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대장증후군
정원조 지음 / 소금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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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대장증후군>을 다룬 책이 나왔다. 저자는 경희대 한의과를 졸업한 박사로, '체질적 관점에서 질병을 진료하는 사상의학 전문가'(p.5)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다른 책자에서 '과민대장증후군을 잘 보는 명의'로 소개되어 해당 분야 환자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간 환자들을 접하며 쌓은 경험들과 통찰, 비결을 담아 낸 '일반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서 과민대장증후군의 체질/신경성 구분, 이를 치료하기 위한 양/한의학적 특성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체질별 치료법과 치료사례, 식이요법을 설명하는데, 각종 한약재가 소개된다. 예를들어, 변비형 소음인이 과민대장증후군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인삼2, 백출 1.5, 육계1 등의 약재들로 처방하라고 안내가 되어 있다. 일반 대중보다는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더 와닿을 수 있는 부분으로 읽혔다.

상대적으로 생활에 적용하기 쉬운 부분은 <7.유형별 식이요법>과 <8.섭생법>이다. 특히, 과민대장증후군으로 고통받을 경우 '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고 남아 발효되는' 포드맵(FODMAPs) 이 적게 함유된 식품 섭취를 권장하는데,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책에 따르면 곡류는 잡곡류, 호밀, 보리(FODMAP이 높음)보다 흰쌀을(FODMAP이 낮음) 섭취해야 한다.

나 뿐 아니라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봤다. 생활 속 만성질환은 보통 마음의 신호라고 들었다. 저자도 '심'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저자는 한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병인데 모두 다른 치료를 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마다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위해서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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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미식 여행 - 바람이 분다 여행이 그립다 나는 자유다
BBC goodfood 취재팀 지음 / 플레져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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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날 너무 설레게 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지 2년이다. 덕분에 국내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음식과 축제와 바다와 뜨거운 햇볕이 있는 '지중해'라면? 책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보려 한다. BBC 굿푸드 취재팀이 펴낸 책 <지중해 미식 여행>을 통해서다. 책은 '지중해 지역의 미식과 여행'에 관한 최고의 취재 기사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편집한'(p.7) 것으로 호텔/숙소(H), 레스토랑/식당(R), 빵/디저트(D), 축제(F) 등 여행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뜰하게 담고있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책은 '이탈리아에서 음식보다 더 낭만적인 것은 없다'고 적는다. 그만큼 다채로운 음식이 이 나라의 매력일테다. 책은 아말피 해안의 오징어 먹물 뇨키, 판체타, 레몬 티라미수를 소개한다. 그 다음 베니스, 바실리카타, 칼리아리, 살렌토, 로마, 나폴리를 설명하고, 이후 10여종이 넘는 음식들의 레시피를 소개한다. 음식 사진과 레시피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눈으로 즐겁고, 입맛도 다시게 된다. 레시피들은 생각보다 간단해 한번 도전해보고 싶게 하지만, '세몰리나' 같은 낯선 재료가 써있어 당혹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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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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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레기를 분리한다. 플라스틱, 종이, 스티로폼, 음식물 등을 해당 수거함에 나눠 담는 것으로 나의 몫은 끝난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어디로 갈까? 또 어떻게 처리될까? 회사에서는 경영평가 지표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따라 재생지와 텀블러를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과연 이런 활동들은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여러 궁금증에 답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책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을 읽었다.

우선 저자소개를 살펴보자. '미카엘라 르 뫼르'라는 이름의 저자는 프랑스 인류학박사라고 한다. 2011년부터 폐기물, 플라스틱 재료, 재활용에 대해 연구중이며 2019년에는 '베트남'을 '플라스틱 시티'로 명명한 논문을 썼다고 한다. 책은 저자가 베트남에 있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것들을 서술하는데, 특히 민 카이 마을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곳을 '컨테이너에 담긴 천 톤 분량의 쓰레기가 매일 해체되고 수공업 공장에서 가공'되며 '직업, 지위, 신분을 막론하고 수만 명의 사람이 이 작업에 동원'(p.21)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민 카이 마을에 ''재활용 신화'라 부르는 것이 구체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민 카이 마을 사람들은 온종일 쓰레기 - 일명 '쓰레기 산' - 를 헤집고 다닌다. 모든 쓰레기 분리와 재활용 과정에 '수작업은 필수'(p.63)기 때문이다. 보호장비나 안정장치는 없다. 맨 몸으로 누구는 신발을, 누구는 맨발로 쓰레기 산을 넘나든다. '설치류, 떠돌이 개, 바퀴벌레 등이 돌아다니는 컨테이너 안'(p.64)에서 뒤죽박죽 섞인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분류된 쓰레기는 민 카이 공장으로 간다. 공장에서는 또 주민들이 직접 손으로 플라스틱을 머리 높이에 있는 분쇄기에 넣는다. 플라스틱 분쇄가 끝난 후, 불순물 제거와 사출기를 통한 용해 등이 진행된다. 민 카이 마을에서 쓰레기 재활용 사업은 '가족' 혹은 '전통 가계 사업'이라고 한다. 하여 '지위나 젠더에 따른 계층을 기준으로' 업무가 배정(p.65)된단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안전하지 못한 일은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집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민 카이 마을에서 분리되고 가공된 재활용품들은 그럼 어떻게 될까? 저자는 (민 카이 마을이 아닌)누 꾸인 지역의 한 도로에서 어떤 남자를 만난다. 그는 유색 플라스틱 소재의 생활용품들을 팔고 있었고, 이것이 민 카이에서 만든 것인지 물어보자 "당연히 아니죠! 내가 파는 물건들은 품질이 좋다고요!"(p.72) 답했다고 한다. 이 반응을 근거로 저자는 민 카이 마을의 '재활용 플라스틱'이 판매에 도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극도로 제한된 판로를 갖는다'(p.73)고 말한다. 민 카이 마을로만 한정한다면, 재활용 문제는 안전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결국 내가 만든 쓰레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되어 '아주 운이 좋을 경우' 재활용되지만, 그 마저도 빛을 내지 못하고 '또 다른' 쓰레기로 전락할 뿐이라고 책은 말한다.

멀고도 가까운 이 베트남 마을에서 재료의 여정과 포장재, 비닐봉투 등 물건의 삶에 관한 나의 연구를 토대로 쓴 이 글을 통해 이곳과 다른 곳을 연결하고, 인간이든 아니든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프롤로그 p.24)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연구를 토대로 쓴 글을 통해 모두가 '연결'되고 '관계' 맺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전 세계의 쓰레기가 민 카이 마을에 수렴된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그 쓰레기들이 발전해 서로가 '연결'되어 '관계맺기'까지 한다는 데는 사고가 미치지 못했다. 민 카이 마을에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일테다. 저자는 책에서 줄곧 '영국'과 '아일랜드'의 쓰레기를 집어서 예로든다. 그 많고 많은 쓰레기 중에 어떻게 두 나라의 쓰레기만 눈에 띄었을까? 국가 표식이 있었던걸까? (책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으므로 프랑스인으로서 갖는 일종의 감정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것과 무관하게 만약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또 다시 다른 나라 혹은 영국/아일랜드로 흘러들어가는 시스템까지 짚어냈다면 어땠을까. 책의 부제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에 보다 더 부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책은 아마도 저자가 하노이에 있던 시절의, 그러니까 논문을 쓰기 위해 모아뒀던 자료들의 모음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민 카이 마을 주민들을 몇 명과 나눈 이야기,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감상이 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르포(탐방기사)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민 카이 마을 사진이 한장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책을 통한 소득은 민 카이 마을의 존재, 그 주민들의 불편한 현실에 대한 자각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분리 수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지금처럼 하면 되는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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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산책 - 자연과 세상을 끌어안은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위한 걷기의 기록
케리 앤드류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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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루 1시간을 걷고 있다. 해가 따뜻한 시간, 그 날 제일 눈에 띄는 운동복을 입고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선다.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아팠던 몸이 회복되고 어지러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앙상했던 나무들이 잎을 만들어 내고, 아기자기 꽃망울들이 피어나면서 눈이 즐거운 건 덤이다. 왜 사람들이 매일 걸으라고 하는지, 진심으로 깨닫고 즐기는 요즘이다.

책 <자기만의 산책>은 여성 작가들의 '걷기'를 다룬다. 왜 여성인가? 작가는 그간 걷기에 관한 글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가려졌는지를 분석한다. 민슐 던컨의 책 <방랑하는 동안 : 걷기에 대한 글>에서는 270개 꼭지 중 단 26개만이 여성 작가가 쓴 글을 다뤘고, 프레테리크 그로의 책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는 오로지 남성 산책자들만을 예로 들고 있다. 그로의 책이 지닌 문제는 더 있다.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그he'로 표현함으로써 - 여성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 '걷기가 남성의 활동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고 분명하게 강조한다'(p.23)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여 낭만주의 시대 여성 작가들의 글을 분석해온 저자, 케리 앤드류스는 말한다. '여자들도 걷는다'고.

저자는 '지난 300년 동안 걷기가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겠다'(p.20)고 책의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 주인공들은 엘리자베스 카터, 도로시 워즈워스, 버지니아 울프 등을 비롯한 총 10명의 작가들이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사연의 주인공은 사라 스토타트 해즐릿이다. 사라는 '14년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온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p.138) 걷는다. 돈과 명예 그 무엇도 없던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서는 '간통을 들켜야' 했고, 사라는 이 계획에 가담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 과정속의 사라는 부정적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걷기 시작해, 8일 동안 총 170마일을 걷는다. 하루 34km씩 약 273km를 걸은 셈이다. 저자는 사라의 일기를 통해 걷기가 주는 '상당한 육체적 통증과 불편'이 점차 '영적인 의미를 지닌 경험으로 승격된다.'고 적는다.

가장 힘든 길이었는데 거길 오르느라 어찌나 지치고 덥던지 도중에 산속에 있는 샘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기진했을 것이다. (중략) 신이 만드신 모든 작품에서 그의 보살핌과 친절이 보이는 것 같다. 여기 있는 그 어떤 것도 모순되는 것이 없다. (p.150) - 사라 스토타트 해즐릿

이밖에 다른 작가들에게도 '걷기'는 유효했다. 걷기는 카터에게 '풍부한 소재의 원천'이었고, 도로시 워즈워스에게는 '도덕적 용기를 내게 해주는 일'이었다. 엘렌 위튼에게는 '자유'를 의미했으며, 5년 동안 걸을 수 없었던 해리엇 마티노에게는 최면술로 증세가 고쳐지자 '탐험이라는 즐거운 노동'이 된다. 또,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신감의 창구'였고, 아나이스 닌에게는 '창의력의 근원'이 되었다. 두 발로 걷는 행위가 그들에게는 '해방구'이자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작가들이 남긴 작품과 편지, 일기 등에서 발견된 흔적에서 '걷기'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 다소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새롭다. 몰랐던 작가들을 알게되는 묘미도 있다. (책은 우리가 잘 아는 작가, 제인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조르주 상드 등의 작가들의 기록에서 드러나는 '걷기'도 <부록>으로 담는다) 작가들이 '걷기가 이래서 좋다!'라고 명시해두지 않은 이상, '걷기'라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들이 활동했던 시대, 그 사람의 성향, 주변 인물, 환경 등 여러 '맥락'이 작용했을 테니까. 책의 말미에는 60권에 달하는 참고 도서가 담겨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읽었을 책 목록들이다. 저자가 <감사의 글>에서 '런던의 대영 도서관 사서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표합니다'(p.353)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단박에 이해된다.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걷기와 그에 대한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지극히 고통스러운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떤 데 큰 보탬이 됐다는 점은 분명하게 입증한다. (p.29)

나도 걷는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장 손쉬운 건강회복 수단으로 선택한 길이었지만,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머리는 맑아지고 몸은 건강해진다. 마음은 넓어지고 생각은 또렷해진다.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누군가 후에 내 글을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자주 기록을 해야겠다 마음먹게 된다. 나의 맥락을 파악해 걷기의 의미를 끌어내 줄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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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 나는 왜 민주당을 탈출했나
캔디스 오웬스 지음, 반지현 옮김 / 반지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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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 특히 '민주당'을 심도있게 분석한 책이 출간됐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이자 작가인 캔디스 오웬스의 책 <블랙아웃>이다. 미국 내 흑인들이 민주당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운동 블랙시트(Blexit)를 이끌고 있는, 미국 정치계의 아이콘 캔디스 오웬스다. 책에서 그녀는 왜 흑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면 안되는지, 그 생각의 뿌리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저자는 흑인 사회의 구심점은 ‘공화당’이라고 말한다. 남북전쟁 당시 할아버지의 일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겪었던 증오범죄와 이에 대한 언론의 태도, 할머니의 죽음 등이 그 근거다. 또, 처음으로 흑인을 – 노예가 아닌 - 국민으로 받아들여 '흑인 노예 해방'을 이끈 링컨 대통령 역시 공화당원이었음을 강조한다. 반대로, 좌익들(민주당)이 만들어낸 ‘흑인’은 “죽을 때까지 민주당에만 투표해야 구원 받을 수 있는 영원한 하층 계급”이며 피해자 대 압제자라는 프레임 안에서 “자신들의 정책이 실현되도록 돕는 장기말에 불과하다”(p.71)고 꼬집는다. 즉, 민주당은 흑인을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표로 활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캔디스는 ‘리버럴’도 꼬집는다. 옮긴이는 책에서의 ‘리버럴’은 ‘미국 사회 내 좌익 성향의 사람들, 사회주의와 민주당 어젠다에 기반한 여러 사회적 가치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p.16)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여 ‘자유주의자’로 번역돼 의미상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리버럴’로 적는다고) 그녀는 ‘리버럴’이 흑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흑인이기 때문에’라는 ‘피해자 내러티브’(p.43)를 활용한다고 지적한다. 복지, 교육, 가정 등의 문제에서 흑인들이 그것들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결국 민주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 예로 저자는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했던 2016년 미국 대선을 언급한다. 당시 여성과 유색인종 등에게 지지를 받았던 힐러리가 근소 하게 패하자 민주당은 그 화살을 ‘이탈한 흑인들’에게 돌렸다는 것.


우리에겐 종식시켜야 할 세계 대전도 없고 지지해야 할 민권 운동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열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비주류의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불필요할 정도로 우리 자신을 비주류, 약자(Underdog)로 몰아세우고 있다. (p.131)





캔디스는 책에서 보수주의, 가정, 페미니즘, 미디어, 문화, 노예제 등 다양한 각도에서 민주당과 리버럴을 깨부순다. 그 중심에는 ‘백인 특권’과 ‘흑인에 대한 억압’같은 ‘결함투성이의 개념’(p.176)이 있다. 토크쇼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 작가 헤더 맥도날드가 “부르주아적 가치(시민의식, 권위, 존경 등)는 곧 백인특권(white privileges)이다.”라고 말하자 웬디스가 응수한다. “그것은 백인 특권이 아닌 그냥 특권이다, 그것은 인종과 무관하다. 모든 것은 부모의 선택이다.”라고. “흑인들의 진짜 문제는 첫째 아버지 없는 아이들, 둘째 교육문제와 문맹률”이라고 말하던 청문회의 한 장면도 스쳐간다.


I’m not far-right. I’m free. (난 극우가 아니다. 난 그저 자유롭다)





흑인이므로 응당 따르고 동의해야 할 것 같은 문제들을 캔디스는 '인간'의 관점으로 환기시킨다. 문제는 피부색이 아니며 제도와 이를 활용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캔디스의 말들은 ‘흑인이기 때문에’로 점철되는 피해자 코스프레는 물론, ‘흑인이므로’ 마땅히 무엇을 더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깨부수며, 피부색으로 점철된 모든 것들을 전복시킨다. <백인우월주의 청문회>를 다룬 영상에서 캔디스라는 미국인을 처음 알게됐다. 그녀는 그곳에서 백인들만 앉혀놓고 흑인문제를 다루는거냐 비난함과 동시에 '백인우월주의와 백인민족주의는 흑인들이 직면한 문제 가운데 순위를 매긴다면 100위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자신의 목소리로 당차게 한 정당을 무참히 쓰러트리는 캔디스의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책도 그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캔디스는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여러 개념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예시를 들고 있어 이해가 쉬워 마치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번역자의 수고도 한몫 했으리라.


책을 읽으며 우리 정치가 수차례 오버랩됐다. 일부 대선 후보들도 거부했던 ‘양당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는 형국이다. 또 우리의 정치권은 여러 목소리를 수렴하며 건강한 정치 지형을 만들기 보다 자신들의 이권에 골몰하고 있는 듯 하다. 대선 때, 과연 한 당에 속한 국회의원들이 그 당의 대선후보를 '진심으로 지지하는지' 궁금했다. 필요에 의해 '지지할 것이다’가 내가 내린 답이었다. 소속 정당의 우위가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 캔디스는 정당과 그 당의 주장을 우선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근거요 논리다. 정치 평론가지만 가장 정치인답게 보인다고나 할까? 현재의 정치 지형에 반기를 들고 사회를 구성하는 개념들에 의문을 던지는 캔디스와 같은 인물이 국내 정치계에서 많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는 제2의 대선이라 불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과연 미국 정치는 어떤 모습일지, 지금 시점에서 한번쯤 알아봐도 좋지 않을까? 캔디스 오웬스의 책 <블랙아웃>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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