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족쇄를 찬 다수

원래 미국 상원에는 필리버스터가 없었다. 대신에 상원은 소위예전의 질의 제안이라고 하는 원칙을 채택했는데, 상원은 이를통해 다수의 찬성만으로 토론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상원은 그 원칙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그리고 1806년에는 전 부통령 애런 버Aaron Bur의 권고를 받아들여 그 원칙을 폐지해버렸다.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긴 하지만, 버가 내세운 근거는 그 원칙을사용한 사례가 거의 없으며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는 회고록에서지난 4년 동안 딱 한 번 사용했다고 언급했다). 사용했을 때도 전반적으로 특정 사안에 관한 논의를 ‘회피할 목적이었다는 것이었다."  - P235

 그래도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필리버스터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사용되었다. 한 가지 이유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다. 상원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하기 위해서는 발언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했다. 즉, 끊임없이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1970년대 개편 이후로 상원 의원은 압도적 과반 원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뜻을 전화로, 혹은 오늘날에는 이메일로 정당 지도자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처럼 필리버스터가 쉬워지면서 예전에 드물었던 관행이 오늘날 일상적인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20세기 말과 21세기초에 필리버스터는 급증했고, 오늘날 "모든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60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진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필리버스터가 모든 상원 입법 과정에서 실질적인 압도적 다수 원칙으로 진화한 것이다. - P237

필리버스터 옹호론자들은 이를 미국의 근본적인 전통이라고 포장해서 말한다. 하지만 사실 필리버스터는 뜻하지 않게 생겨났으며, 미국 역사에서 대부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적인 소수 거부권은 최근의 발명품이다. - P238

헌법에 대한 환상

미국인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헌법은 신성한 문헌이며, 그래서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제도는 거대한 설계, 즉 공화국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한 청사진의 일부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타협과 양보, 그리고 이를 위한 차선책의 역사를 흐릿하게 만든다. 또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반민주적이기까지 한 제도를 혼동하게 만든다.  - P238

근본적인 다양한 제도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일관적이고 고정된 하나의 집합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규칙, 그리고 특권을 지닌 정치적 소수가 선거와 입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규칙을 혼동하게 된다. 전자는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후자는 민주주의와 모순을 이룬다. - P238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인 다수가 대단히 포괄적인 가치를 인정하며, 다인종 자유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의 제도는 이러한 다수를 좌절시키고 있다. 한 유명 정치평론가는 약 75년 전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인다수는 사자의 목줄에 영원히 묶인 채 살아가는 순한 양치기 개다. "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해방된 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족쇄를 찬 다수‘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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