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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음 - 정약용 산문 선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1
정약용 지음, 박혜숙 엮어옮김 / 돌베개 / 2008년 6월
평점 :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외워할 대상이었던 다산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은 <애절양>이라는 시를 접하고 난 후였다.
애절양(哀絶陽)
갈대밭의 젊은 아낙 울음소리 길기도해
관문 향해 울부짖고 하늘보고 외쳐 보네
출정나간 남편이 다시 못 옴은 그럴법하지만
옛날 이래 사내가 양(陽)을 자른단 말 들어보지 못했다네
시아버지 삼년상은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료
가서 호소하고 싶지만 관가의 문지기 호랑이 같고
이정(里正)이 으르렁대며 진즉 소를 끌어가버려
칼 갈아 방에 드니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스스로 한탄하길 애 낳은 죄로 이런 군색한 액운 당한다오.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잘한 일 아니고
민(閩)땅의 건(囝)이라는 거세풍습도 역시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다
자식 낳고 살아가는 이치, 하늘이 주시는 일
하늘의 도(乾道)는 아들을 만들고 땅의 도(坤道)는 딸을 낳아
말이나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고 하거늘
하물며 우리 백성 자손 잇는 일임에랴
권세가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려 즐기지만
쌀 한 톨, 비단 한 치도 바치는 일 없더구나
너나 나나 한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 거냐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이 시는 시집의 이름이기도 한데 1983년 ‘시인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왔고 시집의 가격은 2000원이었다. 이 책을 언제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십 수 년은 좋게 지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책장은 누렇게 변색되었고 가볍기가 요즈음 나오는 재생지 책보다도 더 가볍다.
시는 한 남정네가 스스로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유인즉슨 식구 숫자대로 군포를 물리자 가난한 백성이 산아제한의 방법은 없고 견디다 못해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것이다. 이 시를 쓸 당시의 다산의 나이 42세였다고 한다. 40세 되던 해에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을 시작하였으니 유배생활 두해 째 되던 때의 시다. 백성의 어려움을 곧이곧대로 읊은 시들은 그러나 유배생활 중에 쓴 시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젊어서부터 그가 쓴 시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 일처럼 아파한 마음에서 쓰여진 시였다.
『다산의 마음』을 읽으면서 이 같은 다산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참된 시’에 대한 언급에는 시에 대한 마음이 정확하게 정리되어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81쪽)” 어떤 이는 시란 감정의 자발적 흘러넘침이라고 하지만 다산은 그러한 시뿐만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산이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꽃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선비였는데 향과 모양 등 다양하게 즐긴 것 같다.
시집에는 작약, 모란, 치자 등 소담스런 모습과 진한 향을 지닌 꽃과 함께 해류, 부양 같은 낯선 꽃 이름도 보인다. 특히 그는 국화를 좋아해서 꽃의 그림자까지 즐겼다고 하는데 산문에는 국화가 다른 꽃보다 뛰어난 점 네 가지를 적어두었다. “국화가 다른 꽃보다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이 넷이다.” 나는 꽃송이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국화보다도, 머리를 풀어헤친 듯, 갈고리를 엮어놓은 듯한 국화보다는 코스모스 사촌뻘 되어 보이는 소국을 좋아하고 국화차로 만들어 마시는 밤톨만한 우리 재래종을 좋아하는데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다’는 다산의 생각이 무엇보다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득 이 노란 소국이 가득 담긴 상자 하나를 택배로 받고 감동의 뭉클한 펀치를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시와 꽃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 책에는 학식 높은 선비로서, 정이 많으면서도 엄격한 아버지로서,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던 가슴 뜨거운 정치가로서의 다양한 모습들이 진솔하게 펼쳐져 있다. 9남매를 낳았으나 여섯 아이를 모두 세 돌을 넘기지 못하고 잃었다. 그 중 다섯 아이가 모두 마마로 죽었다하니 그 아비 된 다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관직에 있을 때도 유배생활 중에도 언제나 현실에 튼실하게 발을 딛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갔던 옹골진 선비를 만나는 기쁨은 남다르다. 그의 기나긴 유배생활과 복사뼈가 주저앉는 고통에 대한 아픈 마음을,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 날 그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생각으로 다독이기에는 그의 생이 너무 크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