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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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결혼을 반대했다. 데려온 남자가 아빠와 동일한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과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게 이유였다. 내가 언제 결혼하겠다고 사람을 데려온 적 있느냐, 내 결혼은 나의 것이니 상관말아라, 엄마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엄마구나, 말이라는 칼을 뱉던 기간이 있었다. 그 지리한 시간 후, 팡파레는 울렸고 나와 그는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두고두고 '그 때'의 반대를 미안해하며 남편을 당신의 아들보다, 혹은 나보다, 더 예뻐한다.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를 보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왜 떨어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은 옵션이다. 엄마는 최근 부쩍 말씀이 많아졌다. 한번 전화가 연결되면 끊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고, 혹여라도 (집에 있는 게 분명한 시간에)통화가 되지 않으면 서운해하셨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유일한 청자가 되었다. <딸에 대하여>는 엄마가 말하는 딸의 이야기다. 공부를 많이 시켰고 기대가 컸고 괜찮은 남자 만나 편하게 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딱 반대로 하고 있는 딸에 대한 것. 엄마는 분노하고 실망하고 원망하고 자책도 한다. 요양사인 엄마는 병원에서 '젠'이라는 치매노인을 돌본다. 외국에서 공부했고,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했고, 한국에 와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도왔다. 죽을 때가 됐지만 가족은 없고 그녀가 도왔다는 사람들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병원과 사람들의 행태가 미워 분노하고 실망한다.

신부대기실에 앉아있을 때 엄마는 내게 "둘리노래를 떠올려. 요리보고, 조리보고~ 우우~ 둘리는~"라고 했다. 결혼식 도중 부모님께 절하는 순서에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쏟아질테니 최면을 걸라는 얘기였다. 그 말이 무색하게 나는 눈물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속으로 계속 둘리 노래를 부르셨다고 한다. 경상도 남자를 반대했던 이유는 당신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20대 청춘에 결혼해 시집살이에 시어머니 3년상을 혼자 치르셨다. 엄마는 그때 왜 그걸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억울해하신다.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무시로 불러대 건강제를 요구하거나 주사를 놔달라고 떼쓰는 할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한 것도 여직 화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경상도 집안에 가는 게 못마땅했다고, 당신과 비슷하게 살까봐,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위험을 겪어야할까봐, 법적으로 얽힌 후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래서 반대했다고 한다.

소설 속 엄마는 젠을 보며 자신과 딸의 앞날을 점쳐본다. "너희가 하는 게 사랑이니? 아이를 가질 수는 있는거니?" 엄마의 질문은 마치 '나도 젠처럼 혼자 병실에서 죽어가지 않겠니? 아니라고 할 수 있니?'를 확인하는 것처럼 들린다. 엄마는 젠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딸만큼은 자신처럼 살지않기를 바라는 듯 하다. 김혜진 소설 속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다. 팍팍하고 이해가 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조금도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걸, 희뿌연 빛속으로 차분히 걸어가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딸이 마땅치 않더라도, 바라는대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살 수도 있을 것을 자꾸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처럼 생을 살아내는 딸을, 이해하거나 이해못하지도 않고, 그저 살아내야 한다는 걸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걸로도 보인다. 소설의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가 더 애닯아 졌다. 피곤하고 할일이 쌓여 귀찮지만 자꾸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도 없고, 안받을 수도 없었던 나의 시간들이 미안했다면 어떨까. 엄마 생각이 나서 미친듯이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둘리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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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film 2019-11-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11월 22일 삼청동 과수원에서 열리는 김혜진 작가님 북토크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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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엔지니어 2020-01-08 21:04   좋아요 0 | URL
아, 이렇게 귀한 댓글을 이제 봤네요ㅠㅠ 김혜진 작가님 무지 좋아하는데, 아쉬워요! 너무너무 늦었지만 좋은 알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