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3학년이 되면서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모아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라기보다는 '교습소'라고 할 수 있는 데로 영어를 배우러 다닌다. 선생님은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것 같은 여자 분인데 한 타임에 여자 아이 하나, 남자 아이 하나 딱 두 명씩만 받아준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가 좀 더 긴밀하고 다정하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예뻐하는 분이어서 다행히 아직까지 막내는 행복하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월요일은 막내가 영어를 배우러 가는 날이다. 학원이 아니라서 차량운행 같은 걸 안 하고, 우리 아파트와는 좀 떨어진 다른 아파트 단지까지 가야하는 터라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리고 와야 한다. 어제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막내를 데리러 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들떠서 하는 말이, 다음 주 월요일에 영어선생님이 빕스랑 노래방에 데리고 간다고 했다는 거다. 뭐, 빕스? 아무 이유도 없이 웬 빕스? 알고 봤더니 2학기 개학을 앞두고 영어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 모두에게 빕스에서 한 턱 쏘고 노래방에 데려가서 신나게 놀게 해주려고 하신다는 거다.
"와, 너무 좋겠다. 우리 유빈이가 선생님 복이 있네. 고맙게도 선생님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냐."
그랬더니 우리 딸 하는 말이,
"응, 내가 선생님복이 있지. 엄마는 자식복이 있고."
아.. 열살 막내의 저 근자감에 난 그저 웃을 뿐.
"엄마가 자식복이 있구나. 그래, 그러네. 그럼 엄마한테 남편복은 있는 것 같아, 없는 것 같아?"
했더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없어!"
푸하하하하, 출장 간 남편 돌아오면 꼭 말해줘야지.
막내가 죽을 먹으며 끙끙 앓을 때, 설빙의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다 나으면 사주마 약속했었다.
오늘 큰딸도 오랜만에 아무 스케줄 없이 쉰다고 하길레 같이 설빙 빙수 먹으러 가자고 해서 우리집 여자들 셋이서 오랜만에 건대앞으로 외출을 했다. 주문한 블루베리 팥빙수랑 유자 인절미 토스트가 나오자 큰딸은 폰카로 사진부터 찍는다. 올여름에 먹은 팥빙수들을 사진으로 찍어 모아놓고 있다. 팥빙수의 종류도 참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싼지.
인절미 토스트는 허니브래드보다는 훨씬 입맛에 맞았다. 근데 팥빙수는.. 음.. 개인적으로 투썸의 로얄밀크티빙수가 더 좋다. 올 여름 빙수를 별로 먹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딱 두 개를 놓고 비교하면 그렇다. 울 큰딸 말로는 투썸의 모히토 빙수를 내가 먹어봤어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한여름 더위에 지쳐서 기운없이 축 처질 때 모히토 빙수를 먹으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 든단다.
빙수와 인절미토스트를 해치우고 그냥 일어서기 아쉬워 세 모녀가 책을 꺼내 좀 읽었다. 큰딸은 어린 유빈이가 벌써부터 카페에서 책읽고 공부하는 맛을 들이면 안된다고 걱정했지만 뭐, 가끔은 시원하고 분위기 새로운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경험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하여 세 모녀가 합심해서, 설빙 한 구석에 앉아 제법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읽은 책은.
큰딸은 <중국신화의 이해>, 막내는 <똑똑한 만화교과서-속담>, 나는 <혼불 6>
설빙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책을 주루룩 놓고 사진을 찍으니까, 큰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책 사진을 왜 찍냐고 물었다. "넌 빙수 사진 왜 찍는데?"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큰딸이랑, 작은딸이랑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 그 시간에 함께 읽은 책을 사진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오늘 먹은 빙수가 뭐였는지, 맛이 어땠는지는 잊어버리더라도 우리 셋이서 함께 조용히 책을 읽고, 책을 읽다가 "엄마, 숭늉이 뭐야?"하고 묻던 막내와, <혼불>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효원을 응원했던 나를 기억하고 싶다.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즐겨 찍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자기가 읽고 있는 책이나 책읽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는다면 그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알라딘에서 그러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바디샵'에 들러 티트리오일과 티트리훼이셜워시를 샀다. 아들녀석의 얼굴에 여드름이 다시 올라오고 있고, 큰딸 이마에도 뾰루지가 둘. 티트리오일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티트리오일만 사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신규회원으로 가입하고 티트리훼이셜워시까지 구입하면 만원 할인이라는 말에 두 개를 사들고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큰딸이
"엄마, 외국 사람이 '더바디샵'이라는 가게 간판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왜?"
"'바디샵'이라잖아. '바디샵'. 그냥 직역하면 '몸을 파는 가게'.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지 않아?"
아... 그런가.....?
얼마전에는 코코넛오일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게 웬일? 어째 가는 데마다 품절이란다. 다행히 인터파크에는 품절표시가 뜨지 않아서 주문을 했는데 다음날 품절이 되어 배송이 불가능하다고 문자가 왔다. 코코넛오일이 대대적으로 유행인가 보다. ㅠ.ㅠ
밤에 자기 전 큰딸은 훼이셜워시로 세안하고 티트리오일을 면봉에 묻혀서 뾰루지에 톡톡 발랐다. 내일 아침에 뾰루지 상태를 봐야겠다. 정말 나아질까...?
쓰고 보니, 어쩐지 광고성 글이 된 것 같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누가 말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