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일기
강은교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즈음을 위하여



어두워라 내 마음속
기쁜 님
오지 않고 홀로 땅 속
날쌔게 피거둠.

꽃뿌리여 꽃뿌리여

바다로 가도 웬일
산 바다는 없고
아는 배는 모두 떠나
더 떠날 배 없다.

없다 없다 아무것
이 침묵 추위에
눈뜨고 눈감은 아무것
어둠에도 어둠 재(炭)만 떠들고

눈물에도 눈물 재만
일어서니
한낮에 피 얼고
살 한참 얼고 얼 뿐.

이 너른 암묵 천지에
홀로 피 속 피
홀로 땅 속 땅








-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한 섬의 보채는 아픔이
다른 섬의 보채는 아픔에게로 가네.

한 섬의 아픔이 어둠이라면
다른 섬의 아픔은 빛
어둠과 빛은 보이지 않아서
서로 어제는
가장 어여쁜
꿈이라는 집을 지었네.

지었네,
공기는 왜 사이에 흐르는가.
지었네,
바다는 왜 사이에 넘치는가.
우리여 왜,
이를 수 없는가 없는가.

한 섬이 흘리는 눈물이
다른 섬이 흘리는 눈물에게로 가네.
한섬의 눈물이 불이라면
다른 섬의 눈물은 재(炭).

불과 재가 만나서
보이지 않게
빛나며 어제는 가장 따스한
한 바다의 하늘을 꿰매고 있었네.





안개 속에는



안개 속에는
기다리는 남녀와
기다림을 그친 남녀들이 있습니다.

안개 속에는
눈떠가는 남녀와
방금
잠들어가는 남녀들이 있습니다.

이윽고
천천히 섬이 되는 남녀와
이윽고
천천히 물이 되어 춤추는 남녀.

아아
 

안개 속에는
아직 만나지 않은 남녀와
벌써 이별해버린 남녀들이
실비아꽃처럼 흐득흐득
대지에 저희
꿈의 씨를 뿌립니다.



동백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오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매미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같은 리듬이 반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울기 시작할 때 음을 끌어올리고 일정한 음높이가 되고나면 다시 내려간다. 모두 잦아들기 전에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일정한 마디를 몇번씩 반복하곤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울음은 여운을 남기면서 잦아든다. 물론 사람이 다가가거나 먹이를 노리는 새가 날아들면 뚝 끊기기도한다. 동생의 알사탕을 몰래 훔쳐 먹다가 들켜서 목구멍 굵기보다 큰 사탕을 통채로 꿀꺽 삼킨 것처럼 울음은 빈 뱃속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적당한 반복에서 우리는 가락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자지러지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오래 듣다보면 그 동어반복이 절절함을 넘어 무섭기조차하다.  강은교의 시집은 반복으로 넘실거린다. 매미의 무서운 동어반복은 아니다.  어느 주술사의 주문같은 효과를 내면서 멀미가 느껴질 만큼 넘실거린다. 참 많은 마침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시적 긴장을 주기보다 출렁거린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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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6-1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지 않게 된게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못하겠어요,,,,에구

방금 남편과 <유령 작가>를 보고 왔어요.
로만 폴란스키의 스타일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적당한 서스펜스에 적당한 트위스트,,,,이완 맥그리거의 자연스런 연기,,,다 좋았답니다.
번역만 빼고,,ㅎㅎㅎ
끝나고 생각해보면 좀 엉성한듯한 스토리가 느껴지지만요,,,

반딧불이님의 <시>리뷰를 읽고 언제 같이 영화 관람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ㅎㅎㅎ

목은 좋아지시는 건가요?????????

반딧불이 2010-06-11 11:15   좋아요 0 | URL
아..나비님 저도 이거 보고싶어하고 있는 중이에요. 맥그리거도 한번 보고싶구요. 또 감독의 네일밸류도 있으니 내리기 전에 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답니다.

저는 맨날 혼자 보는 사람이니 나비님이 같이 가시면 옆구리가 든든하겠죠. 목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반딧불이 2010-06-1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없는 이미지를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0161

반딧불이 2010-06-16 01:19   좋아요 0 | URL
고쳐졌군...
 



요즈음 몸이 말을 안들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처음 이삼일은 어떻게해서든  읽어보려고 애를 썼다. 누운 자세에서 책을 들고 읽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데 읽어야할 책 (나쓰메 소세키의 <명암>)이 너무 크고 무거워 들기도 힘들다. 인간의 몸이 유기적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날들이다. 

소파위를 뒹굴면서 그나마 가벼운 시집을 읽거나 알라딘 서재나 뉴스를 보는 날들이 벌써 여러날 째다. 마음산책 이벤트가 있다는 것도 목이 마비된 덕분에 알았다. 출판사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책을 보던지라 내가 갖고 있는 책이  어느출판사의 책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벤트에 참여한답시고 찾아보니 마음산책의 책이 10권이나 된다. 깜짝 놀랐다. 그런데 에밀 아자르의 가면의 생은 어디갔는지 못찾겠다. 그리고 마음산책이라는 이름이 마음+산이 아니라 마음산+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책을 통해 마음의 산을 쌓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참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책을 찾다보니 출판사의 성향을 어느정도 짐작하게 되고 고종석의 책이 거의 이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알게 되었다. 당첨이 되면 책을 한 권 준다고 하는데 선착순 50명이라고 한다. 50명은 훨씬 지난듯하지만  책 못보는 날의  증거로 남기려 적어둔다. 고종석의 책을 시에도 써먹은 적이 있어 함께 옮겨둔다. 혹시라도 출판사측에서 아픈사람의 노고를 가엾게 여겨 책을 한권 주신다면 고규홍의 <나무가 말하였네>를 받고 싶다. 

 

情夫들 
 

『사랑의 기술』 한 체위 배워보려고
급한 대로 소파에 누워 동침했던
사내에게 나는 농락당했다
『모국어의 속살』을 사랑한
사내가 있어 그가
헤집어 놓은 속살을 애무하며
밤낮으로 몸이 달았더니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라고
위로해주는 사내도 있었다 
 
뭇 사내들의 장작 같은
이론의 허벅지 더듬으며
현란한 혀가 흘려놓은
페로몬의 행간을 따라
밤 마실 가는 일 잦았고
그런 날은 소처럼
생각의 풀을 되새김질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였나, 말씀이 멀고
공허가 어깨위에서 뻐근한데
글자들이 교묘히 비껴간 자리에
보인다.
뼈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분명치 않은 채
우글거리는 구더기 떼
어지러워라!
내 욕망이 기어 다닌 몸 자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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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6-0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대 근처 지나다 마음산책 출판사를 얼핏 보기도 했는데요. 두런 두런 이 출판사의 책을 저도 본 것 같네요.
출판사 이름의 속뜻은 처음 알게 됩니다. 새로 알게 된 뜻이 더 좋은데요^^
서재 책 가운데 김영민의 책도 있군요. 그 책도 얼른 봐야겠네요.
쾌유하세요~

반딧불이 2010-06-08 13:21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 속뜻이 예쁘지요? 근데 웃기게도 책은 다 읽은듯 한데 리뷰는 달랑 한 권 썼더라구요. 김영민씨의 책은 좀 현학적인듯도 하고 좀 에로틱한듯도 하고 바르트 냄새도 나고...뭐하나 딱히 잡히는 것도 없으면서 계속 읽게 되요.

비로그인 2010-06-0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규홍의 <나무가 말하였네> ..
그 출판사 사장님이 좀 보셨으면 좋겠어요..이 페이퍼를 ..
아픈 사람이라는 단어에 제 가슴이 먼저 ㅠㅠ

얼른 나으셔야지요.. 반딧불이님.
그래서 요즘 글이 뜸하셨네요.. ㅠㅠ
왜 글이 없으실까 했거든요..

빨리 강건해지시길을요.. 반딧불이님.

반딧불이 2010-06-08 14:01   좋아요 0 | URL
제 병은 책을 멀리하면 낫는 병이래요.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맨날 천변으로 밤산책 다니고 여기저기 행사참여하고 잘 놀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현대인들님.

비로그인 2010-06-0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껏 감기 때문에 징징댔는데 반딧불이님은 몸이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군요.
선물도 받고 몸도 개운해지시기를 빌겠습니다^^

반딧불이 2010-06-08 21:33   좋아요 0 | URL
아공..저도 기껏 목이 마비되었을 뿐인걸요. 부황뜬 흔적이 달마시안처럼 남았지만 침맞고 물리치료받고 이제 살만합니다. 고맙습니다. 후와님.

마음산책 2010-06-0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서 나으셔서 책 못 보는 날의 증거가 어렴풋한 기억이 되길 빌겠습니다.
반딧불이님, 감사합니다. :)

반딧불이 2010-06-08 21:22   좋아요 0 | URL
하하..마음산책님 여기까지 납시셨네요.책 주시면 금방 나을 것 같아요~

라로 2010-06-09 01:50   좋아요 0 | URL
마음산책님이 찾아오셨으니 이벤트에 당첨되실것 같아요!!
선착순외로라도 주실것 같아요!!!!
저는 반딧불이님이 받고 싶으시다는 그 책이 넘 궁금해요~.^^

라로 2010-06-0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아파요????ㅠㅠ

반딧불이 2010-06-09 10:08   좋아요 0 | URL
하하 나비님. 목만 안움직일 뿐 다른덴 멀쩡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로 2010-06-11 00:49   좋아요 0 | URL
아이고,,,,목만 안움직일 뿐이시라니,,,ㅠㅠ

반딧불이 2010-06-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눈과 입만 잘 움직이면 특별히 아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인가봐요. 발바닥을 못디딜만큼 몸살을 앓아도 말을 할 수 있다는게 다행스럽고, 모가지가 아무리 말을 안들어도 볼 수 있다는게 고마운걸요.
 
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에는 <소세키의 다양성>이라는 글이 있다. 고진에 의하면 소세키가 쓰기 시작할 무렵에 일본에는 文이라는 장르가 있었고 마사오카 시키가 제창한 ‘사생문’도 이 ‘文’ 에 속한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文’에서 소세키의 소설이 태어나고 다양한 작품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단편소설이라고 알고 읽고 있는 소세키의 단편들은 소설이 아니라 ‘文’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노스롭 프라이의 장르론을 예로 들어 픽션을 소설, 로맨스, 고백, 아나토미로 구분하고 이 모든 장르를 다 쓴 소세키의 글의 다양성에 대해 말한다.

『몽십야』는 소세키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8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모두 24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고진의 말에 따른다면 ‘단편소설’이 아니라 ‘문’이라는 글이다. 처음 소세키의 단편을 읽을 때 이것을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고 나는 이것이 소세키가 소설을 쓰기 위해 메모해 둔 것이거나 다양한 소설의 형식을 실험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마음』을 읽으면서 고진의 글을 보았으니 그것이 단편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알고 마지막 남은 몇 편의 ‘文’을 읽었다.

<쾨버 선생>, <편지>, <삼산거사>, <쾨버선생의 고별>, <전쟁과 혼란>, <시키의 그림>, <회상>, <이상한 소리>등이 그것이다. ‘文’이라는 형식을 알고 나니 그것을 모르고 단편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읽었을 때의 미심쩍음은 사라졌다. 이것을 어떻게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사라지고 나니까 그의 글이 있는 그대로 전해져왔다. 짧게는 한두 쪽 분량밖에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소세키의 일상이나 일상을 대하는 소세키의 생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회상>은 그가 30분 죽음을 경험한 병원 생활을 기록한 것으로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마음가짐과 죽음의 문턱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로서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의 병실 바로 옆에 입원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유일하게 자기만 살아남은 것에 대해 그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던 듯싶다.

소세키는 <회상>이 ‘평범한 개인의 병상일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부하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들어가도록 써볼 예정‘이란다. 병상일기는 맞지만 ‘평범한 개인’이라는 말에는 온전히 동의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소세키는 빨리 완성해서 젊은 사람들이나 괴로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옛 향기를 맛보게 하고 싶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썼다. 소세키가 얘기하는 고풍스러운 멋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이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내가 하이쿠와 같은 고풍스런 정취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는 그의 글 속에서 가장 일차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文’과 ‘하이쿠’를 섞어서 쓴 것인데 지금까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긴 하다. ‘文’의 내용에 맞는 하이쿠와 시를 적절히 안배해서 사실의 전달과 정서적 울림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30분간의 죽음을 체험하고 나서 소세키는 삶과 죽음을 대조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가 신문지상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안부를 전해오자 세상의 관심이 자신을 병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하고 정신적으로 소생하게 만들었다며 병에게 감사한다. 나는 그의 말이 그냥 하는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따스함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사내의 진정한 깨달음이 느껴졌고 그가 외치던 ‘나의 개인주의’가 타자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으로 ‘文’이라는 형식의 소세키 단편도 모두 읽었으니 소세키의 마지막 미완성 작품 『명암』만이 남았다. 왠지 책장을 넘기기가 싫어서 며칠 째 아직도 다섯 쪽을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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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2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웅진에서 나온 <마음>과 함께 실린 <꿈 열흘 밤>으로 단편들을 봤네요. 최근엔 창비세계문학전집 일본편에도 <이상한 소리>가 실려 있어 한 번 더 봤구요.
文을 현대의 갈래로 말하자면 수필이나 교술로 이해하는 게 맞겠죠? 가라타니의 책을 못 봐 짐작만 해봅니다.
보통 일본문학의 주류인 사소설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거리가 꽤 멀다고 하는데 文이라는 갈래를 중간에 놓으면 그의 소설과 사소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생각입니다.
고민해 볼 거리네요.

반딧불이 2010-05-2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소세키의 '문'은 수필과 교술과도 다른 것 같아요. 수필이 성찰을 통한 어떤 깨달음이 내재되어 있고 깊이가 있다면 '문'은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어줍잖은 제 생각이지만 사소설이 소설을 쓰기위한 도구로 일상을 사용 또는 조작하기도 한다면 소세키의 소설은 일상을 있는 그대로 소설로 드러내는 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네요. 말이 되는 소린지...원.

파고세운닥나무 2010-05-2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도 근대의 작가이니까요. 근대의 문학 갈래론을 들이밀 수 밖에 없는 게 후대를 사는 우리들이라는 생각입니다. 文이라는 일본 고유의 갈래가 있다해도 말이죠. 서정-서사-극(헤겔), 서정-서사-극-교술(조동일) 가운데, 혹은 또 다른 무엇을 취하든 그의 글도 틀거리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찌됐든 그의 단편을 소설로 봅니다. '있는 그대로'라 말씀하셨지만 밀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밀도가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죠. 나쓰메는 밀도가 낮아 그 모습이 수필(교술)에 가깝게 보이는 것이구요. <이상한 소리>도 자신의 경험을 소재 삼지만 작가의 머리를 떠나 글로 표현되는 것이 곧 창작이겠죠. 그 안에 허구 혹은 꾸밈이 있을테구요.
중언부언해봅니다.

반딧불이 2010-05-26 00:01   좋아요 0 | URL
음...사실 제게는 소설이든 수필이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소세키를 읽고 나서 제게 가장 큰 변화라면 변화라는 것이 이 장르의 문제에 대한 것인데요. 시, 소설, 수필 뭐 이런것들이 그닥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있어요. 소세키는 문예라는 말을 즐겨 썼는데 제 식으로 바꾸면 문학이구요. 이 문학을 과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하는 것이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해버렸어요. 기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소세키의 '자기본위''개인주의'같은 나만의 언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희미하게나마 해보게 되었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05-26 10:22   좋아요 0 | URL
일본인 특유의 자기 스타일 고집을 말하면 제겐 부정적으로 다가옵니다. 소통하고, 교류하며 공통점을 찾아내기보단 우리만의, 나만의 것만을 찾아내다보면 결국 고립을 자초하죠. 갈래론을 말씀드린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습니다.
나쓰메가 '자기본위'나 '개인주의'를 말할만한 충분한 작가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글이 동서양의 어느 갈래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특유한 것이라 말한다면 난감하죠.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작가들이 대체로 그런 모습이구요. 사소설을 비판적으로 이해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구요. 이론과 연구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도 있으니까요.

반딧불이 2010-05-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나무'님 글을 읽다보니 저는 소세키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일본인이라는 시각보다는 그저 문학인으로서의 소세키에게 더 주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소세키의 '개인주의'니 '자기본위'니 하는 것도 문학을 하려는 사람의 자기고민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읽었던듯 싶습니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본받아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소세키가 '개인주의'나 '자기본위'를 내세운것은 '동서양의 어느 갈래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특유한 것'이라 말한다거나 '이론과 연구의 무용함을 주장'하기 위해 고민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 스스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고 근대화가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그 시대의 필연적인 산물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일본인 작가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냉정한 비판이 전제된 후라면 수용해야할 것은 마땅히 수용해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라로 2010-06-0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많이 쓰셨네요~.
찬찬히 밑에서부터 읽어올라와야겠어요~.ㅎㅎ
오늘은 그냥 인사만~~.
잘 지내시죠????

반딧불이 2010-06-04 13:16   좋아요 0 | URL
엉? 나비님 돌아오신거에요? 다시 뵈서 반가워요~
 
- Poetr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얼마 전 알라딘에서 영화할인 카드를 구입했다. 영화비 50% 할인에다 일 년 내내 무제한이라고 해서 게으른 나도 최소한 1년에 두 번은 갈 수 있을 테니 밑져야 본전이다 싶었다. 카드는 사 두었는데 별로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한 달 가까이 책상서랍 속에 얌전히 모셔 두었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화제다. <하녀>, <시> 등. 본 사람들의 평도 모두 제각각이다. 특히 <시>에 대해서는 나도 한마디 보태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났다. 화요일엔 씨너스 강남에서 <하녀>를, 수요일엔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시>를 봤다. 내 평생 이틀 연속 영화를 보기는 처음이다. 씨너스 강남은 주차장을 못 찾아 헤매다가 상영시간이 임박해 근처 유료주차장에 차를 넣었더니 주차비가 영화비보다 더 나왔다. 할인카드 가 무슨 소용이람.

코엑스에 갈 때는 아예 차를 두고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일찌감치 정류장에 가서 버스노선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삼성동 가는 버스가 안 보인다. 옆 사람한테 물어보니 다른 정류장에 가서 타야한다며 버스 번호까지 가르쳐준다. 부지런히 가서 노선표를 확인했다. 안심하고 버스를 탔는데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기사한테 물어보니 1월부터 노선이 바뀌었단다. 일단 내렸는데 버스노선을 몰라 택시를 타고 그래도 20분전에 도착을 했다. 택시비로 2800원 지불했다. 무비바로로 예약한 예매권을 발권 받으려고 하니 무인발권기에서 전화번호나 생일을 입력하라고 한다. 내 전화번호 생일을 몇 번씩 집어넣어도 잘못된 예매번호라고 나온다. 무인 발권기를 포기하고 창구에 가서 일단 줄은 섰는데 평일 한낮인데도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도저히 시간 내에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할 수 없이 무비바로에 전화를 해서 예약한 사람의 전화번호 뒷자리나 생일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사생활보호 어쩌구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댄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찌어찌 발권을 받았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열은 열대로 받고....... 영화마저 날 실망시키면 카드 잘라 버리려고 했다. <시>가 영화할인카드를 살렸다.
  

물 흐르는 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화면이 열리면 카메라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기다란 다리가 화면을 가로지르며 가득 채우고 나면 카메라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거기 몇몇 사내아이들이 풀밭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 중의 한 아이는 뭔가를 찾지도 못하고 찾는 일에 그다지 관심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풀숲을 뒤지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아이는 멀리 하늘, 산, 그리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거기 무언가 희끗한 것이 떠내려 오면서 점점 클로즈업된다. 점점 커져 종아리가 드러난 여자아이의 시체라는 것이 확인될 즈음, 시체의 머리 곁에 ‘시’라는 영화의 제목이 ‘뜬금없이’ 뜬다.  시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찾고 있는 것에서 한발 비껴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 하늘, 산, 강물 등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다가 물에 떠내려 오는 스스로 그러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시다.

주인공 양미자씨는 66세의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다. 처음에는 명사가 생각이 나지 않다가 차츰 동사까지 잊어버리게 된단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나이를 헛갈려 하고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지갑을 찾으며 지갑이라는 이름을 잊어버린다. 시란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이 계량화 되어 숫자로 표기되는 과학화된 세계, 모든 것의 가치척도로 사용되는 돈. 명사로 표명되는 앎의 세계. 이 모든 것을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것. 이것이 시다.

미자씨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씻기고 집안청소를 한다. 그 대가로 받는 수고비(4만 원-시 한편의 고료와 같다)가 그녀의 생활비이고 용돈이다. 가끔 노인은 팁으로 만 원짜리 한 장을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미자씨는 말하지 말라는 말까지 다 옮긴다. 그리고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한다. 한 여학생이 강물에 뛰어들어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렇다. 이것이 시다. 말하지 말라는 말까지 다 옮길 만큼 거짓되지 않은 것. 돈벌이에 바빠 귀담아 듣는 사람 하나 없는 이야기를 혼자 떠드는 것. 이것이 시다. 

죽은 여학생에 대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미자씨는 그 사건에 자기의 손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사건을 축소하고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가해자의 아버지들은 수시로 모이고 거기에 미자씨도 불려간다. 그들과 밥이나 술을 같이하지도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 미자씨. 서둘러 밖으로 나와 맨드라미꽃에서 고통의 색을 본다. 이것이 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자들과 말을 섞지 않는 것. 붉은 꽃을 바라보며 거기에서 고통을 감지하는 것.

위로금으로 할당된 오백만원을 마련해야한다고 추궁당하고 피해자와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직접 만나 실마리를 찾으라고 떠밀려 혼자서 피해자의 엄마를 찾아간다. 가는 도중에 세상의 풍경은 미자씨의 마음과는 달리 찬란하기만 하다. 햇빛은 눈부시고 그 햇살에 잘 익은 살구는 새로운 생명을 위해 떨어진다. 미자씨는 자신이 왜 이 길을 가는지 목적을 깜빡 잊는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수첩을 꺼내 글귀를 적는다. 밭일하는 여자를 만나서는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기쁘기만 하다. 몇 마디 나누고 돌아서서는 자기가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그녀가 누구인지 깨닫고 놀란다. 미자씨는 소나기에 흠뻑 젖어 돌아와서는 노래방으로 가 혼자 노래를 부른다. 무슨 일을 해서든 갚겠다고 돈을 빌리려하지만 거절당한다.

이것이 시다. 돈으로만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과는 달리 피해자의 고통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단지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반갑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고통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것.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하지 않듯이 타인의 고통에 흠뻑 젖는 것.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부르는 노래. 이것이 시다. 

미자씨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돌봐주던 노인의 욕망을 채워준다. 나중에 그를 찾아가 합의금으로 주어야할 오백만원을 빼앗아(?)온다. 그리고 피씨방에서 놀고 있는 손자를 데려다 피자를 사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손발톱을 깎아준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곳의 때도 깨끗이 닦으라고 도통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배드민턴을 친다. 그때 시낭송회에서 늘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형사가 찾아온다. 형사는 손자가 치던 배드민턴 라켓을 받아 누님과 배드민턴을 치고 함께 온 다른 형사는 손자를 데려간다. 미자씨는 울거나 소리치지 않는다. 시란 이런 것이다. 아름다움만을, 깨끗함을, 진실만을 추구하고 싶지만 욕망 혹은 자본주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그런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프다고 혹은 상처받았다고 비명 지르지 않는 것. 담담하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시다.

미자씨는 마침내 시 창작 수업의 마지막 날 완성된 시 한 편과 꽃다발을 탁자에 올려놓는다. 미자씨의 목소리로 시작된 시가 자살한 소녀의 목소리로 낭송되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물소리와 아무 것도 떠내려 오지 않는 강의 얼굴로 가득 찬다. 이것이 시다. 시가 있는 세상의 강물에는 ‘스스로 그러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떠내려 오지 않는다. 영화의 화면 역시 꾸민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지저분하면 지저분한대로 복잡하면 복잡한대로 생긴 그대로를 다 드러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시다.  


강물로 시작되어 강물로 끝나는 영화는 영화를 보고 온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음속에 범람하고 있다. 영화감독이 쓰는 스크린 시론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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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5-2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할인 카드 파는거에요? 얼마전에 책 사니깐 쿨링백이랑 같이 날아오던데 'ㅅ'
무튼, 이 영화 찍는 장면 티비에서 얼핏 본 것 같은데 궁금하네요. 악평이 난무하는 '하녀'도요.

반딧불이 2010-05-23 10:22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저는 6900원인가 주고 샀어요. <시>는 수수하고 잔잔한 화면이지만 할말이 많은 영화에요. <하녀>는 글쎄요... 취향이 다르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비로그인 2010-05-2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있는 세상의 강물에는 ‘스스로 그러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떠내려 오지 않는다"는 문장이 이 영화를 집약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군요. 다른 말이 필요없네요. 저도 감명 깊게 봤습니다^^

반딧불이 2010-05-23 15:34   좋아요 0 | URL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기뻐요.

넙치 2010-05-2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윤정희씨의 네츄럴한 얼굴이 너무 좋더라구요. 한국에서는 나이를 감추기위해 부자연스러움을 택하는데 윤정희씨는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게 곱디곱게 보였어요. 시란보톡스 도움을 받은 부자연스런 얼굴이라은 안 어울렸을 거에요.ㅎㅎ

반딧불이 2010-05-27 14: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셨어요?
감독이 윤정희씨를 택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거에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요. 얼굴에 비해서 몸은 어찌나 탄력있던지 저는 감탄했지 뭐에요.^.^

프레이야 2010-06-0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직 리뷰 쓰지 못하고 머금고 있어요.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리뷰 참 좋아요, 반딧불이님.^^

반딧불이 2010-06-07 20:05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보고 나서 며칠간 말문이 막히더라구요. 그리고 쓰려고 보니 제대로 생각도 안나고요. 저도 더 보고싶긴 한데 그냥 씨디 나오면 하나사서 오래오래 보려구요. 고마워요. 프레이야님.

라로 2010-06-09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볼때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님의 리뷰를 읽게 되어 다행이에요!!!ㅎㅎㅎ
안그랬으면 보고싶어 미칠것 같았을테니까요,,
멋진 리뷰에요,,,뒤늦은 제 추천을 더합니다.

반딧불이 2010-06-09 10:11   좋아요 0 | URL
나비님. 세번이나 보셨다는 페이퍼 읽었어요. 이창동 감독이 감동했을거에요. 어제는 일본여성들 몇분과 조조할인으로 시를 봤는데 일본에서 상영하면 또 보겠다고 하면서 좋아들 하더라구요. 이창동의 영화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일본사람들이 더 좋아하는듯해요. 고맙습니다.
 
나의 개인주의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개인주의>는 소세키가 일본 귀족자재들만 다닌다는 학습원에서 한 연설이다. 국가주의를 학습시키는 학습원에서 개인주의를 얘기한다는 건 소세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년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했지만 영문학은 고사하고 문학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소세키. 문학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그는 '자기본위'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논리적 뼈대를 삼아 평생동안 자기의 문학론을 펼쳐나갔다.   

아래 글은 소세키의 <나의 개인주의>를 있는 그대로 요약 정리한 것이다. 문장의 연결관계를 고려해서 서너개 접속사를 고친것 말고는 모두 소세키의 말 그대로이다. 


대학시절 영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영문학은 제쳐두더라도 제일 먼저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졸업을 하고 교사가 되고 유학길에 올랐다. 1 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비로소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방법 외에는 나를 구할 길이 없다고 자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입각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아니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 문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를 간신히 생각해내어 이 ‘자기본위’를 입증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연구라든가 철학적인 사색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침으로 주어졌고 이 네 글자로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불안은 사라졌고 어떤 방향에서 분명히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된 기분이었다.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정리해서 귀국 후 훌륭하게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녀야했다. 고등학교에도 대학교에도 사립학교에도 나가서 돈벌이를 해야 했고 신경쇠약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시시한 창작품을 잡지에 게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형편이 나빠졌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내가 기획했던 사업을 중도에서 중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내가 저술한 『문학론』은 그 기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패의 유해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기형아의 시체일 뿐이었다. 혹은 멋지게 건설되지도 않은 채 지진으로 무너져버린 미완성 시가의 폐허와 같은 것이었다. 저작의 사업은 실패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때 확실히 포착했던 자기 자신이 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오늘날의 나에게조차 특별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부여해 주고 있다.

권력이라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타인의 머리 위에 무리하게 강요할 수 있는 도구이거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이기이다. 금력 역시 개성을 확장하기 위해서 타인에게 유혹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지극히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돈을 유혹의 도구로 사용하여 그 유혹의 힘으로 타인을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평소에 사람은 자신의 개성이 발전할 수 있는 장소에 자리를 잡아야 하고 자신과 딱 들어맞는 직무를 발견하기까지 매진하지 않으면 일생의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그만큼 개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사회로부터 허락되어 있다면, 타인에 대해서도 그의 개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경향을 존중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정리해보면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려고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에 부수되는 의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자기의 금력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것에 동반되는 책임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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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6-0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시마 유코를 참 좋아합니다. '반딧불이'님이 꼭 읽어보셨으면 해서요^^ 이미 읽으셨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자이 오사무의 딸인데 아버지와는 꽤 다른 소설 세계를 갖는 분이에요.
<불의 산>이란 소설을 읽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다른 소설들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도 아울러 했구요.
일본 여성작가들을 잘 알지 못했는데, 이 분의 소설을 대하니 꽤 풍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딧불이 2010-06-04 13:19   좋아요 0 | URL
아니요 읽기는커녕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걸요. 두권으로 나와있네요. 요즈음 목이 말을 안들어서 책을 못보고 있어요. 나아지는대로 꼭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6-04 22:08   좋아요 0 | URL
속히 나아지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가끔 목이 아프거든요. 일전엔 목을 돌리면 소리가 계속 나길래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아봤는데 괜찮다고 하더군요. 저는 불편한데 말이죠.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목과 어깨가 아프더라구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