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거꾸로 간다 - 마흔에 시작한 운동은 어떻게 행복이 되었나
이지 지음 / 프롬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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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종종 언쟁을 한다. 동반휴직으로 24시간을 붙어 지내니 늘어난 건 분쟁이요, 줄어든 건 통장잔고다. 돌이켜보면 다툼의 원인도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너도 피곤하냐, 나도 그렇다 종류니까. 수레바퀴 같은 일상속에서 각성이 일었다. '몸이 피곤해서구나'라고. 저자 이지가 말한 '몸과 마음은 암수한몸'(p.256)을 통감하는 순간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다니는 워킹맘 이지영(필명 '이지')은 운동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신경차단술과 물리치료, 경락마사지로 30대를 '연명'(p.4)했다던 그녀는 마흔에 운동을 시작한다. 척추협착증과 골감소증을 진단받고, 통증과 매일 붙어 살았단다. 약을 그렇게 먹고 병도 티 안나게 앓았는데, 식구들도 병 한가득이었다고. '내가 기운 차리지 않으면 도미노가 될 판'(p.20)이라는 자각으로, 그녀는 '운동'을 결심한다. 오기였다.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폴댄스, 클라이밍, 플라잉요가, 필라테스 까지 섭렵한다. 운동을 하니, 쓰지 말라던 부위가 나았고, 근육 쓰는 재미를 붙이니, 정신이 맑아졌고 몸도 좋아지고 일도 잘되고 결국 운동전도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스토리가 책 <내 몸은 거꾸로 간다>에 담겨있다.

책은 총 4부, 겨울, 봄, 여름, 가을로 구분된다. 춥고 아팠던 시절 '겨울'을 시작으로, 몸을 데우는 '봄', 근육에 꽃을 피우는 '여름', 삶이 선선해지는 '가을'로 이어진다. 운동으로 만들어지는 삶의 곡선들을 어쩜 이렇게 사계절로 맞춤하게 구분해놓았는지. 재치와 센스가 구성에서도 느껴진다. 글도 대단하다. 운동 얘기인가 싶지만 성공담이고, 자격증 획득 스토리인가 싶으면 회사 이야기다. 이지영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라고나 할까? '하드웨어적인 변화도 그렇거니와 운동이 기억력과 집중력, 감각과 사고 체계도 뒤바꿔놓아 자연스레 글쓰기로 바통이 어어졌다.'(p.274)며 그녀가 고백한 운동의 효과일테다.

책을 읽으며 여러 지점에서 불끈불끈했다. (저자를)닮고 싶어서, (운동을)하고 싶어서. 책에 등장하는 사례가 있다. 아이 유치원 행사로 내일 연가를 쓰겠다는 직원에게 팀장으로서 했다는 "그래요. 물개박수 힘차게 치고 오세요."(p.259)라는 대답. 늘 고민하는, 하고싶지만 잘 되지 않는, 긍정적 반응의 예로 읽혔다. 저자는 이전같았으면 '이런 상황에 혼자 일을 다 해?'라며 발을 동동굴렀을거란다. 바로 내 모습이다. 남 탓하느라 바쁜. 저자는 몸과 마음이 존재의 중심을 잡으니 '입은 침묵을, 몸은 행동을' 보여주게 되었다고 말한다. 몸을 써 잡념을 비우는 원리일 터.

책에서는 운동의 효과 뿐 아니라 사람 이지영도 읽힌다. 근성이 참 대단하다. 폴댄스를 하다가 갈비뼈가 골절되는 사례가 등장한다. 나였다면? 이때다 싶어 일도, 운동을 쉬었을 것 같다. 아마 폴댄스는 나와 맞지 않다며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못하니)더 그립고 더 만나고 싶어졌다'(p.186)며 골절된 지 6주만에 공중에서 뒤집기를 다시 시도한다. 초심자로 돌아가 예전보다 더 뜨겁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다니는 회사원 이지영은, 환자에서 (운동)회원으로, (운동을 가르치는)선생님으로, 그리고 (책의)저자가 되었다. 몸을 쓰니 정신이 서고 마음이 서는 선순환의 대표주자다. 또, (책)읽고, (글)쓰는 활자중독자로다. 책에는 수많은 운동 관련 저서들이 등장한다. 서울에서 원주로 출퇴근하고, 퇴근하면 운동하고 살림하며 아이들 돌봤을텐데 언제 그리 많은 책을 읽었을지. 폴댄스 하다 살포시 착지해 핸드폰 메모를 보며 업무처리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한 틈새 시간들을 활용한 역량인걸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역시 하나를 잘 하면 다 잘하는 법인가.

출산한지 6개월이 지났다. 굳어진 몸에 기름칠을 마음으로 생각에 이번주부터 번지 피트니스를 시작했다. 생활에 활력을 주려고, 동적인 운동을 찾았다. 크게 울리는 음악에 맞춰, 스프링 탄성에 의지해, 방방 뛰어다니고 있다. 탁월한 선택이다. 저자처럼 선생님, 운동 전도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기회에 그저 남편과의 언쟁 횟수만 줄어도 좋겠다. 그렇게 될 것 같다. 역시 운동은 삶의 뼈대요,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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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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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종종 '완벽'으로 가는 '키'로 여겨진다. 생명연장을 위한 세포복제 기술, 인간의 복잡한 사고를 대신하는 인공지능 기술, 데이터를 집적하는 반도체 기술까지. 정은영 소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의 인구관리국은 '혐오없는 도시'를 꿈꾼다. 임산부 로봇 기술을 활용한 '장애아 출산율 0%'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임산부 로봇들은 엄마들이 했던 요가, 뜨개질 등 태교를 수행한다. 태아의 두뇌와 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모든 일과에는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가 삽입되어 있다. 다만 태아가 장애아로 판명날 경우, 임산부 로봇은 태아보호센터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태아는 '제거'되고 모체인 로봇의 기억은 '삭제'된다. 태아보호센터로 보내진 주인공 로봇 '헐스'는 인간 '고물상'을 만난다. 고물상이 미션대로 행복이 - 헐스의 태아 - 를 제거하려 하자, 헐스는 고물상에게 "장애라는 것은 밀리유공원의 새소리,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처럼 그렇게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p.27)라고 묻는다. 고물상은 인구관리국의 마지막 장애아였다.

인구관리국은 '육체적, 정신적 공감 능력 100% 시민 탄생'이라는 '완벽'을 꿈꾼다. 아기에게 영양키트를 주입하고, 인간들의 입덧까지 모방하면서다. 그러나 태교에만 충실한 로봇들은 종종 장애아를 잉태한다. 기억제술을 당한 로봇들의 기억이 파편적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정책적으로는 상위 1퍼센트 두뇌를 출산한 로봇이 일부 고위공직자 배아제공자에게만 제공되기는 오류도 발생한다. '장애'를 '불완전함'으로 설정한 세상에서 '완벽'은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결국 전제 자체가 오류다. 그 증거가 바로 고물상이다. 고물상은 자신을 '공존할 수 없는' '유령같은 존재'였다 말하지만 생을 살아간다.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인격체'로써.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낙태를 언급하며 우리가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사실은 동일함을 추구하는 것‘(p.82)이 아닌지 묻는다. '유전자의 변주'를 허용하지 않는 세태를 꼬집은 말 일 것이다.

책에는 두 편의 소설 -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소년과 소년> - 이 담겨있다. 전자가 의학적 진보에 따른 선택을 묻는다면, 후자는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나를 보는 나, 내안의 너. <소년과 소년>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질문한다. 임신했던 쌍둥이들이 심정지로 하늘로 떠났던 작년 1월이 생각났다. 휴직을 위해 회사를 찾았던 날, 담당의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아이들을 보낼 때 의뢰했던 쌍둥이들의 염색체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이었다. 그는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아 눈이 떠지지 않을 때까지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다행히도 임산부 로봇 헐스는 밀리유공원에서 "행복아"를 외치는 것으로 책은 끝난다. 내 옆에는 백일을 이제 막 넘긴 아이가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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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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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나, 지안 세 사람이 있다. '나'는 매표소 직원이다. '삶의 목적지를 가지고 싶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p.26)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남자에게 배신당해 파혼을 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열차기관사 '구'를 만났다. 아홉시간씩 화물 열차를 운전하며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볼일을 볼 수 있는 체질로 바뀌어'(p.11)가던 그를 만나 믿음이라는 걸 회복하려는 즈음 나의 연애가 끝났다. 구에게는 현재 '지안'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동물애호가는 아니지만 엄마친구의 애견숍에서 일하는 그녀는 결혼해서 살림하며,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을 쓰는 게 꿈이다.


셋은 구의 고양이, '미래'의 장례식에서 만났다. 파혼으로 과거와 미래까지 도난당한 듯했던 나는, 미래를 돌보는 구를 보며 '믿음이니 신뢰니 하는 말'에 마음이 환해지기도(p.14) 한다. 구는 편안함과 속상함, 기쁨 같은 감정도 모두 미래를 통해 느낀다며 '미래를 안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p.21)고 말한다. 지안은 미래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서는 구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다정해 보여서 결혼하고 싶(p.27)어 했다. 고립된 듯 살아온 세 명이 '미래'를 매개로 세상에 들어온 셈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미래의 죽음으로 다시 세상이라는 원 밖에 선다. 주인공 나는 '왜 미래가 죽었을까'를 생각하며 '박제된 미래'를 그린다.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이 자신이 사랑한 개를 잊지 못해 박제해 놓았던 것. 나는 박제된 미래를 상상하며 '생명력이 없어서 가슴 아팠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암담했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고자 하는 현실이 가여웠다'(p.22)고 생각한다. '미래(未來)' 없이 살아가는 껍데기 같은 삶, 작가는 그것을 생명력 없고 암담하며 가여운 삶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이리라.


'미래'를 위해 모였고 '미래'가 없다는 점이 닮은 세 사람의 '미래'는 다소 다를 것 같다.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또 다른 '미래'를 알아본다. 입양기관을 통해서다. 미래를 똑 닮은 고양이를 입양해 미래라고 이름지을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둥근 원 안에 공간과 시간이 갇혀 있는 것'같고 '무엇이 과거이고 무엇이 미래인지 알 수 없다'(p.38)고 느낀다. 몽롱하지만 다소 달뜬 듯한 주인공의 마음이 전해진다.


2016년 문학나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박초이가 소설집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를 출간했다. 작가 박초이는 이번 소설집에서 고립과 소외를 중심으로 두 편의 작품을 내놓았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에서 세상에서 고립된 세 명이 고양이 '미래'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모습을 그렸다면, <사소한 사실들>에서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세 명이 '여행'이라는 목적을 위해 연대하며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두 작품의 설정은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다. 독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홀로 시작하지만 결국 교감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나'가 중요한 시대에 '함께'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의심은 <사소한 사실들>의 마지막 부분에서 확신을 얻는다. 뜬금없는 여행 제안에 당차게 거절할 줄 알았던 민이가 말한다. "아무튼 같이 해봐요."(p.77)라고. 주인공 나는 이 한마디에 '어쩌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머리를 맞대고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이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함께하는 삶. 혼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도 어쩌면 단순히 '같은 레인에 서 있는'(p.78) 다른 사람을 못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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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백건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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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은 '프레임 속' 현실을 산다. 추락하는 조명으로 촉발된 '수상함'은 연일 계속되고, 그는 결국 '틀'을 벗어난다. 그럼 그에게 자신이 살았던 시간은 현실이었을까, 허구였을까? 백건우 작가의 단편집 <검은 고양이> 속 두 소설의 주인공들도 유사하다. 현실일까? 허구일까? 차이는 '답'의 유무 뿐이다.

첫번째 소설 <검은 고양이>는 그림 속 '검은 고양이'를 추적하다 만나게 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다. 제국주의 시대, 항일운동을 했던 광주보고 학생들이 만들었던 독서회 '호남서원'. 주인공은 길가에 초라하게 앉은 한 노인에게서 고양이 그림을 구매한다. 고양이 그림은 어느 순간 내게 '환영'으로 변신하고, 결국 주인공을 호남서원까지 이끈다. 또, 항일운동 당시의 학생들 중 유일한 생존자, 비전향 장기수에게도. 작가가 미스터리와 버무리려던 역사적 사실은 의외의 인물을 통해 쉽게 드러낸다. 반면, 항일을 끌어들인 '역사'와 '고양이' 사이의 연결고리는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고양이'가 내뿜는 '신비로움'에 의지하려 했던 걸까? 문학평론가 임정균은 이를 두고 장르를 구현하기 위한 '미스터리적 장치'(p.73)고 말한다.

두번째 소설 <쥐의 미로>는 보다 파격적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CCTV 모니터링 업무를 한다. 그 또한 자신을 지켜보는 CCTV 밑에서, 누군가를 비추는 서른여섯개의 모니터를 하루에 열두시간씩 지켜본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도, 대화를 하지도 못한 채, 화면 속 인물의 표정을 수기로 기록하면서. 그는 자신의 집 어디선가, 모니터 속 여성에게서, 그리고 자신을 윽박지르는 김부장의 손에서 '쥐'를 본다. 여기서 앞 소설은 '고양이'와 중첩되는데, '쥐'는 보다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각 장면에서 등장하는 '쥐'가 '환영' 혹은 '진짜'인지 계속 묻게되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은 쥐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 <트루먼 쇼>에 '조명'이 있었다면 <쥐의 미로> 주인공에게는 '쥐'가 주어진 셈이다.

결국 소설 <검은 고양이>는 '역사'의 사실과 허구를, <쥐의 미로>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인식'의 현실과 환상을 혼재시켜 '무엇이 진실일까?'를 지속적으로 묻게 한다. 임정균 문학평론가는 이것을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말한다. 그러면서 작품들이 내주지 않는 답에 대해 '진실을 향한 도정'은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결고 쉬운 일이 아니'(p.79)라며 편을 드는데, 내게 '진실'은 전자는 역사, 후자는 공포였을 뿐이다. 작가는 예전에 쓴 소설을 하드디스크에서 꺼내 내놓는다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싶다'(p.81)고 적었다. 작품들이 곧, 소설을 쓸 때의 자신의 가늠자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나에게는 고양이나 쥐와 같은 존재가 있을까? 나의 가늠자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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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당 김어준 - 그 빛과 그림자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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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준만, 제목의 김어준. 정치색이 물씬 느껴질 것 같은 책이다. 강렬한 표지만큼 날카로운 시각이 가득할까? '김어준'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기대가 됐다. 김어준에 대한 관심은 우연히 들은 '보스' 강연에서 시작했다. 유럽 배낭여행 중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보스 양복을 사입고 주늑들만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행동했다는 얘기였다. 왜? 보스 양복을 입었으니까. 용감한 행동과 거침없는 결단력. 매력적이었다. 그의 방송도 마찬가지다. 자신감에 넘쳤다.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그의 사고력과 분석력 놀라웠다.

저자 강준만은 김어준의 이런 특징을 비판 포인트로 집어낸다. '확실히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 성향탓'이라는 것. 그렇다면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들은 과연 균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묻고싶다. 정치인을 비롯한 여타 공인들도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포털 기사들의 편향성과 김어준의 그것이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으로 쏠린 기사들 속에서 그 반대편의 유일한 목소리라는 점이 김어준 방송을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했다.

저자 강준만은 김어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해악과 위악'(p.32)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지독히 편파적'(p.34)이며 '민중이라는 단어의 중독성에 몸을 의탁한 사람이 듣기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 하는 방법으로 반지성주의에 기반해 지성인으로 지분을 획득'(p.48)하는 '진영 스피커'(p.61)라고. 그리고 그의 언변과 행동 등을 언급하며 다음 두 가지를 주요 흐름으로 끌고간다. 첫째, 김어준은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한다. 둘째, 김어준은 '정치 무당'이다. 저자는 문재인 전 고문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보여준 김어준의 태도, 4.11 총선, 박원순 전 시장과 TBS 등이 '민주당 지지'의 근거로 본다. 비판적 뉘앙스가 명확한 이 부분은 의외로 '보수진영'에 김어준과 같은 '빅 마우스'가 없다는 한탄으로 결론맺는데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현 언론지형은 지극히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었던가. 그 중 김어준은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정치를 다루는 전체 언론의 규모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규모에 더 무게를 더 둔다는 의미일까? 아니라면 '빅 마우스'라는 분석은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또 저자는 둘째 사안 - 정치 무당 - 에 대해서는 '팬덤'으로 규정한 추종 세력들과, 잔다르크처럼 딛고 일어서는 그의 생존력을 언급한다. 특히 저자가 김어준이 '정치를 돈벌이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소재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권력까지 챙긴다는 점에서 뛰어난 정치무당'(p.161)이라고 평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저자는 "가세연 등 보수 유튜브 역시 극단적이고 원색적이라는 점은 같지만, 김씨는 어느 것이 선거법에 걸리는지 잘 알고, 채널에 따라 수위를 분별한다는 의미에서 비즈니스 맨"(p.160)이라한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이재묵의 발언을 인용한다.

책은 김어준의 정치 평론/방송 역사부터 그의 정치 성향, 일반인을 넘어서 한국 정치에 끼친 영향력까지를 다룬다. 일종의 '김어준 분석서'인 셈이다. 저자는 이것을 각종 '인용'으로 설명한다. 인용의 범위는 딴지일보 부국장부터 국회의원들, 여론조사 업체, 소위 '개딸'로 표현되는 팬들까지 광범위하다. 인용은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무책임하다. 남의 말을 빌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준만 교수의 책에서 보여지는 특징으로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책의 출판시점을 찾아봤다. 올 2월초였다. 서울시장의 소속 정당이 바뀌며 김어준은 TBS에서 하차 - 라고 하지만 퇴출 - 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보란듯이 부활했고 더욱 승승장구 하고 있다. 저자는 김어준의 정치성향, 표현방식을 비롯한 그 무엇에도 공감할 수 없지만, 그를 둘러싼 팬덤의 실체를 분석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때린데 또 때리는 심정으로 폭격하지만 일어서고 또 다시 일어서는, 활발히 증식하는 정치계의 아메바같은 김어준. 이 책을 보니 그를 지지하지 않는 쪽에서는 김어준이 '눈엣 가시'이자 '무시할 수 없는 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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