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말하는 사회 - 한국사회를 읽는 30개 키워드
정수복 외 30인 지음 / 북바이북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어려운거 아냐?' 서평클리닉 도서목록의 첫번째 책 제목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사회,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였다. 시험을 앞둔 학생마냥 초조하게 첫 번째 책을 손에 들었다. 힐끗 본 제목 <사회를 말하는 사회>에서 두 종류의 사회가 느껴진다. 현실을 뜻하는 첫번째 '사회'와 그 사회를 면면히 분석한 두번째 '사회'. 목차로 넘어가자 확신이 선다. 소비사회, 위험사회, 승자독식사회, 분열 사회 등이 보인다. 제목이 주는 딱딱함을 안고 한 장 두 장 넘긴다.


세 번째 토막쯤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사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서평모음집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부터다. '어느 날 차단되었습니다'는 4장을 끝낼 때쯤 세 가지 카테고리의 사회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첫 번째는 책을 관통하는 주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다. 두 번째는 경제학자, 인류학자 등 전문가들이 책 이라는 매체를 통해 풀어낸 '사회'다. 그리고 마지막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사회를 대한민국이라는 범주에서 읽은 또 다른 누군가가 이해한 '사회'다. 


예를 들면 이렇다. 3장,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절벽사회를 보자. 사회에 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부터 등장한다. 대한민국 이라는 첫번째 사회로 시작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현실에 대한 이해를 고재학의 저서 <절벽사회>로 하고있다.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 편집국장을 지내고 있는 전문가의 눈으로 본 - 아홉가지 절벽이 있는 - 두 번째 사회다. 이에 대해 문화연구가 이원석은 생애주기별 절벽이라는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는다. "저자의 진단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중략)...하지만 처방에 대해서는 그와 다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177쪽)"고 말하며 <절벽사회>와는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범주를 고재학의 절벽사회를 통해 이해하다 이원석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세번째 사회다. 


참 재밌는 책이다. 하나의 사회를 읽음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실, 저자의 생각, 서평가의 생각까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사회를 말하는 사회>는 크게 네 꼭지로 나눌 수 있다. 욕망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불안에 잠식되는 대한민국, 이웃이 괴물이 된 대한민국, 혼자가 된 대한민국이 그것이다. 각 꼭지별 7~8개의 책과 서평이 소개되고 있으니 총 20개가 넘는 사회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일석삼조(一石三鳥)을 넘어선 일독다득(一讀多得)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재밌는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각 장을 관통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1장은 지그만크 바우만, 2장은 재독철학자 한병철이다. 해당 분야를 오랜기간 분석했던 사람들의 시각과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4장은 통계 수치다. 인구 구성별, 분야별 흥미로운 수치가 논의의 근거로 소개된다. 반면, 3장은의 '무엇'은 삼성이다. 역시 우리나라는 삼성이 먹여살리는 나라인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말하는 책의 주인공으로 삼성이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피부에 와닿았던 내용이었다. 


<사회를 말하는 사회>는 처음의 우려처럼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고 서평의 부담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왜 <사회를 말하는 사회>가 첫 번째 도서로 채택됐는지는 알 것 같다. 주제는 '사회'지만 수단은 '서평'이니 말이다. 서평은 주관적 감상과 객관적 가치를 함께 담아야 한다고 한다. 그 '객관성'이란걸 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고와 배움이 있어야 할까. 이제 그 출발점에 섰다. 이 서평이 좋은 출발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딩동~ 나라 동물 도감
이원중 엮음, 박시룡 감수 / 지성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는 '동물'이다. 아이는 '사자'와 '코끼리' 책을 유독 좋아한다. 사자와 코끼리는 어떤 책이나 그림에서 만나든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반응한다. <나라 동물 도감>을 읽어준 후 부터는 '펜더'와 '호랑이'에도 반응한다. 도감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 같은데, 이건 엄마만의 생각일까?

책 <딩동~ 나라 동물 도감>은 한 나라를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동물, 즉 '국수'를 소개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사상 등을 반영하거나 해당 국가를 주요 서식지로 삼아 살아가는 동물을 나라의 상징으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책에서는 '나라 동물'로 표기한 개체를 주로 '표유류'로 했으며 새나 곤충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나라 동물 도감'은 대륙별 가나다순으로 48개국 총 74종의 '나라 동물'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동물 '호랑이'부터 시작한다.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 동물이 호랑이는 걸!) 내게 호랑이는 100일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버텼어야 했는데 실패해 인간이 되지 못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사실 호랑이는 오랜 세월 우리의 신화, 전설, 속담 등에 등장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지워졌다고 한다. 또 사냥당했다고. 더불어 한국전쟁을 겪으며 호랑이는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놀랍게도 전 세계 동물원 등에 호랑이는 단 30여 마리가 있다고 한다. (30만 마리가 아닌 단 30마리다..)


덴마크의 나라동물은 '붉은 청서'라고 한다. 붉은 빛이 도는 청솔모를 말하는데, 다람쥐를 잡아먹는 동물로 알았던 청솔모가 맙소사 다람쥐 무리라고 한다. 나무 열매를 먹고 새알도 먹는데, 다람쥐 무리와는 다르게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p.31)고.(다람쥐를 먹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책은 루마니아의 나라동물도 소개한다. 바로 스라노시다. 스라소니는 영화나 드라마에 '한 주먹'하는 형님들 별명 아니었던가. 스라소니는 덩치가 고양이보다 크고, 표범보다는 작다. 주로 밤에 움직이지만 먹이가 부족할 때는 낮에도 움직인다고. 삼각형 귀 끝에 검고 기다란 (뿔처럼 생긴) 털뭉치가 있는데, 이 털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아낸다(p.39)고 한다.


책은 인도의 나라동물 '킹코브라'도 소개한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사는 킹코브라는 세계에서 가장 몸이 기다란 독사(p.90)라고 한다. 사진 속 킹코브라의 혀는 보라색으로 보이는데, 책은 혀는 검은색, 피부는 초록빛이라고 소개한다. 먹잇감 냄새를 맡으면 혀를 날름거리며 위치를 알아내 사냥하고, 동물과 뱀은 물론 같은 무리인 킹코브라까지 먹는다고 한다. 생김새 만큼이나 무서운 녀석이다. 인도는 왜 이렇게 무서운 동물을 나라동물로 지정했을까? 궁금하다. 책은 이 외에도 여러 국가의 나라동물을 대륙별로 소개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가봉(검은표범), 리비아(사자), 알제리(사막여우), 유럽 대륙은 오스트리아(제비), 우크라이나(유럽황새), 아시아 대륙은 중국(판다, 두루미), 네팔(히말라야비단꿩), 북아메리카는 멕시코(재규어, 메뚜기), 미국(흰머리독수리) 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딩동~ 나라꽃 도감
이원중 엮음, 신영준 감수 / 지성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아침 아이와 병풍 속 꽃들을 구경한다. 무궁화, 코스모스, 진달래, 개나리. 스산한 겨울에 태어난 아이가 만물이 생동하는 봄과 활기찬 여름에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을 많이 바라보길 바라며. 이제 그 범위를 <도감>으로 확대했다. 책 <딩동~ 나라꽃 도감>을 통해서다. 아직 아이가 말을 다 알아듣진 못하지만, 병풍에 있는 꽃과 도감에 있는 것들을 연결해 보여주면 꽤 흥미로운 눈빛을 보인다. 책은 나라꽃, 즉 한 나라를 상징하는 꽃을 소개하고 있다. 73개국 총 56종이다. 책은 장미와 같은 풀꽃 외 단풍나무 같은 나무꽃도 소개한다.


책은 우리의 나라꽃 '무궁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궁화는 고조선 이전 '하늘나라의 꽃', 삼국시대의 신라는 '근화향(무궁화 나라)'로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정신의 표상으로, 결국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로 애국가에 삽입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350여종 중 우리나라에는 총 250여 종의 무궁화가 존재한다고 한다. 책은 생김, 모양, 꽃색 등으로 구분해 무궁화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도감은 각 나라의 위치, 그곳의 나라꽃, 꽃의 특징을 설명하는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봄 놀이동산에 가서 봤던 '튤립'은 네덜란드, 이란, 튀르키예, 헝가리의 나라꽃이라고 한다. '튤립=네덜란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네 나라에서나 나라꽃으로 삼고 있다는 놀랍다. 게다가 튤립은 남동 유럽과 중앙아시아가 고향이고, 머리에 쓰는 터번과 비슷한 생김으로 '튤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p.23)고 한다. 책은 '북한'의 나라꽃 '목란'도 설명한다. 목란은 나무에 피는 향기로운 난이라는 뜻으로 '추운 함경북도를 빼고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p.25)'고 소개되어 있다. 북쪽의 북한이 함경북도에서 자랄 수 없는 꽃을 나라꽃으로 정했다는 게 신기하다.


또 책은 '카네이션'도 소개한다.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는 꽃으로만 알았던 카네이션은 바로 '스페인'의 나라꽃'이라고 한다. 꽃목걸이, 왕관이라는 뜻의 카네이션은 스페인 사람들이 집을 장식하거나 춤출 때 사용(p.63)한다고 한다. 나라별로 어떤 꽃을 나라꽃으로 삼았는지 흥미롭게 보다가 일본 페이지에서 멈칫했다. 책은 일본과 연결해 '벚꽃'을 소개한다. 설경의 후지산을 배경으로 분홍색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에 시선을 빼았겼는데, 그런데 일본의 나라꽃이 '벚꽃'이 아니고 단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서 소개한다고 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들과 균형이 맞지 않는듯 느껴져 다소 아쉬웠다.

책은 아이에게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알록달록한 색들의 꽃들과 전 세계 지도 위의 나라들. 두 발로 땅을 딛고 스스로 여행을 다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지금 함께 읽는 <나라꽃 도감>이 아이에게 그 시작의 동력이 되길 바래본다. 아이에게 읽어주며 엄마도 즐거운 나라여행&꽃여행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은 작가의 책 <산책>에는 소설 <산책>과 <경유지에서>가 담겼다. 표제작 <산책>은 자매를 통해 '집'에 대한 관점을 드러낸다. 윤경은 서울의 리모델링한 아파트에 산다. 은행 이자에 시달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에 숨이 가쁘다. 반면, 여경은 경기도 외곽의 새 아파트에 살고 있다. 동네 주민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혼자로서의 삶에 퍽 만족하는 모습이다. 핏줄로 맺어진 윤경과 여경은 '산책'을 하며 '집'에 대한 관점과 욕망을 확인한다. 자신의 바람과 상대의 처지를 비교해가며.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의 상황과 관점에 따라 해석하도록, 어떤 쪽의 편도 들지 않는다. 여유롭고 고즈넉한 산책 속에 드러나는 자매의 신경전, 묘한 속내가 흥미롭다. '집'은 우리에게 그렇게나 복잡한 존재인걸까.

표제작이 선천적 관계 - 자매 - 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경유지에서>는 후천적 관계를 설정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영어학원을 다니게 된 이화는 그곳에서 에릭을 만난다. 이화는 에릭에게 '그냥' 집주소를 건네고, 둘은 동거를 하게된다. 이화는 에릭과 섹스를 하고 그의 시중을 들고 생활비를 댄다. 가끔 에릭이 '이 정도까지? 다 들어준다고?' 묻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이화는 불평 한마디 없이 살아갈 뿐이다. 이화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건 소설의 서두에 등장하는 '엄마의 죽음'과 연결된다. 또 이화는 에릭을 보며 '느닷없이' '기묘한 느낌'(p.48)을 받는다. 그러나 둘을 결정지은 건 에릭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대로 이화와의 관계를 매듭짓는다. 두 인물의 삶, 모두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특히 이화의 행동은 '방기'에 가깝다. 어렵게 근거를 찾아본다면 엄마의 죽음, 시끄러운 말들 정도가 있겠다. 고영직 문화평론가는 소설 <경유지에서>가 '외로움'에 내몰린 인물을 통해 '경유하듯' 사는 삶(p.71)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소설의 엔딩은 이화의 '달라질 삶'을 기대하게 한다. 스스로를 돌보며 나아가리라는 결심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에릭과의 시간이 이화에게 '경유지'였던 모양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산책'이 등장한다. <산책>이 자매의 산책을 <경유지에서>는 이화와 에릭의 이별 전야의 산책이 등장한다.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생각을 고르게 하는 '산책'이 누군가에게는 집을 꿈꾸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공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작가는 삶에 대한 방식, 불안, 욕망, 자기돌봄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물들의 성격과 구성이 명확해 장면은 확실하게 그려지는데, 여운은 가늘고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 세기가 지나도 싱싱했다 : 오늘의 시인 13인 앤솔러지 시집 - 교유서가 시인선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공광규 외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때 내게 시는 '그건 왜 읽어?'였다. 언젠가 내려올 산 정상에 왜 올라가냐는 물음과 일맥상통하는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랬는데 책의 '싱싱했다'는 어미에 매혹되었다. 고등어에 붙일법 한 이 말이 도대체 어떻게 현현할 것인가. 시집은 공광규, 권민경, 김상혁, 김안 등 열세명 시인들의 작품을 담고 있다. 단편모음집처럼 읽혀 좋았다. 또 해석하기 나름이니 정답이 없어 좋고!

권민경 작가의 <뻐꾸기 시계>가 인상적이다. 친구와 놀고싶은 주인공이 읽힌다. 그런데 할머니를 찾네. 친구들 모두 할머니랑 같이 사는데, 소개시켜주지는 않나보다. '아줌마'라고 하면 시큼한 김치 냄새가 연상되듯, '할머니'라고 하면 따뜻하고 그윽한 냄새가 생각난다. 알고보니 친구와 놀고싶던 주인공은 '뻐꾸기 시계'다. 시계는 자신을 돌보던 아이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 누군가의 가보였나보다.

정민식 작가의 <어린 나의 외국어>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어린 나의 외국어는 궁금한 게 많아 질문하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p.135)는 문장은 "하고 싶은 말 대신 할 수 있는 말을 합니다."과 연결된다. 생각은 결국 '언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생기고,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다. 그래서 '관계'에서는 입 안에 굴러다니는 말 대신 '해야할 말'을 해야할 때가 많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고 의미가 상이하기에. 가닿을 수 있는 '일종의 약속'만 떠들게된다. 이 시는 그런 답답함을 표현한 것 같다. 내 언어의 짧음도 한탄하게 하고.

전영관 시인의 <화엄사 수채화>에서는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기와불사에 이름 쓰느라 모여 있다. 등이 젖는 줄도 모른다."(p.130) 절에 가면 간절함이 가득하다. 엎드린 등에서, 중얼거리는 입에서, 기도하는 모습에서. 인생의 위기였던 작년 겨울, 아이들을 하늘에 보내며 나도 절을 찾았었다. 놀러갔는데 울고 나왔다. 끝없는 울음에 남편도 같이 울었다. 미안했다. 매달리고 싶었다. 잘 보내주고 싶었다. 잘 보내줬다 믿고 싶었다. 영험함이 불쑥 솟아날듯한 불상의 눈에 끝없이 빌었다. 그 때 내 등도 젖어 있었다.

소설을 읽지 않는 한 작가는 시집을 좋아한다고 했다. 건질 문장이 많다는 이유였다. 완전히 공감하진 않지만, '건질 문장'이 많아 시집이 좋다는 데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르고 고른 단어에 마음이 붙잡힌다. 글자는 없는데 감정은 빼곡하다. 그 의미를 생각하며 한 음절 한 음절 되새겨본다. 어쩌면 '시'는 나를 돌아보는 '성찰'같은 존재일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 시가 너무 좋다. 제목도 고민하게 된다. 뛰는, 헐떡이는, 살아있는.. 뭐가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