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더 지난 10월 21일에 있었던 모임 이야기를 올리자니 참 쑥스럽다. 내가 컴을 차지하고 있을 시간은 아침에 아이들을 다 챙겨 보내고 난 뒤부터 막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까지인데, 그 시간동안 늘 무슨 일이 있지 않으면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뭐, 핑계가 그렇다는 거다. (게다가 나는 글 쓰는 것에 꽤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새벽 세 시..> 가지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궁금하다는 다락방님과 주드님의 댓글을 뒤늦게 읽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게으름 부린 것에 대한 민망함과 죄송함이 마구마구 밀려왔다. 이제서야 수첩에 적어두었던 메모를 펼쳐놓고 어떻게든 민망함과 죄송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 뒤늦게 이러고 있다. '마음을 여는 책 읽기' 모임은 벌써 일곱 번째 모임까지 마쳤다. 그걸 정리해 기록해 놓으려면 으이구, 큰일났다.
어쨌든 세 번째 모임,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부터 서둘러 보자.
모인 엄마들 중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엄마들은 컴을 통한 사적인 접촉의 첫 기억을 하이텔 천리안 통신으로 꼽았다. 지금과 비교하면 전화선 하나에 의지해서 오고간 불안정한 통신이었지만 생각하면 나름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당시에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던 시절이었더래서 한창 붐을 일으키던 PC통신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모임에 참석한 엄마들 중에는 이 책의 남녀주인공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나눈 감정의 굴곡을 더듬으면서 하이텔 천리안 통신을 통해 동창을 만나고 누군가에게 연애감정을 느꼈던 경험이 생각나기도 했다는 걸 보면....... 내 머리 속에선 영화 '접속'만큼의 알싸한 기억은 아니더라도 모니터의 파란(아니 초록이던가?) 화면만 떠오르니 동시대인들의 보편적인 경험에서 소외된 듯한 아쉬움이 좀 남는다. 어쩌랴, 다시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이런 노친네같은 발언을!!)
이름 / 엄마들은 이름을 잊고 산다. 처음에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게 영 낯설고 어색하다가 어느새 OO이 엄마라는 호칭이 익숙해지고 그 다음엔 내 이름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누가 "OOO씨!"하고 부르면 경미한 손발 오그라짐 증상이 수반되기도 한다. 에미가 이메일주소를 'like'라고 해야 할 것을 'leike'라고 잘못 치는 바람에 이어지게 된 두 주인공의 인연에서 엄마들은 '이름을 잃은 나'를 떠올렸다.
에미와의 감정이입불가능 / 에미에 대해서 비호감을 드러내는 엄마들이 많았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별탈없이 적응하며 잘 살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보수적 규범을 모범적으로 잘 지키는 성향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에미가 너무 '들이댄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안됐다고. 에미가 다소곳하고 "어머, 이러시면 안돼요~~"하는 캐릭터였다면 엄마들 마음에 들었을까, 궁금했다. 남자주인공 레오에 대한 반응은 무덤덤덤... 아주 따뜻하고 자상한 상위 극소수의 남자들과 아주 못되먹은 하위 얼마쯤의 남자들을 제외하면, 남자들은 결혼하면 비슷비슷해져, 하는 심정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엄마' / 왜 베른하르트의 두 아이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냐. 에미가 레오에게 가버리면 엄마를 두 번 잃게 되는 베른하르트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이 엄마들. 청승이라고, 주접이라고, 오지랖이라고 비난하기에도 뭣한 이 끈끈한 모정이 주책없이 아무데나 불쑥 끼어드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엄마다, 여자보다 강한 엄마다, 쯧~!
이 죽일 놈의 외모지상주의 / 귀여운 청년 레오의 사랑을 받는 에미는 매력적이다. 예쁘다. 멋지다. 재치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주인공들이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로 뛰어들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를 더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더 속상하다. 불어난 몸무게, 탄력을 잃은 피부, 늘어난 잡티, 생기가 사라진 얼굴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외모지상주의가 못마땅하다고 불평을 했다. 게다가 에미도 어쨌든 살림하는 우리와 같은 주부가 아닌가! (게다가 난 에미보다 나이까지 훠얼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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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선생님과의 현문우답
선생님은 우선 이 소설에서 감성적인 문장들이 많아서 감탄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시작된 선생님의 질문.
바깥세상 /
184쪽에 나온 문장,
'레오, 당신이 돌아와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제겐 당신이 필요해요! 저는 제 세계 바깥에서도 움직일 수 있고, 느낄 수 있어야 해요. 레오, 당신은 저의 바깥세상이에요! '
여기서 '바깥세상'이라는 게 무슨 뜻인 것 같냐고 물으셨다. 난 그냥 대수롭지 않게 스쳐지나갔던 문장이었다. 그러고보면 이 소설이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그다지 문장의 의미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은 것 같다. 이야기에만 너무 집중했던 거다. 나의 생활을 '안세상'과 '바깥세상'으로 구분짓는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내 마음 속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세상과 남에게 비난받지 않으려고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가는 겉으로 드러난 세상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가정 안에서의 생활과 나 개인의 만족을 위해 꾸려가는, 이를테면 이런 독서모임같은 걸 바깥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쩌면 가정 안에서의 '나'와는 다른 모습일테니까.
에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에미의 친구 미아를 통해서 본 에미의 실생활은 매우 모범적이고 행복해 보였다는 점에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를 억제하며 살아가는 세상은 안쪽의 세상이고 혼자 남겨진 세상이 바깥세상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에미는 자기를 가둔 현재의 삶을 깨뜨리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규율과 관습, 또는 유교적 가치관 /
규율과 관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아마 이 책의 내용이 우리의 관습이나 규율, 유교적 가치관과 맞서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와 맞지 않는 타이트한 규율은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사회적인 합의라고 볼 수 있는 관습과 규율을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들 했다. 선생님은 규율과 관습을 '편리성'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고 하셨다. 때론 갑갑하기도 하지만 '편리'하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유연성'을 잃어서도 안될 것이다. 규율과 관습이 '편리성'을 높이려면 그만큼 우리 몸에 잘 맞는 옷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봉과 수선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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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옛사랑의 추억, 잊었던 향기들이 조금씩 떠올랐을 것이다. 팍팍하고 푸석했던 마음들이 조금이라도 물기를 머금었다면 다행이지 싶다. 실제로 자기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풀어내기도 했으니 잠깐 내가 걸어온 길의 흔적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을 터이다.
<새벽 세시...>의 후속으로 나온 책이 있다. <일곱 번째 파도>. 이 책을 소개할 때 <일곱 번째 파도>도 같이 소개했는데 엄마들 중 몇몇은 <일곱 번째 파도>까지 읽어왔다. 다들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다음은 마이클 폴란의 <욕망하는 식물>이다. 후기가 다락방님과 주드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