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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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종종 '완벽'으로 가는 '키'로 여겨진다. 생명연장을 위한 세포복제 기술, 인간의 복잡한 사고를 대신하는 인공지능 기술, 데이터를 집적하는 반도체 기술까지. 정은영 소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의 인구관리국은 '혐오없는 도시'를 꿈꾼다. 임산부 로봇 기술을 활용한 '장애아 출산율 0%'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임산부 로봇들은 엄마들이 했던 요가, 뜨개질 등 태교를 수행한다. 태아의 두뇌와 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모든 일과에는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가 삽입되어 있다. 다만 태아가 장애아로 판명날 경우, 임산부 로봇은 태아보호센터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태아는 '제거'되고 모체인 로봇의 기억은 '삭제'된다. 태아보호센터로 보내진 주인공 로봇 '헐스'는 인간 '고물상'을 만난다. 고물상이 미션대로 행복이 - 헐스의 태아 - 를 제거하려 하자, 헐스는 고물상에게 "장애라는 것은 밀리유공원의 새소리,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처럼 그렇게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p.27)라고 묻는다. 고물상은 인구관리국의 마지막 장애아였다.

인구관리국은 '육체적, 정신적 공감 능력 100% 시민 탄생'이라는 '완벽'을 꿈꾼다. 아기에게 영양키트를 주입하고, 인간들의 입덧까지 모방하면서다. 그러나 태교에만 충실한 로봇들은 종종 장애아를 잉태한다. 기억제술을 당한 로봇들의 기억이 파편적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정책적으로는 상위 1퍼센트 두뇌를 출산한 로봇이 일부 고위공직자 배아제공자에게만 제공되기는 오류도 발생한다. '장애'를 '불완전함'으로 설정한 세상에서 '완벽'은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결국 전제 자체가 오류다. 그 증거가 바로 고물상이다. 고물상은 자신을 '공존할 수 없는' '유령같은 존재'였다 말하지만 생을 살아간다.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인격체'로써.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낙태를 언급하며 우리가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사실은 동일함을 추구하는 것‘(p.82)이 아닌지 묻는다. '유전자의 변주'를 허용하지 않는 세태를 꼬집은 말 일 것이다.

책에는 두 편의 소설 -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소년과 소년> - 이 담겨있다. 전자가 의학적 진보에 따른 선택을 묻는다면, 후자는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나를 보는 나, 내안의 너. <소년과 소년>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질문한다. 임신했던 쌍둥이들이 심정지로 하늘로 떠났던 작년 1월이 생각났다. 휴직을 위해 회사를 찾았던 날, 담당의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아이들을 보낼 때 의뢰했던 쌍둥이들의 염색체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이었다. 그는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아 눈이 떠지지 않을 때까지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다행히도 임산부 로봇 헐스는 밀리유공원에서 "행복아"를 외치는 것으로 책은 끝난다. 내 옆에는 백일을 이제 막 넘긴 아이가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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