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빅뱅 역시 하나의 거대한 폭발이었다. 따라서 에너지 외에도 수많은 것이 만들어져 주위로 퍼져나갔다. 물리학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여러 미립자의 이에 해당한다. 글루온과 쿼크, 입자와 반입자, 뮤온과 타우, 그리고 2013년 공식적으로 발표된 힉스 입자 같은 미립자들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몇몇 미립자가 자연계의 힘으로 뭉치면서 가장 작고 가벼우며 간단한 최초의 원소와 원자가 탄생했다. 원자번호 1이라는 숫자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수소가 그 주인공이다.


(66)

이후 시간이 흘러 히타이트와 힌두 지방에서 탄소가 함유된 철광석으로 강(steel)을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철강은 청동과 마찬가지로 합금으로 구분되는데, 철이 대부분이고 다른 금속이나 비금속 원소가 소량 혼합된다. 이 시대를 우리는 철기시대라고 칭한다. 그러나 잠시 성행했다 사라진 구리 시대(BC 4000~BC 3000, 일명 동기 시대)보다 청동기를 더 중요한 시대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밀하게는 철강 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이 화학과 물질 측면에서 더 정확하다.


(69)

이런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2의 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반도체다. 전자 기기를 기반으로 사회 전체 시스템과 고성능 정치들이 운영되고 있고 즉각적으로 효율적인 정보 교환과 습득도 이루어지는 만큼, 그것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지금 당장 반도체 기반의 모든 전자 기기가 사라진다면 인류는 농경 생활이나 목축 생활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집을 지어 생활하는 것 외에는 현대 삶의 이기와 관련 있는 차별화된 모든 체재를 잃고 철기 시대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반도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규소이며, 규소는 모래로부터 얻는다. 그래서 지금을 제2의 석기 시대라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122-123)

수많은 수도관을 통해 분수대와 공중목욕탕은 물론, 로마 제국 전역에 물 공급을 가능하게 한 우수한 상수도 시설을 현재까지도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수도 시설은 현재까지도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수도 시설을 기다란 관 형태로 만들기 위해 금속으로 납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납은 소금처럼 빠르게 용해되는 염은 아니어서 매우 서서히, 적은 양만 상수를 통해 유출되었을 테고, 물이나 공기와 닿은 납에 산화 납으로 이루어진 막이 형성되어 추가 유출 도한 최소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인체에 유입되어 쌓인 납이 중독 문제를 전혀 유발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31)

일반적으로 연금술이 발생하는 데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기후와 금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신화와 토속신앙이 성행한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지역에서는 연금술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나중에 유입되는 방식으로 전해졌다. 북유럽 지역은 혹독한 추위와 가혹한 기후 탓에 식재료 확보가 언제나 우선순위였으며, 그만큼 사색과 연구에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철학이 성행한 고대 그리스의 연금술이 발달한 이집트의 경우 노예가 노동 인력을 대체하고 작업에도 숙달되어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충분히 누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유럽 지역에서 연금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136)

진시황은 수은으로 된 연못을 만들어 놓았고, 수은을 먹거나 몸에 바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은을 몸에 바르면 피부에 일부 흡수되는데, 이것이 근육을 경직시켜 모세혈관의 혈류를 저해한다. 그러면 낯빛이 창백해지고 피부 주름이 부분적으로 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중금속의 체내 축적 원리를 알지 못한 채 단순히 현상만 본다면 변색되고 주름진 피부가 밝고 탄력 있게 바뀌는 느낌이 든다. 서양에서도 납과 수은이 함유된 화장품이 피부 미백에 흔히 사용되었으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처럼 납과 수은에 중독되어 여러 부작용을 겪은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진시황 또한 이런 단편적 변화에 만족해 수은에 중독되고 만 것이다. 진시황릉 주변 토양에서 높은 수치의 수은이 검출된 것도 수은에 대한 진시황의 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86-187)

과학혁명을 이끈 인물로는 프랑스 근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과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와 영국 근대 철학자이자 정치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대표적이다. 베이컨은 화학을 직접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주의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근대 교육과 학습체계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저서 <노붐 오르가눔>(1620)에서 과학이 다른 분야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과학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근본 원리를 찾아내는 방법은 무엇인지 서술했다. 책 제목 노붐 오르가눔은 아리스토켈레스의 오르가논의 다음으로 넘어가고자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험과 분석을 도구 삼아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토대를 마련한 베이컨이 남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은 그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컨이 강조한 과학적 방법론과 실험 철학에 대한 그의 기여는 18세기까지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214)

블랙은 이 기체가 판 헬몬트 등이 연소나 호흡, 발효를 통해 얻은 기체와 동일한 종류가 분명하며 연소반응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무거운 기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고정된 공기(fixed air)’라고 명명했다.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의 이산화 탄소를 발견한 셈이다. 이와 같이 블랙이 생명 반응이나 연소가 아닌 화학반응으로 생성되는 이산화 탄소를 분리해냄으로써 후대 화학자들이 화학반응과 기체의 관계에 주목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16-217)

러더퍼드는 고정된 공기에 관한 실험과 마찬가지로, 확보한 질소가 담긴 용기에 쥐를 넣은 뒤 생존 여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질소 역시 해로운 기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질소의 영어 명칭 나이트로젠(nitrogen)탄산 소듐을 의미하는 그리어서 니트론(nitron)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접미어 제네스(-genes)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질소가 초석을 비롯한 질소 함유 물질의 주성분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말 명칭인 질소(窒素)호흡에 사용할 수 없다는 러더퍼드의 결론에서 유래해 질식(窒息)과 같이 숨이 막힌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228)

당시 연구에 필요한 산화 수은 등을 구입하고자 유럽을 방문한 프리스틀리는 라부아지에에게 새롭게 발견한 탈플로지스톤화 공기의 특징을 알려주고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갔다. 이후 라부아지에는 탈플로지스톤화 공기를 금속 등 여러 물질과 반응시키면 나중에 밝혀질 산화반응을 통해 각각 무게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연구 논문으로 보고하는 과정에서 화학 혁명의 큰 시작과 도전이 이루어졌다. 바로 당시 학계의 주류 이론이던 플로지스톤설을 전혀 인용하지 않은 채 반응을 거친 물질은 무게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논한 것이다. 탈플로지스톤화 공기와 비금속 원소의 반응을 통해 형성된 물질들은 모두 무게가 증가한다는 점 외에도, 물에 용해되어 산성을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플로지스톤을 기반으로 명명이 이루어진 기체는 이제 (oxy)을 만든다(genes)’는 의미에서 산소(oxygen)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249)

전기(electricity)라는 단어는 나무 수지(樹脂)가 굳어서 된 보석의 일종인 호박(amber)’을 뜻하는 그리스어 일렉트론(elektron)에서 유래했다. 탈레스가 장식용 호박에 붙은 먼지를 양모로 털어내는 과정에서 정전기가 발생했고, 더 많은 먼지가 달라붙는 현상을 통해 전기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의 실질적인 첫 포집은 1752년 미국 과학자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비 오는 날 하늘에 연을 말려 라이덴병(하전된 입자를 축적해 방전 실험을 하는 장치)에 전기를 모음으로써 성공했다. 이로부터 전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271)

(패러데이)는 또한 용액 속에서 이동하며 전기를 옮기는 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어로 방랑자를 뜻하는 이온(ion)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냈으며, 마찬가지로 양과 음의 전하를 갖는 이온을 구분해 각각 양이온(anion)과 음이온(cation)이라고 지칭했다.


(330)

켈빈은 1848년 여러 종류의 기체를 일정한 양으로 고정한 후 온도에 따라 변하는 거동을 분석해 그래프로 그렸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관측된 값으로 한계점 이상의 값을 추정하는 외삽을 했을 때 모두 동일한 온도에서 압력이 0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그는 이 온도를 절대 영(0)도로 간주하고, 이를 기준으로 다른 모든 온도를 양수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1851년 그는 열 엔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열역학(Thermodynamics)’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열과 일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에 대해 설명할 때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343)

물리화학은 물리학 이론과 실험 결과를 활용해 물질의 화학적 성질 및 반응을 연구하는 분야다. 돌턴의 원자론과 맥스웰의 통계적 분자 에너지 분포, 기브스의 자유 에너지 개념이 맞물리면서 탄생했다. 초기 물리화학 형성 과정에서 누구보다 물리화학의 가치를 기대하고 확신한 인물은 독일 물리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오스트발트(1853~1932). 학창 시절 그는 곤충 채집이나 목공예 등 잡다한 취미 활동에 시간을 보내느라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경고를 받은 이후 학업에 전념했으며, 화학교수가 되어 열역학과 상변화 등을 주 관심사로 삼아 물리화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1880년대 후반 물리화학 분야의 첫 번째 저널인 <독일 물리화학 저널>을 만들기도 했다.


(396-397)

그런데 그가 노벨상과 노벨재단 설립을 추진한 이유는 형 루드비그 임마누엘 노벨의 사망에서 비롯된 해프닝 때문이었다. 사망 소식을 접한 신문사들은 알프레드 노벨이 죽은 것으로 오해하고 부고 기사를 서둘러 인쇄해 발행했다. 거기에는 산업 분야에서 거둔 성공과 기여는 무시한 채 전쟁용 폭발물을 만든 죽음의 상인이라는 모욕적인 기사만 가득했다. 이 기사들은 본 노벨을 자신이 죽은 후 모두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산의 94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3,100만 크로나(스웨덴 화폐 단위)를 노벨재단 자금으로 할당했다. 이는 현시점으로 약 17 200만 크로나( 2,244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매년 노벨상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상금과 메달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491-492)

화학은 실체가 있는 물질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 발전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반복된 부분이 기능과 특징, 가치의 재발견이다. 탄소의 아주 일부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선사 시대에 탄소는 주로 불을 피우는 재료나 벽, 바닥, 몸에 그림을 그리는 검은색 안료로 쓰였다. 화학반응인 연소가 규명되고 화학이 형성된 후에는 숯 또는 석탄 형태로 산업 전반에 활용되었다. 이후 분석화학 기술이 진보하고 질량 분석 기술이 도입되면서 1985년 육각형과 오각형 형태로 배열된 탄소들이 축구공 모양의 입체 분자 구조를 이루는 풀러렌이 발견되었다. 곧이어 1991년에는 더욱 특징적인 튜브 형태의 탄소가 확인됨으로써 전도성과 강도가 높은 탄소 나노튜브 시대가 열렸다. 2004년 흑연의 판상 구조를 얇은 한 겹 단위로 분리 혹은 생성한 탄소 구조체인 그래핀이 확보되면서 탄소는 이제 단순한 연료나 필기도구가 아닌,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 신소재들은 플레서블 디스플레이나 스마트 기기, 태양관 발전, 촉매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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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2권 - 개화기편, 개신교 입국에서 을미사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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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2권을 읽었단다. 2권의 부제는 <개신교 입국에서 을미사변까지>란다. 1권이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에 끝이 났고, 2권이 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에 끝이 나니 2권의 이야기는 약 11년간의 이야기를 해주겠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역사적 사건에 육십갑자가 있는데, 갑으로 시작하면 OOO4년에 일어난 일이고, 을로 시작하면 OOO5년이라는 것, 기억해보자, 그럼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

..

1권의 마지막 이야기는 갑신정변이었잖아. 민영익이라는 사람이 있어. 원래 개화파로 미국까지 다녀왔던 그 사람, 기억나지? 그 사람이 귀국 후에 보수파가 되었고, 개화파에 밉보이게 되어 갑신정변 때 개화파들에 의해 칼까지 맞고 중상을 입었단다. 민영익을 치료한 사람은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와있던 알렌이라는 사람이란다. 알렌의 치료로 민영익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공으로 알렌은 1885 4월 광혜원이라는 근대식 병원을 최초로 개원하였단다. 광혜원은 나중에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더 나중에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세브란스 병원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실패한 후 수구파는 개화파에 대한 보복을 했단다. 국내에 머무르고 있던 홍영식을 죽이고, 개화파가 운영했던 한성순보도 폐간시켰어. 외국으로 망명간 이들은 우리나라에 올 수가 없었지. 김옥균 같은 경우에는 계속 암살 시도가 있었고, 결국 1894년 그를 상하이로 유인하여 홍종우가 그를 암살하는데 성공했단다. 홍종우는 원래 개화파였는데 배신을 하고 김옥균을 죽인 것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조재곤 님의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김옥균 죽음에 대해서는 그 책을 읽고 쓴 독서편지를 읽어보면 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먼 기억으로는 그 책이 썩 재미있지는 않았던 기억이구나. 김탁환 님의 소설 <리심>과 신경숙 님의 소설<리진>에도 홍종우와 김옥균의 이야기가 나왔던 기억이 있구나.

갑신정변 이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한성 조약을 맺었는데 일본이 입은 피해를 보상한다는 굴욕적인 조약이었단다. 알고 보면 일본이 개화파를 뒤에서 부추긴 것도 있는데 말이야. 또 청과 일본 사이에 텐진 조약을 맺었는데, 양군 모두 조선에서 철수하고 파병하게 되면 사전에 통보하자는 내용이란다. 전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영향력이 컸는데 텐진 조약으로 인해 조선의 영향력에 있어 청나라와 일본이 동등한 조건이 된 거야. 그러니까 이 조약은 일본에 유리한 조약이 된 거지.

청나라는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졌나? 이런 불리한 조약을 했을까. 갑신정변이 있었던 1884년에 있었던 일 한가지도 더 이야기하자면 그 해에 방곡령을 실시했단다. 당시 우리나라의 곡물이 무분별하게 일본으로 유출되고 있었는데 일부 지역의 곡물의 유출을 막는 제도였단다. 얼마나 큰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구나.


1.

해가 바뀌어 1885년이 되었단다. 1885년 언더우드를 비롯한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을 했단다.  당시 천주교 신부들에 의한 선교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개신교 선교들이 들어와서 비밀리에 선교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천주교 측과 개신교 측간 갈등도 생겼대.

한편 1885 5월에는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한 일이 일어났어. 당시 조선이 힘이 없다 보니 누군가 불법 점령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몰아낼 수 없으니 백성들만 고생을 하고 안타깝더구나.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사건을 정부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 조선 정부는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지 한달 만에 청으로부터 알게 되었단다. 영국은 러시아가 이곳을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무려 22개월간이나 거문도를 점령하였다가 철수했다고 한다. 이 지역이 해상 요충지로 만약 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게 되면 영국이 점령하고 있는 중국 남부 지역도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어. 영국에 거문도 사건에 청나라가 깊숙이 개입하여 영국을 도와주었는데, 이런 이유로 조선은 청에서부터 벗어나 러시아에 의존하려고 했단다. 청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구나. 조선 주변의 있는 강대국들이 다 지들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어디에 붇던 조선이 유리한 경우는 없을 것 같구나.

미국에서 공부하던 유길준은 갑신정변의 소식을 들었단다. 자신들과 친했던 사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 하지만 곧바로 귀국하지 않았어. 삼일천하로 끝났다는 소식도 들었겠지. 그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고 5개월이 지난 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단다. 바로 오지 않고 6개월간 유럽, 이집트, 싱가폴, 홍콩, 일본을 거쳐 귀국했단다. , 코스가 얼마 전에 읽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와 아주 흡사하구나. 그는 일본에서 김옥균을 만났고, 김옥균이 귀국을 만류했지만, 국내로 들어왔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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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김옥균은 유길준에게 귀국을 만류했지만 유길준은 다음과 같은 답으로 거절하고 12 2일 일본을 떠났다.

형님께서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생각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귀국을 해야 하겠어요. 물론 들어가서 장차 어떤 일을 당할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들어갈 수가 없겠지요. 또 나는 살기 위해서 형님들과 관련이 없다고 변명하러 들어가려는 것도 아닙니다. 변명이 될 일도 아니고 형님이나 나나 내일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 형님의 처지와는 좀 달라요. 형님들은 어떻게 됐든 한번 일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요. 그런데 까닭 없이 일본에 앉아서 나라의 불행한 현실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들어가서 한번 부닥쳐볼 작정입니다. 요행히 살아남아 발붙일 곳이 마련된다면 나는 국민을 계몽하는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국내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장차 형님에게도 재기하시는 데 절대 필요한 발판이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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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이 만류한 이유가 있었단다. 유길준은 귀국하자마자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7년간 연금생활을 했다는구나. 7년 동안 그가 미국과 세계여행을 경험한 것을 적은, 그 유명한 <서유견문>과 조선의 중립화를 주장한 <중립론>을 썼다고 하는구나.

1885년에 전선을 설치를 하여 1888년에 전신을 개통했다고 하는구나. 갑신정변 이후 폐간된 <한성순보>이후 신문이 없었는데 1886 <한성주보>를 창간했다고 한다. ‘순보() 10일을 뜻하는 한자로 10일에 한번씩 신문을 냈는데 한성주보는 주마다 한번씩 신문을 냈단다. 그리고 한성주보는 한성순보와 달리 국한문 혼용체로 출간했다고 하는구나.

….

개화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근대식 교육기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인데, 1886년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간인 육영공원이 헐버트라는 사람에 의해 개교했고, 이후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이 뒤를 이었단다. 이때 조선에 처음으로 전기도 생겨났대. 주미 한국공관 설립을 위해 박정양 등이 미국을 가기도 했다는구나. 일반 백성들이 살기 힘들 때 종교가 널리 퍼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1880년대 후반도 그런 이유로 개신교가 널리 퍼졌대.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더욱 심해지고, 일본의 경제 수탈도 더욱 심해지니 백성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종교의 의지하려고 했던 거야.

조선이 청나라와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청나라는 계속 간섭하려고 했어. 위안스카이가 계속 내정 간섭을 하고 외교 간섭도 했단다. 청나라 상인들도 계속 들어와서 우리나라 상인들과 대립하기도 했어. 명동 근처에 차이나 타운이 생긴 것도 이 즈음이란다.


2.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제우가 1860년에 동학을 창시했다고 했잖아. 1880년대에는 2대 교주 최시형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시기였단다. 최시형은 충청도 보은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는데 이를 북접이라고 했고,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학 세력을 남접이라고 했단다. 전봉준의 동학 운동은 아빠가 다른 책을 이야기하면서 두어 번 이야기한 적이 있으니 오늘은 짧게 이야기를 할게.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만행이 심해져서 그를 몰아내달라고 민원을 올렸지만, 조병갑은 재임명되었고 그러자 농민들은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를 했고, 조병갑은 도망을 갔단다. 이때가 1894년이었어. 조사관으로 이용태라는 사람이 왔는데, 조사는 하지 않고, 농민군 주도자를 잡아 족치고 폭력을 진압했어. 어쩔 수 없이 지도부는 고창으로 도망을 갔단다. 1894 4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은 고창에서 동학농민군을 봉기해서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을 하고 전주성을 점령했단다.

이에 당황한 고종은 큰 실수를 하게 된단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외세 세력을 끌어들인 거야. 대화로 풀어보거나 그것도 안되면 우리 관군으로 진압을 했어야지. 농민군의 봉기가 무서워 외세를 끌이다니쯧쯧결국 청나라와 일본군이 동시에 국내 진입하여 동학농민군을 퇴거시켰단다.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는 동학 농민군을 진압했으니 청나라와 일본에게 다시 군대를 철수하라고 이야기했겠지. 하지만 엉덩이 무거운 이들은 말을 안 듣고 계속 주둔하고 있었단다. 기회만 엿보던 이들인데, 다시 돌아가겠니?

힘없는 조선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그 와중에 조선정부는 청나라에 의지하려고 했어. 그러자 일본은 청나라에게 물러가라고 했고, 조선은 일본에게 물러가라고 했단다. 이에 일본군은 경복궁을 공격하여 한 달 가까이 점령하다가 철수하는 일도 있었어. 고종과 명성황후가 청나라 편을 들자, 일본군은 운현궁에 머무르고 있는 흥선대원군을 만났고, 대원군은 일본군의 술책에 넘어가 그들과 손을 잡게 된단다. 대원군은 일단 명성황후의 반대세력과 손을 잡으려는 거지. 그리고 일본군의 무력으로 민씨세력을 몰아내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을 하게 되는데 그의 나이 74세였단다. 일본을 등에 업은 개화파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던 대원군이 일본을 등에 업고 다시 권력을 잡은 아이러니한 사건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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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0)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10년 전 개화파의 갑신정변에 밀려났던 대원군이 조선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정치 개혁의 얼굴 마담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894 7 28(음력 6 26) 정오 74세의 노인인 대원군은 비상시국의 첫 번째 회의를 주재하면서 나는 완고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완고의 장본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개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원군은 이 회의에 군국기무처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개혁지지를 선언하고 김홍집을 영의정 겸 군국기무처 총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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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얼마 못 가 대원군은 이내 일본과 대립하게 되었대. 청군과 동학군에 밀지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는 구나. 동학군의 2차 봉기는 이런 대원군의 밀지를 통해 일어났다는 설도 있대. 그리고 대원군은 다시 개화파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했대. 계속된 청일 간의 갈등은 결국 전쟁까지 이어졌단다. 청일전쟁은 청나라와 일본이 겨룬 전쟁인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벌였단다. 예상과 달리 전쟁은 일본의 일방적이 우세였고 평양 전투에서 일본이 대승을 거두면서 일본이 이겼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은 우리나라에 간섭이 심해졌단다. 청나라에 조공 중단할 것, 과거 시험 폐지할 것, 노비 제도 파타할 것, 조혼 금지, 과부재가 허용할 것, 일본의 제도와 화폐제를 도입하는 등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려고 했단다. 친일 세력인 김홍집, 어윤중, 유길준 등에 의해 위의 내용을 남은 갑오개혁을 하게 했단다. 대원군이 이에 반발하였고, 일본 공사로 와 있는 이노우에가 대원군에 압력을 행사하였어 그러자 대원군은 더 이상을 힘쓰지 못하고 대원군은 정계 은퇴를 하였단다.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각종 특권을 얻어냄으로써 조선에서 영향력을 높여갔어.

...

이 즈음 남쪽에서는 동학 농민군의 2차 봉기가 있었단다. 전봉준, 김개남의 부대에 김학진의 부대가 연합했어. 그들은 7일간의 우금치(오늘날 공주)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무기의 현저한 차이로 인해 대패했단다. 동학 농민군 2만명 중에 500 여명만 살아남았다고 했어. 전봉준이 장소를 이동하면서 끝까지 항전했지만 부하인 김경천의 배신으로 생포되고 말았단다. 그렇게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도 끝나고 말았어... 이때부터 일본은 더 본격적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의 발톱을 드러내고 다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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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김용옥은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뒤부터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때부터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집어먹기 시작했다우금치 전투 이후 일본의 조선 침탈은 가속됐고 일본은 식민통치 기간에 좌우 이념 대결, 6.25 동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모든 죄악을 다 뿌려놓은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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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공사 이노우에의 권력도 점점 강해지면서, 친일 세력인 박영효와 서광범을 복권시켰단다. 이들은 갑신정변 이후 조선정부로부터 쫓기던 사람들이었잖니... 잘 살아 버티다 보니 또 전세역전되는구나. 박영효가 내무대신, 서광범이 법무대신이 되었단다. 명성황후도 일본의 힘에 눌려 박영효와 전략적 화해를 했대. 일본을 등에 업고 내무대신이 된 박영효는 뜻밖에도 반일노선을 걸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1895년에는 갑오개혁의 연장선에 있는 홍범14조를 제정하여 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대.

...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와 일본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에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과 청나라의 랴오둥 반도를 일본이 차지한다는 내용이 있었단다. 일본의 랴오둥 반도 점령은 서양 열강에 충격을 주었고, 이내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이 일에 간섭하게 되었고, 일본은 어쩔 수 없이 랴우둥 반도를 다시 청나라에 반환했단다. 하지만 조선에서 일본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어. 조선은 김홍집을 중심으로 친일 내각이 세워졌고 친러 인사는 모두 물러나게 되었대. 그리고 미우라 고로 일본 공사를 중심으로 일본에 척을 두고 있던 명성황후마저 시해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단다. 이것이 을미사변이라는 사건이란다. 조선은 왜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까. 안타깝구나.


3.

여기까지가 2권의 이야기란다. 이 책을 통해서 당시 조선의 일반 백성들의 모습들도 엿볼 수 있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전해주고 마치련다. 조선시대에 1616년에 담배가 들어왔는데 그 담배가 들어선 이후 조선은 애연가의 나라, 골초의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 골초는 개화기까지 이어졌고, 개화기 때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보고 기록에 남길 정도로 골초였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담배를 피면서 건강해 보인다는 말이 재미있기도 하구나. 그래도 최근에는 흡연율이 많이 떨어져서 다행이구나. 어디 가서 골초국가로 불리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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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선인들의 지극한 담배 사랑에 놀라곤 했다. 독일인 애쏜 써드는 1902년에 발표한 글에서 대한제국의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50여 년 일생 동안 피우는 담배연기만으로도 우리나라 베를린의 국립보건소 인원 전체를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죽게 할 만하다. 그런데도 조선 남자들은 모두가 괄괄하고 건강하게만 보인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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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1884 12 4일 일어난 갑신정변 시 수구파의 실력자인 민영익은 칼을 맞아 얼굴과 목 그리고 등에 치명적 상처를 입고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책의 끝 문장: 조선 스스로 그런 도임의 주체가 될 수 있게끔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뜨고 실천에 옮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 있어서 사진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았다. 카메라는 자주 폭력적이었다. 사진에 대한 민중의 저항에 그런 폭력성에 대한 자각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늘 피사체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에선 사진을 결코 좋게 볼 수 없었으리라. 조선의 운명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 P15

사실 조선의 기독교야말로 전형적인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물론 기독교가 조선인들에게 ‘출애굽기’만 가르친 건 아니었다. 1900년대 후반 일제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정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파하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서양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 기독교는 일부 조선 민중에게 하나의 대안 모델이었던 동시에 내외로 착취당하는 현실에 대한 보호막이나 방파제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보호받을 길 없는 ‘민족공동체’에서 보호와 위로가 주어지는 ‘교회공동체’로 발길을 돌렸다고나 할까? - P108

김옥균에 대한 평가는 양극을 치달린다. 개화파와 척사파의 견해가 다른 건 물론 개화파 내부의 견해도 다르다. 정변 동지 서재필은 김옥균을 "시대의 추이를 통찰하고 조선을 힘 있는 근대 국가로 만들기를 절실히 바란" 위인으로 평가했지만 정변에 불참한 윤치호는 "위로 나랏일을 실패하게 하고 아래로 민심을 흔들리게 한 경망스런" 인물로 폄하했다. - P146

민비 시해의 음모 단계에서부터 가담한 조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1857~1903)이었다. 훈련대는 그해 4월 친일정권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우범선은 민씨 정권의 훈련대 해산계획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포섭된 우범선이 이 사건에서 맡은 임무는 훈련대 병력동원과 민비의 시신 ‘처리’였다. 폭도들에 의해 시해된 후 불태워진 민비 시신의 타고 남은 재는 궁궐 내 우물에 버려졌고 유해 일부는 우범선의 지시로 휘하의 윤석우가 증거인멸을 위해 땅에 묻어버렸다. - P296

"쿵, 무거운 곡괭이가 검은 흑벽을 크게 찍어내자 돌연 반짝반짝 노랗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노 터치! 노 터치!" 즉각 미국인 채굴 감독의 고함이 광구 속을 쩡쩡 울렸다. 조선인 광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금맥이 나왔구나. 땅속에서 금맥이 드러날 때마다 미국인들이 지르는 소리는 똑같았다. 노 터치(No touch, 손대지 마라)! 혹여 금을 훔칠까봐 소리치는 것인데 조선인 광부들의 귀에는 ‘노다지’로 들렸다. 그들은 ‘노다지’는 ‘금’을 가리키는 양인들 말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자신들도 금맥을 발견하면 즉각 소리쳐서 금이 나왔음을 알렸다. "노다지! 노다지!" 평안북도 운산 금광의 조선인 광부들에게 황금은 곧 노 터치였다. ‘노다지’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광물이 쏟아져나오는 광맥이 발견되었다’는 뜻의 광산 용어로 쓰이다 이내 ‘큰 횡재’를 뜻하는 말로 조선인의 일상생활 속에 들어갔고 이제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이 한국어사전에도 올랐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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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9-01 0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한말 한반도의 안타까운 정황을 정성껏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책 담아갑니다!

bookholic 2023-09-05 23:4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읽을수록 답답함과 안타깝더라구요...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그 당시 친일파가 떠올라 또 한번 열받습니다...
 
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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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양자역학이 어렵지만 관심은 좀 있잖니. 그래서 양자역학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특히 소설이라고 하면 더 솔깃하게 된단다. 소설이니까 읽기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야. 이번에 알게 된 소설 <쿼런틴>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란다. 이 소설이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품절이 되어서 만나지 못했었는데, 작년에 재출간되어서 이렇게 읽어보게 되었구나. 이 소설의 장르는 당연 SF이고 특히 하드 SF’라는 부른단다. ‘하드 SF’라는 정의를 제대로 몰랐던 아빠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읽기 어려운 고난이도 SF하드 SF’라고 하는 줄 알았어. 그만큼 이 소설이 읽기가 쉽지가 않단다. ‘하드 SF’라는 용어를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좀 찾아 보았더니 ‘Hard Science’라는 말이 순수 자연과학을 뜻한다고 하는구나. 자연 과학 이론에 뒷받침한 SF 소설을 의미한대. 양자역학 이론을 바탕으로 쓴 <쿼런틴>같은 소설이 대표적인 하드 SF’인 거지. 그런데 아빠에게는 여전히 읽기 어려운(Hard)은 소설의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구나.

이 어려운 소설을 쓴 사람은 호주 출신 그렉 이건이라는 사람이란다. 이 무지막지한 소설이 그렉 이건의 데뷔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1992년에 출간되었는데, 외국에서도 주기적으로 재 출간할 정도로 인기가 좋고 점점 SF의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다고 보면 돼. 책 제목 <쿼런틴>은 지난 몇 년 간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닌가 싶구나. 우리말로 하면 격리라는 뜻이야. 격리는 코로나 19때문에 참 많이 들어본 말이잖니. 그렇다고 이 책에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나오지는 않는단다. 그렇다면 왜 이런 책제목을 가졌을까.

이 책을 아빠가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빠 나름 이해한대로 이야기를 해볼게. 아마 전문가들이 이 책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과는 다를 수 있어. 워낙 양자역학이 어렵고 다양한 해석이 있으니 아빠도 뭐, 아빠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1.

때는 2034 11 15. 갑자기 밤하늘의 별들이 사라지기는 일어나기 시작했단다. 정체 모를 검은 막 같은 것이 하늘에 덮여지는 그런 일이 일어났어. 나중에 확인해 보니 태양계 전체가 장막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진 거야. 120 km 반경의 구체의 장막이었어. 태양계만 우주로부터 완전히 격리가 된 것이지. 그래서 이 소설이 <쿼런틴>으로 지은 것이란다. 당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이 의문의 장막을 버블이라고 불렀고,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단다. 세계의 종말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이 컸겠지.

태양계 전체를 장막으로 가려졌으니 밤 하늘의 별들을 볼 수 없었어. 태양계에 있는 별은 태양이 유일하니 말이야.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전문가들이 연구를 해보고 분석을 했지만, 이유를 밝힐 수는 없었단다. 그리고 그 장막의 정체가 무엇인지 장막이 있는 곳까지 갈 수도 없고 말이야. 도대체 이것은 무슨 장막일까. 누가 임의로 친 걸까? 모르고 있던 자연현상일까? 그런데 그렇게 장막만 쳐져 있고 시간이 흘러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일상을 되찾았단다. 그 전과 달라진 것은 밤에 별을 볼 수 없다는 정도

시간이 흐르고 버블데이에 태어났거나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그들은 나락의 아이들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나락의 아이들은 테러를 하고 과격 행동을 하는 조직으로 변질되어 갔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 닉 스타브리아노스는 경찰로 나락의 아이들을 상대해야 했단다. 닉은 나락의 아이들의 테러를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승진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나락의 아이들은 그에게 복수를 계획했어. 닉의 집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폭탄이 터지면서 닉은 강성 모드가 자동으로 동작하면서 목숨은 건질 수 있었어. 강성 모드가 뭐냐고? 그 시대에서는 머릿속에 모드라는 장치를 넣어 상황에 맞게 능력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단다. ‘모드는 돈으로 사고 팔았고 성능이나 기능에 따라 가격도 천치만별이었단다. 닉은 경찰이라서 여러 가지 모드를 가지고 있었어. 경찰만이 가지고 있는 강성 드는 여섯 가지나 있었단다. 그 강성 모드가 동작하면서 나락의 아이들의 폭탄 테러에서도 살아날 수 있었어.

하지만 그녀의 아내 캐런은 아니었어. ‘나락의 아이들의 폭탄으로 아내 캐런이 죽고 말았단다. 아내 캐런이 죽었지만, 홀로그램으로 호출을 할 수 있어서 캐런 AI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단다. 그렇다고 홀로그램의 캐런 AI가 캐런을 대신할 수 없었지. 그 이후 닉은 경찰을 그만 두고 사립 탐정을 하게 되었어.


2.

닉은 어느날 실종된 어떤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단다. 선천성 뇌손상 환자로 태어난 이후 병실에서만 지내던 로라 앤드루스라는 32살의 환자가 사라졌다고 했어. 뇌 손상을 입어서 인지능력은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아서 혼자서는 병실 문도 열지 못했는데 병실에서 사라졌다고 했어. 닉이 의뢰를 받기는 했지만 누가 의뢰했는지도 몰라. 익명의 의뢰인이 거금을 제안하여 로라 앤드루스를 찾아달라고 했어. 그래서 닉은 로라를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했단다.

언니 마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3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마사는 로라를 병원에 위임하고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어. 로라의 실종이 나락의 아이들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었어. AI들의 도움을 받아서 닉은 로라가 비행기 화물칸을 이용하여 뉴홍콩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아냈단다. 뉴홍콩은 소설 속에서 가상으로 설정한 도시로,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란다.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홍콩에 살던 사람들이 탈출을 해서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로 오게 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도움을 주어 뉴홍콩에 조성하게 되었단다. 후에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여 대만에서도 뉴홍콩으로 이주해 왔어.

닉은 곧장 뉴홍콩으로 갔단다. 그리고 로라가 잡혀 있는 곳을 찾았지만, 이내 잡혀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었어. 그런데 얼마 후 그는 앙상블이라는 조직에 스카우트되었다고 했어. 앞으로 앙상블을 위해 일하라고 했단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앙상블이라는 조직에 충성하라는 모드가 심어져 있어서 앙상블이 무슨 조직인지도 모르지만 그 조직에 충성하게 되었단다. 이제 로라를 찾을 생각은 하지도 않게 되었어. 그는 앙상블내의 ‘ASR<Advanced System Research>라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주요 임무는 포콰이라는 사람을 우발적인 사태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어. 12시간 2교대로 일하는 것이었어.

포콰이는 앙상블이 하는 프로젝트의 피험자였단다. 포과이라는 사람이 하는 실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 실험실에 앉아서 이온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처럼 보였어. 위 위 아래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 이렇게 말이야. 이 즈음부터 소설을 읽는 아빠도 멘붕이 살살 오기 시작했단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스토리를 잘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때부터는 정신을 집중해서 읽어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부분들도 있었어.

좀더 읽어보니, 앙상블이 하는 프로젝트가 조금 감이 잡히긴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어.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회전을 하게 되는데, 그 방향이 각각 50 50대이라고 하는구나. 이것은 일종의 자연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앙상블에서는 이 자연현상을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던 거야. 전자의 회전을 한쪽으로만 제어를 할 수 있는 연구.. 그러면 무엇이 좋냐고? 아빠도 잘은 모르지

대충 이해한 바로는….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물질이라는 것이 확률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누군가가 그 물질을 관찰하게 되면 한가지만 남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 전자라는 것도 누군가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의 형태를 띠고 있다가 누군가 관찰을 하게 되면 입자의 형태를 띠게 되는 거지. 관찰 전의 상태를 확산되어 있다고 하고 관찰 후의 상태를 수축되었다고 해. (그렇게 이해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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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문제는둘 중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당신이 관측을 행하기 전에는, 파동함수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파동함수는 단지 5050의 확률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가르쳐 줄 뿐이에요. 하지만 일단 당신이 관측을 행한 후에는, 다시 한번 그 계를 관찰하더라도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와요. 처음에 상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면, 다시 들여다 보았을 때도 여전히 죽어 있을 거라는 얘기죠.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관측한다는 행위가, 각기 다른 가능성을 대표하는 두 개의 파동함수의 혼합을 단 한 가지의 가능성만을 대표하는 순수한파동, 그러니까 고유 상태라고 불리는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파동함수의 수축이라고 불리는 현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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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이야기한 전자의 스핀을 제어할 수 있다면 수축된 상태에서 다시 확산된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했어. 확산된 상태에서는 동일 물질이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어. 그 중에는 이 공간을 벗어나 있을 수도 있는 거지. 그랬다가 다시 수축을 할 때 처음에 있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수축을 하게 되면 일종의 공간 이동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병실에 갇혀 있던 로라도 그런 능력으로 병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거란다. 로라는 애초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로라는 뇌손상으로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뇌손상인 척 하면서 병실에 머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밖에 나가고 싶다면 자신의 몸을 확산해서 병실 밖을 나가서 가고 싶은 곳을 이곳 저곳 다니면 되는 거였어. 그렇다가 병실에서 다시 수축하면 되는 것이고그런데 수축이 잘못되어 병실 밖에서 수축이 되면, 병원에서는 인지능력 5살인 로라가 실종되었다고 하는 것이지. 사실 로라가 병실에서 사라진 것이 이번이 세 번째였대. 먼저 두 번은 병실 밖에서 발견되었지만 모두 병원에서 발견되어 이슈가 안 되었는데 세 번째는 병원 밖에서 수축이 되었던 거지.

아무튼 포콰이는 앙상블에서 연구한 모드를 주입 받고 그런 실험을 계속 하게 되었고, 점점 한쪽 방향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단다.


3.

어느날 뤼라는 사람이 닉을 찾아왔어. 앙상블에는 두 파가 있는데 앙상블의 본질을 무엇인지 결정하는 사람들의 비밀 조직이 있다고 했어. 그 조직의 이름은 <캐넌>이고 닉에게 그 조직에 들어오라고 했단다. <캐넌>이 닉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는데, 닉은 조심스럽게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닉도 수축 억제 모드라는 것을 뇌에 투입하였고, 그 또 한 확산 상태로 앙상블 비밀 공간에 잠입하려는 시도를 했단다. 그렇게 얽히고 설킨 일들이 벌어지게 된단다. 일이 진행되면서 뤼 또한 어떤 목적으로 닉에게 접근한 것으로 아무도 믿지 못하고 독자행동을 하게 된단다.

, 소설의 결말은….

아빠가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마치련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이야기했던 태양계를 둘러싼 버블의 정체…. 양자역학은 관찰에 의해서 파동함수의 수축에 의해 확산되어 있는 여러 가지 존재 중에 한 가지만 남는다고 했잖아. 이 소설에서는 파동함수의 수축이 관찰 전에 존재했던 많은 물질(생명체 포함)을 죽인다고 했어. 그리고 이렇게 파동함수를 수축하는 것이 모든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고, 지구의 생명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지구의 생명체가 무엇인가를 관찰하게 되면, 수축이 되어 많은 확산 상태에서의 많은 존재들 중에 하나만 남기고 모두 죽인다는 거지.

그런데 지구에 있는 인간들의 과학이 발전하면서 천체망원경으로 점점 멀리 있는 우주까지 관측을 하게 되었고, 지구의 인간에게 그렇게 관측된 우주는 수축되고 한 개 존재만 남고 모두 죽게 되는 거지. 더 이상 지구인의 관측을 놔두면 안되겠다고 결정을 한 거지. 우주 대부분이 수축되어 많은 존재들이 사라지니까 말이야. 그래서 지구인들이 우주를 더 이상 관측하지 못하도록 태양계 전체에 장막을 뒤집어 씌운 것이란다. 이 임무를 맡은 사람이 누구였나면바로….

….

이 책을 읽고, 이 책을 좀 검색해 봤는데, 이 책에서 나온 앙상블이라는 조직도 이름을 괜히 앙상블로 정한 것이 아니더구나. 앙상블도 양자역학의 다양한 해석 중 하나였던 거야.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서 앙상블 해석이라는 것은 양자역학을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 그래서 이 소설에서 자꾸 주사위를 던졌던 모양이구나. 쉽지 않게 읽은 소설이라서 자꾸 이 소설에 대해 캐묻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ㅎ 역시 양자역학은 이해하지 쉽지 않아. 양자역학에 대해서 더 공부 좀 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내가 자고 있을 때 연락을 취하는 의뢰인은 가장 편집증적인 축에 속한다.

책의 끝 문장: 모든 것은 결국 평범한 일상으로 귀속되는 법이다.


혹은 나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이유가 없든가. 혹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평균적인 사람은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합리적인 윤리학을 만들어 낸 다음, 그것에서 결점이 발견되었을 때 적절한 수정을 가한다고? 그건 순수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그들의 인격은 자기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 P172

그리고 만약 당신이 개개의 광자가 어떤 진로를 취하는지 관측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 계를 하나의 고유 상태로 수축시키고… 간섭 패턴을 파괴하고, 홀로그램을 망쳐버릴 거예요. 하지만 두 줄기의 광선이 방해를 받지 않고 다시 하나로 합치게 놓아둠으로써 두 개의 고유 상태들이 상호작용할 기회를 준다면, 홀로그램은 사라지지 않고 양쪽의 고유 상태들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확고한 증거로서 영구히 남게 되죠. - P281

이봐요, 걱정하지 말아요. <ASR>는 <버블>의 존재 이유가 인간에 의한 가능성의 고갈을 방지함으로써 우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당장 전 세계에 발표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설명이 없었어도 <버블>이 출현한 것만으로도 난리를 쳤잖아요. 진실이 너무나도 폭발력이 큰 탓에, 사람들이 그걸 오해하는 쪽이 위험할지, 아니면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 쪽이 더 위험할지 갈피를 못 잡겠군요. 인간의 지각이 우주 대부분을 소멸시켰다. 인생이란 다른 버전의 나 자신을 끊임없이 학살하고 행위다. 대중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던져주면, 그걸 중심으로 도대체 어떤 컬트 교단이 생겨날지 상상해 봐요. - P322

만약 이 행성 전체가 영원히 확산 상태에 놓인다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 것일까? 왜냐하면 수축은 아예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그 무엇도 현실이 될 수 없으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따로따로 체험하게 될까? 한 고유 상태당 고립된 의식이 하나씩 존재하는, 다세계 모델을 정말로 현실화한 듯한 방식으로 말이다. 혹은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들이 불협화음처럼 중첩되는 식으로? 그 어떤 미래에서도 모든 가능성들이 불협화음처럼 중첩되는 식으로? 그 어떤 미래에서도 수축 현상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든 일들-아니면 적어도 수축에서 살아남은 나의 기억들-은, 그런 우주의 본질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과거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드는 수축 과정이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험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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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드디어 맨 처음 비늘 모양의 금 조각이 발견되었던 곳 가까이까지 오게 되었다. 여자 손톱처럼 생긴 무의미한 그 금 조각이 캘리포니아의 미래와 미국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몇 년 후에 신문기사로 변신한 제이컵 토드가 이런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미합중국은 고된 노동의 대가만을 원하고, 어떠한 역경이라도 딛고 일어서려는 용기를 가진 선교자들, 개척자들, 건실한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다. 그렇지만 금으로 인해, 미국 국민의 가장 큰 단점인 탐욕과 폭력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101)

다른 히스패닉 계열에 비해 사람 숫자도 훨씬 많고 성격도 다혈질인 칠레 사람들은 외국인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았다. 엘리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호주 사람들 한 무리가 칠레 부락을 습격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금광들에서는 시골 일꾼들을 데리고 온 여러 칠레 회사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봉건 세습 제도하에 대대로 쥐꼬리만 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소작인들로, 그들이 발견하는 금은 자기들의 것이 아닌, 주인님의 것이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양키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건 단순한 노예제도였다. 미국 법은 개인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각 개인의 소유지는 자기가 일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칠레 회사들은 더 많은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일꾼들 각자의 이름으로 명의를 이전해서 법을 농락했던 것이다.


(244)

샌프란시스코는 이제 남자들만 홀로 외롭게 사는 삭막한 캠프촌이 아니었다. 여자들도 몰려들었으며 그와 함께 사회도 변했다. 여자들은 금을 찾아 나선 모험가들 못지않게 기가 센 여자들이었다. 황소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했으며, 그 여자 개척자들은 그런 정신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어머니나 언니, 여동생들처럼 우는 소리나 하는 여자들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아마존의 여전사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여자들은 용감무쌍한 남자들과 매일 지칠 줄 모르고 고집스럽게 싸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남자들은 여자들을 자기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했다. 그 여자들은 다른 곳에서는 여자들에게 금기시된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열심히 했다. 여자들도 금을 찾아 나섰으며, 카우보이로 일도 했고, 노새들도 몰고, 현상금이 걸린 악당들을 잡으러 나섰고, 노름방, 레스토랑, 세탁소, 호텔을 운영했다. ‘여기 여자들은 자기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사고 팔 수도 있으며, 내키면 이혼도 할 수 있어. 펠리시아노도 나한테 서툰 짓만 했다 하면, 그 즉시 홀딱 벗겨서 땡전 한 푼 없이 쫓아낼 테니 조심 좀 해야 할 거야.’ 하고 파울리나는 편지에 농담까지 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는 쥐, , 무기, 악과 같이 없어도 될 것까지 골고루 다 갖추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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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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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얼마 읽지는 않았지만, 읽은 책들이 모두 괜찮아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하나 둘 사두었는데, 얼마 전 신간 코너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새로운 책을 알게 되었단다. 책 표지는 또 어찌나 매혹적인지매혹적인 사진과 잘 어울리는 책 표지는 지은이가 슈테판 츠바이크임을 몰라도 구매욕구를 잔뜩 당기는 디자인이란다. 그래서 저절로 지갑이 열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책이 집에 도착해 있었단다. 그리고 바로 읽었는데,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almost ten인 이유를 알겠더구나.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면서도, 베껴 쓰고 싶은 글들이 여기저기 포진하고 있으면서도 아빠가 읽은 츠바이크의 책들 중에 가독성이 가장 좋았단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마무리 부분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츠바이크 님이 이 소설의 마무리를 짓지 못하신 것 같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단다. 그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 이 원고가 발견이 되었고, 한참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그가 떠난 지 40년이 지난 1982년 독일에서 먼저 출간되어 큰 히트를 치고, 그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갔단다.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감이 되었을까, 궁금하구나. 소설 밖의 이야기는 아쉽지만 읽는 이들의 몫으로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찐팬이 되기로 했단다.


1.

1926년 오스트리아. 1914년부터 1918년 세계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같은 편이었단다. 그들은 전쟁에서 지고 말았어. 전쟁의 패배는 오스트리아를 폐허로 만들었고, 경제 등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무너졌단다. 오스트리아 전체에 걸쳐 푹 내려앉은 분위기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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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관료주의 특권계급이 신성시하는 이 사무 공간에서는 눈에 띄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장쇠퇴라는 영원한 법칙이 이곳에서는 관료주의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적용되지 않는다. 우체국 건물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자. 나무들은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이가 들면 백발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건물이 낡으면 허물어져 새 건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나라 관료주의는 항상 똑 같은 것만 고집하고 세속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체국 비품이 소진되었거나 분실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훼손되었으면 상급 관청에 요청한다. 그러면 역시 빠르게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막강한 권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용이 되는 알맹이는 없고,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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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모두 가난과 싸우며 하루 먹거리를 걱정하며 살아갔단다. 주인공 크리스티네도 마찬가지였어. 전쟁 전에는 유복한 집안에서 지냈지만, 전쟁이 집안을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단다. 오빠는 참전했다가 전사하였고, 그 충격인지 아버지도 1917년 갑자기 돌아가셨어. 언니는 결혼하여 빈에서 살고 있었고, 크리스티네는 병든 엄마와 단둘이 시골에 좁은 집에서 살고 있었단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우체국에 다니고 있었지만, 크리스티네의 낙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저 집과 우체국을 왔다 갔다 할 뿐이야. 28, 한창 꾸미고 다닐 나이였지만, 우중충한 옷으로 시체처럼 지내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미국에 사는 이모가 스위스에 여행 왔다면서 엄마에게 놀러 오라고 했으나, 편찮으신 엄마는 갈 수가 없었어. 그 대신 크리스티네에게 다녀오라고 했어. 엄마도 딸이 자신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것에 보기 안쓰러웠겠지. 클레르 이모는 미국에서 사업을 남편과 살고 있었고 무척 부자였다는 것만 알고 크리스티네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렇게 크리스티네는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휴가를 쓰고 처음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단다. 그 동안 쓰지 않은 휴가가 쌓여 2주 동안 스위스에 지내기로 했어.

크리스티네는 기차를 다고 스위스에 있는 호텔에 도착을 했는데, 그곳은 딴 세상이었단다. 자신이 입고 온 옷은 너무 누추해서 눈에 띠었어. 난생 처음 조카를 만난 이모와 이모부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크리스티네는 휴가 동안 묵을 자신의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추레한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큰 방이었어. 이모는 크리스티네를 데리고 가고 옷도 새로 입히고, 화장품도 새로 사주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다듬게 했단다. 이런 봉사를 받는 것이 얼마만인지 그리고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크리스트네는 그렇게 꾸미고 나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원래 얼굴도 좀 예뻤거든.

그날 저녁 식사 연회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네였단다. 연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젊고 예쁜 뉴페이스 크리스티네에게 관심을 가졌어. 춤을 청하고 잘 보이려고 했어. 크리스티네는 하루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자신에 놀라면서도 행복했단다. 이모부와 이모의 성이 반 볼렌이었는데, 사람들은 크리스티네가 그들 일가인 것으로 알고 크리스티네 반 볼렌으로 알았다가 크리스티아네 판 볼렌으로 부르기 시작했단다. 노신사 앨킨스 경과 독일 엔지니어 등 크리스티네에게 구애하는 이들도 있었단다.

이런 급변한 상황에 대해 크리스티네는 약간은 당황하면서도,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어 며칠 전만 해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던 우체국 여직원이었는데 말이야. 이곳에서 생활은 크리스티네를 새로 태어나게 했단다. 사교계에 잘 적응하여 누구와도 잘 지내고 이 순간을 잘 즐겼어. 그리고 지금의 이 모습이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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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49)

도대체 나는 누구지? 수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갔지. 오래도록 시골 마을 우체국에 앉아 있었는데도, 아무도 뭐 하나 챙겨주거나 걱정해 주지 않았잖아. 고향 사람들 모두 너무 가난하다 보니 빈곤함에 지쳐 의심만 늘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갑자기 매력적인 여자로 변했나? 지금까지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던 매력이 이제야 나타났나? 내가 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데 다만 그렇게 믿을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 아닐까? ,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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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엄마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까지 잊고 있었단다. 그로 인해 이모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어. 엄마한테 온 편지들도 읽지 않았다가 그제서야 편지를 꺼내 보았어. 엄마가 아프셔서 편지도 이웃에 사시는 분이 대신 보내주었단다. 크리스티네는 엄마에게 편지를 써야지, 다짐하였는데 또 다시 유혹에 빠져 야밤에 외출하고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단다.


2.

사교계에 갑자기 떠오른 별과 같은 크리스티네,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왜 없었겠니.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크리스티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기 시작했어. 그녀의 성()은 알려진 것처럼 판 볼렌이 아니고, 상류층이 아닌 하류층의 사람이라는 소문들 퍼뜨렸어. 이런 소문이 퍼지는 것은 삽시간, 다들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어. 이모도 이런 소문을 모르고 있다가 앨킨스 경이 찾아와 소문에 대해 알려주었단다. 이모는 솔직히 이야기를 했어. 전쟁 전까지는 잘 살았는데, 전쟁 이후 어렵게 살고 있다고그리고 자신의 친조카는 맞다고 했단다.

앨킨스 경은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잘 대해주었지만, 소문은 가라앉지 않고 안 좋게만 커져갔단다. 이미지를 중요시 생각하고, 이모의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 밝혀질까 봐 이모는 결국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이모부와 함께 인터라켄으로 갈 테니, 크리스티네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단다. 원래 2주간의 휴가였으니 집으로 조금 일찍 가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그동안 크리스티네는 많이 변해서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거야.

집으로 가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 크리스티네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던 독일 엔지니어를 찾아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거절 당했단다. 그도 소문을 들은 거지결국 다음날 올 때 입고 왔던 추레한 옷을 입고 집에 들어왔단다. 여행을 가기 전에 겉모습과 같은데,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암울한 현실은 여전히 같았어. 간발의 차이로 임종을 보지 못한 엄마는 돌아가셨어. 그녀가 오자마자 장례식을 치렀어. 언니, 형부, 올케 등이 왔는데 장례식 끝나자마자 엄마의 유품을 나누자는 이야기에, 가난에 대한 증오로 치솟았단다. 폭발 직전. 하지만 크리스트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예전의 우체국 아가씨 생활을 시작했지만, 참을 수 없었어. 이것이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자신의 본모습은 스위스 호텔에 있는 그 모습이라는 거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이 숨막힘을 참지 못한 크리스티네는 무작정 빈으로 갔단다. 이 시골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으로스위스에서 이모부가 준 현금이 조금 있었는데, 그 현금을 들고 무조건 빈으로 갔단다. 빈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지만, 크리스티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었어. 집에 오는 길에 언니 집에 들렀는데, 형부 프란츠의 옛 전우 페르디난트가 우연히 찾아와 크리스티네도 함께 자리를 했단다. 형부와 페르디난트는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1위인 군대 이야기, 전쟁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단다.

언니에 집에서 나와서 집에 돌아가야 했지만, 크리스티네는 페르디난트와 좀더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어. 이후 일요일마다 그들은 데이트를 시작했단다. 가난한 연인들이라고 할 수 있었지.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어. 카페에서 만나거나 같이 길을 걷거나


3.

그러던 어느날 우체국으로 찾아온 페르디난트. 헤어지자고 폭탄 선언을 했어. 사실 자신의 미래는 암울하고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기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크리스티네도 자신의 미래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같이 자살하자고 했단다. 그 대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최고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자살하자고 했단다.

그날 저녁 퇴근 시간에 맞춰 다시 우체국으로 온 페르디난트. 크리스티네가 큰 돈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는 새로운 제안을 했단다. 죽지 말고 그 돈을 갖고 가서 새로운 세상에서 살자고 말이야. 크리스티네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그것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페르디난트는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국가이니, 그 책임도 국가에 있다고 이야기했어. 그리고 자신들이 훔치려는 이 돈도 국가의 돈이니, 그 보상을 스스로 받아내는 것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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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289)

그래, 우리는 참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어. 어떤 의사도 6년간의 젊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어. 누가 내 젊음을 보상해 주지? 국가가? 그 고위층 사기꾼들이? 그 고위층 도둑놈들이? 40명이나 되는 장관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대봐. 법무부 장관? 복지부 장관? 산자부 장관? 공정하게, 사리사욕 없이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급 공무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름을 대봐. 그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고, ‘황제 만세!’를 외쳤어. 물론, 지금은 다른 걸 들려주고 있지. 진흙탕에서 보니, 세상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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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어. 하지만 크리스티네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며칠을 고민 끝에 페르디난트의 계속에 동의했어. 페르디난트는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서, 사전에 알리바이도 충분히 만들고 어떻게 훔칠 것인가, 훔치고 나서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지 아주 세세하게 계획표를 만들었단다. 일명 우체국 현금 절도 계획서라고 해서 분량이 꽤 되는 계획서를 만들었단다. 알고 봤더니 페리디난트, 이 사람 엄청 꼼꼼한 사람이구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할 것 같은데, 그의 말대로 국가가 잘못이구나.

==============================

(421)

나도 그걸 알면 좋을 텐데. 계획서는 빠진 것이 있을 거야. 모든 범죄에는 구멍이 있지. 하지만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미리 알 수는 없어. 아무리 꼼꼼한 범죄자라도 예외 없이 사소한 실수를 하게 마련이야. 문서란 문서는 전부 없애버리고는 어리석게도 여권을 남겨놓는다든가 하는 실수 말이야. 온갖 장애물을 다 고려하지만 가장 분명하고 틀림없는 장애물은 간과하게 되지. 뭔가 한 가지를 꼭 잊어버려. 아나 나도 가장 중요한 사항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

크리스티테도 그 계획서가 마음에 들었고, 다시 한번 함께 이 일을 하자고 하면서 소설을 끝이 났단다.

아빠가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해서 아빠의 편지만 읽고는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안 들지 모르지만, 아빠는 읽는 내내 재미있었단다. 아빠가 책 추천을 잘 안 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까지 했단다. 아빠는 사실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추정되는 유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어그래서 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단다. 뒤늦게 역자 후기를 읽어보고 이 작품이 유작이고 미완성으로 추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만약 지은이 슈페탄 츠바이크가 그 뒷이야기를 이어갔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갔을까? 궁금하구나. 그리고 이 작품이 나온 지 꽤 되었는데, 다른 작가가 이 이야기의 속편을 써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크리스티네는 충분히 매력적인 주인공인데, 이 뒷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어떤 뛰어난 작가가 이 소설의 속편을 함 출간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아빠는 뒷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한번 생각해 봐야겠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이 책을 읽게 되면, 크리스티네와 페르디난트의 뒷 이야기를 한번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오스트리아의 마을 우체국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책의 끝 문장: “좋아, 한번 해보자!”


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며 여자는 마치 땅을 갈아엎는 쟁기처럼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여행의 힘을 실감했다.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놓는다. - P60

곧 자명종이 울릴 거야…… 다시 잠들면 안 돼…… 책임감! 책임감을 잊어선 안 돼! 당장 일어나자. 여덟 시에 업무가 시작되잖아. 그전에 일어나서 불 피우고 커피 끓이고, 우유와 빵 사 오고, 방을 정돈하고, 어머니 붕대를 갈아주고, 점심 식사 준비도 해놓아야 하잖아?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더 있었는데…… 아! 맞아. 식료품 가게 여주인이 어제 외상 갚으라고 했었지…… 안 돼, 자면 안 돼. 정신 차리고 자명종이 울리면 일어나야 해…… 그런데 오늘은 무슨 문제가 있나? 자명종이 울리질 않아…… 고장 났나? 태엽 감아 놓는 걸 깜빡했나? 자명종 어디 있지? 방 안에 빛이 벌써 환한데…… - P112

심장은 격렬하게 고동쳤고, 언제라도 날아오를 듯이 상쾌했다. 끊임없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가슴은 마치 감전된 듯한 전율을 손가락 끝까지 전해주었다. 이상하고, 강렬하고,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이제는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에 날리듯 여기저기로, 안으로 밖으로, 위층과 아래층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계단을 오를 때도 한 번도 한 계단씩 오르지 않았다. 뭔가를 잊은 사람처럼 마음이 들떠 늘 세 칸씩 뛰어올랐다. 놀고 싶은 충동과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 손은 늘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양팔을 활짝 펼치고 먼 곳을 향해 터져 나오는 웃음과 환호를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 P141

정상에 선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내려도보지 못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은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고생해본 사람만이 어떤 일에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고 남보다 더 영리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 P176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P234

여자는 매일 아침 증오심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자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는 것은 연기에 그을린 다락방 천장의 대들보였다. 낡은 침대, 싸구려 누비이불, 등나무 의자, 깨진 물주전자가 놓여 있는 세면대, 벗겨진 벽지, 판자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모든 것이 지지리도 궁상맞고 흉측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캄캄한 어둠 속에 파묻혀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자명종 소리는 여자의 귓전을 때리며 그런 작은 바람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옷을 입었다. 해진 속옷, 역겨운 검은색 원피스…… 원피스의 소매는 이미 오래 전에 찢어졌지만,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 P253

"나는 누구한테도 불평하지 않았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쉬지 않고 불평했던 사람은 언니였어. 그리고 스위스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내게도 할 이야기가 있는 거야. 나는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를 이제야 알았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전쟁이 내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조차 모르고……"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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