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사원>
전편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 다른 혼다의 생각과 행동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역시 미시마 유키오 작품답다.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첫 권인 <봄눈>에서 일본에 유학을 왔던 태국 왕자의 딸인 공주 잉 찬에게 차갑게 거절을 당한 형국에 수치심을 느끼며 크게 낙심한 58 세의 혼다.
그 모습이 왜 이리 시원하고 통쾌한지...
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이야기의 결말 한 가지는 예측할 수 있다. 전편에서 기요아키의 환생이었던 이사오가 어린 나이에 죽어 다시 환생한 사람이 잉 찬인 것처럼 아직 시리즈의 마지막 한 편이 남아있으므로 잉 찬도 역시 젊은 나이에 죽으리라는 것!

걸으면서 혼다는 만약 자신이 젊었다면 소리 높여 울면서 걸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젊었다면! 하지만 젊은 시절 혼다는 결코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시간에 이성을 움직이는 편이 자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유망한 청년이었다. 얼마나 달콤한 슬픔인가, 얼마나 서정적인 절망인가. 그렇게 느끼면서 그 느낌을 ‘만약 젊었다면‘이라고 가정한 과거에만 허용한 혼다는 눈앞 감정에서 신빙성을 뿌리째 뽑아 버렸다. 만약 자기 나이에도 달콤함이 허용된다면! 하지만 지금도, 옛날에도, 자신에게 달콤함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은 혼다의 천성으로, 그나마 가능한 것은 과거와 다른 자신을 꿈꾸는 일이었다. 어떻게 다른 자신을? 혼다가 기요아키나 이사오처럼 되는 일은 처음부터 완전히 불가능했다. - P382

젊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력에 탐닉하는 것이 모든 나이에 상응하는 감정의 위험에서 혼다를 보호했음이 확실하다면, 반대로 현재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수치심은 그 극기했던 청춘의 먼 흔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혼다가 소리 높여 울면서 걷는 일 따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보든 버버리 코트를 입고 보르살리노 중절모를 쓴 초로의 한 신사의 걸음은 변덕스러운 밤 산책자의 모습일 뿐이었다.
- P383

이렇게 불쾌한 자의식이 모든 감정을 간접 화법으로 말하게끔 지나치게 길들인 결과, 이제 자의식이 없어도 될 정도로 안전한 처지가 된 혼다는 어리석거나 파렴치한 모든 행동을 할 수 있었다. 혼다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간다면 ‘감정대로 움직이는 남자‘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지금 게이코의 집에 가려고 비가 내릴 듯한 밤길을 급하게 걷는 것도 바로 그 어리석은 행동 중 하나였다. 걸어가면서 혼다는 자기 목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꺼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치 조끼 주머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회중시계를 끄집어내듯이.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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