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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십야 ㅣ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에는 <소세키의 다양성>이라는 글이 있다. 고진에 의하면 소세키가 쓰기 시작할 무렵에 일본에는 文이라는 장르가 있었고 마사오카 시키가 제창한 ‘사생문’도 이 ‘文’ 에 속한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文’에서 소세키의 소설이 태어나고 다양한 작품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단편소설이라고 알고 읽고 있는 소세키의 단편들은 소설이 아니라 ‘文’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노스롭 프라이의 장르론을 예로 들어 픽션을 소설, 로맨스, 고백, 아나토미로 구분하고 이 모든 장르를 다 쓴 소세키의 글의 다양성에 대해 말한다.
『몽십야』는 소세키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8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모두 24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고진의 말에 따른다면 ‘단편소설’이 아니라 ‘문’이라는 글이다. 처음 소세키의 단편을 읽을 때 이것을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고 나는 이것이 소세키가 소설을 쓰기 위해 메모해 둔 것이거나 다양한 소설의 형식을 실험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마음』을 읽으면서 고진의 글을 보았으니 그것이 단편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알고 마지막 남은 몇 편의 ‘文’을 읽었다.
<쾨버 선생>, <편지>, <삼산거사>, <쾨버선생의 고별>, <전쟁과 혼란>, <시키의 그림>, <회상>, <이상한 소리>등이 그것이다. ‘文’이라는 형식을 알고 나니 그것을 모르고 단편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읽었을 때의 미심쩍음은 사라졌다. 이것을 어떻게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사라지고 나니까 그의 글이 있는 그대로 전해져왔다. 짧게는 한두 쪽 분량밖에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소세키의 일상이나 일상을 대하는 소세키의 생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회상>은 그가 30분 죽음을 경험한 병원 생활을 기록한 것으로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마음가짐과 죽음의 문턱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로서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의 병실 바로 옆에 입원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유일하게 자기만 살아남은 것에 대해 그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던 듯싶다.
소세키는 <회상>이 ‘평범한 개인의 병상일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부하지만 고풍스러운 멋이 들어가도록 써볼 예정‘이란다. 병상일기는 맞지만 ‘평범한 개인’이라는 말에는 온전히 동의할 수가 없다. 어쨌거나 소세키는 빨리 완성해서 젊은 사람들이나 괴로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옛 향기를 맛보게 하고 싶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썼다. 소세키가 얘기하는 고풍스러운 멋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이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내가 하이쿠와 같은 고풍스런 정취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는 그의 글 속에서 가장 일차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文’과 ‘하이쿠’를 섞어서 쓴 것인데 지금까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이긴 하다. ‘文’의 내용에 맞는 하이쿠와 시를 적절히 안배해서 사실의 전달과 정서적 울림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30분간의 죽음을 체험하고 나서 소세키는 삶과 죽음을 대조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가 신문지상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안부를 전해오자 세상의 관심이 자신을 병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하고 정신적으로 소생하게 만들었다며 병에게 감사한다. 나는 그의 말이 그냥 하는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따스함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사내의 진정한 깨달음이 느껴졌고 그가 외치던 ‘나의 개인주의’가 타자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으로 ‘文’이라는 형식의 소세키 단편도 모두 읽었으니 소세키의 마지막 미완성 작품 『명암』만이 남았다. 왠지 책장을 넘기기가 싫어서 며칠 째 아직도 다섯 쪽을 읽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