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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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오랜만에 읽은 시집을 소개해줄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란다. 시에 함축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시인이 이야기하려는 것을 잘 모르겠더라구. 그런데 간혹 읽으면 바로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도 있긴 했어. 그런 시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류시화 시인이란다. 류시화 님은 시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여행기도 많이 쓰시는데

그런 책들도 모두 좋았어. 외국에 숨겨진, 좋은 책들도 번역해서 소개해 주시고, 아름다운 시들도 찾아서 엮어서 출간하시기도 하지. 류시화 님이 직접 지으신 시 말고, 류시화 님이 소개해 준 시들도 류시화 님의 시들처럼 읽으면 바로 받아지는 시들이었단다. 그래서 류시화 님이 다른 사람들의 시를 엮은 책들도 몇 권 읽었지.

이번에 읽은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라는 시집은 오랜만에 출간한 류시화 님의 시집이란다. 책 제목이 책의 역할을 다한 경우도 있는데, 이번 시집도 책 제목부터 울림이 남다르단다.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어떻게 부가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읽는 순간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꽃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구나. 이 시집의 제목은 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시들 중 하나 인데, 시 전체도 좋아서 너희들에게 전체를 소개해 줄게. 추위에 시달리고 바람에 힘들어도, 그러니까 지금 삶이 힘들고 지치고 그래도 그건 너가 꽃이기 때문인 것이고, 곧 꽃이 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시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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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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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집을 읽고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은 그 시집에서 좋았던 시 몇 편을 소개해주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 아빠가 이 시집을 읽고 따로 발췌 해 놓은 몇 편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독서 편지를 대신하련다. 너희들도 이 시집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구나. 가끔 학교에서 시를 쓰는 숙제가 있는 것 같은데,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먼저 소개해 줄 시는

흉터를 재해석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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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

흉터의 문장


흉터는 보여 준다

네가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걸

네가 상처를 이겨 냈음을


흉터는 말해 준다

네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그럼에도 네가 살아남았음을


흉터는 물에 지워지지 않는다

네가 한때 상처와 싸웠음을 기억하라고

그러므로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러므로 몸의 온전한 부분을

잘 보호하라고


흉터는 어쩌면

네가 무엇을 통과했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화상 입힌 불의 흔적

네가 네 몸에 새긴 이야기


완벽한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고통


흉터는 작은 닿음에도 전율하고

숨이 멎는다

상처받은 일을 잊지 말라고

영혼을 더 이상 아픔에 내어 주지 말라고


너의 흉터를 내게 보여 달라

나는 내 흉터를 보여 줄 테니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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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은 색다른 시선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길을 알려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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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3)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들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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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때론 힘들게 때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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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3)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북극의 빙하는 무너지고

시리아 난민들은 영국 해협에서 떠오르고

카불의 여성들은 검은 히잡 속에 숨는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티베트 승려들은 몸에 불을 붙이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수가 바다로 흘러가고

멕시코인 밀입국자들은 트럭 안에서 숨이 막힌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우한에서는 바이러스가 폐를 잠식하고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인도의 노동자들은 수천 리 걸어 집으로 간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바그바드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가 이어지고

미얀마에서는 시위 군중이 영화처럼 쓰러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병원에 미사일을 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알래스카에서는 신생아가 울음을 터뜨리고

이스탄불에서는 수도승들이 회전춤을 추고

제주 바다에서는 해녀가 숨비소리 내며 자맥질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지구는 초속 30킬로미터로 태양 둘레를 내달리고

야생 기러기는 희망의 날갯짓으로 대륙을 건너고

혹등고래는 새끼 업고 북극해로 이동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신이 하루를 더 허락하고

맹인 소녀는 점자로 시를 읽고

아이는 나무 아래서 주운 새를 품에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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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달에 대한 예찬과 그 달을 닮은 이에 대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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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달에 관한 명상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너는 너의 안에 언제나 빛날 수 있는

너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를


달을 보라

완전하지 않을 때에도

매 순간 빛나는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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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몇 편의 시들을 더 발췌하긴 했는데 너희들에게는 이 정도만 소개해 주었단다. 이 시집은 가끔씩 기분이 우울하거니 정신이 복잡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펴서 한 두 편 조용히 정독하면 좋을 것 같았어.

,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손을 내밀어 보라

책의 끝 문장: 다시 이곳에 돌아와 충분히 사랑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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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6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좋은 시를 감상할 수 있었네요.

bookholic 2023-12-06 23:08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한 달 남은 2023년 좋은 시와 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길...
 















(193-194)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미호는 너무 아름다웠어. 동민은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바꿔 불러본다. 미호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스무 살엔 누구나 아름답다. 우리도 스무 살에 만났지. 스무 살에 저 노래를 부르며 데뷔한 서태지가 지금 오십이 됐다는 건 이상하다. 우리도 결국은 오십이 될까. 그럴 리 없어. 우리가 어떻게 오십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내후년이면 서른인데 그다음에 마흔이 되고 나면 또 자동으로 오십이 되고 마는 거지.


(220)

마르크스, 당신은 우리 인류에게 구원의 이름이자 저주의 이름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당신은 20세기 인류를 반으로 갈라서 싸우게 만들었다. 절대권력과 독재정치가 당신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신은 식민침략과 제국주의로 질주하던 자본주의의 악마성에 제동을 걸었다. 식민침략을 당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당신은 복음이었다. 당신의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당신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다. 이제 편히 잠드시라. 당신이 남긴 것을 구원의 도구로 쓰거나 파멸의 정치로 쓰거나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다.


(224)

어느 날 이른 오후 집에 왔는데 영한은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번이 기억나지 않았다. 불편한 기억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의식의 아래 칸으로 쓸어냈더니 무차별 망각의 쓰나미에 몇 안 되는 실용적인 정보도 딸려 내려가 버린 모양이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영한은 현관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아파트 뒷산을 넘어 보라매공원에 가서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와우산숲 위로 넘어가고 오리들도 사라져 텅 빈 연못에 어둠이 내릴 때 영한은 내 인생도 헛되고 헛된 공부들 끝에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비감에 젖었다.


(239)

동민이 먼저 와서 말을 걸다니, 영한은 이 무슨 사건인가 싶다. 동민한테는 그동안 찜찜했는데 잘됐다. 집을 나간 2년 반은 동민이 대화를 거부했고 집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대화는 번번히 핀트가 어긋났다. 노트북을 접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영한은 부자간의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책 안 읽는다고 타박하면 안 돼. 지적질 금지! 가르치려는 습관을 버려야 돼. 강의 금지!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마. 곤란한 질문도 금지! 영한은 대화 매너의 3금을 정해놓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을 준다.


(268-269)

여기서 진보가 정치에 희망을 잃고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의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면 그것이 지금 일본이다. 총선 투표율이 50% 정도, 어차피 정치는 자민당이 알아서 하든 말든, 국민 절반이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 관심 없다. 전후 70여 년의 자민당체제에서 민주당이나 사회당이 집권한 건 단 두 차례, 6년이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투표율도 높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자민당의 수족이 돼 있는 행정부에서 민주당은 거의 외계인 내각이었다. 민주화운동에서의 역할, 시민운동의 경험이 한국의 진보가 일본의 진보보다 나은 점이다. 그 다음은 집권 경험이 쌓여야 진보도 실력이 쌓인다.


(288-289)

우리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국 믿을 것은 민주주의이고 의회정치인데 이상적인 의회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주화의 한 세대를 지나 차세대로 넘어가는 한국사회가 어떻게 저 우아한 시스템에 올라탈 것인가. 독일은 나치를 딛고 훌쩍 건너뛰었는데,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바닥을 치는 이 시기가 변화의 지렛대가 될까. 성숙한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건너뛰는 것, 사회적 진화의 시간을 단축하는 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323-324)

늙는 건 정말 종합적으로 어려워. 은퇴라는 것도 쉽지가 않지. 예전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 한가운데였는데. 일이 돌아가고 같이 움직이고 그랬는데. 이젠 자기가 자기를 추스르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안 굴러가. 몸은 여기저기 빵꾸 나기 시작하지. 요새 친구들 만나면 어디 아픈 얘길 많이 하는데 무릎 하나 가지고 30분씩 떠들 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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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도 2 - 봉오동의 그들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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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방현석 님의 <범도> 2권을 이야기해줄게. 함경도를 거점으로 다시 의병대를 조직해서 홍범도는 참모총장으로 활약한다고 했잖아. 홍범도의 의병대가 또 활약을 하게 되자, 이번에도 전국 의병연합대에서 합류할 것을 제안 받았단다. 이미 1권에서 유인석의 의병대와 연합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지휘부 회의를 거쳐 이번에는 보류하고 독자적으로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의병연합대를 지원하기로 했단다. 의병연합대를 알아보니 역시나 지휘부는 양반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단다.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킨 뜻은 거룩하나, 아직 신분을 따지는 이 조직은 거룩하다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의병연합대를 이끌고 있던 대장 이인영은 일본군과 대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하게 된단다. 그런데 부친상이 더 중요하다면서 고향으로 가버렸단다. 장례식 때문에 며칠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면 떠났다는구나. 유림의 입장에서 효()에 대한 예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의미겠지. 그렇다고 그 거대한 의병대를 이끄는 대장이 개인적인 일로 의병대를 버린다는 것이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의병대도 따지자면 나라에 대한 충()을 위해 모인 것인데, ()은 유교의 으뜸 아니던가. 아무튼 전국 연합의병대를 와해되었어.

한편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일본의 하세가와가 이끄는 대규모 정규군과 결전을 벌였단다. 총대장 임창근과 참모총장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단다. 하지만 많은 희생들도 있었어. 총대장이었던 임창근이 전사하고 말았단다. 그리고 홍범도의 아들 양순도 총상을 입었단다. 의병대를 이끌고 있는 이가 홍범도라는 사실이 일본군에도 알려지면서 집에 있는 식구들이 걱정되었단다. 이를 눈치 챈 다른 동지들이 홍범도에게 식구들을 피신시키라고 하여 총상을 입고 치료중인 아들 양순을 보냈단다. 하지만 약속했던 날이 지나도 양순이 오지 않았어. 그러자 몇몇 동지들이 홍범도를 비난했단다. 자기의 아들만 빼돌렸다고 말이야. 제 발로 의병대를 찾아왔던 양순인데, 그럴 리가 없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홍범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었어. 계속된 일본의 회유 정책에 마음을 흔들리고 있던 이들이었거든. 그리고 의병대 사정도 좋지 않았어. 식량 부족으로 늘 굶주리고 있었고, 병기도 부족했어. 결국 홍범도는 산을 내려가는 것은 자유의지에 맡겼고, 일부 사람들은 의병대를 떠나 산을 내려갔단다. 그들을 기다라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이나 감옥행이었단다. 일본의 간사한 말을 믿었던 대가였지. 일본에 속아 산에 내려갔던 이들 중에 차도선은 감옥에 갇혔다가 다시 탈옥해서 홍범도에게 돌아왔단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홍범도도 물론 그를 다시 받아주었어.


1.

아들 양순이 몰골이 초췌해져서 돌아왔단다. 어머니의 편지를 들고 왔어. 양산의 어머니, 그러니까 홍범도의 아내는 일본군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어.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양순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회유하는 내용이었어. 홍범도는 보자마자 가짜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어머니를 위해서 회유하자는 아들 양순에게 홍범도는 총을 겨누고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발사까지 했고 양순은 그 총에 귀를 맞아 다쳤단다. 주위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날 뻔했을 거야. 며칠 뒤 홍범도의 부인 수경이 일본군의 고문을 받다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홍범도는 슬픔을 머금고 일본군과 계속 전투를 이어갔단다. 승전보를 올리기는 했지만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어. 홍범도의 아들 양순도 전투 중에 죽고 말았단다. 아내는 고문 끝에 자결을 하고, 아들은 전투 중에 전사하고마음이 찢어지겠지만, 홍범도는 겉으로 슬픔을 드러낼 수 없었단다.

어느날 백무아가 찾아왔단다. 1권에서 수경을 만나기 전에 잠깐 썸을 탔던 여인, 백무아. 기억 나지? 백무아는 미국에 갔다고 했잖아. 백무아는 미국의 정보원이 되어 다시 우리나라에 왔어. 백무아는 이제 조선 안에서 활동하기에는 역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국경 너머에서 활동하라고 조언을 했단다.

일본군의 반격은 야비했단다. 홍범도의 의병대를 도와주었던 백성들을 무차별 사살했단다. 백무아의 말대로 일본군의 화력이 막강하여 정면 승부를 할 수 없었어. 친일 앞잡이를 상대로 한 테러를 했고, 그들로부터 군자금을 확보했단다. 그리고 홍범도는 일단 국경을 넘어가기로 결정한단다. 그 많은 의병대를 다 데리고 가기가 어려워 의병대는 해산하고, 자신이 이끌었던 저격여단의 소수정예만 데리고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갔단다.


2.

당시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단다. 홍범도는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미래를 도모했단다. 홍범도가 연해주에서 만난 이들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전의 안중근도 있었고, 독립 운동의 대부 최재형도 있었고, 간도의 책임을 맡으며 독립운동을 하던 이범윤도 있었단다. 그 밖에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 아빠가 일일이 기억을 못하겠구나. 그리고 아빠가 다른 읽은 책들에서 등장하는 아들도 있었단다. 아빠가 몇 년 전에 책을 통해 알게 된 김 알렉산드리아도 나왔고, 얼마 전에 <독립운동 열전>에서 읽었던 철혈광복단의 조선은행 현금 탈취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단다. 안중근과 함께 의병 활동을 했던 엄인섭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이야기도 <독립운동 열전>에서 나왔었지. 이 소설에서 다시 한번 이 이야기가 나와서 머리에 다시 한번 새겼단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이 가장 의지했던 세력은 바로 러시아였단다.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일본의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거든.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러시아와 연합하여 일본을 공격하려고 했어.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어졌단다. 1914년 세계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얼마 후 러시아와 일본 모두 연합국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단다. 그러니까 같은 편이 된 거야. 두 나라 모두 자신들의 나라에 이득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단다. 그러니 둘이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단다. 일본이 연합국에 참여한 것은 일본은 독일이 차지하고 있는 산둥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술수였단다. 연합국에 참여하고 바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이 차지하고 있던 산둥반도를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단다. 유럽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독일이 산둥반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러시아는 더 상황이 복잡했단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단다. 그러면서 1차 세계 대전에서 발을 뺐어. 독일이 망명 중이던 레닌을 소련 국내로 잠입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던 이유도 바로 러시아를 세계대전에서 발을 빼도록 수를 쓴 거지. 러시아 혁명을 성공한 러시아는 다시 흰 파와 붉은 파로 나뉘어 내분이 일어났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도 흰 파와 붉은 파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양분되기도 했어. 이 때 붉은 파 소속이었던 김 알렉산드라는 외무장관을 맡고 있었어. 홍범도는 대한독립군 소속으로 외무장관인 김 알렉산드라와 만났단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 알렉산드라는 혁명 전쟁 도중 죽고 말았단다. 김 알렉산드라가 계속 살았다면 홍범도와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3.1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연해주도 독립운동에 대한 열의가 더 뜨거워졌고, 홍범도도 대한국민회의를 통해 임시정부와 협력하게 되었단다.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이 되어 북간도 쪽으로 이동을 했고, 봉오동 전투를 치르게 된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봉오동>은 한번 같이 보자꾸나. 아빠는 봤는데 한번 더 볼 의향이 있단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홍범도가 아니고 봉오동에 참여한 일반 의병들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봤단다.

봉오동에서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일본군의 야비한 복수극은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 가슴 아팠단다. 이 부분과 청산리 전투 부분은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삼웅 님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의 독서편지를 참고하렴. 그래서 그 때 쓴 독서편지 일부를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가 쓴 독서편지를 아빠가 쓰는 독서편지에 발췌하다니참 게으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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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6 7. 독립전쟁 제 1회전이라고도 부르는 봉오동 전투. 이것은 사실 작은 전투에서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소규모 헌병순찰대를 격파했는데이에 일본군의 반격이 있었고, 삼둔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일본군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냈단다. 이에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전이 있었어. 홍범도는 전략을 세웠어. 먼저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는 마을 공동화 작전을 폈고, 이후 유인 작전 전술을 폈어. 그날 날씨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좋지 않았지만그것은 일본군에도 마찬가지. 봉오동에 있었던 전투에서 적군 5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다시 한번 대규모 보복전을 준비하였단다. 이번에는 중국군에 압력을 넣어 중국군까지 동원했어. 하지만 홍범도는 오히려 중국군을 회유했어. 하지만 계속된 일본군의 압박때문에 홍범도는 봉오동를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봉오동 전투가 있고 4개월 뒤일본군을 간도 지역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어. 홍범도는 그들을 용정촌에서 100여 리 떨어진 화룡현 삼도구로 유인하려고 했어. 그곳은 깊은 계곡으로 전략적으로 먼저 진을 치면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결전지로 정했단다. 이번 전투에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도 함께 했단다. 한편일본군은 이 전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전에 음모를 벌였어. 마적단을 돈주고 사서 간도 내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여 아홉 명을 죽이는 자작극을 벌였어. 이 사건은 훈춘 사건이라고 한단다. 이 훈춘 사건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은 간도에 주둔하게 되고, 1920 10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지역에서 대규모 교전을 벌이게 된단다.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천수평 전투어랑촌 전투맹개골 전투만기구 전투, 쉬구 전투천불산 전투고등하 골짜기의 전투까지… 사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우리 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위에서 열거한 많은 전투들은 모두 홍범도의 연합독립군과 김좌진이 인솔하는 북로군정서군이 단독 혹은 연합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란다. 이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은 1200 여명이 죽었어. 우리나라 독립군으로는 정말 큰 승리였단다. 홍범도도 이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단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청산리 대첩에서 홍범도가 빠진 교과서로 배워야 했을까. 홍범도가 나중에 소련공산당에 가입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의해서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게 나중에 해방이 된 후 북로군정서군의 장교로 있었던 이범석이 국무총리를 맡았는데, 그 이범석이 회고록을 썼어. 그런데 그 회고록에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쓰면서, 홍범도를 나쁘게 왜곡을 해서 쓴 거야. 홍범도가 도망치다가 아랫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이야. 아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청산리대첩의 기록에는 홍범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청산리 대첩의 진정한 주역은 홍범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홍범도김좌진이범석의 세 주역들과 무명의 많은 독립군들그리고 간도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 이것이 청산리 대첩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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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청산리 전투의 이야기를 마치고 세월을 쭉 돌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후 홍범도 장군의 삶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해주었단다. 청산리 전투 이후에도 자유시 참변 등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생략했어. 이 부분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아빠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을 읽고 쓴 독서 편지를 참고해도 될 듯싶어. 아니면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를 통째로 읽으면 더 좋고 말이야.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와 소설 <범도>를 연이어서 읽으면 홍범도 장군님에 대해서는 박사가 되지 않을까 싶구나…^^

홍범도 장군의 삶을 돌이켜 볼 때, 누가 그보다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 싶구나. 군대 없는 나라 잃은 조국에서, 10대 소년 때부터 평생 진정한 군인이었던 홍범도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나라 군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겠구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외면하고 있지만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홍범도 장군님의 진면목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육군사관학교가 더욱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이 소설에서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란다. 이름 없이 의병 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들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단다. 좀 두껍긴 하지만 너희들도 좀 커서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소문으로만 들었던 13도창의군의 통문을 내게 들고 온 것은 뜻밖에도 달음이었다.

책의 끝 문장: 정미공장은 고려극장 수위 자리를 잃은 그가 죽기 전에 몇 달 동안 품팔이를 했던 곳이었다.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김알렉산드라가 했던 말 위로 아주 오래전 다른 한 사람이 내게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겹치며 귓전에 울렸다. 부디, 당신이 양반과 침략자, 남자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선에서 양반보다 더한 계급이 남자입니다. 양반이나 아니나 다 그 더러운 계급의 혜택을 누린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백무아가 조선을 떠나며 남긴 그 말을 들은 가을로부터 얼마나 많은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간 다음, 나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가. 모든 차별과 억압, 침략에 반대하는 진정한 인민의 권력. 참된 민주공화정……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분신과 같은 소총을 꺼내들고 가늠자를 들여다 봤다. - P398

고려령 1고지를 떠나기 전에 나는 결과 특임분대 여덞 명의 분대장으로 남은 지휘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가 의병이 되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아니었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오직 의로써 싸워왔소. 그렇게 싸우다가, 저격여단의 창설자 김수협과 항일연합포연대의 청년중대장 현창하, 부중대장 이정재,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전사했소. 박한과 리범진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고, 허위와 박상진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소. 그들이 싸워왔기에 오늘의 싸움이 있소. 오늘 싸워내야 내일의 싸움도 있소.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다음 싸움도 없소.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언젠가, 대한의 누군가가 못다 한 우리의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오. 그렇지 않소?"
- P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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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bookholic 2023-12-05 23:23   좋아요 1 | URL
늘 먼저 와서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도 어느덧 한 달 남았군요...
서니데이 님도 늘 그렇듯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18)

행성 충돌이나 극심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거나 압도적인 포획자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못을 스스로 조르는 자기 파괴적 동물입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진행되는 전쟁을 보세요. ‘우리는 같은 종이야라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늑대나 토끼가 보았다면 당혹스러울 일이고, 인간을 전염병균처럼 여기며 멀리 떠나려 할 겁니다. “인간들은 서로 거침없이 착취하려 하고 심지어 서로를 살육하니, 우리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지만 늑대와 토끼마저도 동족의 피를 묻힌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도망할 곳마저도 인간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버렸으니까요.


(35)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 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 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는 죽지 않고 여러분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아내도 무용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람도 물도 그리고 새도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 병들도 나이 들어 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건,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46)

사랑이 힘든 것은, 양쪽 다가 주인이고 양쪽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여서 그렇습니다. 자유와 자유가 만나는 팽팽한 긴장감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상대방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떤 강요도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이야기도 성립되는 셈이죠.


(77)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끌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끌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155)

차라리 우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우리의 마음은 바람과 같으며, 나아가 바람과 같은 것이어야만 합니다. 구멍이 되어 바람을 맞아 소리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구멍에 들어가 그 구멍에 어울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것이 장자가 바람의 철학자인 이유입니다.


(187)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하려는 자는 더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선을 행해도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독맥적인 것 따르기를 기준으로 삼아라! 그러면 몸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삶을 온전하게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기를 수 있고, 주어진 수명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 <양생주>


(217)

설결이 물었다. “선생께서는 이익과 손해를 알지 못하니, 지극한 사람은 이익과 손해를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지극한 사람은 신비스럽지! 넓은 습지가 불타올라도 그를 뜨겁게 할 수 없고, 황하와 한수가 얼어붙어도 그를 춥게 할 수 없고, 벼락이 산을 쪼개고 폭풍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그를 놀라게 할 수 없다네. 이와 같은 사람은 구름의 기운을 타고 해와 달을 몰고 사면의 바다 밖에서 노닌다네. 죽고 사는 일도 그에게 어떤 변화도 줄 수 없는데, 하물며 이익과 손해라는 작은 실마리에 대해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219)

기원전 4000년경 인간은 말을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이후로 더 이상 다른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동료 인간을 가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인간 가축은 동물 가축과는 달리 말이 통하고 더 섬세한 작업에 투입할 수도 있으니까요. 거대 건축물로 상징되는 국가체제는 인간 가축화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20세기 전번에 민주주의를 자임했던 국가에서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유행처럼 사용했던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혹은 자국민들을 길들여 지배하려 할 때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두 가지 방법을 비유한 거죠.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당근과 채찍은 가축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료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 바로 상과 벌 혹은 사랑의 방법과 폭력의 방법이니까요.


(324-325)

음악을 듣는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혹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거실의 불을 끄거나 빛을 약하게 조절합니다. 음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행동은 군주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는 복종의 행위와는 다릅니다. 눈을 감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행동은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상대방에 복종하겠다는 의지와 무관합니다. 음악이나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감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음이 상대방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의지라면, 눈을 감는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응시하는 신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지요. 타자의 말이나 혹은 타자를 듣는다는 것은 지해에의 의지나 복종에의 의지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건 소통에의 의지니까요. 장자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고 말합니다. ‘’, ‘마음’, 혹은 보다 수천 배 중요한 것은 듣겠다는 그의 의지입니다. ‘듣겠다는 소통에의 의지가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고,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 기로 듣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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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도 1 - 포수의 원칙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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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근 나랏일을 하는 이들 중에 이유를 좀체 알 수 없는 짓을 하는 이들이 많단다. 몇 달 전에 사회주의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나라 독립 운동에 평생을 하신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퇴출하겠다고 해서 시끄러웠단다. 많은 학계와 기사들이 육사 대변인에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질문을 했는데 육사 대변인은 제대로 된 답을 한 마디도 못했단다. 그 또한 윗사람 누군가 시켜서 한 일 같은데, 이런 일들이 어떤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실로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이게 독재국가이지, 민주국가라 할 수 있는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홍범도 장군이 육군 사관학교의 뿌리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를 부정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더구나. 역사 공부를 좀 하다 보면 일제 시대에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우리나라 독립에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을 알 텐데. 그리고 스탈린이나 김일성의 공산주의가 생기기 전이고, 당시 사회주의는 레닌의 사회주의로 하나의 사상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데 말이야. 정말 열 받더구나. 육군사관학교의 흉상 이전 논란이 있긴 해도 설마 이전하겠는가? 생각했는데속전속결로 일을 해치우더구나. 육사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은 아무리 군인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줄 알아야 진정한 군인 아닌가 싶은데, 다들 침묵하고 있더구나. 다들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더구나.

….

지난 정권 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수십 년 만에 귀환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어떻게든 전 정부가 한 일을 흠집을 내려는 것 같았어. 하늘에 계신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이걸 보시고 어떤 생각들을 하려는지

아빠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책은 <홍범도 평전>이라는 평전과 <나는 홍범도>라는 소설, 이렇게 두 권을 읽었단다. 그 외에 일제 시대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통해서 홍범도 장군에 대해 여럿 읽었단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또 한번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더구나. 그런 와중에 알라딘 서점의 블로그에서 <범도>라는 책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단다. 방현석이라는 분이 쓴 소설로 2권짜리였단다. 이 책은 올 유월에 출간되었는데, 홍범도 흉상 논란이 있기 몇 달 전이로구나. 마치 이런 일을 예견이라도 한 것인지아무튼 <범도>라는 소설을 읽을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어 주문해서 읽어보았단다. 전에 읽은 <나는 홍범도>라는 소설은 조금 실망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소설은 어떨까? 아참, 소설이다 보니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졌고, 그로 인해 가상의 인물들도 등장한다는 점은 감안하면서 읽어야겠구나.


1.

홍범도의 어머니는 홍범도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어. 그리고 어렸을 때 아버지 마저 돌아가셔서 홍범도는 아버지의 지인인 신포수에게 맡겨졌단다. 신포수는 신씨 성을 가진 포수라서 그렇게 부른 거야. 신포수와 함께 홍범도도 포수 일을 했단다. 사격에 재능이 있었어. 그래서 신포수는 홍범도를 군대로 보냈단다. 평양에 있는 군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나팔수로 일하다가 한양에 있는 군대로 파견을 가게 되었고, 우영사라는 높은 직책을 가진 민영익이라는 분의 경위관으로 일하게 되었단다. 민영익이라는 사람은 얼마 전에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나온 적이 있는 사람인데 기억할는지미국까지 갔다 온 진보 인사였으나, 보수 쪽으로 돌아섰고, 그로 인해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혁파와 갈라서게 되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혁파들에게 총상을 맞게 되었잖아. 이 소설에서도 그 장면이 등장한단다. 직접적으로 갑신정변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난리통에 민영익이 중상은 입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 때가 바로 갑신정변 때였단다.

홍범도는 군대에 있으면서 이번에는 농군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동을 했어. 소설은 홍범도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농군이 일으킨 난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동학운동이었던 것이란다. 홍범도는 갈등을 했어. 저 농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들에게 총칼을 겨누어 하는지 말이야. 이 진압 과정에서 홍범도는 친한 군 동기인 백무현을 잃고 말았단다. 그는 죽기 전에 그가 가지고 있던 반지를 자신의 동생에게 전해주라고 했어.

홍범도는 백무현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백무현의 고향인 평양에 와서 백무현의 동생 백무아를 만나 백무현의 슬픈 소식을 전하고 백무현이 전해주라는 반지를 전해 주었단다. 이때 홍범도와 백무현의 동생 백무아는 슬픈 와중에 애틋한 감정을 서로 느꼈단다. 백무아는 야소교도를 믿고 교회에서 지내고 있었어. 군대에서 나와서 할 일이 없던 홍범도에게 백무아는 초지 공장을 소개해 주었단다. 초지 공장은 책을 만드는 공장인데, 아빠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제지공장과 비슷한 것 같았어. 홍범도는 그렇게 초지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매년 백무현의 기일이 되면 무아가 찾아왔고 홍범도는 무아와 함께 백무현의 기일을 챙겼단다. 그런데 4년째 되던 날 무아가 오지 않았어. 나쁜 놈들한테 몹쓸 봉변을 당했다고 했어. 홍범도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평양으로 갔어. 무아는 그 일이 있고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갔다고 하는구나. 홍범도는 무아를 그렇게 만든 이를 찾아가 복수를 했단다. 한 놈은 죽이고, 한 놈은 그것을 못쓰게 만들었어. 법이 없는 세상, 홍범도는 자신이 법이 되려고 했어. 초지 공장의 사장이 금희네라는 여자를 건드렸고, 그로 인해 금희네는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홍범도는 초지 공장의 사장을 죽이고 도망을 갔단다. 이때 갑신정변 때 죽은 친구 차이경의 동생들인 수경과 수이도 함께 데리고 갔단다. 홍범도가 차이경이 죽고 그들의 동생들을 보살펴 주고 있었는데 자신이 도망을 가고 나면 그들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야.

그들과 함께 간 곳은 신포수의 지인인 자담스님이 계시는 신계사라는 절이었단다. 그곳에서 차이경의 동생 수경과 수이는 수계를 받아 스님이 되었단다. 예전에 <홍범도 평전>을 읽었을 때 홍범도가 신계사에 있을 때 비구니와 사랑에 빠져 절을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범도>라는 소설에서는 이런 설정을 했구나. 홍범도와 수경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거든. 홍범도가 신계사에 숨어 있었지만, 일경이 그곳까지 쫓아오게 되었고, 홍범도는 수경, 수이와 함께 다시 도망을 갔는데 도망가는 중에 수경, 수이와 헤어지게 되었단다.


2.

홍범도는 우연히 김수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의기 투합하여 의병 활동을 하기로 했단다. 둘이서 일본군들을 처단했단다. 그러면서 주위의 다른 포수들과 농민들이 그들과 함께하겠다고 모였어. 그들은 어느 정도 조직도 갖추어지고, 일본군과 싸움에서 계속 승리를 거뒀단다. 그러자 그들의 소식이 다른 의병들에게도 전해지고, 유인석이 자신의 의병대와 연합하자는 제의가 왔어. 유인석이라고 하면 당시 조직이 꽤 큰 의병대를 이끌고 있던 사람이거든. 그들의 합류 제의에 의견이 분분했어. 홍범도는 낯선 이들과 연합이 장점도 있겠지만 좀 꺼려했단다. 그런데 김수협이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서 투표를 통해 연합하기로 결정했단다.

그런데 유인석의 의병대의 지휘부는 모두 유림 세력, 그러니까 양반들이었어. 유인석의 의병대는 신분제도가 아직 있었고, 그로 인해 미천한 신분에 대해 멸시하는 이들도 있었어. 그리고 홍범도의 의병대들이 다른 군장의 아래에 배치되었다가 나중에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 홍범도 의병대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조직 편대였지. 결국 일본군에 대패하고 말았어. 그의 정신적 동지였던 김수협도 죽고 말았단다. 결국 유인석 의병대와 연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어.

홍범도는 남아 있는 자신의 의병대원들은 집으로 보내고, 혼자 활동했단다. 탄광에 위장취업을 해서 다이너마이트를 훔친 다음 일본인 행사장에 다이너마이트를 투척하기도 했어. 이 때 감옥에 투옥될 뻔했는데, 여염, 선형우 부부가 도와주어 피신할 수 있었단다. 여염과 선형우 부부는 홍범도를 함경도에 지내고 있는 러시아인 포수인 얀코프스키를 소개해주었고, 한동안 홍범도는 얀코프스키와 지냈단다. 그러면서 얀코프스키에게 러시아 총을 얻기도 했단다.

함경도에 지내면서 다른 포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신계사에서 도망갈 때 헤어진 수경, 수이 소식을 듣게 되었어. 그래서 수소문 끝에 수경의 집에 찾아가 재회했단다. 홍범도는 수경뿐만 아니라 아들 양순도 처음으로 만났단다. 양순은 어느덧 아홉 살이었어. 그곳에서 홍범도는 수경과 함께 지냈단다. 그의 고난한 삶 속에서 행복했던 몇 년이 그때였어. 둘째 아들 용환도 태어났어. 홍범도의 행복한 시간과 달리 나라 형편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단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단다. 뿐만 아니라 민간들의 총기 소지도 금지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포수들의 총들도 압수한다는 거였어. 포수들에게 총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압수한다고? 홍범도는 함경도 포수들과 함께 산으로 들어갔단다. 집에 있으면 총을 그냥 빼앗기게 되니까 말이야. 자연스럽게 다시 의병 활동을 하게 되었단다. 군대가 해산되면서 갈 곳 없어진 군인들도 의병을 하겠다고 왔어. 그 중에는 홍범도의 옛 군 동료들인 이정재, 이진도 있었단다. 특히 이진은 여자 포수 출신인데 명사수였단다. 이렇게 다시 모인 의병대는 후치령 전투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단다. 홍범도의 첫아들 양순도 의병대에 합류했어. 의병대는 조직을 재건하면서 총대장을 임창근으로 하고 참모총장을 홍범도로 했단다.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란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이고, 어디까지 사실을 바탕으로 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의병들의 뜨거운 열정만은 모두 사실이었단다. 이렇게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의병들의 헌신과 노력을 안다면 그들에게 그런 처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말이야. 지금보다 더 많은 보상이나 혜택을 줘도 부족할 판에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조만간 2권 이야기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연해주의 여름.

책의 끝 문장: 양순이는 이렇게 남정과 함께 항일연합포연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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