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서 인류애로 - 성적 지향과 헌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게이법조회 해제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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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C.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에서 사회가 동성간의 성행위를 '범죄'로 취급하거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를 '혐오'에서 찾는다. 그 동안 사회와 법률에서 동성애를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정당화해왔는지의 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사회와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과 헌법의 변화하는 과정도 여러 법률 사건을 들어 세세히 밝혀 놓았다. (하지만 이 책의 리뷰를 쓰는 것은 너무 어렵다ㅠㅠㅠ  그렇지만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은 더 안될 말! 누스바움의 문장들로 대체할 수 밖에...)



'혐오'의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감정만은 아니다. 타인의 혈액, 타액, 정액, 체액, 역겨운 냄새, 그리고 끈적거리는 물체나 생물(에를 들어 민달팽이를 보고 느끼는 걈정, 꿈틀거리는 벌레 등등)에 대해 드는 자연스러운 혐오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도의 '혐오'라면 공공장소에 침을 뱉거나 배설을 하면 안된다거나 개방된 장소에서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있어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배설물, 타액, 체취, 혈액, 벌레 등을 보고 느끼는 1차적 대상과 이를 다른 대상이나 물체에 투사하여 느끼는 투사적 혐오projective disgust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투사적 혐오란, 혐오의 1차적 대상물과 관련성이 없는 자들에게 대해 혐오의 1차적 대상물의 성질 등을 투사함으로써 그들을 혐오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성소수자, 여성, 유대인 등에 가해진 비하 및 차별의 수단으로써 이와 같은 투사적 혐오를 사용하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전통적으로 여성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사용한 '부정탄다',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 '냄새가 난다', 그리고 역시 소수자들에게 '~~충蟲' 등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혐오의 감정을 투사하였다. 이렇게 투사된 감정을 법에 실현함으로써 이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혐오의 정치'가 오랜 시간 존속되어 왔다.



'혐오의 정치'에 대비되는 개념이 바로 '인류애의 정치'이다. 미국의 건국과정으로부터 인정되어온 종교의 자우,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자유와 평등의 의지가 바탕이 되어 형성된 의식, 그리고 타인이 나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를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를 존중하는 정치를 '인류애의 정치'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볼 것인지, 거기에 평등한 인간성을 부여할 것이지, 아니면 그보다 못한 무언가를 덧씌울 것인지를 선택해아만 한다. 다른 사람을 혐오의 감정이 투사된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로 인식하는 지점, 소수 인종이나 게이, 레즈비언들의 삶을 바라보는 주류적 관점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참여가 그동안 아프게도 결여되어 있었다.  



'제1장 혐오의 정치:실제, 이론, 역사'에서는 '혐오'라는 감정이 미국의 성 정치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학자로 데블린과 카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제2장 인류애의 정치:종교,젠더,장애'에서는 미국 헌법의 고유한 가치인 평등, 박애, 자유, 행복에의 추구 등에 관한 권리를 언급하면서 성적지향과 인종, 젠더, 장애 등으로 인하여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투쟁해온 과정을 설명한다. "다양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평등도, 평등한 존중도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 사람도 괴물이 아닌 진짜 사람이라는 점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적 전통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평등한 자유를 사유하는 길로 나아갈 때 반드시 내디뎌야 할 한 걸음"으로 천명함으로써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오늘날에는 혐오와 맞서는 두 반대자가 있다.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는 법적 영역에서도 점점 더 힘을 키워가고 있는 혐오의 반대자는 바로 '존중'과 '공감'이다. 미국 민주주의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이념, 그리고 사적 자유에 대한 높은 평가인데, 다수의 시민들은 이 두 이념이 결합되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고 생각한다. 즉 설령 다수 시민이 특정한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지라도, 그 선택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개인적 선택을 할 여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4쪽)


   혐오는 도덕적 둔감성에 의지한다. 다른 인간을 끈적거리는 민달팽이나 역겨운 쓰레기 조각으로 보는 일은, 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선의에 찬 시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때에나 가능하다. 혐오는 타인에게 인간 이하의 속성을 전가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누군가를 인간으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26쪽) 


   '인류애의 정치'는 그저 타인을 광범위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인간, 평등한 존엄성 평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바라볼 것만을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가 추구하는 목표가 제3자에게 실제적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인류애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은 타인의 평등한 인간성을 보지 못하는 위치로 결코 퇴각하지 않는다.(95쪽)


   어떻게 보면 결혼의 미래는 앞으로도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결합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것이며, 때로는 갈라설 것이다. 다만 국가는 이와 관련된 결정을 낼 때 반드시 평등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국가의 법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정부는 특정한 혜택이나 결혼의 존엄성이라는 의미의 표현으로부터 어떤 집단의 시민들도 배제시킬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동성커플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완전히 포섭한다는 결정은 인종 간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결정이나 여성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유권자로서, 또한 시민으로서 인정한 결정에 견줄 만큼 거대한 변화다. 이 모든 변화는 헌법이 보장하는 약속의 진정한 실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변화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인류애의 정치'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동성결혼을 전통적 결혼을 더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이유로 보지 말아야 한다. 대신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목적을 이해하고, 결국 이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동성애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성결혼 금지는 인종간 결혼금지와 마찬가지로, 만인의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차별이다. (232~233쪽)


   '인류애의 정치'란 평등한 존엄성과 평등한 행복 추구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284쪽)


   결혼만큼 뜻 깊은 관계는 없다. 왜냐하면 결혼은 사랑,충실,헌신,희생과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기존에 각각 존재했던 것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 원고들의 일부가 이 사건에서 보여주듯, 결혼은 심지어 과거의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을 담고 있다. 이들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의 이상을 무시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원고들의 주장은 그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그토록 결혼의 이상을 깊이 존중하기에 그들 자신들도 결혼의 이상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있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들 중 하나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에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300쪽,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인정 판결문 중에서, 게이법조회 번역 참조.)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버거펠 대 호지스 사건에서 동성결혼 금지법 심리 사건에 있어 5대 4의 결정으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며, 동성결혼이 가능한 주에서 공증된 동성결혼은 다른 모든 주에서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위키백과 참조)을 내려, 사실상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결혼이 불법은 아니나 합법도 아니고 그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으며, 그에 대하여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법 규정 자체가 없으니 혼인신고도 불가능하다. 



내 기억 속 최초의 커밍아웃이라면 당연히 홍석천 씨의 경우일 것이고 그 후 하리수 씨의 트랜스젠더 커밍아웃과 결혼이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불과 그 얼마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모'라는 말로 그를 비하하고 비난하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20 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홍석천 씨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타나 요즘 다시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 이태원에서 여러 음식점을 성공적으로 일궈내기도 했고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 그이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일부러 찾아가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오기도 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홍석천 씨가 가게에 나와 있었다. 우린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때도 그가 게이라는 것에 반감이 없었고 그의 선택이니만큼 내가 그것을 판단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선택하는데 왜 남이 왈가왈부야?! 하는 생각을 했었다. 반대를 반대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온전히 자신의 몫인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뿐, 오히려 그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되고 그의 부모님의 신상이 까발려지고 뭇매를 맞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속상했다. 홍석천 씨와 같은 사례들이 쌓이고 우리 사회도 좀 더 치열한 논의를 거쳐 다양성을 인정하고 법제화하는 그 날이 오기를 나도 두 눈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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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리 차일드
주말엔 잭 리처~~^^
아들과 남편이 있ㅇㅓ 하루 종일 티비 소리 시끄러워
집중독서 불가능...
이번엔 프랑스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시작이구나!
리처는 역시 길 위에 있었고 어딘가로 이동중이었고...
잭 리처 컬렉션, 열 아홉번째 이야기라는데..
그럼 잭 리처 나이가 대체 몇 살이나 된거니???
이러니 난 역시나 정착하지 않는 리처에 마음이 쓰인다 ㅠㅠ
하지만 이번에도 재밌겠지?

8일 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일 없이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좋은 일들도 있었고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다. 아주 가끔씩 신경이 쓰이는 사건이 벌어졌을 뿐, 전반적으로 보자면 지루할 만큼 평범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치 군 생활처럼. 그래서 그들은 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군인은 군대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군대는 군인이었던 자를 떠나지 않는다. 잠시 동안이라면 몰라도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떠나는 경우는 결코 없다.
프랑스 대통령 저격 사건이 발생한 이틀 뒤부터 그들은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 기사를 통해 그 사건을 알게 되었다. 라이플을 이용한 장거리 저격이었다. 장소는 파리.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사건이었다. 그 당시나는 파리에서 9,600 킬로미터 떨어진 캘리포니아에 있었으니까. 버스에서만난 어떤 여자와 함께였다. 그녀는 배우 지망생이었고 나는 아니었다. LA에서 이틀을 함께 보낸 뒤 우리는 각자 제 갈 길로 떠났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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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 있길래 얼른 집어왔다.
도서관에 앉아 몇 쪽 읽어보는데..
자아가 입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는 .. 이 무슨 해괴한 소리가 나오는거냐! ㅎㅎㅎ

테레사의 오리무중

성 테레사가 첫 번째 무염시태를 경험한 것은
마스크 실내 착용 의무가 해지된 1월 30일이었다.설이지나고 센터에 가보니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 테레사는 마스크를 벗을 생각이 없었다. 
마스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성 테레사만 알면 
되었다. 의무가 해지된다고 해서 벗을 의무가 있는 건 아니어서 성 테레사는 안심했고 전과 다름없이 마스크를 쓴 채 근무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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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가 이 멋지고 대단한 책을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흑...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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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경식 선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을 천천히 읽었다. 그의 저서 중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만났던 미술 작품과 작가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쓴 기행문이다. 여행 지역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등의 북부 지역이다. 서경식 선생이 유럽을 처음 여행한 것은 1983년이라고 한다. 1971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그의 두 형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그로 인하여 한국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가 1983년 뜻밖의 기회로 유럽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그의 두 분의 형님들도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석방이 되었다. 형들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형들과 편지를 썼는데 형들이 말한 미술 작품들을 홀로 유럽에서 직접 보고야 말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그의 심정을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유럽을 돌아보면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남긴 책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다. 그로부터 30 여 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가기도 하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내(책에서는 아내를 F로 지칭한다.)와 음식을 즐기고 그 여행을 이렇게 책을 남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넘 부러웠다. 물론 나는 관심은 있지만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물론 이탈리아 작가들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 뿐이라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을 붙인다는 것이 넘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만큼 나같이 단편적인 지식만 있는 독자들에겐 어려운 학술서보다 더 큰 지식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지리책을 볼 수도 없고, 정치, 경제 ,예술... 그리고 문학 작품을 얼마나 읽어야 알고 싶은 갈증을 다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를 뿐더러 특히 미술에 관한 한 더더욱 나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탈리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음... 시도조차도 안한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에겐 이 정도의 책이면 딱 적당하단 생각이 들었단 거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들이나 여행, 미술 전시회 등의 경험으로 이탈리아에 대해 극히 적은 부분을 알긴 하지만 어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다시 시작하는 듯한 한계에 부딪히게 되더라는... 어차피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단 걸 알기 때문에 딱 이 정도로 시작을 하는 것도 나에겐 뭔지 모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여러 미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면서 천천히 감상해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읽으면서 나름 유익한 시간을 가져 보았다. 특히나  이 책의 미덕이라면 너무 많은 문장으로 책을 모두 꽉 채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 이 부분이 특히 맘에 들어왔다. 글은 책의 오른쪽, 나머지 왼쪽 여백에는 관련 작가의 사진이나 작품, 장소, 사진 등을 실었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읽고 싶은 책들도 여럿 만나게 되어서 도서관 검색도 이용해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투자한 시간 대비 가성비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닐런지...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베니스 등의 대도시와 소도시들도 여러 군데 방문을 했었지만 '페라라'는 관광 상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아서인지, 그리고 내가 검색해 보아도 '페라라'만의 특별함, 독특함, 아름다움 등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는 아니기 때문에 조르조 바사니의 책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읽기 전까진 이 도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에서의 페라라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성벽 안에서>에서 묘사하는 페라라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조르조 바사니의 기억, 작품 속 페라라와 서경식 선생의 페라라를 서로 번갈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거리를 상상하게 되고 사진으로 보았던 에스텐세 성과 에스텐세 성벽에 붙어 있는 1943년 11월 15일의 페라라 학살 사건의 희생자 추모 명판, 그리고 유대인 묘지, 또 서경식 선생이 다녔던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그 거리 이름들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마치 내가 지금 거길 간다 해도 그 거릴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조르조 바사니의 <성벽 안에서> 중에서 '1943년 어느 날 밤'은 에스텐세 성의 추모 명판과 이어지는 스토리이다. 1943년 11월 15일, "트럭을 나누어 타고 베로나와 파도바에서 들이닥친 파시스트군은 반파시스트 지식인, 변호사, 유대인 등 열한 명을 사살하고, 시신을 에스텐세 성의 해자 근처에 방치하며 본보기로 삼았다(이탈리아 인문기행, 129쪽)." 또한 추모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43년 11월 15일 새벽, 시민 열한 명을 학살함에 따라, 전횡 체제가 나치 독일과의 공범 행위를 시작했다. 정치적 자유를 회복한 페라라는 정의와 신과 평화의 이념 아래, 이 비열한 범죄를 규탄한다.1945년11월15일(같은 책, 127쪽)." 이 사건을 알고 있고 조르조 바사니의 이 단편을 읽었다면 이 명판을 보고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관광객으로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총살이 있던 그 보도를 이용할 사람은 자신이 삼가면 좋을 행동을 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게 될까? 

      그는 마침내 여행 안내서에서 머리를 들 것인가. 들지 않을 것인가?" 

                                                 (<성벽 안에서>의 다섯 번째 이야기 '1943년 어느 날 밤' 중에서, 223쪽)

서경식 선생은 거기서 어떤 전율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이런 경험을 책으로 하고 있다니! 아. 진짜 너무 멋져서 말이 안 나온다~~~!




서경식 선생이 토리노에 간 이유는 당연히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모 레비, 그리고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대항했던 체사레 파베세,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의 레지스탕스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특히 프리모 레비의 묘지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했는데 하필 유대인의 안식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묘역의 문을 닫아버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철책 너머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그의 묘비만 눈에 담고 돌아왔다니 안타깝지만 이것도 여행자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 싶어 미소 지을 밖에... 역시 프리모 레비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책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급히" 책을 주문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것이 인간인가>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자전적 소설인 <가족어 사전> 두 권이다.


















미술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된 감상을 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 맘에 감동을 주는 그림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남겨야 한다면 두 작품이 떠오른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벅찬 감동이 일어 검색을 하게 만든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의 『제4계급』, 그리고 '위대한'이란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미켈란젤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조각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이다. 『제4계급』은 교회(제1계급), 귀족(제2계급), 부르주아(제3계급)에게 학대 당해 왔던 제 4계급인 노동자들의 각성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중앙에 남성 두 명과 아기를 안은 여성 한 명이 힘차게 걸어 나가고 있고 그 뒤를 이어 결의에 찬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노동자들이 이들을 따라 걷는 모습이 가로로 긴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그 힘차고 희망에 가득한 그 분위기.... 그 분위기가 마치 그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으리란 것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어서 프랑스 혁명의 시민 봉기를 그림으로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았을 때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및 유럽 전역의 진보파와 사회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작품이기도 하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1900년」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로도 차용이 된 작품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미술 작품들과 천정화는 사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관광객에 떠밀려 또는 그 넓고 광대한 박물관을 틈 없이 채운 회화 작품들에 질려서 찬찬히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까마득히 높은 천정에 그려진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본다는 것도 불가능했으므로 내가 그 작품들을 감상했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아, 그리고 그곳 바티칸 성당에서 보았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에타」상像. 너무도 아름답지. 유리 안에 갇혀 있어 안타깝기도 했고. 위대한 작품, 위대한 작가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 내가 미켈란젤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사실이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론다니니의 피에타 」像은 그야말로 '미완성의 완성'을 보여주는 극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상계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미켈란젤로가 89년의 생애의 고투 끝에 만든 마지막 미완성 작품"(305쪽)이며 "미완"이라고 썼지만 "완성"을 뛰어넘어버린 !  이 미완의 피에타로 남긴, 탈진해버린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을 두고 일본의 역사 학자 하니 고로는 "누구라도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인상'을 받는다"(309쪽)면서 자신만의 식견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보기를 독려한다. 피에타 상은 대부분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지만(앉은 채로) 이 조각상은 어머니가 뒤에서 아이를 감싸 안아 올리듯 서 있다. 무덤 구멍으로부터 죽은 예수님의 모습을 들어 올려 세운 모습이 마치 지금 여기 이 지상을 떠나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도로 마른 예수님의 몸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감동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혹 이 책을 만든 반비 편집자들도 너무 감동 먹어서 그런걸까. 이 작품이 296, 304 두 쪽에 똑같이 실려 있다.^^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전시관에 있다는데(특히 이 작품 하나만 전시관 한쪽에 전시가 되어 있어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일지 짐잠이 간다), 스포르체스코 성의 견고한 성채와 정원만 산책하고 돌아온 나는 대체 뭘 보고 온 것일까? 서경식 교수도 썼듯이 "건물 밖은 북적댔지만(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 안은 관람자의 그림자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미완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상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아쉬움이 참 많이 남지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책들이 있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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