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거울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북라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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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맨 처음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문학과 철학의 즐거운 만남’이라는 컨셉을 기반으로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으로 명명되어졌다. 컨셉은 좋았지만 과연 소크라테스와 헤세가 즐거운 점심을 했는지 뜨악한 점심시간을 가졌는지는 미지수다. 고요히 내면으로 침잠해서 자기와의 만남을 추구하는 헤세가 시도 때도 없이 집요하게 질문을 해대는 소크라테스를 만났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한 때 000가지 시리즈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고, 통합교육이라는 말이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이용되면서 각 학문 영역의 경계를 허물자는 운동 아닌 운동도 있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살아남기 위해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출판업계의 흔적이 이 책 한권에서 다 보이는 듯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생각의 거울』이라는 원래의 제목을 찾게 되었다.

그동안 미셀 투르니에의 글은 김화영의 번역본을 주로 보았었는데 이 책은 김정란 시인의 번역이다. 언젠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최승자 시인과 박갑성이라는 철학교수의 번역본으로 읽은 적 있었다. 시인은 관념을 구체적 사물로 형상화하는데 능했고 철학교수는 개념어를 능란하게 구사했다. 기호로 표현하기 어려웠던지 철학교수가 누락시킨 부분은 시인이 전해주는 생생한 이미지로 전달받았다. 최승자 번역본은 시적이고 박갑성의 번역은 철학적이었다. 그래서 골라 읽는 재미에 서로 비교하면서 읽는 건 부록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의 거울』을 번역한 두 사람은 모두 문학전공자여서 그런지 나는 번역의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하겠다. 투르니에의 문학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해 준 두 번역가 모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투르니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글은 분명하고 명료하다. 철학적 관념을 구체적 사물로 대체하거나 그 반대 역시 그는 탁월하다. 구체적 사물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출발했는데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념의 문턱을 넘어가 있었다. 그는 전혀 이질적인 두 개의 사물에서 표면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 생활의 가장 일상적인 행위인 목욕과 샤워에 대한 글에서 그는 그것이 둘 다 몸을 씻는 행위라는 공통점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는 곧 차이점에 천착하게 되는데 목욕은 따뜻한 물이 가득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누워있다는 행위에서 수평을,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내맡기는 샤워에서는 수직을 말한다. 더 나아가면 목욕은 양수 속에 떠돌고 있는 태아의 상태로 돌아가는 퇴행을, 세례요한이 예수에서 세례를 줄 때 샤워를 시켰지 목욕을 시켰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샤워와 세례를 연결 짓는다.

그의 말을 새기다보면 목욕은 수동적이고 정적이며 무방비 상태이며 샤워는 능동적이고 동적이며 공격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만약에 샤를로트 코르데의 칼에 찔려죽은 마라가 목욕을 하지 않고 샤워를 하고 있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이르면 샤워하고 있는 사람은 깨끗함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반면 목욕하는 사람은 깨끗함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속성으로 그는 목욕과 샤워를 정치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즉 샤워는 좌파 쪽에, 목욕은 우파 쪽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투르니에는 시공을 넘나들고 추상과 구체적 사물을 자유롭게 연결 지으며 생각의 지평을 깊고도 넓게 확보해가고 있다.

이외에도 개와 고양이, 기쁨과 쾌락, 물과 불, 시와 산문, 남자와 여자 등 다양하고 즐거운 지적 유희가 책 속에 가득하다. 투르니에의 개념의 유희가 내게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투르니에의 생각을 거울로 들여다보듯이 ‘생각하는 방법’을 연구해보는 데에는 전환점이 될 만큼 소중한 책이다. 생각의 터닝 포인트를 위해 마리 장 레로 드 세쉘의 말을 기억해두기로 하자. “다가올 차이점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차게 식히고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유사성을 잘 식별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뜨겁게 달구어서 재빠르게 생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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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1-2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아니면 리뷰를 안쓰시는 반딧불이님????ㅎㅎㅎ
넘 반가와서 그랴요~. 오랫 만에 들어와서 반딧불이님의 리뷰를 기다리지도 않고 읽을 수 있는 기회라니 말이죠!!!!ㅎㅎㅎㅎ추천

반딧불이 2009-11-21 10:45   좋아요 0 | URL
한동안 다른 일이 있어서 리뷰도 못쓰고 알라딘에도 뜸했답니다. 저도 반가웠어요. 나비님. 자주 뵙도록 해요.
 
다산의 마음 - 정약용 산문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1
정약용 지음, 박혜숙 엮어옮김 / 돌베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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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외워할 대상이었던 다산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은 <애절양>이라는 시를 접하고 난 후였다.

 

애절양(哀絶陽)

 

갈대밭의 젊은 아낙 울음소리 길기도해
관문 향해 울부짖고 하늘보고 외쳐 보네

출정나간 남편이 다시 못 옴은 그럴법하지만
옛날 이래 사내가 양(陽)을 자른단 말 들어보지 못했다네

시아버지 삼년상은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료

가서 호소하고 싶지만 관가의 문지기 호랑이 같고
이정(里正)이 으르렁대며 진즉 소를 끌어가버려

칼 갈아 방에 드니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스스로 한탄하길 애 낳은 죄로 이런 군색한 액운 당한다오.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잘한 일 아니고
민(閩)땅의 건(囝)이라는 거세풍습도 역시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다
 

자식 낳고 살아가는 이치, 하늘이 주시는 일
하늘의 도(乾道)는 아들을 만들고 땅의 도(坤道)는 딸을 낳아

말이나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고 하거늘
하물며 우리 백성 자손 잇는 일임에랴 

권세가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려 즐기지만
쌀 한 톨, 비단 한 치도 바치는 일 없더구나

너나 나나 한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 거냐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이 시는 시집의 이름이기도 한데 1983년 ‘시인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왔고 시집의 가격은 2000원이었다. 이 책을 언제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십 수 년은 좋게 지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책장은 누렇게 변색되었고 가볍기가 요즈음 나오는 재생지 책보다도 더 가볍다.

시는 한 남정네가 스스로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유인즉슨 식구 숫자대로 군포를 물리자 가난한 백성이 산아제한의 방법은 없고 견디다 못해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것이다. 이 시를 쓸 당시의 다산의 나이 42세였다고 한다. 40세 되던 해에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을 시작하였으니 유배생활 두해 째 되던 때의 시다. 백성의 어려움을 곧이곧대로 읊은 시들은 그러나 유배생활 중에 쓴 시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젊어서부터 그가 쓴 시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 일처럼 아파한 마음에서 쓰여진 시였다.

『다산의 마음』을 읽으면서 이 같은 다산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참된 시’에 대한 언급에는 시에 대한 마음이 정확하게 정리되어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81쪽)” 어떤 이는 시란 감정의 자발적 흘러넘침이라고 하지만 다산은 그러한 시뿐만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산이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꽃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선비였는데 향과 모양 등 다양하게 즐긴 것 같다. 

  시집에는 작약, 모란, 치자 등 소담스런 모습과 진한 향을 지닌 꽃과 함께 해류, 부양 같은 낯선 꽃 이름도 보인다. 특히 그는 국화를 좋아해서 꽃의 그림자까지 즐겼다고 하는데 산문에는 국화가 다른 꽃보다 뛰어난 점 네 가지를 적어두었다. “국화가 다른 꽃보다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이 넷이다.” 나는 꽃송이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국화보다도, 머리를 풀어헤친 듯, 갈고리를 엮어놓은 듯한 국화보다는 코스모스 사촌뻘 되어 보이는 소국을 좋아하고 국화차로 만들어 마시는 밤톨만한 우리 재래종을 좋아하는데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다’는 다산의 생각이 무엇보다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득 이 노란 소국이 가득 담긴 상자 하나를 택배로 받고 감동의 뭉클한 펀치를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시와 꽃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 책에는 학식 높은 선비로서, 정이 많으면서도 엄격한 아버지로서,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던 가슴 뜨거운 정치가로서의 다양한 모습들이 진솔하게 펼쳐져 있다. 9남매를 낳았으나 여섯 아이를 모두 세 돌을 넘기지 못하고 잃었다. 그 중 다섯 아이가 모두 마마로 죽었다하니 그 아비 된 다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관직에 있을 때도 유배생활 중에도 언제나 현실에 튼실하게 발을 딛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갔던 옹골진 선비를 만나는 기쁨은 남다르다. 그의 기나긴 유배생활과 복사뼈가 주저앉는 고통에 대한 아픈 마음을,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 날 그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생각으로 다독이기에는 그의 생이 너무 크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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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1-1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이처럼 깔끔하고 담백할 수 가요. 마치 맑은 국화차 한잔을 따뜻한 햋볓이 드는 마루에서 마시는 듯 마음까지 정갈해집니다. 반딧불이님.
예전 몸이 많이 마르고 밥을 거의 먹지 못할 적에 시골에 계시던 외할머니께서 들국화를 밤을 지새고 고아주신 생각이 글과 겹쳐져 울컥 했습니다. "들국화를 달여 먹으면 밥맛이 돌고 몸이 건강해진다더라, 써도 먹어야 산다 "라며 작은 그릇으로 한 사발 건네시던 그 모습이 ..

국화란 그런 것이군요.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아무래도 가슴 속에 담아놔야겠습니다. 아주 오래 오래 잊지 않으려면은요. 좋은 글로 마음이 정갈해져 돌아갑니다. 감사해요. 반딧불이님.

반딧불이 2009-11-18 11:06   좋아요 0 | URL
마음이 따스한 사람과 따뜻한 차를 나누고 싶은 계절이네요. 글이 담백하다는 말씀 무엇보다 기쁩니다. 글을 적던 잠시나마 다산의 마음이 건너왔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건강하시기 바래요.

blanca 2010-04-1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반딧불이님 이 책 진짜 너무 좋지요? 다산 진짜 너무 멋져요. 왜 한비야가 그렇게 열광하고 초상이라도 한 점 구하려고 애썼었는지를 진짜 알겠더라구요.

반딧불이 2010-04-20 00:06   좋아요 0 | URL
다산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는 책이었어요. 앞으로는 양수리쪽으로 나가면 꼭 다산묘소에 참배하고 오려고 작심했답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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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소설이다. 영화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탓인지 원작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도 않았었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불타는 인내> 였다.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이 작품에 상당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14년 만에 이 책을 탈고하면서 연극으로 라디오 극으로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니 말이다. 원래의 제목은 영화로 만들어진 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바뀌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그러니까 제목이 바뀐 이후 2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니 네루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 모양이다. 물론 네루다의 이름값으로 작가의 공들임을 깎아내리자는 뜻은 아니다.  

네루다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지상의 거처』등의 시집으로 우리에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 공산당입당 및 상원의원,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망명생활 등 정치가로서도 이름 높다. 시를 떼고 정치가 네루다를 이야기 할 수 없고 정치를 떼어놓고 네루다 시를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네루다의 면모를 이 책은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네루다는 19세 때 시집『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냈다. 남미의 정부들은 젊은 시인들한테 영사 자리를 줌으로써 격려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한다. 네루다는 23세 때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칠레 정부는 그에게 극동지방 영사자리를 주었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중국, 인도, 일본 등지에서 살았다. 그 후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페인, 멕시코 주재 칠레 영사를 역임했다. 1944년 칠레의 질산염광지대인 안토포가스타의 노동자들이 자기네 지역 상원의원으로 출마해줄 것을 요구해 그는 출마했고 당선되었다. 네루다는 당시의 독재자 곤잘레스 비델라를 칠레의 헌법을 위반했다고 공격했고, 네루다는 반역죄로 몰려 망명길에 오른다. 비델라 정부가 무너졌을 때 칠레로 돌아온 네루다는 산티아고 인근 해안 앞바다 있는 작은 섬 이슬라 네그라에서 살았다. 이 책은 이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슬라 네그라는 몇 가구 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섬이다. 네루다는 이곳에서 아내와 단 둘이 칩거하고 있다.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우편배달부뿐이다. 몇 킬로그램의 편지를 짊어지고 매일 네루다를 방문하던 마리오는 어느 날, 네루다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메타포(詩)에 발을 빠트리고 만다. 마리오가 빠진 것은 메타포만이 아니다. 그는 마을의 처녀 베아트리스와 사랑에도 빠졌다.

메타포와 사랑. 마리오는 메타포의 씨줄과 사랑의 날줄 두 가닥으로 자기 생을 짜고 있다. 늙은 아버지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 고기잡이를 나가는데, 감기에 추파를 던지면서 이불속에서 뒹굴던 마리오가 네루다의 영향으로 정치적 의식을 가진 한 주체로 거듭나기까지의 씨줄은 길기고, 베아트리스를 향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마리오가 부딪치는 난관들은 그에게는 고통이었을지 모르지만 읽는 이에게는 통쾌함과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날줄이다. 그러나 민주선거에 의해 사회주의 정부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축출되고 네루다마저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나, 욕 마저도 모두 메타포가 되는 이슬라 네그라 주민들의 대화를 놓친다면 이 책의 가치는 반감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詩'라는 제목을 가진 네루다의 시 첫 연이지만 이 시를 읽을때면  마리오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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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여기저기 필요한 부분들만을 찾아  읽다가 소세키의 <문학론>에 대한 언급을 다시보게 되었다.  

한문학을 먼저 공부하고 영문학을 공부한 소세키는 영문학에 속은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문학서적을 읽고 문학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것은 피로써 피를 씻는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그는 모든 문학서적을 트렁크에 집어넣고 문학이 무슨 필요성에 의해 탄생하고 쇠퇴하는지, 사회적으로 문학은 어떤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지 알아내자고 맹세했단다. 이렇게 해서 쓰여진 것이 <문학론>인데 '문학론'이라는 이름으로는 원서만 검색된다. <나쓰메 소세키 문학예술론>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이 <문학론>인지 확인이 안되고 있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 배송시간이 너무길다.  

그의 단편집들은 예전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검색에서 보니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몽십야>라는 이름으로 하늘연못에서 이미 2004년에 출판된 것이 있다. 가격이 묵직하다. <도련님>도 문예출판사의 오유리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두권짜리로 새로 나왔다. 서간집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는 2004년에 초판을 샀는데 절판으로 나온다. 절판, 일시품절 등의 빨간 글씨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였는지 책읽기가 나의 무능과 무지와 무식을 확인하는 모드로 바뀌어버렸다.   조급한 마음에 집에 있는 소세키 책을 모두 찾아놓고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09년 11월 14일에 저장
구판절판
소세키의 작품 중 가장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책
소가 되어 인간을 밀어라- 산문의 향기 005
나쓰메 소세키 지음, 미요시 유키오 엮음, 이종수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9년 11월 14일에 저장
절판
나쓰메 소세키가 그의 문하생이었던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에게 보낸 글귀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영국 유학중 친구,아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와 기타 독자들에게 보낸 편지 158통이 실려있다
- 개정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9년 2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9년 11월 14일에 저장
품절

소세키 전기 3부장 중 마지막 작품. 불륜을 저지르고 없는듯이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 사건다운 사건 하나 없는 작품이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소설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11월 14일에 저장

소세키 전기 3부작의 두번째 작품. 가희 3부작의 절정이라 할만하다. 소세키가 그의 문학론에서 말하는 것들 미적 정조, 진실, 사랑과 도덕, 장엄 등을 고루 갖추었다 할만하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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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1-15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나온 <피안에 지날 때까지>도 추가요.

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랑 <도련님> 정도만 읽었네요. 혹시 일본드라마를 보신다면, <나는 주부로소이다>도 추천해보고 싶어요. ^^ 주부에게 나쓰메 소세키가 빙의되어 벌어지는 낮드라마였는데, 작가가 워낙 짱짱하다보니, 무척 재미나게 봤어요.

반딧불이 2009-11-15 01:57   좋아요 0 | URL
예 하이드님. <피안 지날 때까지> 보관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드라마도 여력이 되면 챙겨보도록 할께요. 고맙습니다.
 
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 경쾌하게 고전읽기 4
이인호 지음 / 천지인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이 한두 권이겠는가마는 장자는 그런 책 중에서도 유난한 책 중의 하나다. 장자에 나오는 수많은 우화들은 어디에선가 한번쯤 눈동냥이나 귀동냥 했던 것들이 많다. 출전을 밝히지 않은 아이들의 동화책에서부터 출전뿐만 아니라 그 원문까지도 정확하게 밝혀놓은 해설서들까지, 어릴 때 장자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옛날 얘기에서부터 교수님께 들었던 강의까지, 멀고도 가까운 것이 장자이다.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듯하고 들을 때 마다 처음 듣는 듯한 이 낯설음을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란 말인가? 읽을 때마다 내가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고 하면 자뻑이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 때마다 내가 먹은 밥그릇 수만큼 기억이 사라지는 쪽이 더 가까운 듯하다.

  이런 이유로『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는 내게는 또 새 책이다. 『장자, 30구 -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언』의 개정판으로 새로 나온 이 책은 천지인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로 기획한 ‘경쾌한 고전읽기’ 시리즈 4번이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오는 리라이팅 클래식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도 시리즈 4번이고보니 공교롭기도 하다.

어쨌거나 『장자』라는 책은 반고본과 곽상본이 있는데 우리가 보는 『장자』는 장자로부터 600년 뒤인 위진시대에 편찬된 곽상본이라고 한다. 장자는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도합 33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에는 28개 구절의 장자가 현대적인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이것을 통해 장자라는 인물의 성격, 시대적 배경, 사상 등을 재미있게 개괄할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장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과 ‘장자와 매트릭스’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아인슈타인과 장자를 대담형식으로 한자리에 부른 ‘장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은 전혀 상이해 보이는 물리학과 철학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장자와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쩌면 프로그래밍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영화 매트릭스를 장자의 나비 꿈에 관련지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나비가 되어 꽃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지금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과연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정말 나일까 혹시 털이 거친 여우 한 마리가 꾸는 꿈속에서 나는 인간 여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깨어나야 할지 말아야할지 심히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이상하게 나와 있다.

아까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분명 장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나는 나고 나비는 나비인데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이 현실인가?

똑같은 구절이 반복되고 있는 이 구절이 내가 알고 있는 장자의 나비 꿈인지, 나비의 장자 꿈인지, 후주로 원문이 실려 있음에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까닭에 대해서는 나를 탓하지 말라.

2009년에 만난 장자는 여전히 그 유별난 과장으로 인해 황당하기도 하지만 왠지 멀리 둘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 때문이리라.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또 사랑의 올가미에 목이 졸리고 싶은 갈증이 더해지는 이 가을에 특히 가까이 두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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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0-0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가 장자책을 하나 찾고 있었어요~. 공자나 노자책도 함 소개해 주세요~.

근데 글씨체 때문에 읽기 힘드네요~.^^;;

반딧불이 2009-10-06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나비님. 제가 '자'씨 아저씨들하고 별로 친하지를 못해요. 그냥 장자씨 책만 세권 갖고 있어요.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강신주, <우화로 즐기는 장자>-윤재근, 그리고 이 리뷰의 책이죠. 앞의 책은 장자의 사상을 현대철학자들(들뢰즈 가타리,부르디외 등등)의 개념과 비교하면서 설명해요. 노자와의 차이도 짚었구요. 뒤의 책은 장자 33편을 전부를 번역하고 짧은 해설을 덧붙여두었더라구요. 통째로 읽지는 못하고 궁금할때마다 찾아보기로 써요. 오늘 리뷰의 이책은 저같은 무지랭이가 접하기에 가장 편한듯해요.

글씨체는 한글 바탕체인데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돋음체로 바꾸었어요)

라로 2009-10-06 10:19   좋아요 0 | URL
돋음체가 보기 좋아요,,바탕체는 스크린에 너무 꽉차고 커서 깜짝 놀랐어요~.ㅎㅎㅎㅎ
저도 '자'짜 오빠들과 안친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그분들 책을 찾아 읽고 싶은데 데 아는게 없어서~.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