럭! 소리 지르고 혼내줄 텐데..
이 피곤한 아빠의 꿈 하나.. 배타고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거.. 그것도 열달동안이나. (참, 꿈도 야무지지, 남자들은 이래서 안된다니까..^^ ) 아빠의 꿈은 이루어져서 어느날 아기 열명을 할머니에게 맡기고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할머니와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아기들의 표정에 섭섭함이 가득하다. 참 단순하게 그린 그림인데도 이렇게 표정이 드러나 있다는 게 무척 재밌다.
하지만 아기들을 두고 떠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엄마들은 안다. 홀가분할 것 같지만 마음 한켠이 허전하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무거워져서 얼른 아이 곁으로 돌아오고 말았던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아빠도 열달을 다 못채우고 아기들이 보고 싶어 다시 돌아온다. 아기들 좋아서 난리가 났다. 그런데... 이를 어째.. 할머니 구두끈 양쪽을 묶어놓았네. 말썽장이들ㅡ 그러다 할머니 넘어지시면 어쩌려고.
아빠는 아기 열명을 태우고 함께 아주 긴 여행을 떠난다. 녀석들 장난은 여전한데 아기들과 함게 떠나는 아빠의 표정에선 피곤보다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아기 양육이 주는 피곤함, 어려움, 스트레스...하지만 그 모든 걸 넘어서는 아기들에 대한 부모들의 사랑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이 책이 기분 좋은 이유는 바로 그 당연한 진실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아이양육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는 설정이 산뜻하고 참신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림책을 읽는 엄마는 더 즐거울 수 있다.
취학전 그림책이라고는 글도 짧고 그림의 선과 색채도 복잡하지 않아서 26개월된 비니도 재밌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