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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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서핑하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책 제목과 책 표지를 하나 보았단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 너무나 유명한 위대한 러시아 작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분이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도끼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옙스키 빨갱이 전집으로 나왔을 때 두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단다. 당시 그 책을 읽고 난 아빠의 느낌은, 재미는 있으나 읽기 무척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을 잘 알지 못한 상태이고, 지은이들의 이름이 이것저것으로 바꿔 나오기 때문에, 누구 누구인지 확인하면서 읽어내는 것이 힘들었고, 열린책들 도스토옙스키 빨갱이 전집 판본의 글씨 크기가 작고 엄청 빽빽했고그렇다 보니 두 작품까지만 읽고 그 다음 읽으려고 사 둔 책은 결국 책장을 장식하는 용도가 되어버렸단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도스토옙스키 책들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 그러다가 이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책을 보니 급 관심이 가지 않겠니. 지은이는 도제희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2015년 소설가로 등단했고, 책으로는 이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가 첫 번째 책이라고 하는구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지은이는 어렵게 재취업한 회사에서 회사 대표와 대판 싸우고 초고속으로 퇴사를 한 이후, 예전에 읽던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고 하더구나. 이후 다시 직장인도 되고, 소설가로 등단하고 하고그의 이력만 봐도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겠구나. 아빠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


1.

이 책 소개를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아빠가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이 적어서, 공감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읽기를 여러 번 망설였단다. 도스토옙스키의 책들, 특히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을 읽고 나서 읽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러자면 이 책을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냥 에세이 읽듯이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쁘지 않았단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에 대한 리뷰와 지은이의 일상을 잘 믹싱한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다고 다른 책 리뷰를 엮은 책처럼, 책 한 권씩 하나의 챕터를 둔 것이 아니고, 지은이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맞는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소환하여 이야기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네, 하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단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란다. 열혈퇴사를 하고 위로를 받기 위해 옛 동료에게 연락했는데, 그 옛 동료에게서, 아빠가 오래 전에 읽어서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등장하는 막내아들 알렉세이를 떠올리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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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알렉세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그중 대표를 꼽으라면 역시 그의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알렉세이를 들어야겠다. 까라마조프 씨네 막내아들이자 참으로 비현실적이어서 기이하게 다가오는 캐릭터. 모두의 벗이자, 형제 같은 사람. 남녀노소 불문,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면 금세 사랑하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도 비난하지 않으며, 그가 모든 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사람. 그렇기에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그의 혈육들도 알렉세이만은 자신들과 다른 카테고리에 넣는다. 그러곤 모두 그에게 고백하고, 이해받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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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소설에는 많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소환되었단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노름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백야>, <악령> 등등아빠가 빼먹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략 이 정도였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읽기가 쉽지는 않단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여러 개로 부르고, 배경 지식도 부족하고, 가끔 지나친 묘사도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고 하더구나. 예를 들어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작품이 그렇다고 하는데, 나중에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이 작품을 앞쪽에 배치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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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긴 풀 네임, 약칭, 여러 애칭으로 불러서 누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불친절함, 하루 이틀 밤 이야기를 1000쪽 이상의 분량으로 풀어내는 집요함과 심오함에 임하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대체 내가 왜 이 인간 소설을 이렇게 파고 있나 회의감을 느낄 즈음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며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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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관심이 가는 책들이 생겼어. 물론 다 읽으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은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고 하니 일단 관심 있는 책들 먼저 읽어 봐야겠지. 이 책을 통해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노름꾼>이라는 책이란다. 도스토옙스키 본인이 실제로 도박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 그런데 이 <노름꾼>을 쓸 때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도박으로 돈이 쪼들리던 시기라고 하니, 절박한 심정에 자신의 처지에 관한 책을 썼다는 생각을 하니 그 내용이 궁금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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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도스토예스키 장편 <노름꾼>은 여러 가지로 유명하다. 장편 <죄와 벌>을 쓰는 동안 27일 만에 완성했다는 것, 그것도 구두로 완성한 소설을 속기사 안나가 문자로 옮겨 출판사로 넘겼으며, 그 뒤 도스토예스크의 청혼으로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 이 소설을 쓸 당시 작가 자신도 도박으로 인해 돈에 쪼들리며 급하게 완성했다는 사실 등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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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은 <악령>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책장의 장식이 되어버린 책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앞 부분 수십 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은 있구나. 지은이의 소개를 읽어보면 그렇게 앞부분만 읽고 그만둘 소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약 이십 년 전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아빠의 사정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악령>은 뒷담화의 선을 넘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구나. 뒷담화의 선을 넘는 인간으로 하급관리인 리뿌찐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남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당사자게 비밀이니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뒷담화를 하지 말라고 말려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들은 이야기를 다시 재생산하기도 하고딱 들어봐도 짜증나는 스타일의 인간이구나. 리뿌찐이 호감을 두고 있는 바르바라라는 좋은 귀족 집안의 부인이 등장하고, 그 부인의 아들 스따브로긴이라는 사람이 나온단다. 스따브로긴은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이고 추문과 악행이 뒤를 잇는 사람이었어. 바라바라에게는 수양딸 다샤가 있는데, 다샤와 아들 사이의 안좋은 소문이 일어나자, 다샤를 어떤 중노인과 결혼시키려고 했어. 원래 수양딸과 사이가 무척 좋았는데, 이 일로 다샤와 사이가 틀어졌대. 또 중요한 인물로 쁘로호브나라는 산파가 나오는데, 무례함과 불경함을 장착한 인물이라고 하는구나. 대략 이런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나온다고 했어.

이 책에서 소개한 다른 책들에 비해 <악령>에 대해 자세히 적어 둔 이유는 아빠가 조만간에 <악령>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이 책은 우리 집에 장식용으로 잘 꽂혀 있으니 접근성이 좋잖아. 이 책을 덮고 <악령>을 책장에서 꺼내보았단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분들이 전집 중에 최고 중 하나로 치는 열린책들 빨갱이 시리즈였단다. 오랜만에 펼쳐 본 책. , 아빠가 관리를 안 해서 그 예쁘고 정열적인 빨갱이의 책등이 빛에 바래 있더구나. 책을 펼쳐보니, 역시 빽빽한 글씨에 <>, <>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권당 5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 읽을 수 있을까 싶더구나.

….

아빠가 자주 방문하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알라딘 서재란 사이트가 있는데, 그 곳에 가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만화책 읽듯 쉽게 읽어내는 고수들이 있단다. 그렇게 도스토옙스키 소설들을 다 읽은 이들은 이 에세이가 더 공감이 가겠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책 뒷면을 보니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 님의 추천 글도 있구나. 이 책의 지은이와 도스토옙스키 매니아들을 보면 아빠도 다시 한번 정신무장을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다짐을 해 보았단다. 몇몇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초가을이었다.

책의 끝 문장: 알고 보니, 200년 전 유럽 동부 대륙의 사람들도 막장의 달인들이었다고, 우리 삶이 아름답지 않은 순간에 직면할 때 사실 우리와 전혀 상관 없을 법한 그 사람들도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그 와중에 추운 계절의 동백꽃처럼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꽃피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프로가 되는 지름길이며 또 그것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건도 없다. 그렇게 산다 해서 모든 일이 잘되진 않겠지만 모른 채 산다면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선택을 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잘 맞지 않은 회사에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했던 나처럼 말이다. - P48

물론 성숙한 인간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섣불리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살피며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하지만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변화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해 때로 꼰대적 발상과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 P74

나는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을 잘 지켜 나가면서도 품위 있고, 지적이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이를 몇 알고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내적 자산을 비교적 쉬이 갖출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보다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질투하고 부러워한다. 그렇게 부러워하다 보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은 어쩌면 틀렸다. 부러우면 이기는 건지도 모른다. - P102

솔직함은 그 내용이 자기 자신일 때 빛을 발한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도 호감을 얻는 방법이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에 타인의 마음은 더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상대에게 자신도 진심을 내보여도 안전하겠단 느낌을 주니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잘 알 것,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것, 솔직함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둘 것.
- P182

그렇다고 해서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서 누군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삶까지 좌우하려 할 때, 즉 내 삶의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는 양 굴려 할 때 거절할 만한 지혜와 배짱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내 인생의 모든 행운과 불운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감당하겠다는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아직 멀었단 걸 알았다. <노름꾼>의 가정교사의 대처에 정말 놀랐으니 말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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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30 0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글 읽으니 북플의 도선생님전문가들이 떠오르네요. 저도 먼저 도선생님 책을 읽고나서 ㅎㅎㅎ 이 책을 시작해야 될듯 합니다. 가끔 힘들어서 잠시 쉬어야겠어 하고 책을 미뤄놓으면 아이가 슬쩍 갖고가요. 뭔가 자신은 자신이 있다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곧 다시 돌아온답니다 ㅎㅎ

bookholic 2021-08-30 07:27   좋아요 4 | URL
아이와 책들을 함께 읽는 모습 좋아요...^^
그것도 도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서 도선생님의 책에 대해 식구들과 토론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새파랑 2021-08-30 00: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노름꾼하고 악령은 대박 입니다 ㅋ 완전 👍 저도 도선생님 책 완독하면 이책을 꼭 읽어봐야 겠네요. 북홀릭님이 말씀하신 고수중에 저도 있는건가요? 😅

scott 2021-08-30 01:28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은 도끼 선생 매니아 넘버원 .🖐

bookholic 2021-08-30 07:31   좋아요 4 | URL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만화책 읽듯 쉽게 읽어내는 고수들˝은 새파랑 님 생각하면서 쓴 문구입니다~~^^

scott 2021-08-30 0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책 좋아 합니다 ㅋㅋ 자기계발서(실제로는 저자의 사회 생활 조직 생활의 벽에 부딪칠때마다 도끼 선생의 작품 속 인물들이 튀어나오는)보다 이렇게 문학적 은유가 담겨서 참신하고 좋았어요.

bookholic 2021-08-30 07:37   좋아요 4 | URL
네, 독특한 구성의 책인데 참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도씨 선생님의 작품들을 가볍게 이야기하면서도 핵심을 콕콕 찍어 이야기해주고...^^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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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에선가 지나가는 동영상을 보다가, 낯익은 이가 휙 지나갔는데, 누구였지? 분명 낯이 익는데이러면서, 다시 그 동영상을 제대로 보니, 강신주 님이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아는 강신주 님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어. 조금 통통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너무 살이 빠지고 부쩍 나이든 모습에 큰 병에 걸리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동영상은 지난 해 EBS에서 강연하던 모습이었단다. 반갑지만, 너무 달라진 외모에 걱정이 들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강신주 님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지만, 아빠처럼 강신주 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독자들의 글들만 볼 수 있었단다. 부디 별 일 없이 건강하시길 바란다.

강신주 님은 예전에 <감정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다른 책들도 서너 권 읽고,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찾아보고 그랬단다. 아빠는 <감정수업>에서 느낀 그의 신선함과 독특함으로 여전히 강신주 님을 보고 있단다. 늘 좋은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그가 최근에 ESB에서 강의한 것을 책으로 낸 것이 아빠가 이번에 읽은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라는 책이란다. 책 소개를 봤더니, 불교 철학의 여덟 가지 키워드. 아빠가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한 때 불교 경전을 공부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공부하진 않지만 여전히 불교에 관심이 많고, 절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삼배를 하고, 누군가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불교라고 이야기를 한단다. 강신주 님이 불교 철학에 대해 강의를 했다고 하니, 급 관심을 갖게 되더구나.


1.

강신주 님이 뽑은 불교 철학의 여덟 가지 키워드는 고(), 무상(無常), 무아(無我), (), 인연(因緣), 주인(主人), (), () 이란다. 이 여덟 가지 중에 또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무엇일까? 아빠가 생각하기에 강신주 님은 사랑()을 뽑으신 것 같더구나. 책 제목에도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고, 책 제목에 또 다른 아낌이라는 것도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거든예전에 다른 책들에서도 늘 사랑을 중요하게 이야기하셨지. 사랑을 좀 다르게, 좀 솔직하게, 좀 자유롭게 해석하셨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이번 책에서도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큰 주제에 다른 것들도 담고 있다고 아빠는 생각했단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무한의 사랑, 끝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 하지만, 강신주 님은 사랑이라는 것이 밥과 비슷하다고 해서, 너무 많이 주게 되면 그게 고통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단다. 프롤로그에서 책 제목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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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 공기의 사랑이다. 그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한 공기의 사랑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모든 사랑은 정말 사랑했다!”라는 나의 정신 승리는 가능하게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온갖 고통을 가하는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면 세 공기든 네 공기든 한 가마든 먹어야 한다고 그를 압박한다. 세 공기, 네 공기의 밥을 지은 자신의 수고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당신을 위한 나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아줘. 그러면 나는 정말 슬플 거야.” 어느새 그의 배고픔과 포만감보다 나의 수고가 핵심이 되고 만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사랑은 이제 사랑의 궤도를 이탈해 공회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애지중지(愛之重之)하지 않게 되니까.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그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 한마디로 그를 내 뜻대로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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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 중에 하나. 고통()이 아닐까 싶구나.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동안 고통이라는 것을 없앨 수 있을까. 없을 거야. 신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이 제로가 되었다는 것은 죽었을 때나 가능한 거야. 그렇다면 고통이라는 것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완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잡아야 한단다. 사랑이라는 것도 상대방의 고통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란다. 배고픔의 고통을 한 공기의 밥을 줌으로써 해결하는 것처럼 말이야. 회사에서도 자신만 잘났다고 떠들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사랑의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이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어야 고통을 줄이는데 힘쓰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야. 예전에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모순 덩어리 말이었던 거야. 학생의 고통을 공감한다면 어찌 때릴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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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과거 독재 시절, 시대에 걸맞게 학교에는 사랑의 매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들을 미워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때린다는 체벌의 논리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선생님이 학생들의 종아리에 매를 대는 순간 아이들의 고통이 느껴진다면, 과연 선생님은 계속 매를 댈 수 있을까. 한 대 두 대 때리면 때릴수록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진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계속 때릴 수 있을까? 아내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아이에 대한 사랑, 후배에 대한 사랑 등 타인에 대한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다시 말해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의지이자 감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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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신주 님께서 여덟 가지로 나누어 설명을 해주셨는데, 하나씩 살펴보자꾸나. 앞서 첫 번째로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두 번째로 이어지는 것이 무상(無常)이란다. 영원한 것은 없고, 세상 만물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이야. 강신주 님이 무상(無常)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언젠가 변해서 사라지는 인생무상임을 깨닫게 되었다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사랑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언젠가 사라지니, 현재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야. 함부로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아빠도 반성하게 되더구나. 얼마나 많은 일을 미래로 미루면서 살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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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7)

놀이의 삶에는 근사한 표어가 주어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표어이다. 반면 노동의 삶에도 그에 어울리는 표어가 있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라는 표어다. 이는 연애 시절과 결혼 생활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연애 시절에 우리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몰입한다. 가장 좋은 음식을 사주고 값비싼 선물도 아끼지 않는다. 오늘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지 않으면 내일은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하염없이 미루기 쉽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아이들 양육비도 생각해야 하니, 맛있는 스파게티나 여행 등 오늘의 행복을 속절없이 미루게 된다. 오늘이 수단이 되고 내일이 목적이 되는 순간, 오늘은 수단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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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행복을 뒤로 미루기만 하다 보면 어느덧 삶의 끝자락에 도착을 하게 될 거야. 요즘에는 가뜩이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는데 말이야아빠도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단다.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여행도 못 가고코로나를 모르던 시절에는 다음에 해야지, 다음에 가야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일들이 코로나 때문에 기약 없이 뒤로 계속 미뤄지고 있구나. 그러면서 어떤 일들은 너희들이 커가면서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있고 말이야.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마련인데, 잠깐 뒤로 미뤄둔 일들이 코로나 같은 예상치 못한 일들 때문에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더구나. 안타까울 뿐이구나.

무아(無我)라는 말은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도 하고 제법무자성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제법(諸法)이란 다르마에서 온 말로 모든 존재를 이야기한단다. 세상 모든 존재는 본질이 없다는 뜻이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거나 불멸하지도 않고 동시에 순간적인 것도 없다는 뜻이란다. 변화를 잘 받아들여야겠구나. 왜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왜 그래?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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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먼저 영원할 듯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영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 대상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가능성은 줄어드는 말이다. 아내와의 관계나 남편과의 관계, 혹은 친구와의 관계가 예전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려고 노력하라. 돈독하던 관계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어제와 다름없이 보이는 부모님, 아내, 남편, 아이의 얼굴에서 변화를 읽으려고 노력하라. 작은 주름 하나, 깊은 한숨 하나, 작은 새치 하나, 작은 어둠 하나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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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마음과 들끓는 마음을 설명한단다. 아빠의 마음이 고요했던 적이 있던가 싶구나. 늘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고, 어떤 작은 일에 대해서도 머릿속에서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그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적이 많아. 요즘에는 그걸 받아들이려고 한단다.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한 동안 아빠 머릿속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해 버려. 아빠처럼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에게 있어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버리기로 했어. 물론 며칠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게 되니까, 그런데 가끔 이 파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더 큰 파문이 일어날 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이렇듯 아빠의 머릿속은 번뇌와 망집의 반복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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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52)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남자의 사례를 통해 번뇌망집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스마트폰을 카페 의자에 둔 것이 맞을까?’ ‘스마트폰을 카페 점원이나 손님들 중 누군가 가져간 것은 아닐까?’ 등등, 번뇌란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의 없음을 경험하자, 그의 뇌리에는 사라진 스마트폰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는 허탈해하며 카페에서 나와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미 없어진 스마트폰이야. 없는 건 없는 거지. 잊자!’ 하지만 스마트폰의 없음을 받아들이려 할수록 없어진 스마트폰에 대한 기억은 더 강해질 뿐이다. ‘잊자, 잊어라는 생각이 오히려 사라진 스마트폰을 떠오르게 하니 말이다. 바로 망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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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보통 연기법과 함께 생각하게 된단다. 어떤 일이 그냥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뜻이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잖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되면 세상이 끝난 듯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도 또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보자고 하더구나.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아빠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동안 번뇌와 망집에 또 휩싸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도 보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될 거야.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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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만성화된 슬픔, 고질적인 우울 속에 갇히게 된다. 행복과 기쁨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앞으로 앞으로삶을 밀어붙이면 알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부재하기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인연이 끝나야 다른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이별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수평선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앞으로걸어나가면, “앞으로 앞으로배를 수평선 쪽으로 밀어붙이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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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主人)이라는 챕터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아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듯했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보다 무엇인가 그만두고 싶은 것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말에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굳이 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라고 하는 순간 피곤한 일들이 이어질 것을 아니까. 그러므로 아빠의 생각과 다르지만 그냥 예스라고 하고 아빠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단다. 이로서 아빠는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이란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아빠와 비슷한 것 같아. 다들 자발적 노예인가 보구나. 회사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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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1947~) <냉소적 이성 비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한 능력은 예스의 유일하게 타당한 배경이 되며, 이 둘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윤관이 비로소 뚜렷해진다.” “예스가 힘이 있으려면 라고 외쳤던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스는 굴종의 표현이 아니라 자유의 표현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예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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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는 멈출 수 있을 때, 그만둘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하더구나. 아빠가 가끔 유튜브를 보다 보면 회사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집을 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빠가 본 그 분들은 얼굴에 행복이라고 쓰여 있더구나. 물론 회사라는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그 절벽에서 손을 떼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있었을 거야. 자신이 숨겨 두었던 날개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용기 있게 그 절벽에서 손을 떼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이 말에 아빠가 소심해서 딴지를 걸고 싶긴 하더구나. 절벽에 매달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해볼 수 있겠는데, 그 절벽에서 손을 놓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같았어. 모든 사람이 날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진짜 끝없이 추락을 해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회사 안은 전쟁터이고, 밖은 지옥이라는 소리도 있고, 실제로 그런 예도 본 적이 있고 말이야. 그런 사람들의 경우 날개가 없는 것일까? 날개가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사실 아빠도 아빠가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일단은 절벽을 잡고 보자비록 어깨가 아플지라도…. 아빠의 깨달음이 부족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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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28)

매달린 절벽은 사실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놓으면 죽을 것 같다고 믿는 집착의 대상일 뿐이다. ‘매달린 절벽은 사람마다 다르다. 젊음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집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랑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타인의 인정일 수도 있다. 아이를 잡지 않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사람에게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말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권고하는 사람도 돌아보면 돈이나 건강을 매달린 절벽처럼 붙잡고 집착할 수도 있다. 또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해서도 안 된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더 억세게, 저 집요하게 매달린 절벽을 잡으려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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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발적 노예의 안락한 삶을 진정한 자유와 트레이드 오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그 자발적 노예를 사랑해 주고 절벽을 잡고 있는 팔과 어깨를 주물러 주는 너희들이 있음에 위안을 삼으면서, 좀더 잡고 있어보지이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

(). 드디어 핵심 주제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온단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시간을 잊게 만들고 아픔을 잊게 만든단다. 그 대상을 소중히 다루어 아끼게 되는데, 그런 말로 애지중지(愛之重之)라는 말이 있단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바라면 안 돼. 그러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아끼는 것이 아니란다. 아빠가 우리 식구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데 가끔 내가 이만큼 했던데 저 일은 좀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말로 튀어 나오는 경우도 있어. 그 경우 아낌의 관계는 깨지는 것이란다. 반려 동물을 사랑할 때와 비유를 하고 하는데 반려 동물을 사랑하면서 반려 동물에게 무엇을 바라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말길을 못 알아듣고 멀뚱멀뚱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는데 말이야. 핵심은 사랑을 할 때, 누군가를 아껴줄 때 대가를 바라지 말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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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아끼는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사람이다. 아끼는 사람이 무언가 해주기를 원하는 순간, 아낌의 관계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너저분한 거래 관계가 들어선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너도 이만큼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제 상대방이 나의 애지중지하는 모든 행동을 일종의 부채감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아낌의 관계는 막장을 향해 치닫고 만다. 이런 비극을 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끼는 사람을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보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밥을 해달라고, 쓰레기 봉투를 버려달라고, 청소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아듣는다 해도 쫑긋한 귀와 해맑은 눈, 그리고 네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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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님이 이야기하는 불교철학의 마지막 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이 부분에서도 애()의 연장선상으로 아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단다. 나의 생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끼는 것들과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란다. 그 인연에는 가족들일 수도 있고, 반려 동물, 반려 식물일 수도 있고, 그 외 아끼는 모든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야.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인연들에 있어 많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한 공기의 연이 필요하다고 강신주 님은 이야기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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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우리 각자에게 아끼는 대상이 어머니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아내일 수도, 남편일 수도, 아일 수도, 친구일 수도, 반려견일 수도, 반려묘일 수도, 아니면 화초일 수도 있다. 아끼는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의 행복에 있어 한 공기의 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농부의 물꼬 트기처럼 이 한 공기의 연을 우리가 채우지 못하면, 아끼는 사람의 삶은 불행에 빠진다. 그러니 좋은 공기, 맛있는 음식, 쾌적한 잠자리, 따뜻한 태양, 싱그러운 바람, 아름다운 음악, 근사한 영화, 멋진 식당, 의사와 간호사, 친구들 등등이 아끼는 사람에게 건강한 연이 되어줄 때, 우리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 잘 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잠도 잘 자야 한다. 우리게는 한 공기의 연을 채워야 할 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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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렵단다. 요즘 너희들이 커가면서 어떤 방향으로 안내를 해주어야 하나, 지금 이 방향이 맞나, 그냥 남들이 가니까 따라 가는 것은 아닌가? 등 고민이 많단다. 엄마도 고민이 많아 아빠한테 물어보곤 하는데, 아빠도 처음 겪은 일이니 쉽지 않더구나. 그렇다고 소위 방목 또는 방임하면서 키웠다가 전혀 엉뚱한 도착지에 가 있으면 어쩌나,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이런 걱정에 휩싸이게 되고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강신주 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였단다. 아이를 진정으로 아낀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알 때까지 망()과 조장(助長) 사이의 균형을 이루라고 하는구나. ()잊다라는 뜻이고, 조장(助長)잘 자라도록 돕는다는 뜻이란다. 방임과 관심의 사이를 균형을 이루라는 것인데, 이것도 앞서 이야기한 한 공기의 사랑, 한 공기의 아낌과 비슷한 말인 것 같구나. 그런데 그게 쉬울 것 같지는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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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를 아끼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아이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어 학원에 보내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수영 강습도 받게 하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방학마다 여행을 가고 캠핑도 간다. 문제는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해야만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 혹은 언젠가 아이가 원할 수도 있다고 자신이 믿는 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웃음과 미소를 점점 잃어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간혹 우리는 아이를 방임해서 키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도 있다. 김을 매지 않아 잡초들에 둘러싸인 벼처럼, 아이는 경쟁적 교육 환경, 왕따를 시키는 차별적 문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둘러싸여 시름시름 앓게 될 것이다. 결국 엄마는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되 지나치게 관여해서는 안 되고, 관여하지 않되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알 때까지, 혹은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 때까지, ‘조장사이 혹은 물망물조장사이 그 어딘가를 지키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끼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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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강신주 님의 이야기한 불교 철학 여덟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이 책의 핵심은 책 제목에 다 들어 있단다. 한 공기의 사랑과 아낌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사랑과 아낌이 중요하다이상. .


PS:

책의 첫 문장: 그가 늦게 귀가했다.

책의 끝 문장: 좋은 추억으로 남을 만한 인연이자 하나의 행복한 축제였다.


사실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느끼고 그것들을 사랑한다면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먹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자기 자신을 죽이게 된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다 굶어 죽을 테니 말이다. 식물도, 토끼도, 사슴도, 독수리도, 늑대도, 그리도 인간도 생명체다. 식물을 살리려고 토끼를 죽여서도 안 된다. 토끼를 살리려고 늑대나 인간을 죽여서도 안 된다. 엄청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슴과 늑대가 동시에 배고픔의 고통을 토로한다면 싯다르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한 일이다. 어쩌면 이 딜레마, 이 난감함, 이 애절함, 그리고 이 간절함 속에서 산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일체개고’의 진정한 의미, 혹은 ‘고통’의 기원이 아닐까. - P31

진짜 사랑이 열정적인, 그리고 자발적인 노동을 낳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배부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지인과 행복한 담소를 나누면,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힘차게 잘 걸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명랑하면, 우리는 고맙기만 하다. 진짜 사랑할 때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이 완화되었는지 여부뿐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질투심이 강해질수록 우리의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 P41

이렇게 현재의 삶을 수단으로 만들고 내일의 삶을 목적으로 만들면, 오늘의 행복은 계속 내일로 미루어지고 만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 삶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행복한 적이 없다는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물론 이런 후회는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 죽음 이후의 피안이나 이데아 세계, 혹은 기독교의 천국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마지막 기대를 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하다"는 기만적인 생각은 충만하고 아름다운 현재의 삶을 좀먹는 독약과도 같아.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은 영원을 꿈꾸면서 무상을 직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헛된 사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P83

성숙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은 단순하다. 성숙하면 자신이 강해지고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아파하게 된다. 간혹 아이들은 엄마가 아파서 밥을 못 해주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엄마가 아플 때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다. 바로 이때 아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이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요한 물처럼 작동한 것이다. 비록 아이지만, 이 순간 아이는 부처다. 자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엄마의 아픔에 사무쳐 있기 때문이다. - P176

멈출 수 있어야, 혹은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다. 멈출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당당해지고, 그만큼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멈출 수 있는 자유를 가슴에 품을 때, 그가 누구이든 상대방은 우리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가슴에 사표를 품고 있는 직원에게 사장이 어떻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캐리어를 들고 집을 떠날 수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어떻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학위쯤이야 우습게 여기는 학생에게 교수가 어떻게 사역을 시킬 수 있을까? - P244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 주인이 아니라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49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이만하면’이라는 말로 가늠할 수 있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 사랑했거나 사랑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살았거나 그러지 못했거나, 행복했거나 행복하지 않았거나,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았거나, 이제 ‘이만하면’이라는 말을 우리 삶의 사전에서 지우도록 하자.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 재산이나 소비수준과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잘 사랑하려면, 제래도 살려면, 정말 행복하려면, 그리고 자유로우려면, 우리는 ‘이만하면’이라는 전체를 붙인 너저분한 자기만족과 정신 승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아직까지 제대로 영위하지 못했다고,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자. 그래야 우리에게는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살아가고, 제대로 행복하고, 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희망이 생길 수 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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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8 16: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는 진심으로 북홀릭님의 아들과 딸이 꼭 읽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문장 하나 새겨두지 않아야 할 문장이 없네요

전 한줄 한줄 읽으면서 이기적인 제 자신을 반성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살아가고, 제대로 행복하고, 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희망]
이 문장 만큼은 앞으로 남은 생애 꼬옥 실천하고 실행하도록 노력 하려고 합니다. ^ㅅ^

bookholic 2021-08-28 18:51   좋아요 2 | URL
scott님은 페이퍼뿐만 아니라 댓글도 정성스럽고, 읽은 이를 행복하게 해주십니다..^^
덕분에 행복한 주말입니다~~
scott님도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되십시오~~^^

붕붕툐툐 2021-08-28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강신주님 신간이라 담아는 놨었는데, 불교에 대한 이야기인 줄은 몰랐어요! 알았음 진작에 읽었을 텐데요! 감사합니다. 만약 강신주님이 아픈게 아니라면 고행을 하신게 아닐까 추측을 해보게 되네요~ 왠지 강신주님이라면 해보셨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bookholic 2021-08-29 10:07   좋아요 0 | URL
고행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직접 고행을 체험하고 글로 쓰시고~~
 














(18)

스탕달 신드롬이 뭔데요?

미술 감상에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빠지면 겪을 수 있다는 증상입니다. 감상에 너무 몰입하다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심하면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가 겪게 되면서 알려진 증상입니다. 요즘도 피렌체 여행객 중에는 이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32)

유럽인에게 후추는 그야말로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예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후추 없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 거죠. 그렇게 점점 유럽인들은 더 많은 후추를 낙타에 싣고 콘스탄티노플이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지중해 동쪽의 도시까지 가져와야 비로소 유럽의 상인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후추 값이 거의 금값이라고 할 정도였죠.


(95)

그런데 이 옷 색을 한번 보세요. 커피에 우유를 탄 색처럼 보이지 않나요? 여담입니다만 프란체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카푸친 수도회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카푸치노 커피색과 똑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유를 넣은 커피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106)

우리의 모든 꿈은 추진할 용기만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159)

이성주의가 흑사병 때문에 나온다고요?

,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건 상당 부분 흑사병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가 해부학을 연구한 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199)

결국 르네상스의 핵심은 고대 문명의 부활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피렌체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자신감을 가질 만합니다. 고대를 부활시키려면 고대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피렌체는 그 어느 도시보다 고대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도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의 전통이 도시에 각인되어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225)

물론 15세기부터는 메디치 가문이 정치권력을 점점 독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메디치 가문도 항상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실제로 메디치 가문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면서 여러 번 추방당하기도 하죠. 피렌체 시민들의 정치적 자의식이 어느 도시국가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시민 중심의 공화국 체제를 상당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시민들이 지녔던 정치적 자의식은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272)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 걸어가는 것이 성공이다.

-       윈스턴 처칠


(293-294)

당시 인문학자이자 미술이론가였던 알베르티는 하늘 높이 솟구친 피렌체 대성당 돔이 토스카나의 모든 사람을 그늘로 덮을 듯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시기 피렌체 사람들에게 돔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 것 같죠. 물론 과장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막상 피렌체에 가서 직접 이 돔과 마주하면 단순한 과장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하고, 가파르게 솟아오른 윤곽선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318)

알베르티는 보통 특출 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르네상스 맨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르네상스 맨이라 다재다능한 천재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도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맨이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시작은 알베르티였다고 봐야 합니다.


(362)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443)

사실 레오나르도의 생애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습니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던 작가 개인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대작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만한 아량을 가진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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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25 2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너무 좋아오 *^^*

bookholic 2021-08-26 09:01   좋아요 2 | URL
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발췌하면서 새로움을 만났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즐거운 하루 되세요^^

scott 2021-08-25 2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 좋습니다

bookholic 2021-08-26 09:01   좋아요 2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시원한 하루 되십시오..^^
 
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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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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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약산 김원봉을 알게 된 이후,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중에 한 사람으로 늘 손꼽고 있단다. 남북으로 갈려서 학교에서는 반 쪽짜리 역사를 배웠던 아빠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김원봉을 배우지 않았단다. 몇 번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해방 후 김원봉이 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말이야. 김원봉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북으로 넘어간 것이라면 이해라도 하지, 남한에서 생명 위협을 느끼고, 일제 시대 우리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노덕술한테 고문을 당하는 치욕을 당하자 남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북으로 간 것이거든…. 김원봉이 북으로 간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위와 같은 이유였던 것 같았어.

이런 이유로 반공정신 투철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서는 김원봉을 볼 수 없었단다. 요즘 역사 교과서에는 김원봉이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구나. 너희들이 좀더 크면 한국 근현대사를 학교에서 배울 텐데, 그때 너희들 교과서를 봐야겠구나.

1.

아빠는 김원봉이라는 분을 알게 된 이후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어. 그래서 김원봉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기도 했고 말이야.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너희들에게도 몇 번 이야기를 해 주어서, 오늘 또 김원봉의 삶과 그가 이끌었던 의열단의 이야기는 생략할게.

이번에는 좀 특별한 책으로 김원봉을 만났단다. 만화로 엮은 김원봉. 지은이가 무려 허영만. 아빠가 만화를 즐겨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허영만 님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대표 만화가라고 할 수 있단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만화가들이 있지만, 웹툰이 생기기 이전부터 허영만은 많은 작품을 통해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던 만화가란다. 아빠도 예전에 허영만 님의 만화를 여러 편 본 적이 있단다. 비교적 최근에 본 것은 <커피 한 잔 할까요?> <허허 동의보감>라는 책이었어. <커피 한 잔 할까요?>는 모두 8권까지 있는데, 아빠가 읽을 당시에는 5권까지만 출간되어 5권까지만 읽었는데 커피에 관한 상식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구나. 아직 읽지 않은 6~8권도 읽어봐야겠구나. <허허 동의보감>은 조만간에 이야기해줄게.

그런 허영만 님이 약산 김원봉을 그렸다? 호기심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구나.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막둥이가 아빠한테 김원봉 아냐고 물어봤잖아. 어디서 김원봉을 듣고 물어본 건지 아빠가 까먹었지만, 김원봉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어린이들을 위한 김원봉 위인전이나 학습만화를 검색해 보다가, 굳이 그런 책 말고 허영만 님이 쓴 <독립혁명가 김원봉>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이 책을 구입했단다.

그리고 아빠가 먼저 읽어 보았어. 예전에 읽은 김원봉 평전들을 읽을 때, 머릿속에 상상했던 장면들을 멋진 만화로 잘 그려 놓았더구나. 김원봉뿐만 아니라 의열단원들의 활약상들도 나와 있었어. 만화로 읽다 보니 흡입력도 좋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니 영화를 보는 듯 하기도 했단다. 물론 만화로 읽다 보니 일부 자세한 부분은 빠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김원봉 전기를 읽어보면 메워지겠다 싶더구나. 만화를 먼저 읽고, 나중에 전기나 평전을 읽어도 좋고, 아빠처럼 전기나 평전을 먼저 읽고, 만화를 읽어도 나쁘지 않는 것 같았어.

2.

다 읽고 너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려고 하니, 살짝 걱정은 되더구나. 일본이 우리 조상에게 행한 악한 짓이 사진으로 삽입되어 있거든. 너희들이 무서운 것을 좀 무서워들 하셔서하지만 그것도 다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이란다. 그런 일들이 불과 100년도 안된 과거에 일어났던 것이야. 일본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나더구나. 더 짜증이 나는 것은 그런 일본의 망언을 따라 하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있다는 것, 그러면서 외교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정부를 욕하는 인간들

이럴수록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들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구나. , 이 만화책 한 번 읽어보렴

PS:

책의 첫 문장: 1905 11 17(약산 8)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한 을사늑약 체결

책의 끝 문장: 황포군관학교 교관을 거쳐 광주봉기에도 참가했던 그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면서 부수상 겸 민족보위상으로 2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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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2 07: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 관련 영화에 김원봉님이 자주 등장했던거 같은데 이렇게 북홀릭님 리뷰로 보니 반갑네요. 궁금해집니다 ^^

bookholic 2021-08-22 08:36   좋아요 4 | URL
이원규 님이 쓰신 책을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레삭매냐 2021-08-22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원규 작가의 성함이 제 절친
과 같아서 ㅋㅋ

약산 김원봉 선생의 전기를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bookholic 2021-08-22 22:26   좋아요 2 | URL
그 친구분한테도 이원규 님이 쓰신 책들을 추천하심이...^^

붕붕툐툐 2021-08-22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잔인한 건 못 봐서-특히 실제 상황이라 상상하면 으~~~ - 댓글에 소개해 주신 책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

bookholic 2021-08-22 22:27   좋아요 3 | URL
이원규 님의 책이 소설적인 요소도 좀 있어요.. 감안하시고요~~^^

scott 2021-08-22 1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주말 북홀릭님 올리신 책들 쓸어 담귀 @ㅅ@

bookholic 2021-08-22 22:28   좋아요 3 | URL
주말이 휘리릭 가버렸어요...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1-08-22 14: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는 만화를 대출하겠슴다. 저희딸 학습 만화광이시라. 근데 북홀릭님 아빠세요?? 프로필 보고 당근 어여쁜 여성이라 여겼건만^^;;;;

bookholic 2021-08-22 22:31   좋아요 4 | URL
따님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필을 바꿔야 하나요? 엄마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mini74 2021-08-23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약산 김원봉 ! 오래전 밀양에서 폐허같은 김원봉 생가를 보며 슬펐는데 요즘은 그래도 나름 잘해놨더라고요. 하기야 몇년전까지도 친일파 음악가를 기리는 음악제가 열리던 곳이었으니까요 ㅠㅠ 그러고보니 저도 김원봉은 배우질 못했어요. 요즘 아이들은 배워요 *^^* 다행이지요. 독립운동계의 최고봉 쓰리봉이 있으니 ~ 하면서 배웠다고 하네요.

bookholic 2021-08-24 10:38   좋아요 1 | URL
밀양 근처에 가게 되면 한번 방문해야겠어요..
쓰리봉이라...^^ ㅎㅎ 재미있게 공부하네요~~
 
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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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너희들이 피아노를 배운 이후로, 가끔 피아노 음악을 같이 듣기도 하잖아. 많은 음악가들 중에 우리 식구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문득 그 사람의 음악이 아닌,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악보가 아닌 라흐마니노프 전기나 평전 등 라흐마니노프 그 사람 자체와 삶에 관한 책을 읽어볼까 하고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보았단다.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 중에 그런 책이 없더구나. 모차르트, 베토벤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에 관한 책이 없다니원서를 찾아 읽을 수도 없고웹사이트 검색으로 만족해야 하나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전기나 평전은 없지만, 제목에 라흐마니노프가 들어가 있는 소설은 하나 있었단다.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 삶을 소설로 쓴 것인가? 싶어 책 소개를 읽어봤더니 그런 건 아니더구나. 추리 소설이래.. ? 그리고 그 책은 나카야마 시치리라는 일본 작가 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물의 하나라고 하더구나. 평점이 좋아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겠거니,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2권이라고 했어. 이왕 읽는 거, 1권부터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1권을 검색해봤고, 1권이 이번에 아빠가 읽은 <안녕, 드뷔시>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알고 있는 노래는 달빛이 유일하지만, 드뷔시도 유명한 음악가잖아. 너희들도 드뷔시의 <달빛>을 좋아해서 가끔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었고음악이라는 소재와 추리 소설과 만남이라이런 스타일의 소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그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꾸나.


1.

드뷔시의 달빛만 알았지. 드뷔시에 대한 사람도 잘 몰랐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의 음악은 프랑스 인상주의로 분류되고, 1862년에 태어나서 1918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많은 유명한 음악을 남겼지만, 아빠가 아는 음악은 달빛 하나.^^ 이 책에는 드뷔시 달빛에 대한 곡 해석 부분이 나오는데, 별 생각 없이 듣던 아빠도 그 글을 읽고, 그런 감정으로 드뷔시의 <달빛>을 다시 들어보았는데, 싸구려 귀에는 그냥 피아노 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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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영롱한 음 하나에 달빛 한 줄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음이 빛이 되어 마음속에 비쳐 든다. 눈꺼풀이 절로 감기더니 이내 정경이 떠올라 또 한 번 놀랐다. 미사키 씨에 따르면 드뷔시는 음과 영상의 관계를 중시했다고 하던데, 정말이었다. 달빛이 호수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교교한 달빛 아래 한 쌍의 남녀가 한가로이 왈츠를 춘다. 시간마저 느릿느릿 흘러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 위로 퇴락한 고성이 또렷이 떠오른다. 한 음이 끊어지기 전에 다음 음이 이어진다. 곡이 끝나자 나는 무척 후회했다. 왜 이런 곡을 그동안 허투루 들었을까. 선율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지만, 진지하게 들으면 이토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곡이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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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바로 책 이야기를 해볼게. 주인공은 고즈키 하루카. 피아니스트가 꿈이 소녀로 예술학교도 입학했단다. 자수성가해서 큰 부자가 된 할아버지, 은행에 다니는 아버지, 가정 주부인 어머니, 백수인 겐조 삼촌 이렇게 함께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사촌인 가타기리 루시아도 함께 살기 시작했어. 루시아는 아버지의 여동생의 딸 그러니까 하루카의 고종사촌이었어. 둘은 나이도 같아서 아주 친하게 지냈어. 루시아와 함께 살게 된 이유는 아주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단다. 2005년 인도네시아에는 아주 무서운 쓰나미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적이 있었어. 그 때 루시아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거야. 2005년이면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2009년 기준으로 얼마 전의 일이었지. 이 소설은 2009년보다 더 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얼마 전에 무서운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루시아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루카의 부모는 루시아를 양녀를 들이려고 절차를 알아보고 있었고, 실제로도 루시아를 친딸처럼 생각했단다.

어느 날 별채에서 큰 불이 일어났어. 그곳은 할아버지의 작업실 겸 침실이 있었고, 하루카와 루시아도 별채의 또 다른 침실에서 자고 있었단다. 이 큰 불로 그만 할아버지와 루시아가 죽고 말았고, 하루카는 전신화상을 입은 채 간신히 살아났단다. 며칠째 정신을 잃고 있었고, 처음에는 말도 못했어. 얼굴도 화상으로 엉망이 되어서 얼굴의 3분의 1이상을 피부이식을 해야만 했어. 가족을 잃은 슬픔. 자신이 꿈인 피아니스트에 대한 좌절. 하루카는 잘 버텨나갈 수 있을까.


2.

그런 하루카를 자진해서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강사가 나타났단다. 미사키 요스케. 이 소설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했잖아. 그 요스케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요스케는 하루카를 가르치던 학원 선생님의 후배이자 떠오르는 천재 피아니스트였어. 요스케는 피아노를 통해 하루카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단다.

갑부였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유산 분배가 있었단다. 유서에 적힌 대로 하루카가 1/2, 아버지가 1/4, 겐조 삼촌이 1/4이었고, 할아버지를 친절하게 돌봐주던 개인 간호사 미치코에도 적지 않은 돈을 남기셨단다. 미치코는 다른 식구들과도 친해서, 하루카의 병간호를 계속 해주기로 했단다. 할아버지의 유산 분배에 대해 겐조 삼촌은 자신의 것이 적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단다. 철 없는 삼촌이네.

그런데 얼마 뒤 집에서 하루카를 노리는 테러가 일어날 뻔했어. 일부러 계단의 미끄럼 방지를 떼어 놓아 하루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는데, 요스케가 옆에 있다가 구해주었어. 요스케가 아니면 큰 일 날 뻔했어. 누가 일부러 계단의 미끄럼 방지를 떼어 놓았을까. 

요스케는 자신이 피아노를 잘 치는 것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잘 가르쳤단다. 아빠는 피아노를 못 치니 그가 소설 속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훌륭한 가르침인지 잘 모르겠지만, 읽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긴 하더구나.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너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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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있지. 건반을 힘주어서 정확히 치고 싶은 나머지 손끝에 체중이 실리도록 의자를 높게 조절하거든. 그런데 건반의 무게는 고작 70그램이야. 지압하듯 센 힘이 필요 없어. 앉은 위치를 낮추면 자연히 등허리가 세워지고 근육을 곧게 펴서 잘못된 자세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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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음이 연속해서 나면 드디어 연주의 기본 요소가 갖추어진 셈이야. 기본 요소는 세 가지인데 첫째 리듬, 둘째 음, 그리고 셋째 스타일. 리듬은 작품의 짜임새인 만큼 무조건 정확해야 할 것. 또 연속해서 내되 각각의 끝소리가 다음 소리와 붙어 버리면 안 돼. 리듬이 애매해지거든. 따라서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을 가늠할 필요가 있어.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은 오롯이 음절의 울림을 나타내는 셈이니까, 여기서도 너무 강하게 쳐서 울리지 않게 하는 건 마이너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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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케의 가르침과 하루카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어. 학교 교장으로부터 콩쿨 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석해 보라고 했어. 학교 교장이 장애를 딛고 일어난 하루카를 다른 저의로 쿵쿨 대회을 제안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루카는 나가겠다고 결심했어. 그렇게 하루카는 다시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었단다.


3.

그런데 하루카 집의 비극은 끝이 아니었단다. 하루카의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다가 낙상 사고로 그만 돌아가셨단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인 것 같았는데, 경찰은 이 사고를 할아버지의 화재 사고와 연관을 지어 조사했어.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사고도 누군가의 방화로 일어난 것일 수 있다면서요스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다.

사실 요스케는 평범한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단다. 요스케의 아버지는 유명한 검찰이었고, 요스케도 사법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하고 사법연수원까지 마쳤었어. 하지만 자신의 꿈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그만 둔 것이지. 그런 요스케이니 어떤 사건에 대한 추리력이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캐릭터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야. 아무튼, 하루카의 어머니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고 사건이라면, 누가? 하루카에게 테러를 하려고 했던 사람? 아무래도 범인은 가족 중에 있다 보니, 용의선상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이는 유산에 불만이 있던 겐조 삼촌. 하지만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이들은 가장 범인 같은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겐조 삼촌은 가장 먼저 리스트에서 지워버리겠지. 아빠처럼^^

….

하루카에 대한 테러도 더 일어났어. 하루카의 목발을 일부러 고장 나게 하거나, 누군가 도로로 하루카를 밀치는 일이 있었어. 다행히 그때마다 실제 테러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이었지만 하루카는 그런 아픔과 슬픔을 잊지 위해서라도 피아노에 더욱 열심이었단다. 드디어 쿵쿨 대회. 예선에서는 쇼팽의 <에튀드> 10-2, 10-4를 연주하고, 본선에는 드뷔시의 <달빛> <아라베스크 1>을 연주하기로 했어. 이렇게 하루카가 피아노 쿵쿨을 준비하고 참가하는 동안 요스케는 계속 범인을 추적하여 드디어 범인을 밝혀낸단다. 그리고 하루카가 본선을 마치고 시상식을 기다릴 때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아무래도 사건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피아노 연중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말이야..


4.

이제부터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이어질 텐데, 스포일러가 싫다면 아래 글은 읽지 않아도 된단다. 자 그럼 강력한 스포일러를 이야기할게. 추리 소설의 범인은 늘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이가 범인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 이 소설도 그 규칙에 맞았단다. 먼저 하루카에게 테러를 했던 이는 할아버지의 개인 간호사이자, 지금은 하루카를 돌보고 있는 미치코였단다. 왜냐고?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그러면 미치코가 엄마도 죽였냐고? 그건 아니야.

엄마를 죽인 것은 바로 루시아였단다. 뭐라고? 루시아는 죽었잖아. 사실 하루카는 하루카가 아니고 하루카의 사촌 루시아였던 것이란다. 화재가 일어난 날 둘은 잠옷을 서로 바꿔 입고 있었어.(전에도 가끔 이런 적이 있었거든) 화재가 일어나고 살아난 사람은 하루카의 잠옷을 입은 이였으니 다들 하루카인 줄 알았지. 얼굴과 머리도 화상으로 엉망으로 되었고, 루시아도 며칠 동안 정신을 잃고 말도 못했으니 말이야. 루시아는 정신이 들고 보니 자신이 하루카가 되어 있던 거야. 이미 얼굴에 피부 이식과 성형으로 하루카의 얼굴이 되어 있었고순간, 루시아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하루카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야.

그런 루시아를 처음 알아본 이가 미치코였어. 그래서 미치코는 루시아에게 테러를 가한 거야. 화재도 루시아가 낸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미치코는 돌아가신 하루카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그런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니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그런데 화재는 실재 사고였단다.

그리고 두 번째로 루시아를 알아본 것인 엄마였어. 비 오는 신사의 계단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엄마와 하루카, 아니 루시아엄마는 그 순간 루시아인 것을 알아보고, 둘은 서로 티격태격 하다고 우발적으로 루시아가 엄마를 밀쳤는데, 그만 계단이 높아서 떨어져 죽고 말았던 것이란다. 요스케는 이 사건의 전말을 하루카, 아니 루시아에게 모두 이야기해주었어.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라고 했고, 벌을 받고 난 다음에도 자신이 계속 피아노를 가르치겠다고 했단다. 피아노는 피아노이고, 사람은 사람이니까..

아빠도 루시아를 이해해 보려고 했단다. 어쩌다 보니 하루카가 되어 있었고, 우연히 엄마와 티격태격 하다가 실수로 엄마를 밀쳐서 죽게 만들었으니속으로 무천 힘들어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루시아는 콩쿨 시상식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겠다고 결심했단다. 1등을 한 그 시상식에서 말이야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클래식 음악과 추리 소설의 콜라보나쁘지 않았단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피아노 연주에 관한 글도 나오고 음악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도 나오고 말이야. 예를 들어 쇼팽의 유명한 피아노곡 <혁명>이 어떤 사연으로 만들었는지 나왔단다. 그 이야기로 오늘 편지는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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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쇼팽은 1831년 파리로 향하던 길에 고국인 폴란드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짓밟힌 고향과 남겨 둔 가족. 이 곡(혁명)은 그때의 실망과 분노를 즉흥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곡 전반에 걸쳐 쇼팽의 분노가 가득 차 있다.

곡은 왼손에서 시작해 낮은 음역부터 음계적으로 진행하고 내림나장조로 바뀐다. 도입부의 거친 화음은 몇 번이나 형태를 바꿔 나타나고 그때마다 흥분이 더해진다. 분노는 가라앉을 줄 모른 채 솟구치기만 한다. 선율을 배경으로 전쟁에 쓰러져 가는 민중과 무너져 가는 건물이 보인다. 권총, 파괴음, 그리고 아비규환. 관객은 모두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나도 두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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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건반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놓는다.

책의 끝 문장: 안녕, 드뷔시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
폴로네즈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볼로네즈 파스타와 헷갈리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파스타를 푸짐하게 삶아 줄 테다. 폴로네즈란 폴란드 무곡을 뜻하는 말인데 곡의 주선율은 과연 무곡풍이다. 서주부터 춤추는 듯한 선율이 이어져 듣는 이를 들뜨게 한다. 하지만 연주하는 입장에서 이 곡은 그야말로 난곡이다. 화음을 이루는 음표가 건반을 폭넓게 넘나들어 손이 작은 연주자가 치기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연속되는 왼손 옥타브 때문에 엄지손가락을 거의 중노동 하듯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차라리 파스타를 삶는 게 훨씬 편하다. 실제로 중간부에 접어든 시점에서 내 손가락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 P14

"아무리 근사한 옷이라도 취향과 체형에 맞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런 걸 오시키세(주인이 고용인에게 철마다 해 입히는 의복을 뜻하는 말)라고 하죠. 제 지인 중에도 실제로 있는데요, 주변의 기대와 착각 때문에 본래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건 비극입니다. 인간은 물이 아니라서 준비된 그릇에 강제로 집어넣으면 뼈가 뒤틀리고 피멍도 생기지요. 그런데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무리를 거듭합니다. 그건 남의 인생을 사는 빈껍데기 같은 삶입니다. 그 괴로움과 허무함을 생각하니 암담한 기분이 드는군요." - P271

"으음. 하긴 수업이나 레슨에서는 음악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 다만 그러다 보면 신체와 직감, 기술과 정신이 따로 놀게 돼. 마음에 곡의 이미지가 확립된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재현할 때 지금껏 상상도 하지 못한 운지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 반대로 새로운 움직임이 이미지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양쪽이 동떨어지면 연주는 절로 빈곤해지지. 잘 들으렴. 연주의 기본 요소 중 세 번째가 스타일이라는 건 전에 설명했지? 스타일이란 곡의 건축 형태를 가리켜. 연주자가 어떻게 칠 것인지는 곡이 만들어진 시대와 작곡가의 어법을 연주자가 어떻게 인식하느냐로 결정되지. 그리고 그 인식 방법은 직감과 조예를 통해 길러져. 악보에 기록된 이음줄, 악센트, 스타카토, 강약 등의 지시 기호를 존중한 상태에서 자신의 재능과 교양과 감수성이 그 곡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걸 선택하지. - P303

그것이 피아노였다. 피아노와 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목소리보다 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말보다 더 전달력 있는 말로 이야기한다. 나이, 성별, 국경, 언어와 같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꿈같았던 마법이 지금은 미사키 씨가 가능성을 끌어올려 준 덕분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능력, 허락된 유일한 재산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내게 남은 건 피아노밖에 없다.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나조차 아니게 된다. 그래서 매일 연주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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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21 1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좋은 문장들이 많이 있네요! 요스케 시리즈 목록보면 클레식에 관한 작가님 사랑이 예사롭지 않은 듯 해요. 그리고 첫 문장과 끝 문장 조합이 어쩐지 감동적입니당~♡

bookholic 2021-08-21 15:25   좋아요 2 | URL
라흐마니노프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괜찮더라구요..
클래식과 추리 소설의 조합 나쁘지 않아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scott 2021-08-21 1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카야마 시치리표
클래식 음악+추리 시리즈
한때 줄줄이 읽었었는데
이 작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작을 쏟아내서 따라 읽기가 힘들정도 ㅎㅎ

북홀릭 님 처럼
저도 첫문장! 자판기에 손을 살포시 얹어 놓는다
끝문장! 북홀릭님 주말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bookholic 2021-08-21 15:27   좋아요 3 | URL
알라딘에서 클래식하면 scott님을 빼놓을 수가 없죠..^^
이 시리즈는 한 권을 읽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클래식에도 관심이 있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scott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