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주도에서 멸종위기식물 2급인 으름난초를 몇 번 만난적이 있습니다. 이 난초는 썩은 생물에게서 영양분을 얻기 때문에잎이 없고 가을이면 붉은 열매가 홍고추처럼 주렁주렁 달리는 신기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이런 잎이 없는 독특한 형태의 난초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을 보다 사람들이 이 난초의붉은 열매를 잔뜩 넣어 술을 많이 담가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종이 멸종위기식물 2급이기에 더 귀한 술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더군요. 저는 바로 환경부에 신고했습니다.
난초는 씨앗이 가루처럼 많긴 하지만, 그 발아율이 매우 낮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열매를 모두 뜯어버리는 것은 그 난초의 내일을 빼앗는 것이죠, - P255

식물분류학자들 사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합니다. 멸종위기식물을 지정하면 그 식물은 곧 그 자생지에서사라지더라는 것이죠. 자생지가 알려지면 도굴꾼들이 금방 식물들을 다 캐가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멸종위기 종을 보전하기위해 조사하고 보고하지만, 그것이 식물에게 정말 좋은 것인지고민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생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일부러 제외하고 보고서나 논문을 출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신 저자들과 정부 관계자들만 장소를 알고 보호 조치를 합니다. 이렇게 멸종위기식물을 지키는 것도 사람이지만, 식물들이멸종위기에 놓이게 된 것도 결국 사람 때문입니다. 지구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오며 살아온 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나 자연선택이 아닙니다. 직간접적인 인간의 활동이가장 큰 원인이죠. - P257

대화와 달리 식물과 음악에 대해서 뚜렷한 결과를 보여주는 실험들은 꽤 많습니다. 식물은 음악 장르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과싫어하는 음악이 분명해 보이고 음을 들려주는 좋은 시간대와 음악에 대한 반응도 구체적입니다. 클래식, 헤비메탈, 재즈를 들려주면 식물 성장을 촉진시키거나 과일맛을 증가시킨다는 보고가있습니다. 악기 중에는 현악기를 선호하고 클래식 작곡가 중에는비발디, 베토벤, 슈베르트 등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하죠. - P264

여러 종류의 음악은 자연에서일어날 수 있는 자극의 모방이며, 식물의 성장 촉진, 수분 증가, 결실율 증가, 해충 감소 등의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를보면 식물은 역시나 마음도,마음이 생길 수 있는 뇌도 없고, 우리 인간과 교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게됩니다. - P265

한국에 있는 외로운 식물로는 울릉도에 있는 오래된 향나무가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울릉도 도동항 절벽 끝에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의 모습은 궁궐이나오래된 절에서 만나는 우아한 향나무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외롭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요. 흙도 많이 없는절벽을 붙잡고 비스듬히 친구도 없이 홀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향나무로 2천 년을 넘게 살아왔습니다. 긴 시간 홀로 있었으니 그만큼 외로운 순간들도 많았겠지요.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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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항해 1개월 3일째,
지구 시간으로 4년 8개월 후 - P19

잠들 때마다 꿈을 꿨어. 지구에 내리는데 당신이 내 친구 한 놈이랑 애 하나 떡 안고서 오는 거야. 그러면서 ‘편지? 못 받았는데?‘ 하면서 깔깔 웃는 거야. 그리고 친구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가운데 나는 구석에서 혼자 소주나 홀짝거리는 거지.
웃지 마. 심각하다고, 세상에 그보다 비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
자기야, 부탁이야.
기다려 줘.
3년만, 제발 3년만, 평생 잘할게. 응? - P22

그 사람 말이, 테러 분자들이 서울을 점령했대.
그래도 서울은 안전하대.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용감한 국군이 금방 진압은 할 건데 지금 입항하면 행정 처리가 안 되니 잠깐 나갔다 오래.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집에 보내 달라고 하는데그냥 나가 버리는 거야. - P31

정말로 1년을 기다린 건 아냐. 하지만 4개월하고 3일을 기다렸어. 잠은 배에서 자고 밥통에흙을 갈아 먹으며 살았어.
당신은 오지 않았어.
그런데 왠지 슬프지 않더라. 기쁘지도 않았지만,
그저 담담했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처럼느껴졌어. 당신이 갈댓잎 사이에서 나타나기라도했다면 ‘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나.
이상하니까 집에 갔다가 다시 와.‘ 했을 거야. - P55

그 사람들이 배에 식량을 다 채운 뒤에는 나도내 배에 올랐어. 문을 닫을 때 왜 같이 가지 그러느냐는 당신 말이 들리는 것 같았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야."
당신이 문을 닫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어.
"더 가 봐야 우리는 만날 수 없어. 당신이라도살아."
나는 선장이 내 편지를 다 훔쳐봤다고 했어. 그래서 같이 못 가겠다고 했어. - P71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해도. 오래전에 어느 별에 정착해 좋은 사람 만나 아들딸 열쯤 낳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한 생을 마감했다 해도.
혹은 어느 빛의 궤도에 올라, 지구가 회복되기를기다리며 아득한 여행을 하고 있다 해도. 어쩌면아득한 성계 너머에서 이제 막 배에서 내리며, 어린 날의 가벼운 추억거리처럼 나를 회상하고 있다고 해도, ‘아, 그런 사람이 있었죠. 오래전에 다른 시간대에서 죽었겠지만. ‘ - P78

집에 가자고 생각했어.
살 수는 없을 것 같았어. 너무 고독하고, 너무혼자니까. 내가 당신의 그 시골집처럼 폐허가 되었으니까. 지금 끝내자는 생각도 했어. 하지만 기왕 끝낼 바에는 집에 가서 하자고 생각했어.
그런 생각을 하자니 떠오르는 곳이 있더라, 마지막 장소로는 거기가 좋을 것 같았어. - P94

삭은 카펫이 맨발에 밟히며 삐그덕 소리를 냈어 발을 옮길 때마다 하얀 먼지가 향처럼 일어났어, 의자는 녹슬고 낡았지만 정돈되어 있었어.
제단 뒤 벽에 색바랜 종이가 겹겹이 붙어 있는것이 눈에 들어왔어. 원래는 색지였을 것 같았지만 모두 회색이었어. 거기에 물먹은 글씨로 비슷한 말이 잔뜩 적혀 있었어.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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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하기 전에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어. 한동안 못 볼 테니까. 정확히는 4년 6개월간말이야. 다들 온대. 같이 사진도 찍었어. 사진 넣는 줄목걸이도 나눠 줬어. 예식장에서 사은품으로 줬거든. 오늘 찍은 사진 넣어서 목에 걸고 오라고 했어. 일일이 누군지 물어보며 민망해하지않아도 되게 말이야. 다들 놀리더라. - P8

당신이랑 결혼한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좋아서 깨. 애처럼 바둥거리다가 베개를 끌어안고콧노래를 부르며 자곤 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당신이 옆에 누워 있는 상상을 하면 좋아 죽을 것같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빠가 된다는 상상을하기도 해. 우리 사이에 누워서 칭얼대는 아기도상상해. 어떻게 두 달을 기다리지? 하루도 더 못기다리겠는데, 얼른 보고 싶어. 사랑해.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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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가는 길에 읽기 시작...!
터널이 넘 많아서 아쉽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산들, 그리고 남한강변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가 멋지다.
반대편 차선은 꽉 막혀있는데 우리쪽 차선은 잘 빠져서 기분 최고!

이제는 꽤 지난 일이 되었지만, 내가 구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뉴욕의 병원이었는데, 내 침대에서는밤이면 환한 불빛이 기하학적으로 밝혀지는 크라이슬러 빌딩의풍경이 바로 보였다. 낮에는 그 빌딩도 아름다움을 잃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서히 여느 건물과 다름없는 그저 덩치 큰 건물이 되어갔고, 도시의 모든 건물들은 멀찍이 떨어져 침묵을 지키는 듯 보였다.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었다.  - P9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의 어느 늦은 오후,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더니 침대 발치에 놓인 의자에 엄마가 앉아있었다. "엄마?" 내가 말했다.
"안녕, 루시." 엄마가 말했다. 수줍지만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엄마는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시트에 덮여 있는 내 발을 꽉 잡았다. "안녕, 위즐." 엄마가 말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엄마를 보지 못한 상황이어서, 엄마를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낯설어 보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P13

거짓말을 하거나 음식을낭비하면 늘 벌이 뒤따랐다. 이따금 예고 없이, 부모님이 충동적으로 사정없이 우리를 때리기도 했는데 때리는 사람은 대체로엄마였고, 대체로 아빠가 보는 데서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푸르죽죽한 피부와 침울한 태도를 보고 그 사실을 눈치챈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고립되어 있었다.
우리는 소크밸리에 살았는데, 한참을 걸어도 집이라곤 들판 한가운데에 달랑 한두 채만 서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앞서말했듯 우리집 근처에 다른 집들은 없었다. 우리집에서는 멀리지평선까지 이어져 있는 옥수수밭과 콩밭이 보였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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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록소를 가진 엽록체는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만드는 공장입니다.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꾼다는 것은 동물인 인간이 보면 정말 굉장한 일이죠. 빛을 사냥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쓴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 이유로 녹색은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 P204

식물에서 가장 다채로운 색을 내는 부분은 꽃과 열매입니다.
꽃과 열매는 그저 눈에 띄기 위해 알록달록한 색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색은 흔히 유혹의 색이죠. 꽃의 수정이나 씨앗의이동을 도와줄 곤충이나 동물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색을 가집니다. 수레국화, 큰제비고깔 같은 푸른색과 벌노랑이, 유채꽃 같은 노란색은 벌이 좋아하는 색입니다. 석산이나 참나리처럼 붉은계열의 색은 나비가 좋아하는 색이지요. 벌과 달리 나비는 붉은색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새들도 붉은색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동박새가 빨간 동백꽃의 수정을 돕는 것이죠. 가을 열매들이 붉은색을 많이 띠는 이유 중 하나는 붉은색이 잎의 초록색과 대비되는 색이기도 하지만,
눈이 오는 겨울에도 눈에 띄어 새들의 먹이가되어 씨앗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05

실제로 큰 참나무 한그루는 1년 동안 약 15만 리터, 하루에 약411리터의 물을 방출한다고 합니다. 411리터의 물이 잎을 통해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정말 장관일 겁니다. 이런 현상을 ‘증산작용‘이라고 합니다. 이 작용은 잎에 있는 작은 구멍인 기공에서 일어나는데, 기공을 통해서 물뿐만 아니라 산소와 이산화탄소도 이동합니다.  - P213

햇빛이 너무 강해 온도가 높아지고 건조해지면 오히려 식물은 기공을 닫아버립니다. 과도한 수분 손실은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구온난화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의 온도가 몇도 상승하는 것이 인간이 느끼기엔 미미한 듯 보여도 식물의 기공개폐에 크게 관여할 수 있습니다. 식물의 증산작용이 억제되면 공기 중의 수분이 줄어들어 대기의 습도를 변화시키고 점진적으로는 지구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식물의 작은 구멍이 닫히는 것이 지구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죠. - P217

그런데 식물학자들이 www를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바로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입니다. 이는 식물과 식물 뿌리에 붙은 수많은 근균, 즉 곰팡이들이 연결되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속 곰팡이가 인터넷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죠. 일반적으로 식물과땅속 곰팡이는 공생하며 식물은 곰팡이에게 탄소를, 곰팡이는 식물에게 질소 같은 영양분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에 이곰팡이들은 식물과 식물을 연결하는 연락책으로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환경 변화나 외부 침략자들에 대한 경고,
주변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전달합니다. - P231

우리가 쉽게 보는 식물 중에 마음을 짠하게 하는 식물은 또 있습니다. 월드컵공원, 남이섬, 담양 등에서 멋진 가로수길을 이루고 있는 메타세쿼이아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등지에서도 사랑받는 식물입니다. 원산지는 중국이고, 측백나무과, 메타세쿼이아속에 속하는 유일한 종입니다. 메타세쿼이아도은행나무나 소철처럼 겉씨식물로 속씨식물보다 오래된 원시적인 식물입니다. 메타세쿼이아속의 종들이 더 있었지만 이들도 진화의 수순을 밟아 모두 멸종하였고, 메타세쿼이아 한 종만 살아남았습니다. 야생 메타세쿼이아는 심각한 벌채로 개체 수가 줄어들어 현재 야생에서는 멸종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 P241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은행나무, 소철, 메타세쿼이아를 그토록 흔하고 쉽게 볼 수 있는데, 자연 속에서는 희소한 존재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흔하다 여기고 소중함을 잊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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