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질문의 의도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유르겐은 자기 인생을 돌이켜 봤다.

십대 중반까지, 독일의 축구 국가대표가 되어 외국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출전하여 배를 타고 여러 나라에 가서 축구를 하고 환성을 듣고 싶었다. 외국 선수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코치들에게 제2의 제프 헤르베르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러니 병역이 없었다면, 또 올림픽과 월드컵이 중지되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네 동료가 쏜 여성은 두 아이의 엄마였어. 그 후에도 엄마로 있고 싶어했지. 잃어버린 아이들을 키워서, 언젠가 손주를 만나고 싶어 했어.”


(479)

나는 멈출 수 없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나는 지금 죽을 수 없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전쟁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 끔찍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전부 전쟁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제잘 용서해 줘.”


(523-524)

학교에서 던진 질문,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생각했던 질문. 세계는 이렇게 넓은데 소련만 유일하게 전선에 나서는 여성 병사를 길러낸 이유가 무엇인지 여전히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답이 무엇이든 종전과 함께 여성 병사가 쓸모없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이 칭송한 대상은,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싸운 남자들과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후방을 지킨 정숙한 여자들이었다.

부활한 남녀 역할은 군대 안에도 영향을 끼쳐 여성은 전투 보직이 아니라 지원 보직으로 발령받는 등, 옛날식으로 분리되었다. 살아 돌아온 여성 병사를 꺼림칙해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는데 특히 같은 여성들이 그들을 소외시켰다. 저격소대 여성들도, 세라피마와 이리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527)

스탈린 체제가 공포정치였다면, 그것을 떠받들며 싸운 우리는 대체 뭐였지?

어쨌거나 스탈린은 극악무도한 자였던 만큼 그의 업적을 모조리 부정해야 하기에, 보존했던 시신을 매장하고 동상을 부수고 각종 서적을 다시 썼다. 당연히 스탈린그라드도 이름을 바꿔야 했는데, 그렇다고 옛 이름인 차리친은 차르, 즉 황제를 연상시키므로 사회주의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볼가강에 가깝다는 이유로 볼고그라드라는 무미건조하고 중립적인 이름을 대충 가져가 붙인 것이다.


(530)

소련이라는 이름의 국가는 삐걱거리며 나아가는 쇄빙선과도 같았다.

크고 작은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던 선체가 각종 사회적 모순으로 타격을 받아 언젠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면 보트에 나눠 타서 혹한의 바다로 노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항해 도중에 선장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자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진다.


(532)

소련에서도 독일에서도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는 여성들이 입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을 혐오하는 각 사회의 요구가 합쳐진 결과였다.

마치 교환 조건이 성립된 것과 같았다. 소련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독일 국방군과 독일인에게 폭력을 저지른 소련군은 사이좋게 입을 다물고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기본 좋은 영웅적 이야기. 아름다운 조국의 이야기.

참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 무자비한 독재의 이야기.

그것은 독일에서도 소련에서도,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병사는 반드시 남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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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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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책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이라는 책이란다. 두 권짜리인데 오늘은 1권을 이야기해줄게. 이 책은 출간할 즈음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 제목은 알고 있던 책이야. 어여쁜 소녀의 얼굴을 한 책 표지 때문에 더 기억에 남은 책이란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 드라마에 우리가 좋아하는 헐크, 마크 러펄로도 출연한다고 하더구나. 지금은 이미 드라마가 서비스 되고 있더구나. 드라마는 시간이 좀 되니, 날 잡아서 함 봐야겠구나.

아무튼 이제서야 이 제목만 알고 있던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자세히 알아보았단다. 퓰리처 상을 받았고,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을 한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왜 이 소설을 추리 소설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면, 읽고 나서 너희들에게도 이야기해 줄만한 역사 상식도 있겠다 싶어서 읽게 되었단다. 그리고 평점도 엄청 높아서 재미는 보장되겠고, 말이야. 지은이는 앤소니 도어라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는 많은 작품이 소개된 것 같지는 않구나. , 그럼 바로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권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


1.

1944 8 7. 프랑스 서부 해안 도시 생말로에서 이야기를 시작된단다. 보보렐 거리 4번지에 16살 장님 소녀 마리로르 르블랑이 살고 있었고,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18살 독일군 이등병 베르너 페닝이 한 호텔에서 연합군의 공세에 피신을 하고 있었단다.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그로부터 약 10년 전으로 돌아간단다. 소설의 전개는 1944년을 시점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아빠는 가능하면 그냥 시간 흐름대로 이야기를 해줄게.

1934년 마리로르는 6살이었고, 파리에 살고 있었단다. 마리로르의 엄마는 마리로르를 낳다가 그만 돌아가셨고, 아버지 다니엘 르블랑과 둘이 살고 있었어. 아버지 다니엘은 박물관에서 자물쇠 장인으로 일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급격하게 마리로르가 시력이 악화되어 병원에 갔으나 이미 늦어서 시력을 잃고 말았단다.

다니엘은 그들이 사는 동네 모형을 조그맣게 만들어서, 시력을 잃은 마리로르에게 동네의 모습을 외우게 했어. 나중에 혼자서도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지 않게 말이야. 그리고 돈이 생길 때마다 마리로르를 위해서 점자책을 사주었단다. 하지만 점자책이 비싸서 많이는 사주지 못했어. <80일 간의 세계 일주>, <삼총사>, <해저 2만리> 1. 마리로르가 점자로 읽은 책들이란다. 읽고 또 읽고

당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다들 설마 라고 생각들 했단다.

1940 6. 마리로르는 아버지 다니엘과 피난길에 올랐단다. 소문이었던 전쟁이 결국 일어났고, 파리가 함락하게 된 거야. 아버지가 일하던 박물관 관장님이 소개해준 지인의 집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어. 그런데 박물관 관장님의 지인의 도착을 해 보니, 그 집은 이미 폭격을 받아 무너졌고, 관장님의 지인은 런던으로 피난을 가고 없었어. 다니엘은 차선책으로 연락한 지 오래 된 작은 아버지, 그러니까 마리로르에게는 작은 할아버지이신 에티엔 할아버지 댁으로 갔단다. 다니엘이 작은 할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산 이유는 작은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은둔하고 지내셨기 때문이야.

마리로르의 친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는 함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셨는데, 친할아버지는 그 전쟁에서 그만 돌아가시고 작은 할아버지만 살아서 돌아오셨어. 전쟁에서 형을 잃은 작은 할아버지는 그 충격과 트라우마로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지냈는데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되었단다. 그래서 아버지도 작은 할아버지께 연락을 하지 않으신 거야.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은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어. 집안 일은 마네크 아주머니라는 분께서 해주시고 계셨어.

다니엘과 마리로르가 도착했을 때, 마네크 아주머니는 아주 다정하게 반겨주셨고, 이후에도 계속 마리로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인정 많으신 분이었단다. 다니엘과 마리로르는 6층에서 지냈고, 작은 할아버지는 5층에 계셨어. 며칠 후 우연히 마리로르가 5층에 갔다가 작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작은 할아버지는 마리로르에게 따뜻하게 잘 대해주셨단다. 어느 할아버지가 조카 손녀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겠니. 작은 할아버지는 마리로르에게 책도 읽어주었고, 작은 할아버지의 비밀 장소인 다락방에 데려가기도 했어. 작은 할아버지의 다락방에는 온갖 기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라디오 송신기도 있었단다.

작은 할아버지는 자신의 형, 그러니까 마리로르의 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녹음한 내용들을 송출하는 일도 하셨다고 했어. 작은 할아버지가 마리로르를 통해서 이제서야 마음의 치유를 받는 것 같았단다. 전쟁의 상처를 받으신 작은 할아버지와 앞을 볼 수 없는 조카손녀 마리로르가 다락방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따뜻하면서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나라에서 통지문이 하나 날라왔어. 라디오를 모두 반납하라는 지였단다. 전쟁에 이용될 것을 막기 위함인 것 같았어. 아버지는 집에 있는 모든 라디오를 반납했단다. 작은 할아버지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커다란 옷장으로 막아 놓았단다. 나중에 혹시라도 검사하러 오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야.

….

어느날 박물관장의 전보가 하나 왔어. 아버지에게 온 전보인데 파리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어.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 중에 룸펠이라는 군인 원사가 있는데, 그가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보물들을 다 빼앗아갔다고 했어. 사실 아버지는 박물관장님의 지시로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숨겨두고 있었단다. 피난 올 때도 그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왔어. 아버지는 이 다이아몬드를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단다. 아버지는 마리로르에게 파리에 갔다가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단다. 하지만 아버지는 파리 가는 길에 그만 독일군에 체포되어 말았어.


2.

독일 에센시 외곽 졸페라인이라는 곳에 베르너는 엘레나 아주머니가 보살펴 주는 아이들의 집이라는 고아원에서 동생 유타와 함께 지냈단다. 베르너는 기계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는데, 어느날 고장 난 라디오를 주워왔고,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라디오를 고치게 되었단다. 그 이후 베르너와 유타는 라디오를 함께 들었어. 음악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단다. 채널을 돌리다가 프랑스 방송도 들을 수 있었어. 그 프랑스 방송에서는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내용도 알려주었는데 베르너를 라디오를 통해서 과학 공부도 하게 되었어. 14살이던 어느날 엘레나 아주머니를 통해서 고위 군장교 지들러 부부의 라디오를 고쳐줄 정도로 실력이 늘었어.

베르너는 지들러 씨 소개로 국립정치교육원에 시험 볼 수 있게 되었고, 합격을 했단다. 그곳을 졸업하게 되면 군인이 되는 것인데, 라디오에서 독일 군인은 악마라는 소리를 들은 동생 유타는 오빠가 국립정치교육원에 가는 것을 반대했단다. 하지만 베르너는 그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기뻐했어. 베르너는 국립정치교육원에서 공부와 군사훈련을 함께 받았는데, 수학에서 두각을 내면서 기계를 다루는 곳에 배정을 받고 실험실에게 엔지니어링 공부를 하게 되었단다.

…..

여기까지가 대략 1권의 이야기란다. 인류 역사에 있어 전쟁은 꽤 많이 일어났는데, 전쟁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란다. 그 많은 전쟁이 일어났지만, 전쟁으로 행복해진 나라는 아마 하나도 없을 거야. 어리석은 지도자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대부분이니까 말이야. 그런데도 오늘날에도 전쟁은 끊이질 않으니 안타깝구나. 앞을 못 보는 마리로르에게 전쟁은 더 힘들었을 것 같구나. 자신을 보살펴 주는 아버지마저 체포되었으니 말이야. 2권의 이야기도 곧 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땅거미가 지자 그것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그녀가 미처 벽돌을 내리기도 전에, 그녀 뒤에 있던 철사 덫이 홱 잡아당겨지더니 초인종이 울리고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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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5권 - 개화기편,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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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씩 읽는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5권을 읽었단다. 5권의 부제는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란다. 4권에서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으로 빼앗기고, 강제로 군대까지 해산된 대한제국. 뜻있는 지식인들은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하고, 학교들을 세우고, 계몽 운동을 많이 했는데, 강준만 님은 그런 활동을 교육구국론이라고 하신 것 같구나. 그런 계몽 운동을 하는 단체 중에 1907년 안창호가 주도하여 만든 신민회라는 비밀단체가 있단다. 비밀리에 활동을 해서 일제가 이 단체의 전재를 알게 된 것은 1911년이라고 하는구나.

나중에 이야기되기겠지만 1911년 신민회 사건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감옥에 가게 된단다. 바로 그 신민회가 1907년에 만들어졌고, 교육 구국 운동을 펼쳤단다. 이때 많은 학교들이 문을 열었단다.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 안창호, 윤치호, 이종호가 함께 세운 평양의 대성학교가 대표적이란다. 1908 5월에는 한성고등여학교가 개교했는데, 오늘날 경기여고가 바로 한성고등여학교하고 하는구나.

이 시기에 의병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조국의 원수들을 처단하는 일들도 있었어. 그 중에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어 소개해줄게. 일본 통감부 외교고문으로 일하던 일본의 앞잡이 스티븐슨이란 자가 있었단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정당하다고 주장한 사람이야. 그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을 우리나라의 두 명의 애국지사가 동시에 암살을 시도했다고 하는구나. 두 애국지사는 장인환, 전명운이라는 분들인데, 두 분은 서로 모른 채 각각 거사를 단행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분들인데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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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 23일 스티븐스(일본 통감부 외교고문)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역 구내에서 장인환, 전명운 두 애국지사의 총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행동한 게 아니라 서로 모른 채 각각 거사에 나섰다. 먼저 전명운이 권총을 쏘았으나 불발되자, 장인환이 다시 3발을 쏘아 2발은 스티븐스의 가슴과 허리를 관통했고 나머지 한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맞았다. 스티븐스는 병원에 옮겨진 후 사망했다. 그는 보호조약을 강제로 맺게 함으로써 나의 강토를 빼앗았고, 나의 종족을 학살했기에 이를 통분히 여기어 그를 쏜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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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다 보니, 너희들과 최근에 보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구나. 극중 애신과 유진이 동시에 미국인 외교관을 저격하는 장면 말이야. 아마 드라마 작가가 스티븐슨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싶더구나.

이렇게 악덕 외국인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를 위해서 온 힘을 쏟았던 분들도 있었단다. <대한매일신보>를 만들어 동양척식회사를 연일 비판하던 베델이라는 분이란다. 반일 논조의 기사로 인해 베델은 상하이 감옥에 투옥하기도 하셨고, 석방 후 다시 신문을 냈는데, 1909 5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그의 나이 고작 36세였는데, 하늘은 왜 이런 이를 일찍 데리고 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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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

(베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나는 죽더라도 신보는 앵생케 해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베델의 그런 한국 사랑은 그가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갖고 있는 웨일스 출신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걸까? 베델의 한국 사랑과 반일정신은 매우 투철해 한때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대한매일신보>의 통감부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베델을 암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베델의 장례식은 동대문 밖 영도사에서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그의 시신은 양화진(서울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사람들의 성금에 의해 1910년 묘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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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신문과 잡지들도 많이 출간하였는데, 18살이던 최남선도 1908 11 <소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단다. <소년>이라는 잡지는 우리나라 최초 종합 잡지로, 안창호가 만든 청년학우회 기관지 성격을 띠었고, 창간호에 그 유명한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가 실려 있단다. 이 잡지에서는 외국 문학 작품도 번역해서 소개했는데, 톨스토이 책이 번역 소개되면서, 톨스토이 열풍을 이끌었다고 하는구나.


1.

1909년에는 간도에서 관한 청과 일본의 협약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나라 국경에 관한 문제인데 우리나라만 쏙 빠져있었구나. 이 청일협약에 의해 국경선이 두만강이 되면서, 간도 땅이 청나라 땅이 되고 말았구나. 열 받는 일뿐이구나. 신채호는 1910년경부터 만주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는 등 많은 이들이 간도를 빼앗으려고 노력했단다. 나중에 북한이 중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간도영유권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하는구나.

을사늑약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투쟁이 활발하다고 했잖아. 1907 7월에 고종이 강제 폐위 당하고 8월에는 군대가 해산된 이후 의병 투쟁은 더욱 불이 붙었단다. 이제 정규군이 없어졌으니 모두 비정규군이 되어 의병 활동을 하게 된 거야. 그러자 일제는 의병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1909년에는 남한 대토벌 작전을 벌여 많은 의병들이 돌아가셨단다.

….

지식인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육과 계몽에 힘썼어. 중국 양계초의 학문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하려고 했고, 민족주의자들은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책들을 많이 쓰셨어. 신채호가 역사인물들을 출간한 것도 그런 취지였단다. 군대가 없어진 마당이 비밀리에 체력과 군사 훈련 비슷한 것을 하기 위해 운동회도 많이 열렸다고 하는구나.

그런 와중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1909.10)과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 미수 사건(1909.12)이 전해졌어. 안중근의 이토 히루부미 사건은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은 생략할게. 하나만 이야기하고영국의 찰스 모리머라는 기자가 재판을 보고 쓴 기사가 있는데, 안중근이라는 분이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란다. 그런 분이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고, 아직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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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33)

1910 2 7일 오전 9시 뤼순 법정. 당시 15만 부를 발간하던 영국 최대의 주간지 <그래픽>의 기자 찰스 모리머는 재판 참관기를 통해 세기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거머쥔 채 자랑스레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고 썼다. 모리머는 재판을 참관하던 많은 일본인들조차 안중근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가졌으며 그들에게서는 살해된 정치인의 추억보다 안중근의 명성이 더럽혀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안중근에 대해 그는 삶의 포기를 열렬히 염원했다이 사건으로 인해 재판에 오른 건 다음 아닌 일본의 현대문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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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결국 1910 8 29일 일본에 흡수되고 말았단다. 경술년의 나라의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하여 경술국치라고 했어. 조선은 518년만에 망하고 말았단다. 한 나라가 망하는데 전쟁도 없이, 간신배들 여럿이 도장 찍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답답하구나. 이 일에 연루된 조선인 68명이 일본으로부터 귀족 신분을 부여 받았다고 하는구나. 양심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

지은이는 500년이나 긴 역사를 가진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 대한 많은 역사가들의 평가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리고 조선이 왜 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조선이 어떻게 500년이나 유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역사들의 평가도 소개해 주었단다. 보통 당파 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일제 역사가들이 세뇌시킨 식민사관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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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먹혀 들어갔다면, 그건 조선이 망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의 힘 때문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조선이 망했는가? 이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우리 스스로 내놓지 못한 채 당파싸움 때문에 망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옹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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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망한 이유들이 역사가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듯이 어떤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 망한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바뀔 수 없는 한 가지는 사악한 일본 때문에 망한 것은 명백하구나.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망하지 않았겠지. 당시 제국주의가 만연해서 다른 나라가 쳐들어왔을 수도 있겠지. 넓게 이야기하면 제국주의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고 볼 수 있겠구나. 조선이 시대의 흐름을 제때 읽지 못하고 근대화에 늦춰졌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나라가 망하게 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이렇게 조선의 멸망과 함께 <한국 근대사 산책> 5권의 이야기도 끝이 났단다.

5권에서 이야기한 내용 중에 너희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두어 가지 소개하고 편지를 마치련다. 먼저 우리나라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글이란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같은 경우 심한 갈등을 보이는 종교들이 우리나라에는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점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하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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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85)

한국은 종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찬 나라이나 어떤 단일 종교도 한국인들의 종교생활을 지배하고 있지 않고 있는 다종교 국가이다.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동구,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천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적 다원주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종교적 평화의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은 유교의 문화적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나라이면서도 아시아적 가치를 변용하여 서구의 자유주의, 합리주의를 수용하는 데 가장 개방적인 나라이다. 한국은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의 가치가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은 새무얼 헌팅턴이 역설한 문명의 충돌에 대한 해답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한국의 극단주의는 신바람특성과 맞물린 것으로 늘 잠재돼 있긴 하지만 오래 지속되긴 어렵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은 단기적으로 극단주의적이지만, 장기적으론 중용 지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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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독립신문에 실린 시계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시계라는 것이 시간만 잘 맞추면 된다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기사가 재미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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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독립신문> 1898 2 8일자 논설에 따르면, “사람이 시계를 살 때마다 기계 속을 모른즉 시계 좋고 아니 좋은 것을 아는 도리는 다만 전면에 비늘 둘이 시간과 분과 각을 옳게 가리키는지 아니 가리키는지 하는 것을 가지고 아는지라. 그것과 같이 사람을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하는 행사를 가지고 알기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라. 설령 시계가 보기에 훌륭하고 금과 보석으로 꾸민 시계나 그 시계가 시를 맞추지 아니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시계가 아니라 일개 값진 물건이라. 금과 보석을 팔면 돈은 생길지언정 시계로 쓸 것은 못 되지 그것과 같이 사람도 외양이 좋고 의복을 잘 입어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이 보이나 자기 맡은 직무를 못 할 지경이면 무용지안이라. 그러하기에 시계 살 때에 외양과 모양은 어떠하였든지 시만 잘 맞추면 그 물건이 쓸데 있는 물건이요 사람도 지체가 없고 모양도 준수치 않더라도 맡은 직무만 착락 없이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보배로운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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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906 4월 대한자강회의 설립 이후, 애국계몽운동으로서의 학회 조직은 계속됐다.

책의 끝 문장: 나와 내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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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强盜) 일본의 통치의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서 사회를 약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2000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을 매진해야 하리라.”


(58)

최남선은 1928 10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으로 임명되었고, 12월에는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다. 한국 최고의 단군 연구가이자 조선학의 제창자인 최남선이 식민사학의 총본산으로 들어갔으니 논란이 없을 리 만무했다. 정인보(1893~?)최남선이는 죽었다며 조문(弔文)을 썼으며, 일부 사람들은 종로의 명월관에 모여 굴건(屈巾), 제복(祭服) 차림으로 제상(祭床)을 차려놓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최남선 장례식을 지냈다. 최남선은 이후 일본에 가서 조선인 대학생의 학병을 권유하는가 하면 중추원 참의, 만주 건국대 교수, 만주 <만선일보> 고문 직책을 맡는 등 노골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77)

공식적인 서울대학교사는 개교를 1946년으로 잡고 있지만 한편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락사>, <서울법대백년사>에서 볼 수 있듯이 경성제국대학을 그 뿌리로 간주하는 이중적 인식의 대학사를 가지고 있다. , 국립 서울대학교의 설립 주체는 명백히 대한민국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법학부와 의학부는 개별적인 단과대학사를 통해 경성제국대학을 그 모체로 간주하고 동문의 범위를 경성제국대학 출신자에게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스스로의 대학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고찰을 가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대학교가 그동안 이루어낸 많은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대학 정체성의 반성 부재에서 비롯된 식민지적 엘리트 의식은 여전히 왜곡된 형태로 남아 서울대학교를 중심축으로 하는 현재의 대학교육 체제와 문화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40-141)

<개벽> 1926 6월호 발표된 이상화(1901~1943)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정끝별은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고 평가했다.


(158-159)

김려실은 나운규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걸 지적하면서, 이런 의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아리랑>을 통해 정말 관객에게 호소하고 싶었던 것은 동포여, 저항을 계속하라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검열 때문에 그 뜻을 직접적으로 영화에 표현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아리랑>의 영웅 영진은 정신 이상자로 설정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역설적이게도 <아리랑>은 저항은 뜻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221)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민태원(1894~1935) <청춘예찬>이다. 삶이 고달픈데도 청춘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하는 의아심을 갖고 그 내용을 음미했던 학생들도 많았으리라.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는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 기뻐하고 즐거워함)의 새가 운다.


(229-231)

강점기 노동파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919 1월에서 4월까지 벌어진 원산총파업이다. 이는 그 규모와 지속성, 그리고 강인성과 투쟁성이란 점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 노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다. 원산총파업은 원산항에서 하물의 하역, 운반에 종사하는 부두노동자를 주축으로 조직된 원산노동연합회에 의해 지도되었는데, 1921년 설립된 원산노동회를 원산노동연합회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경철과 군대를 동원한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90여 일이나 지속된 원산총파업은 3.1운동,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일제하 대표적 민족해방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286-287)

1927년부터는 사학의 명문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의 맞대결이 연보전(훗날의 연고전)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후 정기전을 갖게 되었다. 1927 9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8회 극동올림픽대회에서 필리핀을 누르고 우승한 일본 와세다대학 축구 팀이 경성에 들러 17일부터 19일까지 3차전을 갖기로 했다. 첫 경기 상대는 연희전문이었는데, 와세다대학 팀이 0 4로 대패하고 말았다. 크게 놀란 와세다대학 팀은 남은 경기 일정을 취소하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고 말았다. 박경호, 김덕기는 이 같은 소식을 접한 국민은 잠시나마 피지배민족으로서의 설움을 잊을 수 있었다와세다 팀을 완전히 제압한 사실에 대해 국민들은 극동올림픽 쟁패전은 우리의 승리라고 외치고 승리감을 만끽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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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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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시티 오브 걸스>라는 책은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된 책인데, 평점이 좋고 책 소개를 읽어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읽은 책이란다. 지은이는 엘리자베스 길버트라는 분인데 이 분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이번에 읽은 책이 처음인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익숙한 제목의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쓰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지은이 이력도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지, 그 이전에는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몰랐단다. 가끔 별 생각 없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었단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부터 시작되고, 뉴욕이 주무대란다. 1940년이면 유럽은 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던 시절이고, 미국은 아직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곧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그런 시기였단다. 이 시기 미국에 관련된 책들을 최근에 몇 권 읽었는데 각각 다른 분위기 책들인데, 그 시절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했어. 책이 두꺼웠지만, 재미 있어서 책이 금방금방 넘어갔단다. 밀린 독서편지를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만 짧게 써보련다.


1.

2010년대 주인공 비비안이 친구의 딸 안젤라에게 자신의 지난 일들을 알려주려고 글을 쓰는 형식이란다. 친구의 딸이라고 해서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데 안젤라는 1942년생으로 2010년대면 안젤라도 이미 할머니가 되었겠구나. 안젤라도 지난 비비안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만큼의 나이가 되었겠구나.

….

주인공 비비안은 보수적인 시골에서 살다가 대학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고치고 성적이 좋지 않았어. 십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말썽 피우자 비비안의 부모님은 비비안을 뉴욕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고모 페그에게 보냈단다. 당시는 1940년이었고, 비비안은 19살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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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1940년의 뉴욕이란!

그런 뉴욕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뉴욕을 폄하할 생각은 물론 없다. 언제라고 뉴욕이 중요하지 않았겠니. 하지만 그때의 뉴욕은 그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그 도시, 오직 내 눈에만 새롭게 창조된 뉴욕은 다시 존재하지 못하겠지. 그 뉴욕은 책 사이에 끼워 말린 나뭇잎 책갈피처럼, 나만의 완벽한 뉴욕으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단다. 너에게 너만의 완벽한 뉴욕이 있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의 뉴욕은 언제나 나만의 뉴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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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그 고모가 운영하는 극단의 이름은 릴리 플레이하우스라는 극단인데, 최근에는 경영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 극단의 경영 등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이는 페그 고모의 친구인 올리브라는 분이었어. 올리브는 엄격하면서도 꼼꼼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단이 쓰러지지 않게 잘 운영해 나가고 있단다. 비비안은 할머니로부터 어렸을 때 배운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극단에서 공연 의상을 만드는 일을 도왔단다. 비비안은 셀리아 레이라는 쇼걸과 함께 방을 썼는데, 셀리아와 친해진 이후 둘은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젊음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욕구를 누렸단다. , 사랑,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젊음을 막을 수 없었어.

1940,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혼동의 시절이었어.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부부인 에드나 파커 왓슨과 아서 왓슨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단다. 적의 폭격으로 그들의 집이 불타 버렸어. 배우의 활동도 할 수 없고 말이야. 에드나의 친구였던 페그 고모는 왓슨 부부를 뉴욕에 초대했단다. 에드나와 아서는 뉴욕에 와서 고모의 극단에서 지내게 되었어. 에드나는 우연히 알게 된 비비안의 바느질 솜씨에 놀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었단다.

에드나가 뉴욕에서 연극을 준비하게 되는데 의상은 비비안이 도맡아서 하게 되었어. 거물급 배우가 뉴욕에 왔으니 페그 고모에게도 찬스였어. 그래서 페그는 <시티 오브 걸스>라는 극(뮤지컬)을 준비하기로 했어. 멀리 서부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 빌리에게도 도움을 청했단다. 페그와 빌리는 부부이긴 했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단다. 빌리는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었어. 에드나가 주인공으로 하는 대본을 며칠 만에 써냈어. 오랜만에 극단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활기가 돌았단다.


2.

극단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시티 오브 걸스> 준비로 정신이 없었어. 페그 고모아 빌리 삼촌은 부족한 배우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뽑았단다. 비비안의 룸메이트 셀리나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비비안은 무대 의상을 맡았단다. 뉴욕에 있는 중고시장에서 옷을 구해서 멋지게 리폼을 했단다. 새로 캐스팅된 배우 중에 안소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비안은 안소니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주연배우와 스탭의 사랑이라서 그들의 사이를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거겠니.

드디어 첫 공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단다. 대중들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호평이 이어졌어. 특히 주인공을 맡은 에드나에 대해서는 극찬이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대스타 반열에 올랐어. 비비안은 의상도 좋았다는 평가에 기뻐했단다.

그렇게 극이 성공을 거둔 얼마 후 비비안의 오빠인 월터가 프린스턴 대학교를 중퇴하고 해군 입대를 준비한다면서 뉴욕에 잠시 들렀어. 페그 고모와 비비안에게 인사를 나누려고 온 것이었는데, 비비안이 안소니와 사귀는 것을 알고 심하게 반대를 했단다. 안소니는 월터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가 오히려 갈등만 심해졌단다.

<시티 오브 걸스>의 성공으로 주연배우의 자격으로 에드나와 안소니가 자선행사에 초대되었는데, 에드나의 남편 아서가 심한 질투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단다. 에드나의 남편 아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했는데, 아서는 얼굴 하나만으로 배우가 된 사람으로 성품도 안 좋고, 연기도 못하고 그랬단다. 아서가 그렇게 질투를 했지만 사실 아서는 셀리나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단다. 더 나쁜 놈이구나.

에드나와 안소니가 자선행사에 간 그 날, 셀리나가 비비안에게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그곳에 아서도 같이 있었어. 이제서야 비비안은 셀리나와 아서 사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데 그날 술도 먹고 그러다 보니 더블 데이트를 하게 되었단다. 그 장면이 사진에 찍히고 말았어. 밤 늦게 극단에 돌아오니, 극단은 초상집 분위기였어. 비비안, 셀리나, 아서가 셋이 껴안고 더블데이트를 찍은 사진이 비비안보다 극단에 먼저 도착해 있었어. 다음날 기사로 나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고민에 빠져 있었어.

페그 고모는 비비안의 이름만은 기사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 이 걱정에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취해 있었어. 에드나는 비비안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어. 이런 사고를 해결하는 것은 늘 그렇듯 올리브였단다. 올리브는 비비안을 데리고 사진을 찍은 기자를 만나러 갔단다. 간신히 비비안의 이름을 넣지 않게 했단다. 사진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어. 오랜만에 잘 나가는 극단의 치명타였던 스캔들이었지만, 에드나의 훌륭한 연기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단다. 셀리나는 해고되었고, 비비안도 안소니에게 버림 받고 극단에서도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집으로 오게 되었단다. 에드나가 비비안에게 크게 실망하고 질책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거든.


3.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 회사의 일을 도와주었어. 짐 라슨이라는 아버지 회사의 직원과 사귀어 결혼도 할 뻔했는데, 비비안이 처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멀리한 짐은, 전쟁에 참전한다는 핑계로 파혼하자고 했단다. 어느날 페그 고모가 비비안의 집에 와서 비비안의 아버지에게, 그러니까 자신의 오빠한테 비비안을 다시 뉴욕에 보내달라고 했어.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다시 돌아온 뉴욕은 많이 바뀌어 있었단다. 전쟁 때문에 페그 고모는 해군 상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비비안도 도와주었어. 그러다가 1945 3월 일본의 가미카제 공격으로 인해 비비안의 오빠 월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비비안을 비롯한 모든 식구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 1945 3월이면 전쟁이 끝나기 몇 달 전인데, 몇 달만 더 버티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1950년 뉴욕은 도시 계획에 따라서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철거되고 말았단다. 페그 고모는 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가르치게 되었고, 올리브는 그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비서 일을 하게 되었어. 비비안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중고 옷가게를 하는 마조리와 함께 부티크 사업을 했단다. 수제 웨딩드레스 사업을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정도 사업이 잘 되었단다. 비비안 마조리는 모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어느날 마조리가 임신을 했단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비비안에게 함께 키우자고 했어. 아들 네이슨을 낳고 이제는 세 식구가 되었단다.

….

1960년대에 우연히 월터 오빠의 군대 후임이었던 프랭크를 만났단다. 이 프랭크가 바로 안젤라의 아버지란다. 안젤라가 누구냐고? 이 독서편지의 맨 앞부분에 보면 안젤라가 나온단다. 비비안이 지난 일을 안젤라에게 알려주려고 지난일을 글로 쓰고 있다고 했었지. 안젤라는 1942년에 태어났는데, 프랭크는 그 이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월터가 죽은 일본의 가미카제의 공격에서 프랭크는 다행히 살아났지만, 온 몸의 60퍼센트를 화상을 입었단다. 그 일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로 앉지도 못하고,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단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런 시점에 비비안과 알게 되었어. 프랭크는 힘들 때마다 비비안에게 전화를 했고, 비비안은 따뜻하게 대화를 나누었단다. 그렇게 둘은 사랑하게 되었어. 비록 만질 수 없지만 말이야. 육체적 쾌락을 즐겼던 비비안에게는 어쩌면 그런 육체적 쾌락 없이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깨닫지 않았을까 싶구나. 1971, 프랭크는 자신의 딸, 그러니까 안젤라가 결혼한다고 비비안에게 웨딩드레스를 부탁했단다. 그렇게 비비안은 처음으로 안젤라를 만나게 되었어. , 그 이후에 또 만날 일은 없었지. 그리고 1977년 안젤라로부터 프랭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돌이켜 보면 키스 한번 안하고 포옹 한번 안 해던 프랭크인데, 비비안은 프랭크가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단다.

….

비비안의 이 글을 통해 안젤라도 다시 한번 아버지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구나. 이미 안젤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니 비비안의 글로 인해 삶이 바뀌거나 큰 가르침을 얻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생각 드는구나. 그것은 비단 안젤라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빠도 포함해서 말이야. 짧게 쓴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길어졌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며칠 전, 그의 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책의 끝 문장: 비비안 모리스.


"네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비비안. 너는 절대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 물론 예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오직 젊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움은 곧 사라져. 하지만 넌 결코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없어. 내가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 네가 스스로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네 삶도 중요하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네 삶도 전혀 중요하지 않아. 한때는 나도 네가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어. 네 고모 페그가 바로 흥미로운 사람이야. 올리브 톰슨도 흥미로운 사람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 P358

"아무나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해." 올리브는 페그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지. 어른의 세상은 어린이의 세상과 다르다고.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은 고통을 견딜 필요가 없지. 그런 기대를 받지도 않고.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어른의 자리에 서야 해. 당연히 그런 기대도 받게 되고. 자기만의 원칙과 신념도 지켜야 하고. 희생도 필요하단다. 사람들은 널 판단하겠지. 실수를 하면 해결해야 하고. 어름이 되지 못한 사람보다 충동을 자제하고 더 고상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있을 거야.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자리가 힘든 거란다. 이해하겠니?" - P498

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아본 적은 없었다. 내 경험을 말로 표현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말한 어둠이 ‘죄’나 사악함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내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세상의 빛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섹스만 그곳에 가닿을 수 있었다. 태곳적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곳, 문명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우정으로도 불가능했다. 창의적 노력으로도, 경외와 기쁨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곳이었다. 내 안의 그 어둠은 오직 섹스를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그 어둡고 은밀한 공간에 도달하면 나는 마침내 나라는 인간의 기원에 내려섰다고 느꼈다. - P529

"잘 들어요, 프랭크 그레코. 당신이 겁쟁이라면 그래요, 당신 말대로 그렇다고 쳐요. 그래도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 고모 페그는 알코올 중독이에요. 고모는 술을 절제하지 못해요. 그래서 인생이 엉망진창 꼬였죠. 그게 무슨 뜻일까요? 아무 뜻도 없어요. 그렇다고 고모가 나쁜 사람일까요? 술을 조절하지 못한다고 실패한 사람일까요? 당연히 아니에요. 고모는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어쩌다 알코올 중독이 된 것뿐이에요, 프랭크.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예요.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없어요. 빌리 삼촌은 약속을 밥 먹듯 어기고,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해요. 그것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에요. 빌리는 멋진 사람이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삼촌은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뿐이지 아무 뜻도 없어요. 그래도 우린 그를 사랑해요." -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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